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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국의 문화톡톡] may - May 그리고 울타리
[최양국의 문화톡톡] may - May 그리고 울타리
  • 최양국(문화평론가)
  • 승인 2020.05.06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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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꽃 그늘이 아래로 흔들린다. 햇살과 바람의 옷매무새가 흐트러지며 파도 치는 푸른 숲을 향한 여정이 살갑다. 불려오고 돌려보낸 이야기들로 그 길은 켜켜이 쌓여간다. 공간과 시간을 밀고 당기며 다양한 모습으로 압축된다. 자궁에서 무덤까지의 온갖 퇴적물이 속성작용(diagenesis)을 통해 우리와 그들의 퇴적암(sedimentary rock) 태로 마디게 변화해 가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가능성과 현실화의 이중주를 통해 물비늘처럼 비쳐 온다.

 

may는 / 가능성 테 / 만선은 / 어린이 꿈

꽃을 피우기 위한 가능성으로 인고의 시간을 보낸 5월의 초목들이 꽃으로 흐드러진다. 그래서 5월에 꽃피는 초목은 가능성을 의미하는 조동사 may와 flower의 합성어인 mayflower 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들 삶도 우리의 경도와 위도에서, 더불어 아름다운 꽃을 나누기 위한 가능성을 향한 테를 하나씩 둘씩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 5월에 꽃피는 초목(mayflower), Google
* 5월에 꽃피는 초목(mayflower), Google

남해안에 있는 조그만 어촌(동경 127° 북위 34°)에 어부인 우리가 산다. 우리는 대를 이어오며 어부에 대한 자부심과 만선(滿船)에 대한 강인한 의지, 그리고 어촌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갖고 있다.

비록 우리의 조부와 부,형제 뿐만 아니라 아들까지 바다에 내주었고,선주에게 매여 삯배를 타는 가난한 어부이지만 바다에 절대 지지 않으며 만선을 하여 빚을 모두 갚고 우리의 배를 갖고자 한다. 지난한 상처와 비극적 상실에 절규하기도 하지만 만선의 희망과 벗어 버리지 못하는 어부의 숙명을 안고 다시 바다로 돌아간다.

‘만선’은 가능성을 좇는 우리들 삶의 욕망이다. 그 욕망의 성취인 만선의 목적물은 우리네와 공동체를 향한 고기떼(부서;민어과 어류 부세의 사투리)이다. 만선을 알리며 뒤척이는 징과 꽹과리 소리는 바다에 묻은 우리네 영혼을 위한 행진곡이며 공동체를 향한 존재감의 표현이다. 자연에 대한 끊임없는 의지의 표출을 통해 자궁으로서의 자신과 타자화되어 가는 자신 사이의 갈등 속에서 우리들의 도전과 한계, 희극과 비극을 희망의 큰 틀안에서 버무려 내고 있는 것이다. 숙명의 굴레를 벗어 버리고 우리들의 희극을 만들어 내기 위한 욕망은 지속되며 무덤까지 이어지지만, 우리들의 비극을 끝내 버리기 위한 욕망은 단절되며 자궁에서 머물러야 한다.

‘우리’는 이제 《만선》(滿船;천승세 희곡)의 주인공인 ‘곰치’가 된다.

* 만선(滿船;천승세 희곡,1964년) 대본, Google
* 만선(滿船;천승세 희곡,1964년) 대본, Google

“~(중략) [곰치] (드러누운 채) 아무 말도 아니여! (처절하게) 그래 뱃놈은 물속에서 죽어사 쓰는 법이여---그것이 팔짜니라아 (열을 올려) 나는 안 죽어! 그여코 배를 부리고 말것이여! 돛 달때 마다 만선으로 배가 터지는 때가 반다시 있고 말고! ~ (중략) ~ [곰치] 아니, 이것이 참말로 미쳤단 말잉가? (우악스럽게 어깨죽지를 잡아 흔들어 대며) 여봐! 으째 이려? 응? 정신을 채려! 자네까지 이라고 나서먼 곰치는 참말로 죽어 나자빠진 줄 안단 말이여! 다른 놈들이 나를 그렇게 봐도 괜찮단 말이여? [구포댁:곰치의 아내] (갑자기 간드러지게) 흐흐흐흐 부서가 사태? 그람 내일도 당장 만선이겠네? 흐흐흐흐  [성삼;곰치의 친구] 곰치야아- 이놈아아- 이 만선에 미친놈아-  단말마의 울부짖음 무대에 번져 온다. 기세 좋은 바람, 마당을 휩쓸고 지나 간다. 긴 장대가 건들건들, 널린 보잘것 없는 생선들이 따라 건들 거린다.“  

