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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문화톡톡] 계약결혼 로맨스 웹툰 - 계약에 의한 결혼과 사랑에 의한 딜레마
[서곡숙의 문화톡톡] 계약결혼 로맨스 웹툰 - 계약에 의한 결혼과 사랑에 의한 딜레마
  • 서곡숙(문화평론가)
  • 승인 2020.01.13 1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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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결혼, 자유와 진실의 결합?

박완서의 소설 “『서 있는 여자』의 서사는 ‘남녀평등’을 전제로 출발한 결혼 생활의 파국을 통해 결혼이 개인의 자유로운 의지에 따른 계약적 행위의 산물이라는 믿음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폭로한다.”[1] 모녀의 서사로 이중화돼 있는 이 소설은 여성의 주체성에 대한 실험이 실패하는 두 가지 방식을 정밀하게 보여준다. 첫째, 교수 남편을 둔 중년 여성 ‘경숙’이 삶의 공허를 말하며 부부 사이의 사랑의 등가 교환을 주장하자, 남편은 결혼의 파탄을 일방적으로 선언한다. 둘째, 경숙의 딸인 ‘연지’는 그녀가 삶의 목표로 삼은 남녀평등을 결혼 계약에서 실현하고자 하자, 부부 간의 갈등과 분쟁의 소지가 되고 가족, 사회와의 연결망이 끊어진 채 고립되어 버린다.[2]

계약결혼으로 유명한 사르트르와 보봐르의 합의내용은 세 가지이다. “첫째, 서로 사랑하고 관계를 지키는 동시에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을 서로 허락하는 데 동의한다. 둘째, 상대방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어떤 것도 숨기지 않는다. 셋째, 경제적으로 서로 독립한다.”[3] 그들이 맺은 계약결혼은 ‘정열’보다는 오히려 ‘진실’에 바탕을 둔 계약이며, 나와 타자의 주체성과 주체성의 결합, 자유와 자유의 결합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보봐르는 모든 것을 터놓고 말한다는 계약조건은 남자에게만 유리한 '알리바이'였고, 이 조건은 결국 지키지 못했음을 실토한다. 그녀는 계약결혼의 조건에서 여자에게만 불리한 지점이 있음을 알았고, 육체를 통해서도 완벽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사실상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 거짓말을 하지 않고 숨김없이 털어놓기, 경제적인 독립이라는 세 가지 계약 내용은 남성에게만 유리한 ‘알리바이’ 혹은 면죄부를 제공한다. 결국 사르트르와 보봐르가 계약결혼을 통해서 실현하고자 했던 사랑과 언어는 사르트르와 보봐르에게 각각 다르게 적용된다. 보봐르는 동시에 사랑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사랑했지만 사르트르에 대한 신의를 지키고자 했으며, 언어뿐만 아니라 육체를 통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처음과는 다른 깨달음을 얻었다. 결국 애초에 계약을 맺을 당시에 고수했던 가치관에서 변화하고 벗어나게 된다.

계약은 어떤 일에 대하여 지켜야 할 의무를 미리 정해 놓고 서로 어기지 않을 것을 다짐하는 것이다. 또한 계약은 일정한 법률적 효과의 발생을 목적으로 두 사람 이상이 의사 표시의 합의를 이룸으로써 이루어지는 법률 행위이다. 계약결혼은 기간, 의무, 조건 등을 미리 정해 놓고 하는 동거이며 결혼이다. <결혼계약>, <이번 생은 처음이라> 등의 드라마는 계약결혼으로 시작하였지만 사랑으로 골인하는 남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로맨스 웹툰에서도 계약결혼 소재가 자주 등장하는데, 재벌남과 평범녀이 계약결혼을 하고 쇼윈도우 부부가 되었다가 진정한 사랑에 빠지는 스토리가 끊임없이 인기를 얻고 있다.

 

남성의 제안에 의한 불평등 계약과 사랑의 딜레마
: 《이혼해 줄래요?》와 《잃어버린 기억》

《이혼해 줄래요?》는 남성의 제안에 의한 불평등한 계약결혼이며, 사랑의 딜레마와 여성의 자각으로 인해 위기가 발생한다. 많은 인기 웹툰을 그린 아이리더의 작품으로, 자유를 원하는 재벌남과 경제적 위기에 처한 여성의 계약결혼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은 네이버웹툰에서는 242만 명, 카카오페이지웹툰에서는 41.3만 명의 구독자를 확보하는 등 인기가 있는 대만웹툰이다. 그룹 승계와 자유로운 생활이 필요한 구진호와 집안의 몰락과 어머니 병원비로 인한 경제적 도움이 필요한 윤마리가 3년 전에 계약결혼을 한다. 디자이너 윤마리가 계약결혼 남편 구진호, 옛 연인 최태오(구진호의 조카), 어릴 때의 인연인 임세현 사이에서 갈등한다. 재벌남 구진호도 계약결혼 아내 윤마리, 스타 여배우 로만, 돌아온 첫사랑 신주아 사이에서 갈등한다.

