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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연주의 문화톡톡] 일-가정의 양립을 바라며. <미안해요, 리키>(Sorry We Missed You, 2019)
[송연주의 문화톡톡] 일-가정의 양립을 바라며. <미안해요, 리키>(Sorry We Missed You, 2019)
  • 송연주(문화평론가)
  • 승인 2020.01.20 09: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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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의 최근(2019년 12월, e나라지표 - 맞벌이 가구 비율) 데이터에 따르면 ‘18년 10월 기준 유배우 가구(1) 중 맞벌이 가구는 567만 5천 가구로 46.3%를 차지하며 전년(44.6%)보다 1.7% 증가했다. 연령대별로 보면, 유배우 가구 중 맞벌이 가구 비중은 40~49세가 54.2%로 가장 높으며, 그다음은 50~64세, 30~39세 순이다. 맞벌이 가구 비중은 모든 연령대에서 전년보다 증가했다.

2018년 10월 기준 18세 미만 자녀를 둔 맞벌이 가구는 224만 8천 가구로 유배우 가구 중 51.0%를 차지하고 전년(48.6%)보다 2.4% 증가했다. 자녀 연령별로 보면, 취학 이전인 6세 이하 자녀를 둔 맞벌이 가구 비중은 44.2%로 가장 낮고, 초·중학생 연령의 자녀를 둔 가구의 맞벌이 비중은 절반을 넘어 7~12세가 54.2%, 13~17세가 59.6%로 나타났다.

이에 정부는 일·가정 양립의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남녀고용평등법(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을 순차적으로 개정, 관련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 중이다. 고용노동부는 근로시간 유연화 정책, 일·가정 양립 환경개선 지원 정책을 지속적으로 마련하고, 보건복지부는 맞춤형 보육으로 장시간 어린이집 이용이 필요한 가구에 충분한 보육 서비스 제공하여 맞벌이 가구를 지원하고, 여성가족부는 아이 돌봄 지원사업, 가족친화인증제 운영 등을 통해 지원 정책을 지속하며, 저출산 정책과 함께 확대 예정이라고 한다. (2)

과거와 달리 요즘은 자아실현의 추구가 포함된 맞벌이가 많다고 하지만, 경제활동으로서의 맞벌이는 근원적으로 일 그 자체로서의 의미를 우선적으로 가진다고 볼 수 있다. 부부 모두가 업무공간에서 업무시간을 지켜야 하는데, 이는 그만큼 가족 성원이 함께 지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족이 함께할 시간이 줄어들고, 자녀 돌봄에 공백이 생긴다. 개인사업자의 경우 상대적으로 시간과 공간적인 면에서 자유롭다고 여겨질 수 있으나, 어떤 형태로의 개인사업자인지에 따라 상황은 달라진다. 정부가 정책을 마련 중일 만큼 일과 가정의 양립은 개인이 해결하기 어려운 시스템의 문제이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출처 : 네이버 영화)

사회 문제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표현하는 켄 로치 감독의 <미안해요, 리키>(2019)는 영국의 저소득층 맞벌이 가정이 가질 수 있는 비극적 시스템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극단적인 부분도 있지만, 한국의 저소득층 맞벌이 가정의 현실도 유사해 보인다.

 

“주로 건설 현장에서 기반공사, 배수 공사, 굴착공사, 도면 뜨기, 콘크리트 치기,

지붕과 바닥 작업, 도로포장, 판석 깔기, 배관작업, 목공,

심지어 무덤도 팠을 정도로 안 해본 일이 없이 온갖 일을 다 했죠.

짜증 나게 하는 상사와 겨울의 추위 때문에 이직하게 됐습니다.

조경 일도 했어요. 이동이 많고, 고객과 집과 할 일이 매일 달라졌습니다.

나는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그런데 동료들은 게을렀고, 나는 답답함을 느꼈어요.

나 혼자 일하고 내 사업을 하고 싶습니다.

자존심 때문에 실업수당을 받은 적은 없습니다.

실업수당을 받느니 차라리 굶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

 

“멋지네요. 리키.

먼저 이 일의 성격에 대해 설명하죠.

고용되는 것이 아니라 합류하는 것이고.

우릴 위해서(for)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with) 일하고.

고용 기사가 아닌 서비스 제공자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 고용계약 같은 건 없고, 목표 실적도 없어요.

‘배송 기준’만 지키면 돼요.

