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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1917> - 죽음의 길과 삶의 길의 경계에 서서
[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1917> - 죽음의 길과 삶의 길의 경계에 서서
  • 서곡숙(영화평론가)
  • 승인 2020.03.02 09:2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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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영화: 영웅주의, 역사, 스펙터클

세계사는 전쟁사였고, 역사상 착한 전쟁은 없었다. 전쟁영화의 핵심은 전쟁영화를 장르적으로 정의하며 드라마의 중심 역할을 수행하는 전투 장면들이다. 전쟁영화의 재현 방식은 끔찍한 경험, 관조의 대상, 군사 분쟁과 관객의 거리 소멸 등이 있다. 전쟁영화의 경향은 1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쟁에 대해서는 전쟁의 무용함, 잔인성, 고통 등 부정적 가치를 보여주며, 2차 세계대전에 대해서는 용맹, 애국심, 자발적 희생의 긍정적 가치를 보여준다. 전쟁영화의 주요 장르 변형체 8가지는 곤경에 빠진 소대, 장대한 서사시적 전투, 싸우는 동료, 지휘의 중압감, 반전영화, 전쟁 포로 탈출, 전시 대비 영화, 병역 코미디 뮤지컬이다.[1]

전쟁영화의 세 가지 특징은 영웅주의, 역사(서사), 스펙터클이다. 영웅은 전쟁영화의 내러티브 전략의 정점에 있으며, 탁월한 리더십 소유자이거나 남다른 체력을 갖거나 출중한 무인이다. 전쟁영화의 역사(서사)에서는 설득력, 집중력, 사실감, 동화 등의 이유로 허구의 이야기보다는 실제 전쟁 에피소드를 더 선호한다. 스펙터클은 총격전, 육탄전, 공중전, 기마전, 함포사격전 등 다양한 전투를 사실적으로 재현하며, 전쟁영화에서 획득해야 할 목표물인 성, 고지, 다리 등은 훌륭한 볼거리를 제공한다.[2] 전쟁영화에서는 비전투영화보다 전투영화를 선호하며 애국주의를 기저에 깔고 있으며, 하위 장르로는 반전영화, 참전용사 적응기, 전쟁포로영화, 레지스탕스 영화 등이 있다.[3]

<1917>(2019)은 제1차 세계대전 때 메신저인 두 병사가 1,600명의 전우를 구하기 위해서, 전쟁터 한복판을 건너 공격 중지 명령을 전달하는 미션을 수행하는 내용이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상 10개 부문 노미네이트로 관심을 모았고, 아카데미 촬영상·시각효과상·음향상, 골든 글로브 감독상·작품상(드라마부문), 미국 프로듀서조합상 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이 영화는 아군 참호와 적군 참호, 폐허가 된 집과 마을, 데번셔 연대 참호라는 세 공간을 중심으로, 아군/적군, 전방/후방, 전쟁/평화를 횡단하며 죽음의 길과 삶의 길 사이의 경계를 보여준다.

 

아군과 적군의 모호한 경계: 영웅이 없는 참호

<1917>의 전반부는 아군 참호와 적군 참호에서의 긴장감과 두려움을 드러내며, 아군과 적군의 모호한 경계와 영웅이 없는 참호를 보여준다. 블레이크와 스코필드는 독일군의 함정을 피하고 1,600명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매켄지 중령의 공격을 저지하라는 에린무어 장군의 명령을 받는다. 두 병사는 버려진 독일 참호에 도착하고, 무비트랩으로 참호가 무너져 스코필드가 돌더미에 깔리지만, 블레이크가 스코필드를 구해낸다. 그들은 추락하여 불타는 적군기에서 조종사를 구해주지만, 적군 조종사가 휘두르는 칼에 블레이크가 숨지고, 스코필드가 그 조종사를 총으로 쏘아 죽인다. 스코필드는 죽어가는 블레이크로부터 자신의 어머니에게 편지를 써달라는 유언을 듣는다.

