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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의 도전, 결국 그들은 문을 열 것이다!
트랜스젠더의 도전, 결국 그들은 문을 열 것이다!
  • 목수정 l 재불작가
  • 승인 2020.02.28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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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한 가지 사실을 고백하면서 이 글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숙명여대에 합격했으나 결국 입학을 포기한 A씨 사건에 대해, 처음에는 학교 측이 입학을 막는 것으로 오해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군이 트랜스젠더 변희수 씨를 강제 전역시켰던 것처럼, 고루한 시스템이 다시 한번, 인권의 반경을 넓히려는 한 시민의 의지를 좌절시키는 것으로 알았다. 그런 오해를 했던 것은, 다수의 언론이 숙명여대를 비롯한 6개 여대의 TERF(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t: 트랜스젠더 배척 급진 페미니스트) 계열의 페미니즘 모임들의 주장을 ‘숙명여대’ 혹은 ‘숙대를 비롯한 서울 시내 6개 여대’의 주장으로 보도했기 때문이다. 

제대로 진상을 파악하게 된 것은 A씨가 결국 입학을 포기했다는 보도를 보고 나서였다. 학교는 법적인 여성인 A씨의 입학을 막을 이유도 없었고, 막지도 않았으며, 등록금 납입이라는 입학생 본인의 마지막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다. 코로나바이러스를 잠시 누를 정도로 일주일간 뜨겁게 타오른 트랜스젠더 논쟁 속에서 정작 학교는 목소리를 낸 바 없었고, 일부 학생들 -약 1만 2,000명의 숙대생 중 300~400명이 온라인에서 TERF 커뮤니티에서 활동한다고 알려졌다- 의 극단적인 의견만이 ‘숙대’라는 주어로 확대돼 세상에 전해졌던 것이다. 

오해를 했던 사람은 나 혼자였을까? 인터넷 공간에서 충만하게 일렁이던 페미니스트와 숙대를 비판하던 그 우렁찬 소리는 과연 ‘숙대’ 내지는 ‘페미니스트’의 이름으로 나오던 그 목소리의 실체가 전체의 2.5%에 불과한 일부 극렬분자들의 목소리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저항의 목소리는 가장 먼저 튕겨 오르는 법  

숙대생들은 언론 보도를 통해 트랜스젠더가 숙대에 입학하게 됐다는 사실을 접했다. 학교 안에는 이 사실에 대해 별다른 의견이 없는 학생과 찬성하는 학생, 반대하는 학생들이 고루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발 빠르게 의견을 조직하고 대응한 쪽은 모임의 정체성 안에 “트랜스젠더 배제”를 박아놓은 이들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저항의 목소리는 늘 제도의 판단에 반발하는 곳에서 솟구쳐 나오는 법이고, 찬성하는 쪽에서는 이미 기정사실화된 일에 대해 새삼 목소리 낼 이유가 없으니. 성전환 수술을 받고 여군으로 복무하기를 희망한 변희수 하사를 강제 전역시킨 군을 향해 여성계는 일제히 비난의 목소리를 냈고, 여군들 역시 그와 함께 근무하는 것에 대해 문제없다는 입장을 보일 때와는 정반대였다. 왜 이때 TERF는 침묵했던 것일까? 군이 변희수 하사를 강제 전역시키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제도가 작동하고 있으니 굳이 목소리를 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정식입학 허가를 받은 트랜스젠더 여성을 향해 반대의 깃발을 들고, 여성의 공간을 생물학적 여성이 아닌 존재로부터 지키겠다는 명분을 강조하며, 배제를 소리높여 외친 이들은 TERF였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는 천진한 아군들을 순식간에 확보하면서 사건을 둘러싼 가장 강력한 담론으로 미디어를 장식했다. 그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획득한 동조자들은 TERF의 신봉자였다기보다, 낯선 존재를 경계하고 혐오를 발산하는 우리 사회의 극단성이 다시 한번 발동된 예로 보인다. 

2018년 제주에 난민신청을 했던 500명의 예멘 난민 사태가 비슷한 사례다. 한국 사회는 당시 이슬람 난민에 대한, 테러에 대한, 그리고 주로 남성인 이들이 ‘저지를 수도 있는’ 성범죄에 대한 공포로 들끓었다. 결국 난민심사를 요청하게 된 484명 중 2명에게만 난민 인정이 이뤄졌고, 412명에겐 인도적 체류 허가가 나와서 현재 그들은 모두 한국 사회에서 살고 있다. 많은 이들의 우려와는 달리, 그들에 의해 발생한 강력범죄는 보고된 바 없다. 