 - 천승세, 만선(1964년) -

‘우리’는 낙타와 함께 여행을 하는 ‘어린아이’의 꿈을 꾸고 있다.

 

May는 / 현실화 테 / 노인(과) 바다 / 사자의 꿈

풍요와 성장의 여신 Maia의 형용사형 'Maius'에서 유래되었다고 추정되는 May는 고유명사로서 현실이다. 몸과 마음이 깨끗이 정화된 상태에서 문을 열어 만물이 온 세상에 넘쳐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May는 가능성의 축적을 통한 위대한 현실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May와 함께 하는 그들의 삶은 각자의 경도와 위도에서, 더욱 돋보이는 꽃을 피우기 위한 테들이 쌓인 결과인 것이다.

그들 102명은 가능성을 뛰어 넘은 희망의 현실화를 위해 Mayflower호를 타고 쿠바의 아바나(서경 82° 북위 23°)에 내린다. 그들중 그는 이젠 늙어버린 어부이다. 그는 가족의 대를 이은 어부로서의 상처와 비극,선주와 공동체에 매여 갈등하는 우리들 어부와는 다르다. 강렬한 색감과 굵은 붓길로 개인적 자화상만을 그리고자 한다. 지나가 버린 시간을 추억으로 안으며 어부로서의 자긍심과 만선(滿船)을 위한 자연에 대한 강한 대결 의식,그리고 자신을 인정해 주는 아직은 연두인 친구에 대한 연대감만이 필요하다. 자신의 삶을 둘러싼 공동체에 대한 갈등과 이의 대승적 승화 보다는 개인적 성취감을 위해 자연에 대한 역경을 딛고 도전하며 운명을 개척해 나가려는 개인화된 실존적 행태만이 넘실댄다.

‘만선’은 가능성이라기 보다는 현실화를 위한 개인적 삶의 욕망이다. 그 욕망의 성취인 만선의 목적물은 그와 공동체를 위한 고기떼가 아닌 18피트(약 5.5m)의 거대한 한 마리 물고기(청새치)이다. 만선을 알리며 들려 오는 징과 꽹과리 소리는 파도 소리와 노인의 깊은 잠속에 빨려 들어가 그들 공동체를 향한 존재감은 실종된다. 개인을 중심으로 자연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 자궁속에서 내재화되어 진화되어 온 자신만의 도전과 의지를 꿈이라는 틀 안에서 쌓아 가고 있는 것이다. 공동체적 갈등과 개인적 숙명의 굴레를 아우르지 못하고 그만의 희극을 만들어 내기 위한 욕망으로만 지속되며 무덤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그와 그들 공동체의 희극과 비극을 버무려내기 위한 욕망은 단절되어 자궁에서만 머무른다.

‘그’는 이제 《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Ernest Miller Hemingway 중편소설)의 주인공인 ‘산티아고(Santiago)’가 된다.

* 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Ernest Miller Hemingway,1952년), Google
* 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Ernest Miller Hemingway,1952년), Google

“~ (중략) 선착장은 동이 트기도 전인데도 어부들이 들고 나온 등불로 제법 환하다. 동이 트기 전에 다들 바다로 나가는 것이다. 돌아올 때 만선으로 돌아 오기를 기원하며 ~(중략)~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인간은 파멸당할 수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1952년) -

‘그’는 아직은 연두인 친구와 함께 고기잡이를 나가는 ‘사자’의 꿈을 꾸고 있다.