<1917>은 적군과 아군의 모호한 경계를 통해 선과 악의 이분법에서 벗어나며, 승리보다는 생존을 목적으로 하는 병사들의 두려움을 포착하며, 영웅도 악당도 없는 죽음의 공간으로서의 참호를 보여준다. 일반적인 전쟁영화에서는 영웅적인 인물의 리더십, 군인다운 체격, 정의감이 강조되는 반면, 이 영화에서는 전우애, 지적인 사고, 희생정신이 강조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격투와 사격을 통한 육체적 능력보다는 독서와 대화를 통한 정신적 능력과 소통 능력이 있다. 영국군과 독일군은 존엄한 인간성의 아군과 살인기계가 되는 적군이라는 스테레오 타입의 전쟁영화 인물들이 아니며, 아군과 적군이 선과 악의 대립구도를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적군이 거의 나오지 않으며, 몇 명 나오는 적군도 악인이라기보다는 전쟁으로 인한 두려움과 공포에 폭력을 휘두르는 연약한 인간에 불과하다. 그래서 전쟁터라는 죽음의 공간에서 정의로운 의인과 비열한 악인은 존재하지 않고, 적군의 사악한 행위에 맞서 싸우는 아군의 활약상도 없으며, 다만 겁에 질려 서로에게 총격을 가하는 불안에 떠는 주체가 있을 뿐이다. 전쟁터는 자신이 죽지 않기 위해서는 타인을 죽여야만 하며, 어느 쪽이든 죽어야 끝이 나는 죽음의 공간이다.

<1917>의 전반부 스타일에서는 수평/수직, 곡선/직선의 움직임 대비를 통해서 아군과 적군의 경계가 모호한 죽음의 공간을 형상화한다. 참호에서 바깥으로 나가는 장면에서, 참호 안에서의 수평적인 움직임과 참호 밖으로의 수직적인 움직임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면서, 아군 진영에서의 안정감과 적군 진영에서의 두려움을 대비시킨다. 두 인물이 큰 물웅덩이 옆을 걷는 장면에서, 물웅덩이의 둘레를 도는 두 인물의 곡선의 움직임과 물웅덩이를 가로지르는 카메라의 직선의 움직임을 통해 대비를 보여준다. 이러한 인물, 움직임, 선 등에서 나타나는 대비는 적군에 대한 두려움에 떠는 아군, 적군은 없고 아군만 있는 텅 빈 적군 참호 등 아군과 적군의 경계가 보이지 않는 전쟁터에서 죽음의 긴장감과 두려움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1917>의 전반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카메라 움직임은 트래킹숏이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영광의 길>(Paths Of Glory, 1957)에서 인물을 바라보는 백 트래킹숏, 인물의 뒤를 따라가는 트래킹숏, 인물의 옆에서 나란히 가는 측면 트래킹숏, 인물이 바라보는 대상을 보여주는 시점 트래킹숏 등 다양한 트래킹숏을 보여준다. 큐브릭은 인물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에서는 백 트래킹숏과 시점 트래킹숏으로 감정이입을 하는 반면, 인물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에서는 인물의 뒷모습을 보여주는 트래킹숏을 통해 거리두기를 한다. <1917>의 경우 블레이크와 스코필드가 들판에서 참호로 가는 장면에서, 두 인물을 바라보며 뒤로 물러나는 백트래킹숏은 아무도 없는 들판에서 점차 드러나는 병사들의 모습으로 화면이 바뀌면서 전원풍경과 전쟁터를 대비시킨다. 두 인물이 참호 속을 걸어가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두 인물을 바라보며 물러나기, 뒤에서 따라가기, 측면에서 보여주기, 시점으로 보여주기 등 다양한 트래킹숏으로 인물들의 급박한 상황에 감정이입을 하게 만들며, 감성적인 블레이크와 이성적인 스코필드를 대비시킨다. <영광의 길>의 트래킹숏은 표현기법에 따라 인물들에 대해 차별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비판적인 시선을 보여주는 반면, <1917>의 트래킹숏은 인물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고 긴박한 분위기를 보여줌으로써 감정이입을 하게 만든다.

