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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두 교황> 신이 아닌 사람의 대화
[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두 교황> 신이 아닌 사람의 대화
  • 서성희(영화평론가)
  • 승인 2020.02.10 13: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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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교황> (The Two Popes, 2019)

전 세계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조직 중 하나라면 무엇이 떠오르나? 사실 비밀스러운 조직이라면 사실 어둠 속 조직들이 먼저 떠오르긴 하지만, 우리가 미처 잘 알지 못했던 가장 비밀스러운 조직 중 하나는 가톨릭교회를 대표하는 바티칸 시국이 아닐까. 그 비밀의 요새가 문을 열고, 비밀스러운 속내를 감동적으로 드러내는 영화가 있다. 바로 <두 교황>이다.

2005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죽음을 맞아 추기경들은 바티칸으로 모인다. 영화는 교황을 선출하는 선거인 ‘콘클라베’ 시퀀스를 통해 비교적 상세히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보수적인 베네딕토 16세(요셉 라칭거)가 교황으로 선출되는 과정을 정교한 세트와 화려한 색감으로 재현한다.

 

두 생각

영화는 2005년부터 2013년까지 8년간 제265대 교황으로 재임한 베네딕토 16세와 그를 이은 프란체스코 교황을 다루고 있다. 베네딕토 교황은 규율을 신봉하는 정통주의자였다. 그는 교회의 전통을 손상시키는 도덕적 상대주의나 소란으로부터 정통을 수호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며 동성애, 사제의 결혼 등에 불관용의 원칙을 고수한다. 그의 보수적인 행보는 수많은 신도가 가톨릭을 떠나게 했고, 자신도 평생을 함께한 성령의 존재를 느낄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연이어 바티칸의 부정부패가 드러나고 성직자들의 잇따른 성추문 사건(<스포트라이트>는 보스턴 글로브 지가 추적한 충격적인 가톨릭 사제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다룬 영화)의 스캔들을 덮는데 급급한 모습을 보이며 자신이 직면한 위기상황을 감당할 능력이 없었다. 이를 스스로 잘 알고 있었던 베네딕토는 이 사실을 인정하고 자진해서 교황직을 내려놓는다.

 

이에 반해 제266대 교황이 된 프란시스코(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는 개혁을 지지하는 진보적 인물이다. 사직을 청하기 위해 교황청을 찾은 아르헨티나의 추기경 베르고글리오는 이혼, 피임, 동성애를 받아들이고 성추문을 저지른 성직자의 해임 등 가톨릭의 다양한 ‘변화’를 베네딕토 교황에게 이야기한다.

처음 대화를 시작할 때는 베네딕토 교황이 그건 ‘타협’이라며 대화가 진전되지 않은 채, 둘 사이에 강력한 벽이 있음을 보여준다. 두 사람은 상대를 향해 인기에 영합해 세속에 타협하는 사람이라거나, 시대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독선주의자라고 몰아 부친다. 대화가 진행될수록 두 사람이 묻어두었던 과거가 모습을 조금씩 드러내면서 입체적인 인물을 완성해 나간다.

두 캐릭터의 차이는 외형에서도 드러난다. 먼저 의상에 있어 베네딕토 교황은 화려하고 값진 복장과 소품으로 장식하고, 프란체스코 교황은 낡은 느낌의 의상과 소품을 통해 검소함과 겸손함이 베인 소탈한 성격을 드러낸다. 두 사람의 차이는 의상 외에도 혼자 혹은 함께 식사하는 스타일, 고전음악 혹은 아바의 노래를 좋아하는 취향을 드러내며 둘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영화가 서서히 진행되면서 베르고글리오 신부 역시 베네틱트 교황이 지닌 단점과 한계보다 크게 나을게 없는 과거를 드러낸다. 1976년 아르헨티나에서 이후 ‘더러운 전쟁’이라 불리는 군부가 좌파를 색출하기 위해 벌인 쿠데타 당시 베르고글리오 신부는 예수회 총장으로 군부 정권에 타협했다. 이 과정에서 가톨릭 신도만 3만 명에 가까운 희생자를 낸 군부독재 하에 반정부 성향의 예수회 사제들의 체포와 납치를 묵인한 과거가 있다.

 

그의 고해성사를 들은 베네딕토 교황은 당시 베르고글리오 신부가 납치 고문당한 신부 외의 다른 신도들을 학살로부터 구하기 위해 남몰래 활동했고, 그 사건 이후 속죄하는 마음으로 빈민들을 돌보고 일하며 살아온 점을 들어 그의 죄를 사하고 용서해 준다.

베네딕토 교황도 자신의 죄를 고하는 고해성사를 한다. 교황의 권위와 안녕을 위해 성추문 사건의 은폐를 시도한 자신의 행동과 그 이후 성령의 존재를 느끼지 못함을 고해성사한다. 이 고해성사 부분은 무음으로 처리해 성추문 사건의 자세한 상황 묘사가 아닌 서로 반성하고 용서하고 속죄하자는 의미를 더 강하게 전달하려는 연출의 의도를 드러낸다.