2006년 대법원이 트랜스젠더에 대해 성별 정정을 허가한 지 14년이 지났지만, 지나치게 까다로운 조건으로 인해 몸과 정신의 성이 불일치한 사람들의 고통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진행 중이다. <보건사회연구> 2015년 12월호에 실린 ‘한국 트랜스젠더 의료접근성에 대한 시론’의 서문은 이런 말로 시작한다. “한국에서 트랜스젠더의 의료접근성에 대한 논의는 전무하다.” 국가는 합법적으로 성전환할 수 있는 권리를 허락했지만, 그들의 의료접근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비도 없이 의료의 사각지대에 버려두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트랜스젠더들을 대하는 방식을 적나라하게 대변해 주는 지점이다. 

논문에 의하면, 우리나라 트랜스젠더 인구가 최소 5만 명에서 최대 25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현재 세계 43개국이 호르몬 요법이나 성전환 수술들을 지원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전문의 교육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들은 예멘 난민처럼, 분명 우리 곁에 존재함에도 낯선 존재, 철저히 지워진 존재인 것이다. 우리의 무지는 두려움으로 이어졌고, TERF가 페미니즘의 이름을 걸고 정당한 배제의 논리를 제공하자 허겁지겁 거기에 많은 이들이 편승했다. 

그러나 수많은 여성단체, 성 소수자 단체들은 A씨를 지지하고 TERF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냈다. 소위 페미니스트 진영의 스피커들도 A씨를 응원하는 소리를 냈지만, 그 소리는 소위 ‘당사자’인 6개 여대 TERF의 위풍당당한 펀치에 눌려 ‘소수의견’으로 취급되고 말았다. 129개의 단체가 함께하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소속의 여성단체들은 “스스로를 여성으로 인식하며 여성으로 살아왔고, 살아갈 그녀의 입학은 ‘교육과정에서 소외된 여성들을 위한 교육기관’으로서 설립된 숙명여대의 정신에 비춰도 지극히 마땅한 일”이라며 트랜스젠더 여성의 숙명여대 입학을 환영하는 공동성명을 낸 바 있다. 

 

TERF, 페미니스트들에게는 모욕의 말

생물학적 여성의 배타적 권리를 주장하는 TERF의 논리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극우의 사고다. 나치를 준동시킨 아리아인의 순혈주의, 차별금지법을 좌절시킨 극우 기독교인들의 정신과 동의어다. 세상의 모든 인권운동이 맞서 싸우는 배제와 차별의 논리로 무장한 이들은 페미니즘 그룹 내에서도 소수의 별종으로 취급받는 존재다. 싸움이 조금만 더 길어졌더라면, 자신들의 정당성을 꾸며낼 그 어떤 이론적 토대도 내세울 수 없는 그들은 KO패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단기적 전투에서 그들은 승리했고 페미니즘, 트랜스젠더 진영은 우박처럼 쏟아지는 조롱과 비난을 견뎌야 했다.

국내 최초 트렌스젠더 변호사 박한희 씨가 묘사하는 TERF의 실체를 들여다보자. “TERF는 동성애자, 이성애자를 모두 포함하나 생물학적 여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다. 여성으로 태어났기에 차별받는다는, 여성의 피해가 가장 크다고 주장한다. (…) 결혼했거나 남자친구가 있는 여성도 가부장제에 부역하는 사람으로 본다. 화장을 하고 다니는 여성도 부역자로 본다 (…) 공허한 것은, 오직 피해자로서의 발언만 있다는 점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가 없다. 운동이란 피해를 발언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권리를 찾고 사회를 개선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또 TERF는 인권운동을 파이 싸움으로 보고, 여성이 권리를 가지려면 남성의 권리를 박탈해야 한다고 본다. 여성, 성 소수자, 장애인, 이주민과의 파이 싸움에서 생물학적 여성이 먹어야 한다는 식이다. 인권은 확장돼야 하는 것이지, 남의 것을 빼앗아 오는 것이 아니다.”

굳이 공들여 TERF의 이론을 공박할 의지도 생기지 않을 만큼, 명백히 편협하고, 근시안적인 입장이다. 출구는 제시하지 않고 닫아걸 문만 만드는 그들의 싸움이 단기적 전투에서는 반짝 승리를 거둘 수 있을지 모르나, 전쟁에선 결코 그 누구를 향해서도 도전장도 내밀 수 없는 초라한 사고체계다.