 

전방과 후방의 모호한 경계: 전투가 없는 전쟁터

<1917>의 중반부에서는 폐허가 된 집과 마을 등의 공간에서, 아군, 민간인, 적군이 뒤섞여 전방과 후방의 모호한 경계를 보여주며, 전투가 없는 전쟁터를 형상화한다. 스코필드는 아군 병사들과 만나고 물웅덩이에 빠진 트럭을 밀고 끊어진 다리를 건너 마을에 도착한다. 그는 폐허가 된 마을, 불타는 숲에 놀라며, 적군의 총격에 지하 공간으로 숨는다. 그는 민간인 프랑스 여성과 아기를 만나 자신이 갖고 있던 통조림과 우유를 나눠주고, 상처를 치료받으며 휴식을 취한다. 스코필드는 이후 마주친 적군과 죽음의 격투를 벌이고, 다른 적군들의 총격에 도망치다가 강으로 뛰어든다.

<1917>에서는 전투를 벌이는 것이 아니라 막는 것이 목적이며, 부대 간의 전투가 아니라 메신저 병사 개인의 사투를 보여준다. 전쟁영화를 장르적으로 정의하는 것은 바로 드라마의 중심 역할을 수행하는 전투 장면들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주인공의 미션은 아군 병사 1,600명이 독일군의 함정에 빠지지 않게 전투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부대 간의 긴장감 넘치는 전투 장면이 거의 없다. 다만, 썩은 시체의 들판, 무비트랩의 참호, 물웅덩이에 빠진 트럭, 끊어진 다리, 폐허가 된 마을, 불타는 숲 등 두려움의 공간을 횡단하는 병사의 사투가 있을 뿐이다. 서사가 집단이 아니라 개인을 중심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감정이입이 더 잘 이루어져 주인공의 생사에 따른 긴장감과 두려움이 커진다.

<1917>의 중반부 스타일에서는 미장센, 동선, 시선, 명암의 대비를 통해 전방과 후방의 모호한 경계를 보여준다. 블레이크와 스코필드가 폐허가 된 집을 살펴보는 장면에서, 죽은 개와 부서진 집, 점점 멀어지는 카메라, 이상한 울음소리, 텅 빈 공간과 젖소의 우유 등 부조화의 이미지를 통해 삶의 터전인 집을 죽음의 공간인 전쟁터로 형상화한다. 적군기가 추락하는 장면에서, 아군과 적군의 공중전에서의 동적인 움직임과 지상에서 바라보는 두 병사의 정적인 모습이 대비를 이루며, 곧이어 추락, 격투, 죽음으로 이어지면서 삶의 공간과 죽음의 공간의 혼합을 보여준다. 스코필드가 아군 트럭으로 이동하는 장면에서, 농담을 하며 웃는 병사들과 죽은 전우를 떠올리며 슬퍼하는 스코필드가 대비를 이룬다. 불타는 숲과 폐허가 된 마을은 빛과 어둠의 대비를 이루며, 불빛으로 적군에게 노출된 주인공이 어두운 지하로 숨어들어 가는 장면에서 밝음이 죽음의 위험을 나타내는 반면 어둠이 삶의 기회를 나타낸다.

<1917>의 중반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스타일적 기법은 남성/여성, 군인/민간인, 죽음/탄생, 훈장/와인, 죽음/삶의 대비를 통한 복선과 상징이다. 스코필드가 무비트랩의 참호와 폐허가 된 집에서 가져온 통조림과 우유는 지하 공간에 숨어 있는 여성과 아기의 식량이 되면서, 군인(남성)의 죽음의 공간은 민간인(여성·아기)의 삶의 공간과 연결된다. 그리고 목숨·죽음을 상징하는 훈장과 놀이·삶을 상징하는 와인을 대비시키면서, 전쟁에서의 승리와 죽음에 대해 간접적으로 비판하는 메시지를 던진다. 스코필드는 자신의 훈장을 프랑스 장교의 와인 1병과 맞바꾼다. 훈장은 자신의 목숨을 걸 정도의 위험한 상황에서 공을 세워야 받는다는 점에서 목숨의 대가이며, 죽음의 길로 병사를 내모는 무언의 압력이다.

