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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컨테이젼>과 <감기>로 보는 코로나19
[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컨테이젼>과 <감기>로 보는 코로나19
  • 서성희(영화평론가)
  • 승인 2020.03.09 0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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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컨테이젼>(Contagion, 2011)은 말 그대로 ‘전염병 혹은 접촉에 의한 감염’이라는 의미를 가진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오션스 12>를 만든 스티븐 소더버그의 작품이다.

영화는 아내 베스(기네스 펠트로)가 홍콩 출장을 다녀온 뒤 기침, 고열 등 감기를 앓은 것 같은 증상을 보이다 며칠 만에 갑작스럽게 죽으며 영화는 시작된다. 남편 토마스(맷 데이먼)는 아내가 대체 무엇 때문에 죽었는지 원인을 알기도 전에 아들까지 죽어버리는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홍콩에 출장을 가서 최초 감염자가 된 베스
홍콩으로 출장을 가 최초 감염자가 된 베스

‘아무것도 만지지 마라’

전 세계적으로 같은 증상으로 쓰러지고 사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질병통제 센터의 에린 박사(케이트 윈슬렛)가 현장으로 급파되고, 세계 보건 기구의 오란테스 박사(마리아 꼬띠아르)는 최초 발명 경로를 조사하러 가게 된다.

원인불명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만졌던 물건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같은 공간에서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전염되는 전파력이 강력한 바이러스로 감염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에 세계보건기구가 최고 경보단계로 올리자 도시는 순식간에 통제 불능 상태가 된다. 단순 접촉만으로도 감염될 수 있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이기에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고, 불안감에 떨고, 사재기를 하고, 급기야 강도짓을 하고 그야말로 죽음의 도시가 된다.

 

전염병으로 폐허가 된 도시
전염병으로 폐허가 된 도시

그 사이 바이러스 박사인 에린 박사도 감염되어 죽고, 면역자인 베스의 남편 토마스는 하나 남은 딸을 데리고 탈출하려 하지만 길은 이미 통제되었고, 세상 어디에도 감염으로부터 안전한 곳은 없다.

 

‘누구도 만나지 마라’

전염을 막을 백신과 그것을 누가 먼저 갖느냐에 대한 의혹이 커지는 와중에 가짜 뉴스가 판을 치고 정보는 폐쇄적으로 움직인다. 이 와중에 진실이 은폐되었다고 주장하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앨런(주드 로)은 조회 수를 늘리기 위해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퍼트려 음모론을 만들어내고, 개나리 약이 백신이라고 사람들을 속여 떼돈을 번다. 이 상황에서도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돈을 벌려는 자들이 있고, 목숨을 지키는 것에도 순위가 매겨진다. 마스크를 사재기하거나 몇 배로 올려 받는 현실과 매우 흡사하다.

 

가짜 뉴스와 음모론을 제기해 돈을 버는 기자 앨런
가짜 뉴스와 음모론을 제기해 돈을 버는 기자 앨런

영화는 끝내 바이러스 전파 경로는 밝히진 못했지만, 백신을 개발하는 희망의 메시지로 끝난다. 마지막에 감독은 영화 속 사람들은 알지 못했지만, 관객에게는 바이러스 전파 경로를 보여준다. 감염 원인은 바로 박쥐의 배설물을 먹은 새끼돼지를 홍콩 요리사가 손을 씻지도 않고 요리하다 최초 감염자인 베스와 악수로 접촉하며 사람들에게 전파된 것이다.

‘아무것도 만지지 마라, 누구도 만나지 마라’라는 카피 문구로 대변되는 신종 바이러스에 대한 감독의 상상력이 지금 현실과 너무 가까워 영화를 보는 내내 섬뜩함을 느끼게 한다. 감독이 보여주는 감염경로는 전지적 시점이며 감독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소더버그 감독이 보여주는 설명으로는 단지 인류는 전염병의 공포에 직면해 손을 깨끗이 씻는 일 정도가 인간이 할 수 있는 감염 예방의 전부일 뿐이라는 다소 단순한 인과 설명을 제안 받는 정도에 그칠 뿐 근본적으로 이러한 바이러스가 왜 인류에게 전파되는지 근원적인 이유에 관한 깊은 사유를 하게 하지는 않는다.

 

‘사상 최악의 바이러스가 대한민국을 덮친다’

<감기><The Flu, 2013>는 비말 접촉에 의해 전염되는 바이러스를 소재로 하는 김성수 감독의 작품이다. 바이러스 전염병이 높은 치사율을 보이며 무서운 속도로 퍼지자, 정부는 전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국가 재난 사태를 선언하고 분당 폐쇄라는 극단적인 통제와 관리에 돌입한다. 영화는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까지 폐쇄된 도시에 갇히면서 폭동이 벌어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나에게 정말 이런 일이 터지면 어떻게 대처할까?’
‘나에게 정말 이런 일이 터지면 어떻게 대처할까?’

