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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옥의 문화톡톡] 자기계발 담론과 가부장제를 결합한 골드미스로맨스 - 로맨스와 멜로드라마에 대한 탐구(6)
[이정옥의 문화톡톡] 자기계발 담론과 가부장제를 결합한 골드미스로맨스 - 로맨스와 멜로드라마에 대한 탐구(6)
  • 이정옥(문화평론가)
  • 승인 2020.02.24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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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탈리티와 골드미스로맨스

한 시대 혹은 한 사회가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방식은 멘탈리티와 관련이 깊다. 멘탈리티는 한 집단의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집단무의식 혹은 세상을 전망하는 습관적인 사고양식을 일컫는 역사학 용어이다. 자기계발 담론에서는 이를 개인 차원의 가치관 혹은 사명감으로 전유했지만, 멘탈리티는 현재를 살아가는 개인의 내면에 과거부터 지속적으로 작동하는 사고양식이다.

미국과 영국은 1980년대부터 경제변화를 주도하며 자기계발 담론의 생산과 소비를 선도했다. 그럼에도 두 나라의 골드미스로맨스는 판이하게 다르다. 이런 차이는 사회구조적 변화를 내면화하는 멘탈리티에서 비롯된 것이다. 멘탈리티는 정체성을 형성하고, 정체성은 정치성을 낳는다.

미국은 아메리칸드림과 개척정신을 역사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아온 나라이다. 911사건(2001)과 세계금융위기(2008)의 대혼란 이후에도 미국인들은 여전히 미래지향적인 자신감에 의지하여 위기상황을 정면 돌파하는 긍정의 멘탈리티를 공유하고 있다.

1970년대 후반 경기침체에 직면하자 미국은 정치와 문화를 결합한 경제정책(레이거노믹스)을 펼쳐 침체의 늪으로부터 탈출하는 한편, 미국인 특유의 긍정의 멘탈리티에 기반하여 자기계발 담론을 자수성가의 신화로 발전시켰다.

골드미스로맨스의 원형에 해당하는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들은 긍정의 멘탈리티와 자기계발 담론이 육화된 여성들이다. 이 드라마에서 사회적 성공과 경제력을 토대로 자유분방한 성적 욕망과 화려한 소비생활을 만끽하는 네 명의 골드미스들은 그 이전의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선구적인 여성들이다.

반면, 영국은 대영제국의 찬란한 역사에 대한 자부심과 영국신사에 대한 우월감을 간직해온 나라이다. 오늘날에도 영국은 전통적인 문화유산을 관광 상품으로 개발하거나 고풍스런 패션과 풍경을 활용하여 고전을 영화로 제작하는 등 영국의 전통을 되살리는 문화산업을 펼치고 있다.

1976IMF 경제위기에 처하자 영국정부는 미국의 레이거노믹스와 자기계발 담론을 수용하여 강력한 개혁정책(대처리즘)을 펼쳐 경제 활성화에 성공했지만, 미국과 달리 개혁정책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거셌다. 이런 비판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대량실업을 초래한 대처리즘을 겨냥했지만, 영국의 국가정체성과 대영제국의 자부심을 회복하지 못했다는 위기감이 더 크다.

 

BBC 드라마 <오만과 편견>(1995)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영국을 구할 사람이 아무도 없나, 영국: 엘레지와 같은 출판물이 쏟아졌고, 분위기 쇄신을 위해 멋지고 젊은 영국을 지향하는 쿨 브리태니커(Cool Britannica)’ 프로젝트(1997-1998)를 추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1)

이 무렵 BBC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6부작(1995)을 방영하여 역사상 전무후무한 시청률을 기록했다. 영국인들은 제인 오스틴과 <오만과 편견>국민작가국민소설로 추켜세우며 열렬한 호응을 보냈다. 영리한 작가 헬렌 필딩은 이런 호응에 편승하여 <오만과 편견>을 재해석한 <브리짓 존스의 일기>(1996)를 출간해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오만과 편견> 다시쓰기”’라는 작가의 말대로 브리짓 존스 시리즈는 자기계발 담론과 영국적인 멘탈리티의 혼성적 재현이다. 10년 동안 3권의 소설과 3편의 영화가 발표될 정도로 흥행에 성공한 요인은 자기계발 담론의 시대에 급부상한 여성의 삶과 애환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낸 데 있다. 그러나 잃어버린 영국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되살려내려는 전통의 문화정치가 더 크게 작용했다.

