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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식의 시네마 크리티크] 인류의 위대한 도약과 시스템의 힘 - <아폴로11>
[임정식의 시네마 크리티크] 인류의 위대한 도약과 시스템의 힘 - <아폴로11>
  • 임정식(영화평론가)
  • 승인 2020.03.23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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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달은 다소 낭만적인 자연물이다. 아름다운 선녀가 살고, 계수나무 아래에서 토끼가 떡방아를 찧는 곳이다. 중국신화에서 달은 여신 항아(상아)가 벌을 받은 장소이다. 항아는 태양을 활로 쏘아서 가뭄을 해결한 영웅인 남편이 구해온 불사약을 훔쳐 달로 달아났다가 두꺼비로 변했다. 동양신화 속에서 달이 욕망의 주체로 등장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달은 해와 짝을 이뤄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에도 달은 해의 동생 혹은 여성성을 상징하는 존재로 의인화된다. 체로키 인디언 신화에서도 달은 해의 동생이다. 반면 서양에서는, 헤카테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달은 불길한 징조 혹은 악마의 이미지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어느 경우이든, 달은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수많은 이야기의 원천이 됐다.

최근 넷플렉스가 공개한 다큐멘터리 <아폴로11>에서 달은 인류의 도전과 탐사의 대상이다. <아폴로11>은 닐 암스트롱을 비롯한 세 명의 미국인 우주비행사가 1969년 7월 20일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역사적인 사실을 ‘드라마틱하게’ 재구성한다. 아폴로 11호가 7월 16일 케네디 우주센터를 이륙한 뒤 약 110시간 동안 우주를 날아가고, 착륙선 ‘이글(Eagle)’이 달 표면 ‘고요의 바다’에 사뿐히 내려앉고, 우주비행사들이 달 표면에 깃발을 꽂거나 암석을 채취하고, 그들이 태평양에 무사히 낙하하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담아낸다. 여기에서 ‘드라마틱하게’라는 표현은 다큐멘터리의 장르적 특징과 어울리지 않는 단어일 수 있다. 하지만 <아폴로11>은 박진감 넘치는 편집과 음악, 다양한 영상을 통해 시종일관 긴장감을 자아내면서 관객을 흡수한다. 그래서 과학적인 내용을 다루는 데다 널리 알려진 사실을 재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하지 않다.

<아폴로11>은 토드 더글러스 밀러 감독이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50주년을 기념해서 제작했다. 2019년 1월 선댄스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돼 호평 받았고, 그해 3월 미국에서 개봉해 인기를 끌었다. <아폴로11>은 과학이 인류의 오랜 꿈을 실현시켜주는 과정을 실제 자료를 활용해 보여준다. 우주선의 이륙과 달 착륙, 귀환 과정을 담은 당시 영상과 NASA가 보관하고 있던 미공개 영상, 우주선 내부 카메라에 기록된 장면, 비행사들이 달 표면에서 활동하는 기록 영상들을 모아서 제작한 것이다. 뉴스 앵커의 긴박한 목소리, 지구 관제센터의 과학자와 우주비행사들의 교신, 수시로 등장하는 분할 화면, 클로즈업과 익스트림 롱 쇼트를 넘나드는 쇼트들은 박진감을 준다.

 

하지만 <아폴로11>의 진정한 미덕은 닐 암스트롱을 포함한 우주비행사들의 행적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영화의 이러한 특징은 도입부에서 드러난다. <아폴로11>은 우주선 이동 장면, 발사대의 모습, 관제센터의 과학자들, 역사적인 발사 장면을 직접 보기 위해서 몰려든 5천 여 명의 시민들, 우주복을 입는 우주비행사들의 모습을 차례로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스토리텔링 전략은 마지막까지 유지된다. 아폴로 11호의 우주비행사들 외에도 케네디센터와 NASA의 우주 관제센터에서 과학자들이 각종 기기와 컴퓨터를 들여다보면서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는 모습, 그들의 업무 내용과 근무 교대, 각종 도표와 그래프들, 박수치며 환호하는 모습 들이 중심을 이룬다. 상영 시간만 따지면, 우주비행사들보다 우주센터 과학자들의 모습이 더 많다.

