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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수연의 문화톡톡] ‘집콕’이 야기한 문화적 지각변동
[류수연의 문화톡톡] ‘집콕’이 야기한 문화적 지각변동
  • 류수연(문화평론가)
  • 승인 2020.04.20 1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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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1>이라는 영화소개 예능이 처음 등장했을 때, 그것은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콘셉트의 등장으로만 여겨졌다. 모두가 멀티플렉스로 향하는 시대에, 방구석에 모여 앉아 보는(듣는) 영화라니…….

그러나 어린 시절 또래들이 다락방이나 골방에 모여 앉아서 도란도란 나누던 수다처럼, ‘이게 뭐지?’ 싶다가도 좀처럼 채널을 돌릴 수 없도록 매력적이었다. 왕년에 학회방 구석에 모여 앉아 제 나름의 ''을 풀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빠져들 만한 구성이 아니던가?

시대를 예견했던 것일까? 코로나19로 인해 집콕이 일상화되어버린 지금, ‘방구석은 하나의 문화적 트렌드가 되어버렸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집콕은 일상의 한 패턴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다는 보건당국의 씁쓸한 단언처럼, 이제 우리는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과 마주하고 있다. 그리고 그에 맞추어 우리의 문화생활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비록 방문 안에 갇힌 상황이지만,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에게는 그 나름의 유희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아마도 그 포문을 연 것은 <놀면 뭐하니>가 기획한 '방구석 콘서트'일 것이다. 텅 빈 공연장과 집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된 사람들. 이 모순적인 상황에서 만들어진 역발상이 그대로 TV 프로그램이 된 것이다. 관객 한 명 없는 드넓은 콘서트 장에서 아티스트들은 그 어느 때보다 진정성을 담아 위로의 노래를 건넨다.

 

사진1. 방구석 콘서트 캡쳐. 출처 : MBC [놀면 뭐하니?]
사진1. 방구석 콘서트 캡쳐. 출처 : MBC [놀면 뭐하니?]

집콕이 만들어낸 이러한 문화적 트렌드는 비단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전 세계의 많은 아티스트들과 스포츠 스타들이 집안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최상의 유희를 온라인을 통해 방송하였다. 그리고 지난 418일에 열린 <하나의 세계: 다함께 집에서(One World; Together at Home)>는 그 방점을 찍었다.

세계적인 슈퍼스타들이 집에서 촬영한 라이브 공연과 함께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각자의 집에서 4대의 카메라로 화상 합주를 선보인 롤링스톤즈의 공연은, 사회적 거리두기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거리는 결코 멀어지지 않았음에 대한 선언과도 같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팬덤 문화도 변화를 꾀했다. 그룹 방탄소년단 역시 팬데믹으로 인해 모든 콘서트가 취소된 아쉬움을 특별한 팬서비스로 달랬다. 2014년부터 이어왔던 해외 공연 실황을 무료로 공개한 방방콘(방에서 즐기는 방탄소년단 콘서트)’를 진행했다.

이미 <달려라 방탄>이라는 자체 콘셉트를 통해 온라인으로 팬들과 만나는데 적극적이었던 방탄소년단이기에 집콕하는 전 세계 팬덤을 어떻게 위로할지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장 공연의 생생함을 되살리기 위해 콘서트에서처럼 아미밤(응원봉)에서 불빛이 발하도록 온라인으로 연결 가능하게 만들어 방방콘을 실황처럼 전개하였다.

 

사진2. 방방콘 캡쳐.  출처 : 뉴시스
사진2. 방방콘 캡쳐. 출처 : 뉴시스

집 안에서 즐기는 문화 콘텐츠는 비단 이것만이 아니다. 사람들이 집 안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웹툰, 웹소설 시장 역시 고성장이 예견되고 있다. 이미 고공성장을 거듭해온 웹 콘텐츠 시장이지만, 모두가 집콕에 휘말린 지금이야말로 그동안 미뤄두었던 웹툰과 웹소설을 정주행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와 함께한 3개월. 지금까지 자유롭게 누리던 일상의 모든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인지를 너무나 절실하게 목도하였다. 집콕이 일상의 보편적인 모습으로 변화된 지금, 가장 힘겨운 보릿고개를 넘어가고 있는 영역 중 하나가 아마도 문화산업일 것이다. 정부를 비롯한 여러 문화재단들이 문화예술인에 대한 실질적인 경제지원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대부분의 공연이 엎어진 상황이라 한시적인 지원만으로는 이 상황을 타개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오히려 방송의 콘텐츠를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실제로 일부 지자체에서는 온라인 공연을 지속함으로써 문화예술 생태계를 보존하는 동시에 집안에 갇힌 사람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있다. 이러한 방향은 한시적인 생계 지원보다 훨씬 가치 있지 않은가?

코로나 이전의 삶을 완전히 회복하는 것이 요원하다면, 보다 가깝게 함께 즐기던 그간의 문화적 향유에 있어서도 일정한 체질개선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 말의 본 뜻은 위기를 가장 적극적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만이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의미에 가깝다. 지금 우리 문화계는 바로 그 위기를 맞이하였고,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자구의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문화적인 역량은 장기간에 걸쳐 축적되는 것이지만, 훼손되는 것은 순간이기 때문이다. 문화예술계의 고사를 막기 위해서라도 정부와 관련 기관, 그리고 지자체로 이어지는 시각의 변화가 절실하다.

 

: 류수연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문학/문화평론가. 인천문화재단 이사. 계간 <창작과비평>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등단하였고, 현재는 문학연구를 토대로 문화연구와 비평으로 관심을 확대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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