 

전쟁과 평화의 모호한 경계: 스펙터클에 대한 두려움

<1917>의 후반부에서는 데변서 연대 참호를 중심으로 전쟁과 평화의 모호한 경계를 보여주며, 스펙터클에 대한 두려움이 담긴 전쟁영화를 형상화한다. 스코필드가 강의 급류에서 벗어나 데번셔 연대에 도착하지만, 공격 직전의 긴박한 상황임을 알게 된다. 그는 아군의 대공세와 적군의 폭탄을 뚫고 매켄지 중령의 참호를 찾아가, 명령을 전달하고 공격을 중지시킨다. 임무를 완수한 그는 블레이크의 형을 찾아 전사 소식과 유품을 전해주고 휴식을 취한다.

<1917>는 전쟁영화에서 시각적 쾌감을 선사하는 스펙터클의 관습적 의미를 뒤집는다. 일반적인 전쟁영화는 총탄이 빗발치고 폭탄이 터지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벌어지는 긴장감, 엄청난 물량 파괴가 주는 흥분, 치열한 전투 끝에 쟁취하는 고지와 승리 등 스펙터클을 통해 시각적 쾌감을 극대화한다. 이러한 전쟁영화에서 주인공의 전투와 스펙터클은 승리의 길이자 삶의 길이다. 하지만, <1917>에서 전투는 함정이며 스펙터클은 패배의 길이자 죽음의 길이며, 스펙터클의 재현은 승리의 통쾌함보다는 죽음의 공포를 자아낸다. 그래서 전투와 스펙터클에서 벗어나는 일탈의 길이 삶의 길이 된다. 독일군의 함정을 아군에게 인지시켜 전투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 1,600명의 병사를 살릴 수 있는 삶의 길이다.

<1917>의 후반부 스타일에서는 공격/중지, 전쟁/평화, 죽음/삶의 모호한 경계를 스펙터클의 시각적 도상에서의 의미 전도, 동선의 극명한 대비로 표현한다. 일반적으로 전쟁영화에서 획득해야 할 목표물인 성, 고지, 다리 등은 그 자체로 훌륭한 볼거리를 제공하며, 스펙터클은 전투의 치열함과 승리의 통쾌함을 표현한다. <1917>에서는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잔혹한 참상의 흔적을 스펙터클로 표현함으로써 시각적 도상의 의미를 전도시킨다. 적군이 남기고 간 참호의 함정, 들판에 쌓여져 있는 부수어진 무기들, 끊어져 기능을 상실한 다리, 허물어진 마을 등은 승리로 쟁취하는 목표물이 아니라, 3년 동안 아군과 적군의 치열한 전투들로 생산의 공간, 삶의 공간이 폐허의 공간, 죽음의 공간으로 변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인물들의 동선 방향 차이는 죽음의 길과 삶의 길을 극명하게 대비시키며, 전투와 승리로 귀결되는 스펙터클의 시각적 의미를 전도시킨다. 전투를 시작하려고 병사들이 뛰는 장면에서, 모든 병사들이 화면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달리며 적군을 공격하기 위해 전투로 뛰어들지만, 주인공은 화면의 뒤에서 앞으로 달려 나오며 전투를 저지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쓴다. 전투로 뛰어드는 병사들의 가로축과 전투를 저지하는 주인공의 세로축이 90도의 각을 이루고, 이러한 동선의 극명한 대비는 죽음의 길과 삶의 길을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총탄이 빗발치고 폭탄이 터지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벌어지는 긴장감이 아니라, 1,600명의 병사들이 죽음의 길인 전투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 생사의 갈림길에서 벌어지는 두려움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장면에서 스펙터클이 펼쳐지는 순간 관객은 앞으로 다가올 승리의 쾌감보다는 오히려 죽음의 공포감을 느끼게 된다.