 

자기계발 담론과 문화정치를 결합한 포스트모던적 문화상품

<브리짓 존스의 일기>가 출판과 동시에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자, 영국문단은 chick(어린아이)literature(문학)를 합쳐 ‘chic-lit’으로 명명했다. ‘어린아이 수준의 치기어린 문학이란 뜻의 칙릿은 <오만과 편견>을 준거로 삼은 정전주의적인 명칭이다. 이후 <섹스 앤 더 시티>를 비롯한 유사한 작품들이 크게 인기를 끌면서 칙릿은 결혼하지 않은 사무직 여성의 직장생활과 연애를 결합한 문학이란 장르로 재규정됐다.

칙릿의 원조이자 영국의 골드미스로맨스를 대표하는 브리짓 존스 시리즈는 3부작 소설이 핵심이다. 이 연작소설은 골드미스처럼 살고 싶은 올드미스의 좌충우돌 사랑이야기로 시작해 골드미스로의 성장과 결혼, 중년의 싱글맘과 워킹맘으로서의 애환과 재혼으로 이어진다.

브리짓 존스 시리즈는 고군분투하는 직장여성의 성장소설이자 골드미스로맨스이다. 특이하게도 <오만과 편견>의 낭만적 유토피아 플롯에 자기계발 담론을 결합한 성장소설이다. 자기계발 담론과 빅토리아로맨스를 대표하는 정전의 위력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직조해냄으로써 영국의 자존심을 회복하려는 문화정치의 산물인 것이다.

 

소설 <브리짓 존스의 일기>(1996)

 

이런 점에서 브리짓 존스 시리즈의 인물구도는 빅토리아시대적인 인물과 자기계발 담론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로 나눠진다. 마크 다씨가 전자에 속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라면, 브리짓과 그 친구들 그리고 브리짓과 연애하는 남자 등 대부분의 인물들은 후자에 속한다.

<오만과 편견>을 패러디한 소설답게 마크 다씨의 부모와 브리짓의 부모를 위시한 마을 사람들은 빅토리아시대의 풍속을 실감나게 묘사하기 위해 동원된 인물들이다. 뒤늦게 자기인생을 찾겠다며 어설프게 페미니즘을 부르짖으며 민폐를 끼치는 브리짓의 엄마는 전자와 후자를 넘나드는 인물이다. 따라서 브리짓 존스 시리즈는 빅토리아시대와 1990년대 영국의 사회문화적인 풍경이 결합된 혼성적인 풍속소설이다.

물론 소설 전체에서 후자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크다. 그러나 곳곳에 국가대표의 축구경기를 관람하듯 BBC드라마 <오만과 편견>에 열광하는 영국인의 심리가 짙게 투영되어 있다. 엘리자벳이 이성과 감정의 균형감과 유머감각을 발휘하여 적절한 수위에서 관습을 비판하고 타협하는 교양 있는 영국여성을 대표한다면, 미스터 다씨는 빅토리아시대 젠트리의 진중함과 배려심이 몸에 밴 영국신사를 표상한다. 두 사람은 영국의 전통과 자부심을 상징하는 국가대표인 것이다.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2001)

소설에 비해 사회적 영향력이 큰 영화에서는 BBC드라마 <오만과 편견>에서 미스터 다씨를 연기한 배우 콜린 퍼스가 마크 다씨로 재등장했다. 그는 현대적인 옷으로 갈아입고 드라마에 방영됐던 장소에서 미스터 다씨의 말투와 몸짓으로 마크 다씨를 연기하여 영국인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 또한 소설 <브리짓 존스의 애인>에서도 BBC드라마에 등장한 콜린 퍼스를 인터뷰하는 방송국 기자 브리짓과 그 친구들이 흥분하는 에피소드가 삽입되어 있다. 이처럼 브리짓 존스 시리즈는 소설과 드라마와 영화의 혼성모방을 통해 전통과 재협상을 수행한 포스트모던적인 문화상품이다.