3년 전에 윤마리는 세 가지 위기에 처한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아버지의 회사는 윤마리와 재벌2세인 최태오와의 연애를 반대한 재벌집안의 의도적인 공작으로 망하게 되고, 그 여파로 아버지는 죽고 어머니는 병환으로 쓰러지게 되고, 도박에 빠진 오빠 윤루이는 여동생에게 약을 먹여 아름다운 처녀의 하룻밤 대가를 받고 부자남성에게 팔아버린다. 집안의 몰락, 아버지의 죽음, 어머니의 병환, 빼앗긴 순결 등으로 인해 윤마리는 최태오에게 이별을 통고하고 경제적 지원을 약속하는 구진호와 계약결혼을 하게 된다. 3년 동안 윤마리는 구진호의 요구 조건대로 일정한 생활비와 경제적 지원을 받는 대신 그의 사생활에 절대 간섭하지 않고 계약아내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한다.

구진호는 3년 전에 누군가가 먹인 미약을 먹고 처녀와의 하룻밤을 보낸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있으며, 윤마리는 3년 전의 성행위 동영상으로 자신을 협박하며 돈을 뜯어내는 오빠로 인해 고통스러워한다. 두 사람의 계약결혼은 3년 전의 관계를 암시하며 운명적 관계라는 것을 드러낸다. 윤마리는 돌아온 첫사랑 최태오의 적극적인 구애로 인해 갈등하지만, 자신이 구진호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구진호도 돌아온 첫사랑 신주아의 적극적인 구애로 인해 갈등하지만, 자신이 윤마리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면서 윤마리를 힘들게 한다.

구진호는 아내의 정체를 숨긴 채 수많은 여성들과 스캔들을 뿌리며 자신의 기업을 색다른 방식으로 홍보한다. 실제로 구진호는 윤마리와의 계약결혼 이후에 다른 여성과는 육체적 관계를 맺지 않고 윤마리에게만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독자들은 구진호의 이러한 문어발식 스캔들과 자신의 사랑을 자각하지 못하고 첫사랑에 끌려 다니는 행동에 분통을 터뜨리며 윤마리를 향해 “이혼해 줄래요?”를 빨리 말하라고 댓글을 통해 외쳐댄다. 자신의 사랑을 억누르는 여주인공과 자신의 사랑을 자각하지 못하는 주인공을 안타까워하며 욕하면서 구독하는 독자들이 이 웹툰의 인기를 뒷받침하고 있다.

계약결혼이 진행되면서 윤마리와 구진호는 점점 연기하는 신체가 되어가면서 인물의 이중성으로 인한 간극이 커진다. 윤마리는 계약결혼임에도 불구하고 구진호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절대 자신의 감정을 내색하지 않고 의연하게 대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감정을 은폐한다. 그녀는 구진호의 계속되는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계약아내로서의 자신의 처지를 잘 인식하고 절대로 질투를 내색하지 않고 항상 평상심을 가지고 구진호를 대한다. 구진호는 자신이 요구한 계약아내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지만 다른 여성들과는 달리 자신에게 집착하지 않는 윤마리에 대해서 조바심과 불만이 계속해서 쌓여가지만 내색하지 못한다.

계약결혼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서 점점 연기하는 신체가 되어가는 윤마리와 구진호는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윤마리는 자신이 계약된 내용을 이행하지 않고 구진호에게 사랑을 요구하거나 혹은 구진호가 사랑하는 여성이 생기면 이 계약관계가 끝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괴로워한다. 구진호는 과거에 너무나 사랑했던 첫사랑이 돌아왔기 때문에 게약결혼을 종속할 필요가 없어졌는데도 윤마리에 대한 집착으로 계약결혼을 끝내지 못하고 갈등한다.

남녀 주인공 모두 사랑을 배제한 계약결혼에서 예상치 못하게 싹튼 사랑으로 인해 위기가 닥친다. 계약결혼은 기간과 조건을 명시한 결혼이기 때문에 이미 이혼으로 끝나는 결혼이고, 이 웹툰의 제목인 《이혼해 줄래요?》는 이것을 분명하게 명시한다. 계약이라는 법률적이고 공적인 관계를 사적인 관계로 만든 형태이다. 결혼하는 커플 중 1/4 이상이 이혼하는 현실에서 계약결혼은 계약이 끝나면 반드시 이혼으로 끝난다는 점에서 불확실한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끝이 확실한 관계이다. 이러한 조건과 계약이 확실한 관계에서 사랑이라는 불확실한 변수가 생겨났다는 점에서 위기가 발생한다.

 

《잃어버린 기억》에서 남주인공은 여주인공에게 공적, 사적 관계의 비서 역할을 수행하는 아내를 제안하면서 계약결혼과 정략결혼의 혼합을 보여준다. 할리퀸 로맨스에서 유명한 린 그레이엄의 원작을 바탕으로 후지타 카즈코가 그림을 그린 웹툰이다. 빌리 포스터는 어릴 때부터 동경의 대상이자 첫사랑인 CEO 알렉세이 드라코스의 회사에 개인비서로 취직한다. 빌리는 어머니의 장례식 때 슬퍼하는 알렉세이를 위로해 주면서 관계를 맺게 되지만, 알렉세이가 계단에 부딪히면서 기억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후 기억을 잃어버린 알렉세이는 다른 여성과 약혼을 하게 되고, 빌리는 자신들의 잊혀진 추억을 혼자 간직하면서 8개월의 휴가를 받아 몰래 아들을 낳는다.