프랑스 위키피디아가 정리한 TERF의 정의는 한결 냉정하다. 

“TERF는 2008년, 페미니스트 블로거이며 트랜스젠더에 호의적인 비브 스미트(Viv Smythe)가 미시간 여성뮤직 페스티벌의 트랜스 여성 입장 거부 결정에 반대하면서 만들어낸 용어다. 트랜스젠더 혐오 페미니스트들을 나머지 페미니스트로부터 구분하기 위해 만들어낸 이 용어는, 이후 페미니스트 그룹 내의 소수 트랜스젠더 혐오 여성들을 지칭하는 데 쓰였다. 트랜스젠더의 권리에 반대하고, 여성 전용 공간에서 트랜스젠더 여성을 배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트랜스젠더 여성도 여성이라는 생각 자체를 거부한다. TERF는 점점 조소의 뉘앙스를 띠기 시작했고, 일부는 이 용어를 모욕으로 간주한다. 영국에서 상대적으로 지지를 얻고 있는데, 특히 트랜스젠더에 우호적인 법안을 막고자 하는 미국 극우세력과 결탁한 영국 언론들에서 호의적으로 다뤄진다.”

출발 자체가 페미니스트계의 이단아들을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모욕으로 통하며, 미국 극우 기독교계와 손잡고 있는 페미니스트계의 못난 변종의 위치가 또렷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낙관한다

한국 사회는 최근 두 사람의 트랜스젠더가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들어온 경험을 했다. 그것은 트랜스젠더가 제 존재를 드러내자마자 배제된 장면인 동시에, 그들이 사회 속에서 제 존재를 드러내고 트랜스젠더로서 존재하고자 소리를 내기 시작한 장면으로 기록된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걷잡을 수 없이 세력화하기 시작한 한국 페미니즘 운동은 성 소수자 운동과 함께 서로 기대며 성장해왔고, 이제 트랜스젠더들이 제 존재를 드러내며 인정을 요구하기에 이른 것이다. 혹자들은 왜 A씨가 굳이 언론과 인터뷰를 해서 이런 분란을 만들었는지에 대해 질책하기도 한다. 어차피 입학 허가가 났으니, 본인이 조용히 입학했으면 이런 일도 생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박한희 변호사가 자신이 트렌스젠더임을 밝힌 이유와 같고, 들라노에 전 파리 시장이 커밍아웃을 한 이유와도 같다. 자신의 성공을 개인의 성장이 아니라, 자신이 포함된 소수자 진영 전체의 한걸음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이 두 개의 씨앗에서 싹튼 것이다. 

베르트랑 들라노에 전 파리 시장(2001~2014)은 상원의원 시절인 1998년, 방송을 통해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혔다. 프랑스 의회는 당시 PACS법(시민연대계약법 혹은 동반자법) 관련 토론을 진행 중이었다. 동성애자나 이성애자 모두에게 혼인이 아닌 상호 간의 서약만으로도 커플의 관계를 인정해주는 법안이었다. 들라노에는 동성애자가 낯설고 어색한 존재가 아님을 전해, 사회의 편견을 깨기 위해 커밍아웃을 했고, PACS법은 통과했으며, 그는 2001년에는 파리시장에 당선됐다. 커밍아웃을 한 그의 당선은 개인의 당선인 동시에, 동성애자의 첫 파리시장 당선이었다.  

이윽고 2013년, 동성애자 결혼법, 2020년 동성애자와 미혼 여성 인공수정법 통과도 평등의 지평을 확대하고, 동성애자들에게 가해지던 차별을 없앤다는 보편적인 인권의 원칙에서 이뤄졌다. 거대한 원칙이 하나의 관문을 통과하고 나면, 자잘한 전투가 전세를 역전시킬 수 없는 법이다. 숙대의 문을 두드렸던 A씨도, 변희수 하사도 결국 들라노에와 같은 일을 한 것이다. ‘당신 옆, 평범한 사람의 모습을 한 사람이 트랜스젠더였다. 오늘은 문만 두드려보고 가지만, 다음에 오는 사람은 그 문을 열 것’임을 그들은 알려주었다.  

TERF라는 지뢰가 터져 제 옹졸한 존재를 알리게 만들면서.  

 

 

글·목수정

한국과 프랑스의 경계에 서서 글쓰기를 하는 작가 겸 번역가. 주요 저서로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야성의 사랑학』, 『파리의 생활 좌파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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