이를 통해서 <아폴로11>은 아폴로 11호의 달 탐사가 NASA와 케네디센터의 모든 과학자들, 시민들, 나아가 인류 모두의 꿈이었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인류 최초의 달 탐사가 한 명의 영웅적인 인물이 아니라 시스템의 힘으로 이뤄진 것임을 드러낸다. 이 영화에서 우주비행사들은 지구로 귀환하면서 “어디를 가든 집으로 돌아갈 때가 최고야.”라고 말한다. 그들이 지닌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강조하는 것이다. 아폴로 11호의 우주비행사들은 ‘출발-모험-귀환’이라는 영웅 신화의 전형적인 행적을 반복하지만, <아폴로11>은 그들만이 아니라 지상의 과학자와 시민들에게도 웅숭깊은 눈길을 줌으로써 ‘위대한 도약’의 의미를 더욱 뜻 깊게 만든다.

<아폴로11>은 정밀한 우주과학의 진수를 보여준다. 과학자들은 약 38만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2, 3초 단위까지 계산해서 우주선을 조종하고, 우주인들의 심박 수까지 체크한다. 물론 <그래비티>, <인터스텔라>, <마션>과 같은 영화에서도 NASA의 과학자와 우주비행사(과학자)들이 끊임없이 대화하고, 비행사들의 맥박과 혈압 등을 점검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하지만 <아폴로11>은 이러한 행위가 50여 년 전에 있었던 실화라는 점에서 훨씬 큰 여운을 남긴다. 우주선에서 촬영한 로켓 분리 과정, 달의 산맥과 크레이터, 달 착륙과 탐사 장면들의 리얼리티는 다시 봐도 생생하고 감동적이다. 다양한 그래픽을 삽입해 달 탐사 과정을 시각적으로 설명해준 것도 <아폴로11>의 장점이다. 우주선의 단계별 분리와 도킹 장면, 비행 거리와 궤적 등을 깔끔하게 정리해줌으로써 과학 문외한도 탐사 과정을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닐 암스트롱은 달에 첫 걸음을 내딛은 직후 “That's one small step for a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라는 멋진 말을 남겼다. 실제로 아폴로11호의 달 착륙은 인류 문명의 전환점이 됐고, 인문학적 상상력의 변화를 가져왔다. 강대국의 우주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이제는 우주여행 관광 상품까지 등장하는 시대가 됐다. 경쟁이 심해지면서 우주 쓰레기와 같은 우주 환경 문제도 부각되고 있다. 감독은 아폴로 11호의 달 탐사가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인간의 탐구욕과 비전의 산물임을 강조한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1961년 의회 연설에서 달 탐사를 야심차게 선언하고, 닐 암스트롱은 TV 영상을 통해 “우주는 인간 세계의 일부가 됐다. 지구인은 하나가 됐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닐 암스트롱의 작은 발걸음은 인류의 상상력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달은 신화와 문학을 포함한 인문학의 대상에서 과학의 영역으로 이동한 것이다.

인류가 달에 착륙한 것은 닐 암스트롱이 처음은 아니다. 허구의 세계이기는 하지만, 조르주 멜리에스의 <달세계여행>(1902>에서도 과학자들은 로켓을 타고 달에 도착했다. 이 영화에서 과학자들은 원주민들과 갈등을 빚으며 전투를 벌이고, 원주민들에게 끌려갔다가 가까스로 탈출해 지구로 돌아온다. 그렇다면 <달세계 여행>에 등장하는 원주민들은 누구일까. 여러 정황을 고려하면, 헤카테의 후손일 가능성이 높다. 다행히(?) <아폴론11>의 달에는 미개한 원주민 대신 부드러운 먼지로 뒤덮인 표면과 산맥, 크레이터뿐이었다. 그렇다면 달에는 아직 아름다운 선녀와 토끼가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헛된 희망일 수도 있지만, 인류가 달에 착륙했다고 해서 달의 신비로움이 사라진 것은 아닐 것이다. 달은 인간의 발자국과 상관없이 오늘도 우주의 섭리를 따라 묵묵히 운행하고 있다.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재난 상황으로 심란한 시절. <아폴로11>을 핑계 삼아서 신화 속의 달나라로 여행을 떠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저 달이 앞으로도 ‘동양신화의 달’로 남아있기를 바라면서.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 임정식

영화평론가. 영화를 신화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작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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