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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다양한 현실이 뒤섞여 재구성된 영화 - <두 교황>
[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다양한 현실이 뒤섞여 재구성된 영화 - <두 교황>
  • 송영애(영화평론가)
  • 승인 2020.01.20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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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두 교황 The Two Popes>(감독 페르난도 메이렐리스, 2019)은 제목 그대로 두 명의 교황이 주인공인 극영화다. 교황은 종신직이라 동시대에 두 명이 존재하기는 어렵다. 두 명의 교황이 함께 한다는 설정은 꽤 신선한 영화적 설정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현재 기준으론 현실이다. 2013년 3월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사임하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된 이후, 2020년 1월 현재까지 전직 교황과 현직 교황은 공존 중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실존 인물인 이 두 교황이 나눈 것으로 추정되는 대화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2012년 베르골리오 추기경(현 프란치스코 교황)은 조기 은퇴를 허가받기 위해 베네딕토 16세 교황을 찾아가 어렵게 대화를 시작한다. 언뜻보면 말도 행동도 느릿한 노인 두 명이 한정된 몇몇 공간에서 대화를 나누는 게 이 영화의 전부다. 그러나 그들이 속한 조직에서 가장 높은 위치까지 오른 혹은 오를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는 그저 대사로만 밋밋하게 표현되지 않는다. 다양한 영화적 방식을 통해 다양한 영화적 현실로 뒤섞이고 재구성된다.

 

상상력이 만들어낸 현실

먼저 <두 교황>에는 실제 현실과 상상력이 만들어낸 영화적 현실이 뒤섞여 있다. 두 교황은 실제로 세 번의 만남을 가졌다고 하는데,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안소니 맥카텐은 두 사람과 관련해 널리 알려진 사실들을 비롯해 인터뷰, 연설, 저술 등을 참고해 영화 속 대화를 만들어냈다.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 각색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출신 국가와 음악 취향, 스포츠 취향, 종교적 신념, 논란이 되었던 과거 이력 등은 두 사람의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관계 변화를 표현하는 데 활용됐다. 단지 정말 그런 대화를 나누었는지 알 수만 없을 뿐, 두 사람이 영화 속에서 나누는 대화의 내용은 언젠가 그들이 말을 했거나 글로 썼던, 그리고 이미 널리 알려진 현실이다.  

 

자료영상들이 강화하는 현실

이 영화에는 또 다른 차원의 현실도 공존한다. 새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를 중계하는 생방송 TV 뉴스 영상이나 가톨릭 관련 비리 등 각종 소식을 전하는 TV 뉴스 영상, 월드컵 축구 중계 영상까지 다양한 자료영상들은 기존 영상인지, 아니면 이 영화를 위해 새로 촬영된 영상인지 구분 되지 않게 뒤섞였다. 자료영상들은 비록 명확하게 출처를 구분할 수 없지만, 영화의 현실감은 확실히 강화시킨다. (영화 마지막에는 실제 두 교황의 모습도 자료영상을 통해 등장한다.)

 

뒤섞인 현재와 과거

<두 교황>에서 상상력과 자료영상들을 통해 탄생한 다양한 현실들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구성을 만나 더욱 입체적인 현실로 다듬어진다. 이 영화는 교황 프란치스코가 교황이 된지 얼마 안 된 2013년 바티칸에서 시작되어, 곧바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타계한 2005년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이동하고,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선출되는 콘클라베로 이어진다. 화면 가운데 연도를 알려주는 숫자 자막이 빠르게 바뀌면서 순식간에 2012년 부에노스아이레스도 다시 이동하고, 곧이어 로마로 이동해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대화중에는 수시로 프란치스코의 과거로 이동하는 식으로 길거나 짧은 회상 장면이 등장한다. 반드시 연대기 순도 아니고, 흑백 화면이 사용될 때도 있다. 2012년 기준 7~80대인 두 사람은 각자 독일과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모국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목격한 역사적 증인이기도 하다. 젊은 시절의 일들도 목격할 수 있지만, 두 교황이 각기 ‘나치’나 ‘배신자’로 비난받게 된 사연도 알 수 있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두 사람에 대해 좀 더 알게 된다.