<컨테이젼>에 비해 <감기>는 정치인들의 위선과 무너진 지휘체계, 함부로 군사력을 행사하는 미국의 월권까지, 한국이라는 국가의 특수한 상황을 반영해 정치적인 에피소드가 더 부각된다. 여기에 공포와 불안이 지배하는 위기 상황에서 자신과 가족을 지켜내야만 한다는 사명감으로 서서히 이타적, 혹은 이기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통해 '나에게 정말 이런 일이 터지면 어떻게 대처할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원인불명의 전염병이라는 끔찍한 재앙과 위기 상황 속에서 급격히 무너지는 인간성은 전염병보다 더한 충격과 배신감을 낳는다.

 

공포로 덮인 도시

이들 영화 속에서 모든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힌 대중들은 식량과 치료제를 차지하기 위해 생필품 사재기와 약탈 범죄를 저지르고 폐쇄된 도시에선 폭동이 일어난다. 실제 공포가 덮친 도시 ‘대구’는 을씨년스럽고 음울하다. 그러나 영화와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대구의 경우 단지 대부분의 시민들이 자가 격리 상태로 돌입했기 때문에 거리에도 상가에도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에 도시가 고요히 잠든 것처럼 보일 뿐 아비규환의 상황과는 확연히 달랐다. 영화 속에서 벌어졌던 나만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이기적인 행동으로 벌어지는 상황은 전혀 벌어지지 않았다. 고요함만이 대구를 드러내는 단어가 되었다. “대구는 동면하듯 조용히 숨 쉬고 있다.”

 

영화 속 전염병이 번져 폐쇄된 분당 지역
영화 속 전염병이 번져 폐쇄된 분당 지역

“봉쇄”라는 말이 정치인의 입에서 오르락내리락할 때도 내 주변의 그 누구도 타지로 빠져나가려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이런 시기에 타지로 가는 것 자체가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싫다고 했다. 대구 사람들은 그저 스스로 출입을 자제하고 몇 주째 집안에서 묵묵히 생활하는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대구시민 대부분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자가 격리를 하는 상황에서 그나마 한국이 인터넷과 SNS의 발달 상황을 고마워하며 디지털로 외부와 소통하며 지내고 있다.

 

현실 속 전국 각지에서 대구로 모여든 119구급차 선별진료소로 투입된 의료진들(사진: 대구가톨릭대병원)
현실 속 전국 각지에서 대구로 모여든 119구급차
현실 속 전국 각지에서 대구로 모여든 119구급차 선별진료소로 투입된 의료진들(사진: 대구가톨릭대병원)
선별진료소로 투입된 의료진들(사진: 대구가톨릭대병원)

바이러스의 정체는 무엇인가

인간이 바이러스를 모두 죽이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고, 바이러스가 없는 세상에선 인간도 살 수 없다. 이미 우리 몸에는 헤아릴 수 없는 바이러스가 존재한다. 평화로운 공생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때이다. 근본적으로는 자연계의 생태를 파괴하며 공장식 사육과 양식장에서 대량의 육류 가공을 위해 가축을 사육하고, 그곳에서 항생제를 퍼붓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

 

진짜 적은 누구인가

무엇보다도 진짜 적이 보이지 않을 때, 서로를 적으로 삼고 끊임없이 공격하는 모습을 경계해야 한다. 임시로 설정한 적은 감정적 불안을 해소하는 일에 효과적이다. 하지만 진짜 적을 잊게 만들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진 못한다. 진짜 적을 막지 않으면 우리는 코로나 변이들을 언제 또다시 맞을지 모른다.

그런데도 진짜 적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온데간데없고, 특정 국가, 특정 지역, 특정 종교, 특정 정당을 넘어 특정 인물까지 적으로 삼아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영화 <컨테이젼>에서도 홍콩 요리사가 돼지 요리를 하다 잘 씻지도 않은 손으로 악수를 하는 비위생적인 습관으로 감기는 밀입국한 동남아 노동자가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혐오를 조장하는 인종적 편견을 담은 설정이다.

코로나 19라는 정식 명칭으로 호명되기 전까지 수많은 정치인들에 의해 우한 바이러스, 심지어 대구 바이러스로 불리기까지 했다. 진짜 적을 보지 못하고 서로에게 손가락질하는 이들을 경계해야 한다. 진짜 적을 찾는 일에 몰두하고 사람들은 서로 연대해야 한다. 인류에겐 언젠가 인류를 덮칠 새로운 바이러스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장구한 역사를 들여다봐도 바이러스를 틈타 내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은 계속 있어 왔다. 차분하게 생각해 봐야 할 때다. 이 바이러스는 왜 창궐했으며 어떻게 전파되었는지, 그 원인이 무엇인지 우리는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사진 출처 : 네이버

 

글: 서성희
영화평론가.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으로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대표, 대구영상미디어센터장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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