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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가 지키려는 것 - 연극 'WANTED 우춘근'
그 남자가 지키려는 것 - 연극 'WANTED 우춘근'
  • 배인철
  • 승인 2020.02.12 15: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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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가 지키려는 것 - 연극 <WANTED 우춘근>

 

 

모든 사람은 다 자기 나름의 이유를 갖고 있기 마련이다.

- 장 르누아르, <게임의 규칙 La Re gle du jeu>

배인철 | 문화평론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4년 전 어느 날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그 황당하나 엄연한 실제상황에 이 땅의 상식적인사람들은 촛불을 들어 혼이 비정상인전직 대통령을 권좌에서 몰아내지 않았던가. 그 때 누구나 품었던 의문 중에는 하수인들의 뇌구조 생김새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다. 똑똑이들은 어이하여 엄연히 실존하는 국민을 외면한 채 실체조차 모호했던 자들에게 조종당하는 꼭두각시로 전락했던 것일까.

 

<WANTED 우춘근>은 사태의 전모가 얼추 드러난 직후의 가상현실에서 출발한다. 국정농단의 주역이었던 청와대 민정수석 우춘근의 행방이 묘연해지자, 국민들은 클라우드 펀딩을 통해 모금한 10억 원을 현상금으로 내건다. 희대의 살인청부 소식으로 온 나라가 들썩이는 와중에 수배자 우춘근은 홀로 독방에 갇혀 살해당할 위험을 감수할지, 아니면 신분을 말끔히 세탁하고 小市民의 삶을 살아갈지 택해야 하는 기묘한 게임에 말려든다. 흥미진진한 갈등의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시간은 훌쩍 지나 어느새 충격적인 결말에 도달한다.

 

극이 시작되자마자 흐르는 우춘근의 독백을 들으며 하나의 화두가 떠올랐다. “역사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의지에 상관없이 사회에 던져진다. 과거로부터 전승된 사회구조는 모종의 집단 내지 조직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행위를 하나하나 제약한다. 이 때 역사를 만들어 가는 주체로서의 개인과 조직은 어떤 관계를 갖는가. 이 문제를 탐구함에 있어서, 전통적으로 사회과학은 개인의 의도를 사상하고 그가 속한 사회의 객관적 관계를 천착하거나(구조주의적 방법) 거꾸로 행위자의 동기나 이해관계에 집중하는 접근(개체주의적 방법) 중 하나를 택하였다.

 

다소 도식적이지만, 이 연상은 <WANTED 우춘근>이라는 극의 성격을 이해하는데 유용하다. 국정농단의 역사적 맥락을 사상한 채 권력의 핵심부에 있었던 인물에 대한 온전한 묘사가 가능할까? 그것을 보여주는 힘이야말로 연극의 묘미다. 대한민국이 조직의 일사불란한 명령에 따라 이룩된 사회라는 우춘근의 항변으로부터 우리는 온갖 부조리가 응축된 사회적개인을 발견한다. 연극 <WANTED 우춘근>이 무대에 올린 주제는 그토록 비현실적인 인간을 낳은 구조가 아니라, 술자리에서의 단골 주제였을 법한 개인의 내면, 즉 무한한 권력욕의 원천이다.

 

작가의 문제의식은 극의 형식으로 직결된다. 2인극은 그 의도에 가장 적합한 방식이다. 마치 검투를 하듯 치열하게 주고받는 일대일의 舌戰보다 인간의 심리적 파동을 잘 드러내는 것이 있을까? 우춘근의 상대 혜순의 존재는 그 자신의 욕망이 투사된 거울이다. 신분세탁 계약서에 서명을 받기 위해 그녀가 제시하는 대가는 소박하다. 소시민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이라니! 그녀의 주장을 아래와 같은 삼단논법으로 구성해보면, 논리의 박약함이 드러난다.

 

(1) 당신은 행복이 필요하다.

(2) 신분세탁을 통해 당신이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3) 그러므로 당신은 계약서에 서명해야 한다.

 

관객들은 결코 허술하지 않다. 간간히 내비치는 우춘근의 욕망은 혜순이 의미하는 행복과 거리가 멀다. 공전하는 대화 속에서 혜순이 의지했던 것은 아크라시아(akrasia)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지긋지긋한 감금의 시간이 변심을 낳을 수도 있다. 혜순이 간과한 것은 두 사람의 정체성이 판이하다는 점이다. 춘근은 혜순이 아니고, 또한 아닐 것이다. 고로 (2)의 명제는 참이 아니다. 그녀는 자신에게 투사된 춘근의 욕망이 일그러진 것임을 직시하려 하지 않는다. 프로네시스(phronesis)없는 아크라시아는 공허하다. 혜순이 품고 있는 욕망의 실체 또한 춘근의 것만큼이나 비현실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은 내려져야 한다. 실현 불가능한 욕망이 교차하는 무한반복의 루프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일까. 데우스 엑스마키나(deus ex machina). 가장 극적인 순간 구원의 손길이 내밀어진다. 명분은 그럴싸하다. ‘우춘근이라는 이름이 상징적 기호이듯이, 그의 아크라시아도 사회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말은 사회화된 개인이 변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또 다시 궁금해졌다. 우춘근이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물론 그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국민들이 납득하지 못 할 뿐.

 

질문을 바꾸어보자. 개인 행위에 대한 동기를 묻지 않고 역사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가. 잘 모르겠지만 남는 것은 있다. 개인의 속을 들여다 본 것 같은 이 독특한 체험은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부끄러운 기억을 소환한다. 다시 묻는다. 한번 빚어진 인간의 속성은 변할 수 있는가. 이것도 모르겠다. 연극 <WANTED 우춘근>은 우리가 지속적으로 대면할 모호한 화두이자 부끄러운 역사를 응시하는 반성의 코기토다.

 

 

 

 

공연정보

 

연극 <WANTED 우춘근>

 

작 신성우 연출 정범철 조연출 이세희 미술 배일환 조명 배대두

배우 공재민 류진현 김대흥 장희재

주최 공상모임 作心365

 

2020.2.5.() 2.16(), 대학로 아름다운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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