알렉세이가 이기적이고 욕심 많은 약혼녀 등 여러 여자들에게 질려 있는 중 유능하고 성실하고 정숙한 빌리를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는 점에서 아내로 맞이한다. 하지만, 알렉세이는 첫날밤에 빌리는 처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안 후에 그녀가 정숙하지 못하고 거짓말을 했다며 분노한다. 빌리는 자신의 첫 남자가 남편인 알렉세이 본인이고 아들도 있다고 말하지만, 알렉세이는 거짓말이라며 믿지 않는다. 그는 나중에 아들과의 유전자 검사로 빌리의 말이 사실임을 알게 되고 기억이 돌아오게 되면서 빌리에게 용서를 빈다. 여주인공은 계약결혼처럼 한 결혼이지만 사랑을 기대하게 되면서 실망하고 힘들어한다.

남주인공은 조건에 맞춰 결혼하게 되고, 사랑하지 않지만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아내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줄 수 있는 여성으로 자신의 개인비서를 선택한다. 하지만 그는 이미 개인비서 빌리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고 관계를 가져서 임신까지 시킨 상태이지만 이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사랑과 계약결혼의 경계에 있다. 여주인공은 계약결혼은 아니지만 남성이 요구하는 조건을 수행해야 하고 그 조건에서 어긋나면 버림받을 위기에 처하게 된다.

 

남성에 의한 계약결혼은 경제적 불평등에 기초해서 경제적 강자인 남성이 경제적 약자인 여성에게 아내/엄마/요부/보살 등 과도한 부담을 요구하는 불평등 관계이다. “근대 이후 자본주의사회의 출현과 핵가족제도의 도입으로 여성의 성과 욕망은 번식과 출산이란 범주와 남편의 성적 쾌락을 위한 봉사에 한정됐다. 근대 핵가족제도는 낮에는 정숙한 아내와 자상한 엄마로, 밤에는 요부의 역할을 규범화했던 것이다.” 현재 본격적인 성의 해방으로 인해 남성과 여성이 모두 기존의 성도덕이나 순결관념에서 자유로워지고 있다. 하지만, 계약결혼은 경제적으로 부유한 남성이 외도하는 남편이라는 자신의 부도덕성을 경제적 불평등에 기초한 계약을 통해 당당하게 실현시키려는 행태이다. 반면에, 남주인공은 경제적 약자인 계약아내에게는 철저하게 순결관념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불평등한 관계를 요구한다.

계약결혼에서 두 사람은 사랑으로 인해 딜레마에 빠진다. 여주인공은 대부분 집안의 몰락, 가족의 죽음, 부모의 병환 등으로 인해 자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남주인공으로부터 계약결혼을 제안 받는다. 남주인공은 경제적 재력이 있는 재벌남이며 일부일처제의 남편이 되어 많은 여성들과의 자유로운 생활을 청산하고 싶지는 않지만 대내외적으로 아내 역할을 해줄 여성이 필요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주변에서 가장 정숙하고 성실하고 믿을만한 여성에게 계약결혼을 제시한다.

여주인공은 처음에는 계약남편인 남주인공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는 계약아내에 만족하지만, 남주인공을 점점 사랑하게 되면서 진짜아내가 되고 싶은 마음을 깨닫게 되면서 계약위반의 상황에 직면한다. 남주인공도 처음에는 계약아내인 여주인공에게 경제적 지원을 해주는 대신 아내에게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연애와 섹스를 즐기고자 했지만, 여주인공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면서 여주인공과의 사랑과 자유로운 생활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그는 계약아내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을 떠나려는 여주인공을 잡기 위해서는 진정한 아내의 역할을 주거나 사랑을 줘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계약결혼이 아니라 진짜 결혼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진짜결혼에서 필수항목인 사랑은 계약결혼에서는 위기를 발생시키는 요인이 된다.

남성이 제안하는 계약결혼은 남성이 경제력을 이용해서 자신의 조건에 맞는 불평등 계약을 요구하여 시작되지만, 계약아내의 사랑에 대한 각성과 경제적 자립 노력으로 계약관계에 위기가 발생한다. 남성이 제안하는 계약결혼에서 공통점은 남성은 자신의 상황에서 조건에 맞춰 계약아내를 선택하고 경제적 불평등에 의해서 경제적 지원을 하는 대신 계약조건은 불평등한 관계를 제안한다. 하지만, 여성은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서 도움이 필요한 상황일 뿐만 아니라 남주인공에 대해서 남몰래 사랑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계약관계를 수락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그래서 계약아내는 계속 자신의 감정을 위장하면서 계약관계를 유지해야 하고, 어느 순간 더 이상 자신의 마음을 숨길 수 없을 때 계약이 파기된다. 남녀 주인공 모두 계약결혼이라는 제약에 묶여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 척해야 하는 연기하는 신체가 된다. 계약부부는 상대방에게 사랑한다는 마음을 들킬 때 계약결혼이라는 게임에서 지게 된다.