 

자기계발 담론과 가부장제를 결합한 골드미스로맨스

마크 다씨와 콜린 퍼스가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국가대표급 영국신사로 사랑받아온 미스터 다씨의 복제인간이라는 점에 있다. 귀족의 후예이자 부자이며 인권변호사인 마크 다씨는 업무능력뿐만 아니라 진중한 인간미를 갖췄고, 브리짓이 공경에 처할 때마다 말없이 구해주는 믿음직한 현대의 국가대표급 영국신사이다.

마크 다씨의 신사다운 매력은 브리짓의 연애남과 비교할 때 월등히 돋보인다. 첫 번째 애인인 다니엘은 경박하고 무책임한 초절정의 바람둥이이자 알코올중독 치료를 받으며 요양원에서 쓸쓸하게 늙어가는 한량이다. 영화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에서 연애정보회사 CEO 잭은 마크 다씨 못지않은 부자이고 자상한 신사이지만, 영국신사의 정통성을 잇는 마크 다씨의 경쟁자가 되지 못한다. 마크 다씨에 대한 열광은 미스터 다씨를 향한 숭배와 맞먹을 정도이다. 이혼남이라는 흠결조차 일본인 부인의 잔인성에 의한 상처를 의연하게 극복한 영국신사로 미화되고, 까칠하고 친밀성의 부족도 영국신사의 전형적인 성격으로 승화된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 애정과 열정>(2004)과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2016) 영화

마크 다씨가 이성적이고 진중한 영국신사이자 성숙한 남자 어른이라면, 브리짓은 미성숙하고 감정적인 어린아이로 형상화된다. 브리짓은 영리하고 유머감각을 지닌 여성이지만, 언제나 말썽을 일으키는 어리숙한 올드미스로 그려진다. 출판기념회에서 품격이 떨어지는 진행, 현장체험 TV프로그램에서 반복되는 민망한 포즈와 행동, 태국 여행에서 환각제 소지로 투옥되는 등 직장인의 필수요건인 TOP(시간, 장소, 상황)에 맞지 않는 실수를 반복하는 아마추어이다.

게다가 직업의식도 투철하지 않은 편이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완전 섹스 가이드등과 같이 직무능력과 무관한 연애 관련 자기계발서를 탐독하며 상사인 다니엘과의 사내연애에 관심이 쏠려 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읽고 업무처리나 대인관계 등 만사를 매끄럽고 스마트하게 처리하는 마크 다씨와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브리짓의 친구들 역시 어리석고 미성숙한 어린아이처럼 형상화된다. 샤론은 스스로를 자신의 경제적 능력에 의존하는 선구자라 부르짖으며 영국남자들의 정서장애 증후군을 비판하면서도 미스터 다씨를 숭배하는 모순적인 페미니스트이다. 연애 관련 자기계발서를 탐독하며 연애와 섹스를 즐기는 연애지상주의자 주디는 브리짓의 연애 코치를 자처하지만 자기 연애조차 버거워한다. 게이라는 성정체성으로 매사가 고달픈 톰은 괴물 취급을 하는 부모와 사회 때문에 괴로워하고, 전업주부인 마그다와 제레미는 미혼의 직장여성을 폄하하면서도 이른 결혼생활에 회의를 갖는 보수주의자들이다.

브리짓과 그 친구들의 좌충우돌 방랑기는 신자유주의의 거센 물결 속에서 힘겹게 살길을 모색하는 30대 젊은 영국인들의 사회풍속도이다. 때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함께 극복하는 성장담론과 저항담론을 생산하지만, 평생 자궁처럼 감싸주는친밀성의 우정공동체로 남을 뿐이다. 막강한 경제력과 사회적 성공을 확보하지 못한 흙수저 출신들에게 자립의 연대는 애초부터 불가능하며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는 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존재비용에 비해 높은 창출가치를 생산해야 하는 무한경쟁의 체제이다. <섹스 앤 더 시티>에서 골드미스들의 거침없는 당당함은 엄마세대의 페미니스트들이 일궈놓은 실력과 능력을 바탕으로 사회적 성공과 경제력을 확보한 금수저 출신의 자신감과 자부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여성의 개인화는 신자유주의의 부산물이라 할 수 있다.