임금은 없지만, 배송 수수료를 받고요.

출근 카드 같은 거 없고 알아서 일합니다.

서명하면, 개인사업자 가맹주가 되는 겁니다.

자기 운명의 주인이죠. 전사만 살아남아요.”

택배기사를 뽑는 면접에서 리키와 사장이 나눈 대화이다. 사장이 운영하는 영업장의 택배기사이지만 고용 형태는 개인 사업자다. 온갖 일을 성실하게 해왔던 리키는 자기 사업을 하고 싶었다. 택배 개인사업자 가맹주. 택배 사업장에 합류! 해서 함께! 일하는, 서비스 제공자!로서 고용계약이나 출근 카드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 일자리다. 번지르르한 설명이지만, 결국 권리는 없고 책임은 다 떠안는 시스템이다. 리키는 비용 효율을 위해 14,000파운드의 벤을 사서 진짜 자기 사업을 제대로 해보고자 한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출처 : 네이버 영화)

리키의 아내 애비의 직업은 간병인이다. 늦은 밤, 차로 퇴근하는 애비를 딸 라이자가 기다린다. 딸보다 간호대상을 돌보느라 업무 시간 이상을 허비하고 돌아오는 애비. 그녀에게 리키는 14,000파운드의 벤을 구입할 계획을 논의한다.

벤의 엄청난 비용 때문에 리키가 매일 14시간씩 주 6일을 일해야 하는 선택. 그러나 회사로부터 벤을 대여하는 것이나 중고차로 운영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이라는 리키의 일리 있는 설명에, 가족끼리 서로 얼굴 보기도 힘들어질 거라고 애비는 걱정한다. 하지만 리키는 힘들더라도 1년 정도 경험을 쌓아서 사업을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을 꾼다. 평생 셋방살이를 할 수는 없기에. 내 집을 갖고 싶다는 마음. 평생 남에게 “이 집에서 살아도 된다, 안 된다.” 소리 듣기 싫은 마음.

벤 계약금 1천 파운드를 위해서 대출 한도를 꽉 채운 리키 가족은 애비의 차를 팔아야만 한다. 소속 가정을 직접 방문하여 간병을 해주는 애비의 입장에서는 차가 필요하지만, 리키는 애비에게 벤을 사기 위해 차를 팔고 버스를 탈 것을 권한다. 그리고 간병 건당 수입을 받는 애비가 오지랖 넓게 간병에 시간을 많이 쏟기보다는, 업무만 하고 집에 일찍 와서 아이들을 돌볼 것도 권한다. 엄마의 퇴근을 기다리는 딸, 부모의 늦은 퇴근 시간보다 더 늦게 귀가하는 아들의 일탈이 있기 때문이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출처 : 네이버 영화)

애비는 간병인으로서 나름의 사명감을 가지고 진심으로 일하는 사람이다. 쉬는 시간 두 시간까지도 필요한 사람에게 간병을 아끼지 않는다. 생계를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간병대상들을 돌보는 데에 헌신하는 그녀에게 차를 팔고 버스를 타며 약속에 늦을 것을 각오하고 살아가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그러나 그녀는 2년 안에 주택담보대출 계약금을 모을 수 있다는 리키의 설득에 차를 팔고, 리키는 벤을 구입한다.

첫 출근, 리키는 사장에게서 심장이라 여겨야 할 만큼 소중한 물건이라고 강조되는 스캐너를 지급받는다. 스캐너는 리키의 배송을 도와주는 물건이지만, 또한 리키의 인간적 존엄을 해치는 물건이기도 하다. 리키의 부재를 2분마다 확인하고, 그로 인해 화장실도 갈 수 없을 정도로 리키를 옥죈다.

14시간의 고된 택배 노동을 시작한 리키와 버스로 간병을 다니는 애비는 퇴근 후, 나란히 앉은 채 잠들고 스스로 잠든 것조차 모를 정도의 고단함을 느낀다. 라이자는 그런 부모를 측은하게 바라보고, 세브는 불법으로 그라피티를 하고 학교에 결석하며 더욱 일탈해 간다. 영화는 리키와 애비의 업무환경과 라이자의 기다림, 세브의 일탈을 번갈아 보여주면서 가족이 붕괴되어간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말한다.

