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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민의 시네마 크리티크] <부재의 기억>
[이승민의 시네마 크리티크] <부재의 기억>
  • 이승민(영화평론가)
  • 승인 2020.02.10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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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 시간 무엇이 부재했으며, 그 부재했음을 누가 기억하는가?

 

<부재의 기억> 이승준, 2018

<기생충>을 두고 한국영화 최초 아카데미 후보를 논하고 있을 때, 또 한 편의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가 아카데미 후보에 조용히 올랐다. 그것도 세월호 참사를 담은 영화이다. 이 자체가 또 하나의 사회적 사건이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그 날은 대한민국 전국민이 바다 위 기울어진 배의 모습을 보았고, 우리 모두는 무력한 목격자이자 방임자가 되었다. 평생 잊을 수도 지울 수도 그렇다고 함부로 재현할 수도 없는 사건이자 기억이다. 이후 6년 동안 우리 사회는 촛불혁명과 정권교체라는 엄청난 변화와 동시에 내적 분열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무 것도 밝혀지지 않았다. 

 

정면승부 : 바다와 배

<부재의 기억>은 목격자이자 방임자로 만났던 그 바다에서 바로 시작한다. 심연을 알 수 없는 바다 물길을 응시하며 배를 찾아 다가가는 영화는 아침 8시 50분경부터 그날 저녁, 다음날, 석달 후, 3년 후를 담는다. 바다 위에서 시시각각 기울어져 가는 배와 그 배를 둘러싼 정황들을 차분히 짚어낸다. 바다와 배, 감히 대면하지도 차마 외면하기도 힘든 이미지를 직접 대면하게 하면서, 영화는 그날 우리 모두의 기억과 한바탕 전쟁(!)을 선포한다.

 

기억과 역사 

언제부터인가 기억은 우리 사회의 화두이다. 기억투쟁, 기억전쟁, 기억정치, 대항기억, 기억문화... 청문회나 국정조사를 봐도, ‘기억나십니까?’와 ‘기억나지 않습니다’의 대결이다. 이때 기억은 진실이나 정의의 다른 이름이다. 사실 한국 근현대사에서 기억은 공적 역사에 대한 저항이다. 모진 역사의 상흔을 치유하지 못한 곳에서 기억은 역사와 싸우는 버겨운 역할을 맡고 있다. 이때 역사는 권력자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이데올로기이고, 기억은 억압되고 잊혀지고 왜곡된 진실에 해당한다. 한국 사회에서 기억은 그런 역사에 대한 불신이자 진실에 다가가고자 하는 자구책이다.

<부재의 기억>은 세월호 5주기에 국내에서 처음 소개되었다. (해외에서는 2018년 제작 직후, 암스테르담 영화제와 뉴욕다큐영화제에서 상영한 바 있다.) 그리고 6주기 올해, 해외 상영과 수상으로 세월호 참사를 다시 세계적으로 알리는 계기를 만들었다. 기억의 가장 큰 적은 시간이다. 6년의 시간 동안 한 측에서는 부정적인 정치적 루머가 난무하고, 또 다른 측에서는 이제 그만하자고 망각의 늪으로 밀어넣고 있었다. 영화는 외부에서 강요당하고 내적으로 파괴되는 우리의 기억을 소환해내는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부재의 기억>의 해외 수상 소식은 반갑고 감사하다.

 

기록과 역사 

영화는 그날의 현장 기록을 모아낸다. 묻는 영화가 있고 듣는 영화가 있다면. <부재의 기억>은 모음의 영화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카메라를 든 수많은 활동가와 감독이 팽목항을 향했다. 현장에 오지도 않고 왜곡 보도를 하는 언론을 신뢰할 수 없는 상황에서,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과 독립 피디들이 현장 기록을 시작했다. 416 미디어위원회와 416기록단이 대표적인 현장 기록팀이다. 그러나 기록과 기억은 맥락에 따라 수많은 해석이 존재한다. <부재의 기억>은 엄청난 현장의 기록들을 모아 자의적 해석과 추측을 최대한 배제하고 상황 그 자체를 간결하게 배치해낸다. 참사 속에서 이야기를 찾거나 감정을 기입하거나 사람과 사연에 초점을 맞추지도 않는다. 영화는 현장 기록의 조각을 재조립해 역사쓰기로 나아간다.

영화는 그렇다고 기록에 머물지 않는다. 목소리를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당시 상황은 정면 목도하게 하되, 상황에 대해 직접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바다에서 시작해 침몰하는 배를 향해 다가간 영화는 그날의 정황을 시간 단위를 짚어낸다. 그리고 모든 것을 품고 있지만 아무말 하지 않는 바다로 돌아가 서서히 물러섰다 멈춘다. 바다와 배에 실린 우리의 오만가지 기억과 감정을 품는 동시에 질문한다. 대책이 아닌 보고용 상황 파악을 요청하는 전화, 하나마나한 뻔한 VIP 메시지 전달로 촉각을 다투는 시간을 허비하는 목소리, VIP 앞에서 에어포켓을 넣는 쇼를 하는 해경의 모습은 영화 제목 ‘부재’를 절감하게 한다. 그리고 무책임한 선장과 무책임한 대통령을 겹쳐낸다. 그날 그 시간 무엇이 부재했으며, 그 부재했음을 누가 기억하는가? 영화는 목소리만 가진 자와 얼굴을 가진 자를 겹쳐내면서 부재를 묻고 기억의 힘을 보여준다. 실체하는 생존자와 유가족과 잠수사의 체험 기억은 개인의 기억을 사회적 기억으로 다시 문화적 기억으로 향하게 한다. 영화는 정치사나 사회사가 아닌 기억 문화사를 담는다.

 

<부재의 기억>은 세월호 참사를 과거 기록에 머물지 않고 현재적으로 맥락화한다. 세월호 참사는 촛불 혁명의 원동력으로 읽어내고, 그럼에도 진상규명이 되지 않은 현재를 담는다. 고 김관홍 잠수사의 말과 새들이 오가는 바다와 잠수사의 수중 호흡을 겹쳐내는 마지막 장면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동시적 말걸기를 한다. 과거로부터 온 현재, 지금 현재, 그리고 미래로 향하는 현재, 세 겹의 현재가 겹쳐지는 장면이기도 하다. 기억한다는 것은 과거, 현재, 미래의 관계를 세우는 일이기도 하다. 영화는 그렇게 마지막에 담긴 숨소리처럼, 분노와 답답함과 희망과 의지를 담는다. <부재의 기억>은 현재 유투브 채널에 공개되어 사회적 전파력을 확장하고 있다. 

 

 

글:이승민

현장 비평가이자 기획자로 활동, 다큐멘터리 영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다큐멘터리의 오늘>(공저), <아시아 다큐멘터리의 오늘>(공저), <영화와 공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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