로맨스 웹툰은 가부장적인 남성과 젠더 위계에 순응하는 여성이라는 전형적인 인물 구도를 갖고 있지만, 계약결혼을 통해 결혼과 사랑 자체가 ‘개인의 자유로운 의지’가 아니라 ‘불가피한 상황과 조건의 부합’에 따른 계약적 행위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폭로한다. 계약결혼의 결말에서 대부분의 여주인공은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자신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한다. 여주인공은 돈이라는 필요에 의해서 사실상 주종관계를 형성하는 계약결혼을 파기하고, 경제적으로 독립하여 사랑하는 남주인공과 대등한 관계가 되고자 노력한다. 계약결혼 웹툰은 사실상 계약결혼은 결혼 자체가 계약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남성이 제안한 계약결혼에서 경제적 위기에 처한 여주인공은 자신이 일방적으로 부담하던 과도한 책임과 의무를 재조정하고, 혼외정사를 누릴 수 있는 계약남편과의 불평등하고 기약 없는 사랑을 포기하고, 아이에 대한 친권과 양육권을 주장하면서 경제적 자립을 위해 노력한다. 계약결혼은 일탈에 대한 욕망을 승인해 주는 자유로운 결혼관계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상 경제적 강자인 계약남편의 일탈에 대한 욕망을 승인해 주는 반면에, 경제적 약자인 계약아내에게는 계약과는 상관없이 일방적인 의무와 책임을 요구하는 불평등계약이다. 계약결혼 이후에 여주인공은 자신이 결국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계약결혼의 남편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존재론적 자각과 개별자로서의 여성으로서의 각성에 도달한다.

 

여성의 제안에 의한 평등한 계약과 치유의 이야기
: 《나만 사랑해줘》와 《공주의 은밀한 비밀》

《나만 사랑해줘》는 여성의 제안에 의한 평등한 계약결혼이며, 사랑의 딜레마로 인해 위기 상황에서 여성의 두려움과 남성의 불신을 극복하는 치유의 이야기이다. 다이애나 해밀턴 원작, 후지와라 모토요 그림의 할리퀸 로맨스 작품이다. 앨리의 꿈은 집을 사서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녀는 그것을 위해 모델이 되어 돈을 모으고 있었지만, 죽은 큰아버지가 앨리에게 저택을 물려주었다는 연락을 받게 된다. 그런데 상속 조건은 큰아버지의 사후 1개월 이내에 앨리가 결혼을 하는 것이다. 저택을 갖기 위해 형식뿐인 결혼을 하기로 결심한 앨리는 자신에게 푹 빠져있는 창문닦이 제스로에게 결혼 이야기를 제안한다.

재벌남 제스로는 모델 앨리를 보고 첫눈에 반한 후에 자신의 유모가 있는 마을에서 다친 유모의 남편을 대신해서 창문닦이를 하는 와중에 앨리와 재회하게 된다. 앨리는 제스로의 정체를 모른 채 창문닦이에게는 풍족하지만 재벌남에게는 푼돈인 금액을 제시하면서 계약결혼을 제안한다. 제스로는 진심으로 앨리에게 대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을 계약남편으로 이용하려는 앨리에게 마음이 상하지만 그녀와의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계약결혼을 수락한다. 그래서 이 계약결혼은 경제적으로 불평등한 계약이 아니라는 점에서 두 사람의 관계가 출발한다.

모델인 여주인공은 자신이 결혼하지 않는 것에 대해 염려하는 큰아버지가 결혼을 조건으로 저택을 유산으로 상속하는 유언을 남겨 갈등하게 된다. 그녀는 큰아버지의 저택이 부모님과 자신이 애착을 느끼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상속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녀는 과거의 상처로 인해 남성에 대한 혐오와 공포감이 있어서 남성을 피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결혼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여주인공은 섹시한 남주인공에게 매력을 느끼지만 남성에 대한 거부감으로 계속 피하는데, 큰아버지의 유산을 받기 위해서 자신에게 호감을 강하게 표시하는 남주인공에게 1년만 계약결혼을 하면 일정의 보상액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한편 재벌남인 남주인공도 자신의 재력과 외모를 다가오는 여성들에게 질려 있는 상황이어서 모든 외적 요인을 제거한 자신만의 모습으로 그녀의 사랑을 얻고자 노력한다. 두 사람이 결혼한 후 신혼여행을 떠나는데, 상대방에게 매력과 욕망을 느끼던 남녀 주인공은 성관계를 나누고 더욱 서로에게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진다. 나중에 여주인공이 재벌남인 남주인공의 정체를 알게 되면서 자신을 속인 것으로 인해 남성에 대한 두려움이 다시 고개를 들면서 두 사람의 관계에 위기가 닥친다. 남주인공은 고독하고 불행했던 가정환경으로 인해 여성에 대한 불신이 항상 깔려 있어서 정상적인 관계가 불가능한 상황이었지만, 여주인공과의 위로로 인해 자신의 상처를 극복한다.

대부분의 계약결혼 로맨스가 재벌남과 평범녀의 결합에서 조건에 맞는 계약아내를 원하는 재벌남의 제안과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평범녀의 상황이 서로 맞아떨어져서 성립된다. 반면에, 이 이야기는 재벌남이 나오지만 평범남으로 가장한 상태에서, 유산을 받기 위해 남편이 필요한 모델 여주인공이 자신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평범남에게 계약결혼을 제안한다. 이 경우에도 여주인공은 유산을 상속하기 위해서 남편 역할을 잠시 해줄 사람이 필요하지만 실제 남편은 원하지는 않는다. 재벌남은 계약아내가 필요한 상황이 아니며 여주인공과 진짜 관계를 원하지만 여주인공의 요구에 맞춰 계약남편이 되어서 가까운 관계가 되기를 희망한다. 이 경우 남자에게는 계약남편이라도 가까운 관계를 되기를 희망하지만, 남성에 대해 거부감이 있는 여주인공을 배려해서 최대한 조금씩 다가가면서 마음의 문을 열고자 한다.

