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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의 시네마 크리티크] 쿨 한 청춘과 질척거리는 중년, 어느 쪽이 더 비정상일까? :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와 <부부의 세계>
[김경욱의 시네마 크리티크] 쿨 한 청춘과 질척거리는 중년, 어느 쪽이 더 비정상일까? :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와 <부부의 세계>
  • 김경욱(영화평론가)
  • 승인 2020.04.27 0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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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여자 친구가 자신의 친구와 점점 가까워지는 걸 쿨 하게 지켜보는 청년과 이혼한 다음에도 배우자였던 상대에게 질척거리는 중년의 남녀, 어느 쪽이 더 비정상일까?

4월 16일에 개봉한 미야케 쇼(<아사코>(2018)를 연출한 하마구치 류스케와 함께 일본영화의 미래라고 평가받는 감독이다)의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2018)에서, ‘나’(끝까지 이름이 명시되지 않는다)는 시종일관 쿨 한 태도를 견지한다. ‘나’는 ‘청춘은 곧 열정’이라고 부르짖는 사회의 통념과는 반대로 모든 일에 심드렁하고 무관심하다. ‘나’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그에게만 초점이 맞고 배경화면은 흐린 이미지(사진1)는 그가 세상에서 고립되어 있거나, 그 자신이 세상을 외면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가 세상과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인지, 영화가 끝날 때까지 관객이 그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는 거의 없다. 이전에 아이스크림 공장을 다녔고 지금은 서점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한다는 것, 시즈오와 룸메이트로 같이 살고 있다는 것뿐이다.

 

사진1
사진1

일하기 싫은 날은 결근하면서 적당히 대충대충 살아가는 ‘나’는 같은 서점에서 일하는 사치코가 먼저 관심을 보일 때도 수동적인 태도로 대응한다. ‘나’와 사치코는 어쩌다 섹스를 하는 사이가 되지만, 그가 그녀에게 질문하지 않기 때문에 관객이 그녀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는 거의 없다. 그가 어떤 경우에도 세상과 피상적인 관계로 일관하려는 태도는 서점에서 책을 훔쳐나가는 도둑을 눈치 채고도 무심히 바라보는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그러나 사실 그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다. 사치코가 시즈오와 처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감정의 교감을, 어쩌면 그들보다 먼저 알아차린다. 또 사치코가 서점의 이혼한 점장과 계속 만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질척거리지 않고 쿨 하게 지켜본다. 그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기 위해 자신의 진짜 감정을 철저히 외면한다.

‘나’와 사치코 그리고 시즈오, 세 사람은 밤마다 함께 당구를 치고 클럽에서 춤을 추고 술을 마신다(사진2). 그러나 그들이 바닷가 근처에서 살고 있고 계절이 여름인데도 바다로 나가는 장면은 하나도 없다. 반복되는 클로즈업과 함께 그들은 어둠 속에 갇힌 것처럼 보인다. 영화 첫 장면에서 ‘나’가 ‘이 여름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들은 미래에 대해 어떤 전망도 하지 않는다.

 

사진2

시간이 지나면서 사치코는 ‘나’에게서 멀어지고 시즈오와 점점 가까워진다. 그럼에도 ‘나’는 오히려 두 사람이 데이트 할 기회까지 준다. 사치코는 ‘애인’과 ‘친구’ 사이에서 애매한 태도로 일관하는 ‘나’에게 실망한 나머지 시즈오와 사귀겠다고 선언한다. 그는 엷은 미소까지 띠면서 “둘이 잘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치코가 진짜 떠날 것 같은 예감이 들자 어쩔 수 없이 달려가서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여름은 끝나가고 무책임한 청춘의 계절은 이제 막을 내리겠지만, ‘나’가 최초로 진심을 드러내는 순간은 밤이 아니라 햇살이 내리쬐는 한낮이다. 이 때 ‘나’와 사치코 각각의 얼굴 클로즈업은 두 사람이 마치 처음으로 대면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영화는 대답을 망설이는 사치코의 프리즈 프레임으로 끝난다. 열린 결말이지만, 사치코가 ‘나’에게 처음 관심을 보였을 때처럼 팔꿈치를 꼬집고 떠나갔기 때문에, 그렇게 속마음을 드러냈기 때문에, 그녀의 대답은 이미 주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중년이 되면 어떻게 변하게 될까? 일본영화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와 한국드라마 <부부의 세계>를 비교(연출 스타일, 배우의 연기, 인물의 성격 등이 거의 정반대이다)하는 건 적절하지 않겠지만, 삼각관계를 공통점으로 해서 쿨 한 청춘과 질척거리는 중년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청춘은 좀 질척거려도 되고, 중년은 가능한 쿨 해야 하지 않을까?

영국드라마 <닥터 포스터>를 리메이크한 <부부의 세계>에서, 지선우(김희애)는 남편 이태오(박해준)가 여다경(한솔희)과 바람을 피우자 이혼하게 된다. 지선우는 아들과 고산에서 계속 살고, 이태오와 여다경은 떠나간다. 이야기가 끝난 지점에서, 이태오와 여다경이 다시 고산으로 돌아오면서 다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태오가 지선우에게 복수를 개시하자, 모든 인물들이 각자의 욕망에 사로잡혀 서로 얽히고설키면서 나쁜 사건들이 눈덩이처럼 커져가고 있는 중이다(주요 인물들이 정상과 비정상 사이를 오락가락 하는 가운데, 그들의 정신적 문제를 냉정하게 관찰하는 듯한 정신과의사는 물 위의 기름처럼 어울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의 ‘나’는 자신의 감정을 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쿨 함을 유지하지만 결국 사치코에 대한 사랑을 깨닫게 된다. <부부의 세계>의 지선우와 이태오는 서로에 대한 증오를 드러내면서 그 뒤의 사랑을 감추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 그 뒤에는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 있을 뿐이다. 그들이 마주해야 하는 건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집착이다. 집착은 포기할 때 해결된다. 그들이 집착을 깨닫게 된다면 포기할 수 있겠지만, 사랑으로 포장하면서 자기 자신까지 속이고 있기 때문에 포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드라마는 아직 완결되지 않았으나, 그들이 자신의 진짜 감정을 끝내 보지 못한다면 외견상 여주인공 지선우의 승리로 보인다 해도 내용면에서는 결국 파국으로 막을 내리게 될 것 같다.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글: 김경욱

영화평론가. 세종대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면서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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