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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역사의 강박이 짓누른 캐릭터의 자유 - <남산의 부장들>
[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역사의 강박이 짓누른 캐릭터의 자유 - <남산의 부장들>
  • 지승학(영화평론가)
  • 승인 2020.01.20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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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의 부장들>은 외면하기가 쉽지 않은 영화다. 서사는 극적이고 대사는 생생하며 연기조차 나무랄 데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한민국 비극의 역사를 냉정하게 포착하고 있을 것이라는 인상을 준다는 점에서 보면 더 그렇다. 그러나 이 영화를 <그 때 그 사람들>보다 더 낫다거나 그와는 완전히 다른 영화가 나왔다며 반겨 말하기는 쉽지 않다.

이 영화는 주요 인물 네 사람 중에서 누구에게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감독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거기에서 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고자 한다.

김규평(이병헌). 그는 군인으로서의 명예를 목숨과 동급으로 여기고, 민주주의의 가치에도 주목할 줄 아는 인물이다. 그래서 꽤 ‘정치적 인물’로 보이지만, 그 마지막 기로의 순간에 ‘왜?’라는 질문을 떠올릴 때면 ‘어리석은 인물’로 보이기도 한다.

 

박용각(곽도원). 그는 정치사적 맥락에서 보나 죽음의 마지막 순간에서 보나 ‘배신자’의 위치에서 자유롭지 않다. 거의 ‘악’의 위치에 있었던 전형적인 폭군이었지만, 죄 값을 치뤘다는 의미에서 보면 도덕적 단죄를 받은 인물로 보인다.

 

곽상천(이희준). 그는 한 인물을 국가라 여기는 것도 모자라 충성심을 믿음으로 만들만큼 ‘광기의 인물’이지만, 마지막 순간의 에피소드로 인해 ‘비겁한 인물’이 되기도 한다.

 

박통(이성민). 그는 대통령이라기보다 보스의 기질을 가진 자로서, 마치 대부의 돈 콜레오네와 같은 면모를 곳곳에서 내비친다.

 

네 명의 캐릭터는 여러 해석상의 층위를 이렇듯 여러 겹 가진 듯 보여도, 실상 정치와 역사라는 중력에 짓눌린 탓에 한장으로 압착된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영화가 객관적 사실이라는 틀 위에 집을 지을 때 흔히 범하는 실수가 바로 이런 역사적 경직성이라고 나는 생각해왔다.

그래서 이 영화의 주인공을 새로 선정하는 것은 의외로 어렵다. 김규평과 박통과의 긴장관계가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만든다는 문법에 그대로 기대야 하는 이유는 그래서다. 그럼에도 주목해 보아야 할 사람이 하나 있는데 그는 바로 박통이다. 이 영화에서 그는 누군가의 절대적 지지를 받을 만큼 '영웅'이어야 하고 누군가의 저주를 받을 만큼 ‘악’해야 한다. 그렇게 박통은 추앙과 저항을 동시에 받는다. 그런 이유로 형성되는 이 '이율배반'적 상황은 역사적 인물들을 그 안으로 하나하나 빨아들이고 그 와중에 처절하게 뱉어내는 그들의 운명, 싸움, 죽음의 국면마저 또 다시 집어 삼킨다. 역사의 역동성은 바로 거기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남산의 부장들>은 그 역동성을 되살리지 않는다. 오로지 그들의 배신, 회유, 모멸, 증오, 죽음 만을 그 결말이라는 길 끝에서 순진하게 기다리게 할 뿐이다. 영화가 역사적 서사와 캐릭터의 입체적 가능성을 이런 식으로 원천 봉쇄할 때는 부정적 강박이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감독은 ‘원작’에도 충실해야 한다는 강박에 빠진 듯 보였다. 이를 테면 이렇다. 박통은 독재라는 프레임에 갇혀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대체 전략 수정을 하려하지 않는다 점에서, 김규평 역시 박통의 신임을 잃은 지 오래라는 것을 알면서도 신임을 회복하려는 행동을 수정하려 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런 강박이 읽힌다.

문제는 거기에 있다. 이 영화는 역사든 원작이든 그 대상에 충실하려는 노력이 너무 지나쳤다는 것이다. 이것은 과잉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 부족함을 말하는 것도 아니지만 적절했거나 정당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영화<남산의 부장들> 속 인물들이 충분히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오히려 이 영화을 조롱하는 말이 돼버린다. 미숙함의 또 다른 말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판단이 어려운 역사적 인물에 대한 묘사가 선과 악의 입장에서 갈피를 잃어버리게 되면 이런 강박에 빠지기 쉽다. 그러다 결국 치명적인 선택을 하게되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영화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운명적 선택을 하지 못했다. 마치 영화 속 김규평 처럼.

 

 

글·지승학
영화평론가. 문학박사.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으로 등단. 현재 고려대 응용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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