자기계발은 자기달성의 목표인 상상의 나와 그 목표를 묵묵히 수행하는 현실의 나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고행의 연속이다. ‘현실의 나와 미래를 선취한 상상의 나사이가 아득하게 먼 입문자들은 불안과 자기혐오를 극복하기 위해 사생결단의 의지로써 스스로를 점검하고 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자기달성의 목표와 계획을 세우고 실행여부를 수시로 성찰하는 일지형식은 자기계발의 출발점이다.

일기식의 일인칭 고백소설인 브리짓 존스 시리즈는 자기계발 입문자의 일지형식을 차용했다. 새해 첫날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목록화 하고 실행여부를 주기적으로 체크하고 기록하는 1년 단위의 일지형식은 3편의 소설에서 일관되게 유지된다.

 

소설 <브리짓 존스의 애인>(1999)

직장인의 자기관리 범주에는 직무수행능력 외에 자기절제와 외모관리가 포함된다. 그러나 브리짓의 일지에서 체크항목은 외모와 감정 관리에 편중되어 있고, 체중조절과 감정조절의 실패에 따른 자책과 자기혐오로 채워져 있다. 물론 <브리짓 존스의 애인><브리짓 존스는 연하가 좋아>에서 섹스 횟수, SNS 문자 및 블로그 조회수 등의 새로운 체크항목이 삽입되지만 감정과 외모는 상수로 고정되어 있다.

일기형식의 일인칭 고백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외모관리와 감정관리에 대한 브리짓의 집착은 지나치게 과도하다. 일기장에는 체중관리와 외모관리에 번번이 실패하면서도 각종 상품으로 유혹하는 소비지상주의에 휘둘리는 의지박약과 독신으로 살다 쓸쓸하게 죽어 개에게 물어뜯긴 채 발견될 수 있다는 두려움 등을 토로하는 자조적인 위로로 가득 차 있다.

브리짓의 일기에서 쏟아내는 자조와 불평은 직무능력보다 성적 매력을 중시하는 남성 중심적인 직장문화에 대한 직장여성들의 비판과 저항을 대변한다. 브리짓 존스 시리즈의 인기 비결은 바로 업무능력과 여성적인 매력을 요구하는 신자유주의의 무한경쟁 체제에 대한 직장여성의 저항과 반발을 유쾌하고 발랄하게 표현하는 브리짓의 특특한 캐릭터에 있다.

특히 영화에서 배우 르네 젤위거는 뚱뚱한 외모를 저주하면서도 자기합리화에 능한 낙천적인 브리짓 캐릭터를 온몸으로 표현하여 직장여성들에게 크나큰 공감과 위안을 안겨줬다. 이런 점에서 브리짓은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벳의 후예라기보다 <제인 에어>의 제인과 같이 흙수저 출신의 캔디 캐릭터이다.

 

소설 <브리짓 존스는 연하가 좋아>(2013)

이처럼 브리짓 존스 시리즈는 ‘'경제적으로 자립한 첫 번째 세대'인 브리짓을 통해 올드미스에서 중년의 골드미스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유쾌하고 발랄하게 그린 골드미스로맨스이다. 특히 <브리짓 존스는 연하가 좋아>에서 오랫동안 습관처럼 탐독했던 연애 관련 자기계발서를 모두 버리고 심신안정을 위한 자기계발서로 대체하는 과정은 정신적으로 성숙한 골드미스를 상징한다.

마크 다씨와 사별한 후 브리짓은 처참하게 박살난 텅 빈 껍데기로 남은 상처와 불안감을 딛고 극작가와 두 아이의 엄마로서 아슬아슬한 풍선처럼살아가는 워킹맘과 싱글맘의 애환을 진솔하게 토로한다. 그런 와중에도 20살 차이나는 젊고 상큼한 록커와 연애를 즐기며 중년 여성으로서의 섹슈얼리티와 외로움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브리짓 특유의 유쾌하고 발랄한 매력을 발산한다.

그러나 브리짓의 홀로서기를 완전히 차단한 결말은 골드미스로맨스로서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모처럼 신자유주의의 부산물로 얻어낸 여성의 개인화를 부정하고 남편의 아내에 충실한 가부장적 성역할로 환원한 것이다. 살아 있는 동안 곤경과 위기에 처할 때마다 브리짓을 구했던 구원자 마크 다씨는 사후에도 여전히 브리짓을 후원하는 물질적인 버팀목이자 정신적인 지주이며 수호신으로 부활한다. 국제인권변호사로 국가의 명예를 지키다 전사한 그는 국가유공자로서의 훈장과 연금을 남겨 브리짓과 두 아이들이 버텨내는 자부심과 경제적 토대를 제공한다. 게다가 올빼미로 환생한 그는 위기가 닥칠 때마다 깊은 밤 창가에 조용히 날아와 브리짓과 아이들을 향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며 가족을 지킨다.

