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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시네마 크리티크]베트남전에서 전사한 미군 영웅을 '국뽕'을 피하며 영화로 만들 수 있을까
[안치용의 시네마 크리티크]베트남전에서 전사한 미군 영웅을 '국뽕'을 피하며 영화로 만들 수 있을까
  • 안치용(영화평론가)
  • 승인 2020.05.26 0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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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라스트 풀 메저>

윌리엄 피첸바거는 194478일 출생하여 1966411일 사망했다. 출생일은 특별할 게 없지만 사망일은 베트남전쟁사의 중요한 날의 하나이다. 이날은 미군에게 베트남전 최악의 전투로 기록된 애블린 전투가 벌어진 날이자 피첸바거가 전사한 날이다. 피첸바거는 원래 이날 전장의 전투원이 아니었다. 그는 미 공군 항공구조대 의무병으로서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애블린 전투가 미국과 베트남의 보병 사이의 전투였기에 공군인 그가 있을 자리가 아니었다는 얘기다.

 

전설의 베트남전쟁 미군 전쟁 영웅

 

그날, 베트남군에 포위당해 발이 묶인 미 육군 찰리 중대의 구조 요청을 받고 항공구조대 헬리콥터 한 대가 현장으로 향했다. 애블린 전투로 불리게 되는 교전 현장 상공에 도착한 이 헬리콥터에는 22살의 피첸바거가 탑승해 있었다. 지상에서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고, 찰리 중대의 의무병이 피격돼 중태인 걸 알고 피첸바거는 줄을 타고 전투 현장으로 내려갔다. 전투는 더욱 거세지며 헬리콥터의 안전이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자, 헬리콥터를 타고 응당 본대로 귀대해야 했던 피첸바거는 부상병을 실은 헬리콥터를 떠나보내고 자신은 전장에 남았다.

그는 부상병 치료와 시신 수습을 도맡았고, 전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자진하여 전투에 뛰어들어 결국 베트남군 저격수의 총에 맞아 전사하였다. 현장이 수습되면서 전해지기론 사망 당시 피첸바거가 한 손에는 총을, 한 손에는 구급상자를 꼭 쥐고 있었다고 한다. 영화 <라스트 풀 메저>는 그날 전사한 미군 병사 윌리엄 피첸바거에 관한 이야기이다.

윌리엄 피첸바거는 1966411일 애블린 전투에서 약 300번의 구조 임무를 수행하였고 60명이 넘는 병사를 구했다. 영화는 실화에 바탕을 둔 피첸바거의 영웅적 행위를 그렸지만 그날의 전투와 그날의 행위에만 초점을 맞추지는 않았다. 당연히 베트남 정글의 그날은 영화의 중심에 놓이지만 30년 후 미국의 모습을 함께 비춰주면서 전쟁영웅담 이상의 문제까지 두루 조명한다.

전사 후 피첸바거는 영웅적 행위로 공군십자훈장을 수여받았지만 살아남은 찰리 중대원 등은 그 훈장이 그의 행위에 합당한 훈장이 아니라고, 즉 부족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들은 피첸바거가 군인으로서 최고 영예인 명예훈장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미국 정부에 끊임없이 요청해 32년만에 그에게 명예훈장을 추서케 하였다. 미국에서 오늘날까지 명예훈장을 받은 공군 사병은 피첸바거를 포함해 모두 3명이다.

 

영화를 통한 역사적 신원(伸寃)과 윤리적 채무의 해소

 

영화 <라스트 풀 메저>는 베트남 전쟁 참전 미군 윌리엄 피첸바거의 감동적인 영웅담과 함께 그에게 마땅히 주어졌어야 하지만 수여되지 못한 명예훈장을 살아남은 자들이 그에게 돌려주기 위해 애쓴 후일담이란 두 개의 이야기 축으로 전개된다. 두 이야기 모두 실화에 근거하였다.

이 이야기를 극화한 데 가장 크게 기여한 사람은 각본을 쓰고 연출까지 맡은 토드 로빈슨 감독이다. 로빈슨 감독이 처음 이 이야기를 접한 건 1999년 공군 항공구조대 영화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였다. 여러 공군 기지에서 항공 구조대원들을 인터뷰하면서 자연스럽게 윌리엄 피첸바거라는 항공구조대의 전설적인 군인을 알게 되었다. 그의 영웅담과 명예훈장 이야기도.