또한 체리꽃, 노래 등 복선과 상징을 통해 죽음/부활, 전쟁/평화를 대비시킨다. 체리꽃은 전쟁이 지나가고 폐허와 죽음만이 가득하지만, 부활을 기약하며 절대 희망을 잃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전쟁이 지난 후 마을은 부서지고 사람은 죽지만, 결국 살아남은 이들이 다시 마을을 세우고 새 생명을 낳는다. 블레이크는 독일군이 베어버린 체리나무는 죽은 것이 아니라 다시 자라나며, 체리꽃은 눈꽃처럼 아름답다고 스코필드에게 말한다. 적군의 총격을 피하기 위해 강에 뛰어들었다가 폭포와 급류를 만나 정신을 잃은 스코필드는 눈처럼 흩날리는 체리꽃에 죽은 블레이크를 떠올리고는 다시 시체들을 넘어 전진한다. 그리고 전장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는 전방/후방, 군인/민간인, 전쟁/평화의 경계를 허문다. <영광의 길> 마지막 장면에서 무대 위에 선 독일 여성이 노래를 부르자, 처음에 야유하던 프랑스 병사들이 나중에는 눈물을 흘리며 감동한다. <1917>에서도 가까스로 살아남아 데번셔 연대에 도착한 스코필드가 노래 소리에 이끌려 숲으로 들어가자, 앉아 있는 병사들의 중앙에서 한 병사가 “나는 가여운 나그네 ······ 그저 집으로 가네.”의 가사를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한다. 이때 카메라가 스코필드의 뒤, 옆, 앞으로 돌면서 스코필드의 내면 심리를 표현한다. 병사를 가여운 나그네로 비유한 노래가 퍼지는 순간, 전쟁터는 집으로 변하고 전쟁의 긴박감은 평화의 순간으로 변한다.

 

전쟁영화와 반전영화의 모호한 경계: 장르 변형체와 일탈의 삶

<1917>은 주인공이 만난 세 명의 상급자를 통해 전쟁의 다양한 의미를 전달한다. 에린무어 장군(콜린 퍼스)에게는 정보가 승리의 길이자 삶의 길이다. 장군은 독일군이 2대대를 전멸시키기 위해 정보를 차단하고 함정을 파놓았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2대대에 형이 있는 병사 블레이크를 찾아내 메신저 임무를 맡긴다. 왜 두 명만 보내느냐는 병사의 질문에, 장군은 “지옥으로 가든 천국으로 가든 홀로 가는 자가 가장 빠른 법이다.”라고 답변한다. 장교(마크 스트롱)에게는 이성이 전쟁터에서 삶의 길이다. 장교는 블레이크의 시체를 껴안고 있는 스코필드에게 “계속 생각해 봐야 부질없는 짓이다.”라고 충고하고, 장군의 명령을 중령에게 전달할 때 싸움을 원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모두가 보는 앞에서 전달하라고 조언한다. 매켄지 중령(베네딕트 컴버배치)에게는 전투가 전쟁을 끝내는 길이다. 중령은 공격 중지를 담고 있는 지시문 읽기를 거부하면서, 공격을 중지할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이에 스코필드는 모두 앞에서 독일군의 철수 위장은 몇 달 동안 준비한 함정이기 때문에 공격을 중지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말한다. 중령은 공격을 중지시키고는 “오늘은 끝날 거란 희망이 있었다. 희망은 위험한 거야. 이 전쟁을 끝내는 길은 하나, 마지막 한 사람까지 죽는 것이다.”라고 스코필드에게 말한다. 전쟁을 끝내는 길은 적군을 죽이는 승리와 아군을 죽이는 패배밖에 없다는 점에서, 중령에게 전쟁은 죽음의 길만이 있을 뿐이다.