 

카메라의 시선으로 재구성된 현실

<두 교황>은 카메라의 시선 또한 눈에 띈다. 관객은 기본적으로 카메라를 통해 영화 속 현실을 보게 된다. 카메라의 시선에 의해 스크린 혹은 액정이라는 창이 만들어지고, 이 창을 통해 관객은 영화 속 현실을 지켜본다. 그런데 <두 교황>을 보다보면 관객은 영화 속 현실에 빠져드는 느낌이 든다. 이는 카메라 덕분이다. 이 영화에서 카메라는 마치 누군가의 시점인 것처럼 위치하고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흔들리며 인물을 쫒아가는 카메라는 관객들을 영화 속 현실의 누군가로 위치시켜, 가까운 거리에서 쫒아가며 지켜보거나 엿보는 착각을 하게 한다. 그만큼 관객들의 몰입도와 공감도는 증폭될 수밖에 없다.

물론 전혀 다른 시점도 존재한다. 카메라가 천정이나 하늘에 위치해서 내려다보는 극단적인 하이 앵글도 자주 등장하는데, 신의 시선일까라는 생각도 들게 된다. 관객들이 현실적으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위치이기에 이질감고 거리감이 느껴지게 되기 쉽다. 정리하자면, 관객들은 누군가를 쫒아가거나 지켜보는 카메라를 통해 인물들의 내밀한 모습을 가까이에서 목격하는 것과 멀리서 관망하는 것을 반복하며, 두 사람에 대해 감정적 거리감을 조절할 수 있게 된다. 

 

편집과 사운드, CG로 재구성된 현실

그 밖에 리듬감 있는 빠른 편집과 클로즈업이 동반된 콘클라베 장면 역시 영화 <두 교황> 속 현실을 더욱 입체화시킨다. 영화 전반적으로 자연의 소리부터 다양한 장르의 음악까지 폭넓은 사운드 역시 객관적 현실과 인물 주관적 현실을 섞어내는데 영향을 준다. 

또한 일부러 관련 정보를 찾기 전까지는 구분해내기가 거의 불가능한 CG 부분은 이 영화가 담아내고 있는 다양하면서 모호한 현실의 극치이다. 관광객 모드로는 둘러볼 수 없는 바티칸의 여러 곳을 이 영화를 통해 보았다가 생각되지만, 실제 바티칸 로케이션 촬영을 한 장면은 하나도 없다. 세트와 CG가 합성된 결과이지만, 지극히 사실적인 영화적 현실로 구현되어 영화 속 현실의 현실감을 강화시킨다.

 

2019년이라는 현실

마지막으로 <두 교황>은 이 영화가 제작된 2019년이라는 현실 또한 파악하게 해준다. 이 영화는 넷플릭스 제작 영화로서 온라인 스트리밍을 주요 상영 방식으로 택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몇몇 나라에서는 아예 극장 개봉이 진행되지 않았다. 규모는 작아도 개봉이 이루어진 경우도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작년 12월 11일 61개 스크린에서 개봉되어 1월 19일 현재 15개 스크린에서 상영 중이다. 작년 12월 20일부터는 넷플릭스를 통해서도 동시 공개 중이라, 현재 우리나라 관객은 스크린이나 스마트폰 액정 등을 통해 즉 기존 방식과 새로운 방식으로 <두 교황>을 만날 수 있다. 이 영화 자체가 현재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영화를 보는지 2019년, 2020년 현실을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정리해보자면, 영화 <두 교황>에서 실존 인물에 대한 정보는 상상력을 만나 그럴듯한 현실이 된다. 현재와 과거가 뒤섞이이고, 곳곳에 뉴스 영상과 같은 자료영상이 활용되면서 현실성은 강화된다. 카메라의 위치와 움직임 덕분에 관객은 다양한 위치에서 영화 속 현실을 접하게 되고 인물들에 공감하게 된다. 빠른 편집과 다양한 사운드, 감쪽같은 CG로 재구성된 현실 역시 관객의 몰입도를 높인다. 그 결과 그동안 영화 속에서 신비롭거나 권위적으로 그려졌던 교황이라는 낯선 캐릭터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캐릭터로 변신하게 된다. (미처 다루지 못한 현실들도 많지만) 이렇듯 영화 <두 교황>에는 참 다양한 차원의 현실들이 다양한 영화적 방식으로 뒤섞여 재구성되어 있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글: 송영애

영화평론가. 서일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 한국영화 역사와 문화 관련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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