 

오월의 / 우리 공동체 / 울타리엔 / 봉죽이

오월에는 우리들과 그들 누구라도 어부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만선을 위한 ‘사자’나 ‘어린아이’의 꿈도 꿀 수 있다.

만선은 가능성을 좇는 우리와 그들 모두를 위한 욕망의 대상이지만, 지향하는 가치 세계에 따라 그 현실화의 결과는 크게 다르게 다가오는 듯하다. 그들의 Major League가 공동체 불감증에 걸려 개인화된 욕망 충족에 몰입할 때, 우리들의 K-리그는 공동체와 개인의 가치를 조화롭게 엮어 나간다. 그들이 "Give Me Liberty or Give Me COVID"를 외치며 Off-Line을 통한 도시 봉쇄(Lockdown) 해제를 요구할 때, 우리들은 "덕분에 챌린지"로 마음을 나누며 On-Line을 통한 공동체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공유하며 확산하고 있다.

어린이-어버이-스승 및 부부의 날이 함께 하는 오월은 가정의 달이다. 우리들의 가정은 깊고 넓은 가능성의 둥그스런 현실화를 위한 우리들의 퇴적물을 켜켜이 쌓으며 아름다운 퇴적암으로 변화해 가는 시간속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만선만을 추구하지 않으며, 빈 공간으로 넘쳐날 수 있지만 햇살에 퇴색하고 바람에 무너지지 않는 공동체안의 튼실한 울타리여야 한다. 우리들은 누군가의 어린이,어버이,스승 및 부부로서 만선을 위한 삶의 개인화는 지양해야 한다. 우리들 각자의 경도와 위도에서 ‘더불어 울타리’의 격자형 결이 있는 날줄과 씨줄이 되어, 울타리 안과 밖을 자유롭게 흘러 가고 흘러 오는 햇살과 바람을 위한 여백이 될 수 있어야 한다. 만선을 향한 가득참을 경계하며, 계영배(戒盈杯)의 의미를 5월의 만월(滿月)엔 느껴 보아야 한다. 햇살과 바람이 강한 어떤 날엔, 비어 있음을 통해 채워져 있음을 드러낼 수도 있어야 한다.

세상과 자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너무도 단순하고 익숙하기 때문에 우리의 눈길과 관심을 끌지 못한다. 공동체도 마찬가지이다. 서로를 향한 존중과 배려는 우리들 K-리그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오감외에 근육,힘줄,관절등 우리 몸의 움직이는 부분에 의해 전달되는,연속적이면서도 의식되지 않는 감각의 흐름을 육감이라고 한다면,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는 우리의 감각은 우리만의 제7감(第七感)인 것이다.

<배따라기>(평안도 어느 지방의 어부요에서 발생한 민요로서 ‘배떠나기’의 방언)는 뱃사람들의 고달프고 덧없는 생활을 서사체의 긴 가사로 엮고 있으며, 그 가락이 슬프고 애처롭다. 마치 그들의 소리를 대변하는 듯 하다. <자진배따라기>는 연평도를 중심으로 한 뱃노래로, 풍어에 북을 울리고 돌아오는 기쁨을 세마치장단(3소박 3박자의 장단이며, 장구 구음은 “덩–/덩-딱/쿵딱-”임)에 맞추어 명랑하고 흥겹다.

“여보시오 친구님네들, 이내 말씀을 들어를 보소. 금년 신수 불행하여 망한 배는 망했거니와.봉죽(장대 끝에다 꿩 깃을 달아 풍어를 표시하는 것)을 받은 배 저기 떠들어 옵니다.봉죽을 받았단다. 봉죽을 받았단다. 오만 칠천냥 대봉죽을 받았다누나.지화자 좋다. 이에- 어구야 더구야 지화자자 좋다.~(중략)~“    

- 자진 배따라기 -

우리들의 노래다. 봉죽(鳳竹)이 있다. 대봉죽(大鳳竹)으로 휘날린다.

 

글 : 최양국

격파트너스 대표 겸 경제산업기업 연구 협동조합 이사장.

전통과 예술 바탕하에 점-선-면과 과거-현재-미래의 조합을 통한 가치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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