문제는 일과 가정에서 리키의 역할이 양립하지 못하고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에 있다. 택배 ‘일’로 인해서 애비의 차를 팔아야 했고, 그로 인해 애비가 버스를 타고 일이 밀리고, 퇴근이 늦어지게 되면서 아이들은 더욱 홀로 있게 된다. 애비는 통화로 아이들의 돌봄을 대체하고, 그마저도 통화가 제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촉박하게 음성 메시지를 남기는 정도에 그치고 만다. 이렇게 동동거리며 버스로 이동하고 많은 시간을 할애해 간병을 해도, 업체는 애비에게 근무 외 시간에 일을 또 시킨다.

리키는 택배 일이 수월하지 않다. 잘못 적힌 주소로 시간을 빼앗기고, 차 막힘은 기본이고 주차금지로 곤란을 겪고 이렇게 얻은 고단함을 ‘가정’에서도 표현하게 된다. 일탈하는 세브를 훈육해야 하는 아버지 역할 때문에 ‘일’적으로도 사장에게 휴가를 달라고 부탁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리키와 애비 사이의 부부관계가 틀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로 이어진다. ‘일’과 ‘가정’에서의 힘겨운 상황으로 인한 감정이 부정적으로 전이되어 양측의 영역에서 삶의 질을 위협하고 있다.

일도 불안하고, 가정도 불안하다.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가족의 노력에서 감독이 따뜻한 시선으로 이 문제를 극복하려 하고 있다고 보인다. 라이자가 리키의 택배 일을 돕고, 밤늦게 호출되는 애비를 리키의 벤으로 데려다주면서 온 가족이 벤에서 노래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그렇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출처 : 네이버 영화)

리키와 애비의 일에 아이들이 함께할 정도로 노력하면서, 일과 가정의 공존을 꿈꿔보았지만, 극복은 쉽지 않다. ‘가정’을 회복하려 노력하면, 리키는 ‘일’에서 멀어지고, ‘일’을 챙기려다 보면, ‘가정’에서 멀어진다. 리키도 애비도 분명 서로 존중하고 있지만, 세브의 일탈 앞에 부모로서 어쩔 수 없이 서로의 책임을 기대하는 부분이 생기고, 결국 저소득층 부부의 맞벌이와 일과 가족의 양립이 불가능한 상황에 대한 감독의 냉혹한 현실 인식은 리키 가족을 비극으로 몰아간다.

사는 게 이렇게 힘든지 몰랐다고, 모든 게 엉망진창이라고 털어놓는 리키와 젖은 모래 속에 빠져드는 악몽을 매일 꾼다는 애비의 처참함은 일과 가정이 동시에 유지되기 어려운 현실의 고통을 대변한다. 여기에 리키의 대체 근무자를 찾으면서, ‘가정’이란 언젠가 문제가 생기게 되어있다고 말하는 사장의 태도는 자본주의 고용계급이 노동자와 그 가족의 삶을 가볍게, 소모품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드러낸다.

이것은 삶에 대한 문제이고, 내 가족을 괴롭히는 문제라고 애비는 극한의 상황에서 리키의 사장에게 외친다. 가족을 위해 돈을 버는 ‘일’이 ‘가정’을 무너뜨리는 아이러니한 상황. ‘일’과 ‘가정’ 두 목표가 서로에게 걸림돌이 되면서 가장 소중한 아이들이 ‘일’을 하는 데에 장애가 되고, 비인간적인 업무 시스템은 ‘가정’을 지키는데 장애가 되었다. 문제의 해결을 위한 방법까지 영화가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감정 과잉으로 설득하려 들지도 않는다. 다만 영화는 인간의 존엄이 노동력으로 소모되고 버려지는 현실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최고의 자산은 가족이라고 짚는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출처 : 네이버 영화)

한국 정부가 일-가정 양립을 위한 대책을 마련 중이고, 맞벌이 부부간 성 역할의 문제, 자녀 돌봄 문제와 개인적, 사회 구조적인 문제까지 어떤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인지 학계의 연구도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노력으로 인간의 존엄이 유지되고, 최고의 자산인 가족의 행복도 지켜지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본다.

 

(1) 가구주의 혼인 상태가 [배우자 있음]인 가구, 가구주는 실질적으로 가구를 대표하고 가계를 책임지고 있는 자.

(2) e나라지표 – 맞벌이 가구 비율

http://www.index.go.kr/potal/main/EachDtlPageDetail.do?idx_cd=3037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글: 송연주

문화평론가. 시나리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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