전통과 개혁이라는 다른 입장을 가진 두 사람이 만나 합의점을 찾아가는 대화 과정에서 권력의 무게, 도덕적 갈등, 변화 등 신앙을 넘어선 인간의 도리를 깨닫게 하는 깊은 울림을 준다. 둘은 가치관의 벽을 넘어 자기의 마음을 열고 지난날의 잘못을 고백하고, 뉘우치며 속죄한다. 끊임없이 양심을 성찰하고, 서로가 짊어지고 있던 짐을 내려놓고, 개선의 의지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선택한다. 보수와 진보의 가치로 대치하던 두 교황 간에 가톨릭 신앙의 가치인 믿음, 희망, 사랑으로 더 나은 가톨릭의 미래를 열어간다.

보수와 진보, 정통주의와 자유주의라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두 사람이 대화를 통해 각자의 허물을 고백하고 무엇이 대의를 위해 가야할 길인가를 깨달아 가는 과정을 보면서 분열과 영역 싸움으로 높아지는 벽으로 얼룩진 현실 세계를 돌아보게 한다.

 

가치관이나 생각이 완전히 다른 인물에게 권력을 넘겨주는 상황이라는 현실 세계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 판타지 같은 상황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깊은 감동을 준다. 베네딕토 교황은 많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용서받을 수 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1415년 그레고리 12세가 생전에 퇴임한 이후 598년 만에 임기 중 스스로 교황직에서 물러나는 결단을 내린 겸손한 선택이 존경의 감정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한다.

그는 교황도 신이 아니며 사람으로서 길을 가다 헤맬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리고 자신의 허물과 죄를 참회하고, 실질적인 판단과 행동을 통해 개선의 가능성을 활짝 열어, 구원과 치유와 화합을 몸소 실천하는 쉽지 않은 선택을 한다. 가톨릭이 직면한 변화와 위기를 자신보다 더 잘 감당할 수 있는 인물에게 대의를 위해 권력을 넘겨준 사실만으로도 그는 세속적인 삶을 넘어선 사람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은 교황이 될 자격이 없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결국 선출되자 시대의 과제인 불평등 구조를 비판하고, 아픈 과거를 참회하고 구원받는 과정을 통해 가난한 사람과 불쌍한 사람들에게 더 인간적으로 다가가는 교황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는 동성애를 죄로 규정하는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동성애자들을 사회적으로 소외시키거나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두 배우

영화는 안소니 홉킨스와 조나단 프라이스가 실존하는 전, 현직 교황 연기를 하고 있다. 안소니 홉킨스가 전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조나단 프라이스가 현 교황인 프란시스코로 열연해 관객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안소니 홉킨스는 무엇보다 <양들의 침묵>(1991)에서 식인 정신과 의사 한니발 렉터를 연기해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후, <닉슨>(1995)의 닉슨, <마스크 오브 조로>(1998)의 조로 등 다양한 역할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조나단 프라이스는 젊은 시절 관료주의에 찌든 미래사회에서 탈출을 꿈꾸는 젊은 관료로, 최근에는 <왕좌의 게임>에서 광신교 집단의 우두머리인 하이 스패로우 역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배우이다.

대사 한 줄, 표정 하나, 실물과의 싱크로율을 높이기 위해 두 배우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영화를 보면 알 수 있지만, 더 놀라운 건 실제 외모마저도 너무 비슷하다.

 

두 공간

영화 속 배경은 세트이다. 바티칸은 촬영이 금지된 곳이다. 전 현직 두 교황이 주로 대화를 나누는 시스티나 성당 내부와 바티칸을 완벽하게 재현한 세트장은 눈을 즐겁게 한다. 자칫 지루하고 단조로울 수 있는 두 사람 간의 대화가 배경의 경이로움과 화려함, 카메라 워킹의 다채로운 변화로 역동적으로 영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바티칸의 질서와 화려함이 드러나는 세트와 완전히 대조적인 아르헨티나의 무질서와 동시에 자유로움을 형상화한 공간 세팅의 대비를 통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은 <시티 오브 갓>(2002), <콘스탄트 가드너>(2005)와 <눈먼 자들의 도시>(2008) 등을 연출한 브라질 출신 감독으로 이미 긴장감 넘치는 연출 스타일을 구사하는 감독이고, 여기에 <사랑에 대한 모든 것>(2014)으로 제87회 아카데미에서 각색상을 받은 앤서니 매카튼의 각본으로 탄탄한 스토리가 뒷받침하고 있다.

<두 교황>이 같이 탱고를 추고, 같이 축구 경기를 보며 맥주를 마시는 장면은 따뜻하고 기분 좋은 향기를 품은 거품이 포송포송한 카페라테를 한 모금씩 들이키는 느낌을 주는 영화다.

 

사진 출처 : 네이버 

글: 서성희

영화평론가.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으로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대표, 대구영상미디어센터장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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