여주인공의 경우 계약결혼을 제안하지만 자신이 경제적 우위를 차지한 상태에서 제안하는 불평등 계약이 아니며, 남주인공이 재벌남이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지위가 월등한 남자에게 의존하기 위한 제안도 아니다. 오히려 결혼으로 인해서 자신의 주체성과 자유를 잃지 않기 위해서 결혼할 대상자를 구하지 않고 계약결혼의 상대를 구한다. 다만 제스로에게 남성적인 매력을 느꼈다는 점이 그를 계약결혼의 남편감으로 고려하는 데 있어서 주요한 이유가 되고 있다. 그래서 여성에 의한 계약결혼은 경제적으로 평등한 계약이며, 사랑으로 인해 딜레마에 빠지지만 결국 여성의 두려움과 남성의 불안을 치유하면서 그 위기를 극복하게 된다.

 

《공주의 은밀한 비밀》에서는 위기에 처한 여주인공을 구하기 위해 남주인공이 결혼을 제안한다는 점에서 계약결혼의 형태를 띤다. 기업의 CEO인 시크 마킨 알코리는 평소에 어리석다고 혐오하던 브라번트의 에멀라인 공주를 가까이 접하게 되면서 그녀의 여린 심성과 풍부한 매력에 반하게 된다. 그녀는 자신이 고모인 죽은 공주의 사생아라는 사실을 알고는 깊은 절망감에 빠진 상황에서 바람둥이 스타 폴로선수 알레한드로와 관계를 가져 아이를 임신한다. 하지만 알레한드로가 바람둥이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면서 충격을 받게 되고, 그 와중에 알레한드로가 자신의 정부와 자동차 사고로 죽게 된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사생아로 태어나게 될 아이의 운명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에멀라인 공주를 지켜보던 시크 마킨 알코리는 결혼을 제안하고 자신의 아이라고 밝히고는 정식으로 청혼한다. 이 웹툰에서는 남주인공에 의한 제안이지만 여주인공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배려라는 동기에 출발했다는 점에서 평등한 관계로 진행되며 서로간의 내면을 알게 되면서 사랑이 깊어지는 스토리로 진행된다.

 

여성이 제안하는 계약결혼은 경제적인 불평등 관계가 아니며, 자신의 자유와 방종을 위한 알리바이와 면죄부가 아니라 자신이 애착하고 있는 공간이나 가치를 위해서 계약결혼 제안한다. 남성이 제안하는 계약결혼은 자신의 경제적 우위를 이용해서 아내가 있는 상태에서 혼외정사를 즐기기 위한 불평등한 계약이다. 반면에, 여성이 제안하는 계약결혼은 경제적으로 평등한 계약이며, 과거 자신의 남성 공포증으로 인해 결혼에 다다르지 못하는 상처받은 여성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치유의 첫 걸음이다.

할리퀸 로맨스에서 계약결혼의 예로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은 유산과 관련된 것이다. 남녀 주인공 중 한 명이 유산을 받게 될 예정인데 유산을 받는 조건이 결혼을 반드시 한 후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상속을 받을 인물이 결혼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조부모나 부모가 그러한 조항을 넣은 것이다. 남성은 결혼 후에도 자유로운 성적 방종을 추구하기 위해 계약결혼을 제안하는 경우가 많지만, 여성의 경우에는 자신이 소중히 하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계약결혼을 하는 경우가 많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우선 여성이 먼저 제안하는 계약결혼은 남성이 제안하는 계약결혼과는 달리 경제적인 불평등 관계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과거의 사랑이나 성범죄의 충격과 상처로 결혼을 하고 싶지 않은 여성이 결혼을 전제로 한 유산 상속 등의 문제에 직면하여, 계약된 일시적인 결혼관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자 한다. 이때 여성은 유산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어느 정도는 윤택한 가정환경 속에 자랐으며 자신의 직업이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그녀는 여태까지 지켜왔던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과 끔찍한 기억으로 점철된 과거 남성들과의 관계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주변에 있는 남성들 중에서 계약결혼을 제안할 수 있는 가장 최적의 조건을 갖춘 남성을 찾게 된다. 이 과정에서 여성은 자신에게 가장 적극적으로 애정공세를 하는 남성, 혹은 어느 정도 경제적 이익이 필요한 것처럼 보이는 남성, 혹은 계약결혼을 하더라도 서로의 인생에 간섭하지 않을 것 같은 남성 등을 계약결혼의 대상자로 섭외한다. 사실상 이러한 여성의 선택 자체가 자신이 결혼하고 싶은 남성의 조건에 부합하는 경우가 많지만, 계약결혼이라는 한정된 결혼생활이라는 점에서 상처받지 않는 실험이 된다.

그리고 유산을 받기로 되어 있는 여성의 경우 남주인공과의 관계에서 경제적 강자가 아니다. 여주인공과 남주인공 모두 전문성과 안정된 직업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둘다 어느 정도 부를 갖고 있는 것으로 설정된다. 다만 여주인공이 유산으로 받게 되는 것은 경제적 부라는 가치 외에도 자신 혹은 부모가 애착을 느끼는 저택, 땅 등으로 설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때 남주인공은 계약결혼 결과 여성의 유산 상속으로 자신이 얻는 경제적 이익은 크지 않지만, 평소 여주인공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던 친구, 후견인 등으로 설정되어 여주인공을 돕기 위해서 나선다.