영국신사의 판타지는 또 다른 영국신사와의 재혼과 18세기적 해피엔딩의 장면에서 정점을 이룬다. 브리짓의 재혼남 월레이커 선생은 빌리를 자신의 아들처럼 아끼는 담임교사이며, 특수부대 출신의 특전사로 국제무대에서 활약했지만 미래의 영국신사를 육성하겠다는 뜻을 품고 교육에 투신한 애국자이다.

월레이커와 재혼한 브리짓은 표정과 외모는 물론 무뚝뚝하고 사려 깊은 마크 다씨의 닮은꼴인 월레이커를 흡족하게 바라보고, 그런 브리짓을 올빼미로 환생한 마크 다씨가 오랫동안 지켜보다 안심하듯 크게 날개 짓하며 날아간다. 아버지가 그간 혼신을 다 해 잘 키워낸 딸을 영국신사인 사위에게 넘겨주는 빅토리아시대의 결혼식을 연상시키는 이 해피엔딩의 장면은, 마크 다씨의 축복 속에서 고달프게 버텨왔던 브리짓 인생의 완결을 은유한다.   

미스터 다씨와 마크 다씨, 그리고 월레이커로 이어지는 영국신사에 대한 과도한 이상화와 판타지는 빅토리아시대의 거울에 신자유주의시대의 사회문화적 풍경을 조망함으로써 자기정체성에 대한 자아도취로 퇴행한다. 제국주의적 가부장제가 절정에 이른 빅토리아시대의 거울에 비춰진 영국신사 판타지는 신자유주의시대에 잃어버린 영국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잠시 회복시켜주는 환각제이다.

1990년대부터 12년간 영국사회를 면밀하게 분석한 영국의 문화인류학자 케이트 폭스는 자국민의 멘탈리티를 사교불편증으로 진단했다. 그에 따르면, 과거지향적인 영국 대중문화의 문화정치는 국가정체성과 대영제국의 자부심을 상실했다는 위기감을 전통적인 영국신사의 판타지로 만회하려는 일시적인 보상심리이다.

브리짓 존스 시리즈는 빅토리아로맨스의 플롯과 자기계발 담론을 결합한 골드미스로맨스이자, 신자유주의시대에 미처 준비할 틈도 없이 경쟁체제에 뛰어든 개인화된 여성의 성장소설이다. 이 성장과정을 발랄하고 유쾌한 로맨틱코미디란 장르로 포장하여 상업적인 흥행을 이끌어냈지만, 화려한 겉포장을 벗겨내면 그 속에 감춰진 영국의 전통성과 자부심 회복이라는 보상효과를 노린 영국신사의 판타지가 드러난다.

최근 들어 영국의 대중문화는 조금씩 다양화 되고 있다. <레이디 수잔>(2016)<레이디 맥베스>(2017),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2016) 등은 시대 변화를 반영하여 고전을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재해석한다거나 장르 확장의 재미를 선사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영국의 대중문화 곳곳에서 영국신사의 판타지가 발견된다. 멘탈리티는 정체성을 형성하고, 정체성은 정치성을 낳기 때문이다.

 

글: 이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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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 구글

(1) ‘쿨 브리태니커(Cool Britannica)’199798년 토니 블레어 정부가 추진했던 프로젝트이다. ‘멋지고 젊은 영국이라는 이미지를 추진했지만 대중음악과 패션, 미술 등의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성공을 거두었으나, 과학기술계에서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참고문헌

 

레나타 살레출,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 후마니타스, 박광호 옮김, 2014.

스튜어트 홀, 대처리즘의 문화정치, 임영호 옮김, 한나래, 2009.

케이트 폭스, 영국인 발견, 권석하 옮김, 학고재, 2010.

홍덕선, 포스트모던 영국소설의 세계,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13. 출판부,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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