주인공은 전우들의 목숨이 승리의 길이자 삶의 길이다. 주인공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자신의 몸을 바치는 애국주의보다는, 1,600명의 전우들의 목숨을 지키는 것이 진정한 승리임을 보여준다. 젊은이들의 시체와 폐허가 된 마을을 지나면서, 삶의 길은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전투를 하지 않는 것, 더 나아가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영화의 처음과 끝에서 보여주는 나무 밑에서의 휴식 장면은 수미상관식 구성을 통해 전쟁에 대한 주인공의 생각을 잘 드러낸다. 영화의 프롤로그에서 스코필드는 나무에 기대어서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가, 블레이크의 같이 가자는 말에 따라나서면서 중대한 임무를 맡게 된다. 에필로그에서 모든 임무를 완수한 스코필드가 아내와 아이들이 담긴 사진과 ‘꼭 돌아와야 해’라는 글씨를 보고는, 나무에 기대어서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한다. 전쟁터에서 죽음의 길과 삶의 길을 오고가는 병사들은 고향에 있는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다. 이러한 수미상관식 구성은 정적인 분위기와 동적인 분위기, 전원 풍경과 전쟁터, 전우들과 가족들, 전쟁과 평화의 대비를 통해 죽음의 길인 전쟁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1917>은 전쟁영화의 장르 변형체에서 다양한 의미를 생성한다. 이 영화는 곤경에 빠진 소대가 있지만, 전투가 아니라 메시지 전달 즉 정보의 인지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에서, 전투를 하지 않는 삶의 길을 제시한다. 그리고 장대한 서사시적 전투가 주축을 이루지 않으며, 전투는 오히려 함정에 빠지는 것이기 때문에 불안감과 공포를 느끼게 만든다. 또한 싸우는 아군 동료들이 적군과의 전투로 불화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적 앞에서 불안감을 느끼는 아군 동료들이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일반 메신저 사병인 주인공은 탁월한 리더십과 뛰어난 무훈의 영웅이 아니며, 전쟁터에서 슬픔, 두려움, 고통을 겪는 연약한 개인에 불과하다. 그리고 전쟁의 끔찍한 경험에 대한 서사적, 감정이입적 참여는 전쟁의 참혹한 폐허와 죽음의 순간에 관객과 주인공의 자기 보호적 거리를 점진적으로 소멸시킨다. 이 영화는 전쟁의 무용함과 자발적 희생의 대비를 통해 전쟁에 대한 부정적 가치와 전우에 대한 긍정적 가치를 동시에 보여준다.

<1917>에서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스타일은 원 컨티뉴어스 숏(one continuous shot) 기법이다. 원 컨티뉴어스 숏은 알프레드 히치콕의 <로프>(Rope, 1948)에서 시도된 바 있다. 이 영화는 상류층 동성애자 두 명이 살인의 스릴을 맛보기 위해 대학친구를 살해하고, 대학 은사(제임스 스튜어트)가 그 살인의 전모를 밝혀내는 이야기이다. 히치콕은 마치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것처럼 80분의 러닝타임동안 한 번도 편집되지 않고 연결되는 것처럼 영화를 만들어냈다. 히치콕은 움직이지 않는 사물이나 인물의 뒷모습을 이용해서 장면을 편집하여 마치 영화 전체가 원 테이크처럼 보이는 마술인 원 컨티뉴어스 숏을 완성시킨다. 모든 것을 계획하고 촬영해야 하는 이 기법은 샘 멘데스 감독의 전작 <007 스펙터>의 오프닝 장면에서도 사용된 적이 있다. <1917>의 영화 전체에서 원 컨티뉴어스 숏을 쓰는 샘 멘더스의 도전적 실험은 이 영화에 아카데미 촬영상을 안겨준다. <로프>가 실내 세트장, 동일한 조명에서 비교적 용이하게 촬영하였던 반면에, <1917>은 야외 세트장에서 촬영되어 동일한 효과를 내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제작진은 4개월 동안 연기자와 기술 리허설을 거치고, 자연광 조명, 일관된 세트장 배치, 섬세한 편집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래서 <1917>은 영화 전체를 하나의 장면으로 보여주는 원 컨티뉴어스 숏을 완성하였고, 이러한 원 컨티뉴어스 숏은 주인공의 바로 옆에서 함께 전쟁을 겪고 참여하게 만들어줌으로써 감정이입과 동일시를 극대화시킨다.

 

 

참고자료

[1] 배리 랭포드, 『영화 장르: 할리우드와 그 너머』, 방혜진(역), 한나래, 2014, 180~184쪽.
[2] 김병재, 「전쟁영화」, 서곡숙·이호, 『영화의 장르, 장르의 영화』, 르몽드 코리아, 2018, 226~231쪽.
[3] 정영권, 『영화 장르의 이해』, 아모르문디, 2017, 164~168쪽.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글: 서곡숙
영화평론가. 비채 문화산업연구소 대표로 있으면서,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서울시 영상진흥위원회 위원장, 르몽드 아카데미 원장,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 사무총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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