그리고 여주인공도 이러한 계약결혼을 통해서 계약남편을 놔두고 혼외정사에서의 자유, 연애, 사랑을 추구할 생각이 애초부터 없다. 계약결혼이지만 그 한정된 기간 동안에는 서로에게 충실한 결혼생활을 보내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사실상 관심이 있지만 더 관계를 진행시키는 것에 용기를 내지 못하는 여주인공이 유산 상속 문제에 직면하여, 결혼까지는 아니더라도 계약결혼이라는 형태로나마 남성에 대한 상처와 두려움에서 극복하기 위해서 용기를 내게 된다.

그래서 나중에 계약결혼을 통해서 남녀는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 준다. 여주인공은 자상하고 배려심 있는 계약남편을 통해서 과거의 상처와 두려움을 극복하고 사랑으로 뛰어들 용기를 얻게 되며, 남주인공은 계약아내의 과거를 알게 되면서 그녀를 이해하고 서서히 다가가서 사랑을 쟁취하게 된다. 그래서 여주인공이 제안한 계약결혼에서는 사랑과 자유가 대립항으로 설정되지 않으며,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사랑이 대립항이 된다. 서로간의 계약결혼이 처음부터 강요되는 의무와 책임에서 벗어나서 한정된 시간 동안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마련하는 계기가 된다. 이렇듯 여주인공이 제안하는 계약결혼과 남주인공이 제안하는 계약결혼은 다소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계약결혼 로맨스 웹툰과 시한부 사랑의 불안

계약결혼은 ‘시한부 사랑의 불안’보다는 오히려 ‘필요에 의한 (사랑의) 계약’이 된다. 계약결혼이어서 이혼이 전제되어 있다는 점에서, 기간을 한정해서 결혼생활을 하기 때문에 서로의 감정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조건이 명확하다. 이런 점에서 계약결혼은 일부일처제의 결혼제도에 대한 비판이면서 동시에 시한부 사랑의 불안에 대한 반증일 수 있다. 그래서 계약결혼은 사랑의 불안으로 인해 남녀 사이의 관계를 계약이라는 법률적 장치로 정해놓는 것이다. 사랑공포증(love phobia)을 앓고 있는 남녀 주인공은 계약결혼을 시작으로 서로간의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면서 사랑공포증을 극복하게 된다.

사랑을 배제한 계약결혼에서 서로에 대한 사랑은 장애물이 되며, 자유와 이해관계를 침범 받지 않는 계약결혼과 사랑하는 연인을 독점할 수 있는 일부일처제의 진짜결혼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진다. 남녀 주인공에게 계약결혼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영역과 자유를 침범 받지 않고 과거의 사랑으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사실상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어서 계약결혼을 수락한 남녀 주인공은 더욱 깊어지는 사랑으로 인해 계약으로 묶여진 두 사람의 관계가 깨져 상대방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두 사람은 강한 고리인 진짜결혼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약한 고리인 계약결혼에 형태라도 좋으니 서로 상대방의 곁에 있고자 한다.

그래서 남녀 주인공은 진짜결혼이 아니라 계약결혼이지만 외부에 대해서는 진짜결혼인 것처럼 위장하는 연기하는 신체가 된다. 하지만 계약결혼이 진행될수록 상대방에 대해 매력과 사랑을 느끼게 되면서, 남녀 주인공 모두 서로의 관계가 끊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다른 사람들뿐만 아니라 상대방에게도 연기하는 신체가 된다. 연기하는 신체는 외부에서 내부로 향하며, 남녀 주인공의 이중성은 점점 간극이 커지게 된다. 계약결혼의 남녀 당사자를 둘러싼 외부에서 두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내부에까지 위장과 가장의 상태가 침범한다.

사르트르와 보봐르의 계약결혼은 계약과 결혼을 결합시키는 행위를 통해 자유와 사랑 둘다를 추구하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계약결혼에서 사르트르에 비해서 보봐르는 온전한 자유를 얻지 못하였다는 점에서 계약결혼의 맹점이 있다. 계약결혼을 통한 자유의 추구가 여성에게는 역설적으로 자유롭지 못하게 할 수 있다. 고정희의 시 문구처럼 “버린 것들 속에 이미 버림받음이 있다.” 남녀 주인공이 계약결혼을 통해 버린 것은 무엇인가? 남녀 주인공이 기간이 한정되어 있고 서로의 권리와 의무가 명시되어 있는 계약결혼을 통해 버린 것은 영원한 사랑의 맹세와 부부로서의 무한정의 권리·의무일 것이다. 결국 남녀 모두 이러한 영원한 사랑과 무한정의 권리·의무를 믿지 않고 지킬 수 없기 때문에 계약결혼이 존재하는 것이다. 즉 버린 것들 속에 이미 버림받음이 있다.

계약결혼은 사실상 남녀가 결혼을 통해서 사랑과 자유를 얻을 수 없다는 불신에 기초해 있다. 그래서 계약결혼을 통해 사랑을 얻지 못하지만 자유는 확실하게 얻고자 하는 의지를 내세운다. 하지만 남녀 주인공은 결국은 계약결혼을 통해 맺어졌지만 서로를 사랑하게 되면서 계약결혼이 주는 자유를 포기하게 된다. 결국은 계약결혼을 체결할 때는 사랑보다 자유를 우선시하지만, 계약결혼을 통해 실제로 함께 생활을 하게 되면서는 자유보다 사랑을 우선시하게 된다. 자유에서 사랑으로 가치값이 변화한다. 사랑과 자유의 대립항을 설정한 것 자체가 결혼이 사랑과 자유 둘다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기 때문이다. 계약결혼은 사실상 사랑과 자유 둘다를 얻기 위한 인위적인 장치인데 그 대상이 다르다는 데 아이러니가 있다.

사실상 계약결혼을 통해 남편과 아내의 역할을 서로가 해나가지만, 서로의 사랑과 자유는 구속하지 말자는 것이 계약내용이기 때문에 그 의무 속에 사랑은 없다. 그래서 부부 관계의 외부에서 사랑, 연애, 섹스를 해나갈 자유를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계약은 경제적 강자인 재벌남 남주인공과 경제적 약자인 평범녀 여주인공의 관계에서는 남주인공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항이다. 왜냐하면 재벌남 남주인공은 유부남이지만 그의 재력과 매력에 많은 여자들이 몰려들어서 그와의 사랑과 섹스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는 사실상 집에서 아내 역할을 해줄 여자를 원하지만 자신의 자유로운 독신생활을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약자인 여성을 선택하여 계약결혼을 제안하는 것이다.

반면에, 여주인공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사랑과 자유를 포기하면서 남주인공의 사랑과 자유를 보장해야 하는 불평등 관계의 계약결혼에 마지못해 동의하게 되는 것이다. 여주인공이 먼저 그리고 남몰래 남주인공을 사랑하기 때문에 불리한 계약결혼일지라도 그의 옆에 있을 수 있다면 감수하겠다는 속사정이 있기 때문에 사실상 여주인공이 계약결혼을 통해 다른 남성과의 사랑과 자유를 얻을 가능성이 별로 없다. 그리고 경제적 강자인 남주인공이 자신은 혼외정사를 즐기지만 경제적 약자인 여주인공이 혼외정사를 즐길 경우 계약결혼을 계속 유지시킬 가능성이 거의 없다.

결국은 남주인공이 계약결혼을 체결하는 이유는 계약아내에게는 진짜결혼처럼 정절을 지키고 아내로서의 모든 의무를 강요하지만 자신은 결혼과 상관없이 혼외정사를 즐길 수 있는 둘 사이의 합법적이고 용인된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딜레마가 발생하는 것은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을 사랑하게 되면서 혼외정사에 대한 매력을 상실하게 되고, 그녀를 잃지 않기 위해서 계약결혼이 아니라 자유를 상실하는 진짜결혼을 선택하여 사랑을 얻고자 하는 데 있다. 결국은 두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열쇠는 남주인공이 쥐고 있는 것이다. 사랑이 경제적 불평등의 계약결혼에서 딜레마가 되면서 동시에 해결책이 된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보여준다.

할리퀸로맨스는 ‘나의 몸과 마음은 나의 것’이라 외치며 성의 혁명을 구가하는 여성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적극 담아내어 여성 독자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럼에도 ‘만남 → 성적 욕망과 시련 → 사랑의 합일 → 결혼’이라는 이른바 로맨스의 정석과 서사문법을 고수하는 할리퀸로맨스에서 표면상 사랑의 서사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남성의 적극적인 인도에 따라 결혼에 도달하는 수동적인 여성들이 발견된다. 로맨스 연구자들은 할리퀸류 로맨스를 탐닉하는 이유를 보상심리, 저항심리, 자기계발로 정리했다. 할리퀸로맨스는 성적 욕망에 눈을 뜬 여성들이 주도적으로 사랑을 찾아나서는 낭만적 유토피아를 추구한다.[4]

이정옥은 할리퀸로맨스가 성에 대한 적극적인 표현, 사랑에 대한 주도적인 자세, 낭만적 유토피아 추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긍정적인 평가를 한다. 하지만, 여주인공이 완전무결한 이상과 현실적인 경험에 대한 괴리를 자각하지 못하고 사랑의 감정과 성적 욕망이 혼재된 남자와의 육체적 합일을 완전한 사랑으로 환치하거나 이상화하는 모순에 빠지는 등 한계를 드러낸다고 비판한다.

앞에서 말한 로맨스소설을 탐닉하는 이유와 마찬가지로 계약결혼 로맨스 웹툰을 탐닉하는 이유도 보상심리, 저항심리, 자기계발이라는 세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보상심리의 측면. 계약결혼은 일반적인 결혼생활에서 가부장적 현실로 인해서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에서, 최소한의 약속을 하고 서로간의 역할을 명확히 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규범에서의 일탈과 과도한 기대에서 오는 피로감에서 벗어나 휴식을 보상해 준다. 기대가 없는 상태에서 출발한 남녀 주인공의 계약결혼은 사랑을 약속한 일반적인 결혼생활보다 더 뜨거운 사랑과 따뜻한 배려가 있다는 점에서 정서적 구원과 위로를 받게 된다. 둘째, 저항심리의 측면. 일반적으로 여성보다 남성이 혼외정사로 인해 배우자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다. 로맨스 웹툰에서 플레이보이 남성이 성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위해 계약결혼을 요구하지만, 나중에 여주인공에게 사랑을 느껴 결혼 전에 비해 여주인공에게 충실하고 견실한 사랑을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현실의 삶에 대한 강한 항의와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보복을 품은 사랑의 판타지’ 역할을 수행한다. 셋째, 자기계발. 여주인공처럼 플레이보이이면서 비혼주의인 남주인공을 순정남으로 길들여 정상적인 결혼생활에 안착시키는 자기계발서 역할을 수행한다.

할리퀸로맨스의 여주인공들은 낭만적 유토피아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할리퀸로맨스를 읽는 여성독자들은 자신들을 둘러싼 남성들이 이러한 완전무결하게 이상적인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로맨스물은 현실의 결핍을 채우고 불가능한 소망을 충족시켜 준다는 점에서 여성독자들의 낭만적 유토피아의 공간이 된다. 할리퀸로맨스의 여주인공들은 완전무결한 이상과 현실적인 경험 사이에서 발생하는 괴리에 대한 성찰이 결여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여성독자들은 이러한 괴리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인식하고 있기에 로맨스물을 통해 현실에서 충족되지 못하는 위안을 받는다.

그리고 계약결혼 로맨스 웹툰에서 섹슈얼리티는 주요한 요소가 된다. 남성과 여성에게 공포감이나 혐오감이 있다는 점에서 이전의 성행위가 단지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의미밖에 없었다면 서로간의 상처를 치유하면서 서로를 보듬어 주는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의 성행위는 위로의 배려, 육체의 욕망을 완벽하게 충족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성행위로 인해 두 남녀는 자신의 완벽한 나머지 한 짝을 만났다는 확신에 이르게 된다.

주인공이 여주인공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것이 독자에게도 중요한 요소이다. 왜냐하면 현실에서는 결혼 이후 점점 시들해져가는 성행위와 섹스리스 부부라는 결말로 치닫는 현실로 인해서 사랑의 하락과 성행위의 하락이 정비례 관계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맨스물에서 남녀 간의 성행위로 인한 만족감은 단순히 일방적이고 육체적인 관계뿐만 아니라 서로의 성적 만족감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서 배려 있는 시선과 행위가 따른다는 점에서 정신적인 관계까지 포괄한다고 할 수 있다.

보통 계약결혼을 원하는 남녀는 과거의 상처로 인해 정상적인 결혼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인물들이다. 여주인공은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폭언, 폭행이나 사귀던 남성의 폭행, 집착, 성폭행 등의 경험으로 인해 남성에 대한 공포증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남주인공은 엄마나 전처의 무책임, 방탕, 가출 등으로 여성에 대한 불신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이 자신의 남편과 아내의 조건에 맞는 남성과 여성을 구함으로써 서로의 필요를 충족시킨다. 이를 통해 ‘사랑’을 포기하는 대신 ‘자유’를 확보하는 계약결혼을 하지만 서로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면서 ‘자유’를 포기하고 진짜 결혼에 도달한다. 사랑과 자유는 양립불가능한 가치로 제시된다.

그래서 계약결혼의 여주인공이 강압적인 남성의 폭력과 섹스에 대한 공포심을 느끼고 남성 우월주의에 대해 혐오감을 느낀다는 점에서 남주인공의 관계와 계약결혼은 이러한 여성의 공포심을 극복하는 치유의 과정으로 그려진다. 겉으로 보기에 강압적이고 가부장적으로 보이는 남주인공과의 계약결혼은 의외로 다정하고 배려심 있는 모습에 마음의 문을 열게 되고 남주인공의 과거 상처를 알게 되면서 서로 위로를 받는 관계로 발전한다.

남녀 주인공들의 결혼에 대한 혐오감은 계약결혼으로 인한 서로간의 신뢰와 사랑으로 극복되면서 이전에 가부장제와 모성이데올로기를 극복한 평등하고 배려있는 결혼생활로 이어진다는 다소 비현실적인 환상적 결말을 제공한다. 가부장제와 모성이데올로기에 대해 강한 저항감을 갖고 있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여주인공이 마지막에 남주인공과의 진짜결혼으로 이른다는 점에서 다시 수동적이고 순응적인 여성으로 퇴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결혼에 대해서는 기존의 결혼제도로 편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랑의 관계에서는 혐오감과 공포심을 가지고 자신이 사랑하는 상대에게 다가가지 못하던 수동적인 여성이 서로의 관계와 상호영향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고 상대방에게 과감하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면서 동시에 독립적이고 자립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전문성과 경제력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여성으로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계약결혼에서 진짜결혼으로의 이행은 바로 그러한 변화의 결과물이다.

참고문헌
[1] 김문정, 「『서 있는 여자에 나타난 계약으로서의 결혼과 여성적 글쓰기, 한국문학연구, 60, 동국대학교 한국문학연구소, 20198, 231~254.
[2] 신샛별, 박완서 장편소설 서있는 여자의 페미니즘 정치학적 의미 : 결혼이라는 계약을 통해 본 시민성의 젠더 구조, 한국어와 문학, 45, 한국여성문학학회, 2018, 37~71.
[3] 변광배,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계약결혼, 살림, 2007. 
[4] 이정옥, [이정옥의 문화톡톡] 낭만적 사랑과 여성의 욕망을 결합한 로맨스 - 로맨스와 멜로드라마에 대한 탐구(4),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91223.

 

사진 출처: 네이버 웹툰, 카카오페이지 웹툰

 

글: 서곡숙

문화평론가 및 영화평론가. 비채 문화산업연구소 대표로 있으면서,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기획이사, 서울시 영상진흥위원회 위원장,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 사무총장, 르몽드 아카데미 원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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