그는 곧 바로 전쟁 영웅 이야기를 다시 접한다. 200012월 윌리엄 피첸바거의 아버지 프랭크 피첸바거가 암으로 위중한 가운데 아들 윌리엄의 명예훈장을 대리 수상하는 장면을 TV로 시청한 것이다.

 

아들이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걸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가장 가슴 아프다. 그랬다면 내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을 텐데.”

 

아버지 프랭크 피첸바거의 대리 수상 소감에 로빈슨 감독은 자신 역시 아이를 둔 부모로서 크게 공감하면서 영화로 만들겠다고 결심한다. <라스트 풀 메저>는 그 결심의 결과물이다.

여기서 가장 궁금한 것은 베트남 전쟁에 참가했다가 생존한 사람들이 30년이 넘는 시간을 써가며 포기하지 않고 윌리엄 피첸바거에게 명예훈장을 추서하려고 노력한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점이다. 그 이유를 파악하기에 앞서 미군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무공 훈장인 명예훈장의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상세한 설명을 대신해서,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서 전공을 세운 조지 스미스 패튼 장군이 지휘권을,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연합군 총사령관이자 후에 미국 대통령이 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직을 이것과 맞바꾸고 싶다고 말했다는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것은 명예훈장이다. 물론 다소 과장이 있긴 하지만 유명한 두 명의 미국 장군의 언급이 명예훈장의 가치를 충분히 설명한다고 할 수는 있겠다.

 

이제 베트남전쟁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명예훈장 추서를 고집한 이유를 살펴보자. 여러 가지로 조명할 수 있겠지만 추악한 전쟁이란 베트남전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미국인으로서 시민적 책무를 다했다는 그들의 조국애 사이의 상충, 그 속에서 망실된 그들의 청춘과 그 청춘의 값어치에 대한 그들의 자기인정 및 보상 욕구 때문이 아니었을까.

피첸바거는 그들이 베트남에 두고 온 청춘의 자화상이자 잃어버린 삶의 의미의 표상이었다. 또한 급박한 삶의 흐름 속에서 잘못내린 한 번의 결정으로 평생을 회한에 살게 된 윤리적 회고록이자 생의 마지막 전투라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극중 타코다’(사무엘 L 잭슨)는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피첸바거는 물론 전우들을 죽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평생 죄책감을 지니고 살았다. 또한 피첸바거의 동료 툴리’(윌리엄 허트)는 애블린 전투에 헬리콥터 지원을 나갔다가 피첸바거가 홀로 전장으로 뛰어든 모습을 지켜보았다. 툴리는 피첸바거의 전사 후 자신이 내려가지 않은 것에 대해 평생 회한을 안고 살았다. 이밖에도 극중의 애블린 전투 참전 생존자들은 비슷한 부채의식을 숨진 피첸바거에게 나타낸다.

그들은 어렸고 미욱했으며, 평소라면 직면하지 않았을 결정적 선택의 맞닥뜨려 후회되는 결정을 내렸고 이 결정은 그들의 남은 생을 죄스러운 것으로 만들었다. 명예훈장 추서를 계기로 젊은 미군 병사 개개인이 지기엔 너무 힘들었던 역사의 짐을 그들은 내려놓는다. 욕된 전쟁에 참가하여 욕된 삶을 얻어서 귀국한 그들이 노년에서야 명예회복을 한다는 점에서 특히 피첸바거의 명예훈장 추서가 의의를 갖는다.

30년의 간극을 넘어선 윤리적 평결과 역사로부터의 해방을 찾아내어 국가와 베트남 참전 노병들에게 돌려주는 역할은 세바스찬 스탠이 변호사 스콧역으로 소화했다. 주요 등장인물 가운데 유일하게 참전군인이 아닌데다 주인공인 스콧은 두 이야기를 연결지으면서 새로운 제3의 이야기를 추가하는 역할을 무난하게 소화했다.

베트남전을 미화하지 않고, 또 베트남 군인들을 조롱하지 않으면서, 그리고 딱히 국뽕적인 요소 없이 인간에 초점을 맞추며 동시에 역사를 조명한 것이 이 영화의 성취이겠다. 베트남전을 베트남의 시각에서 보거나, 또는 대한민국의 시각에서 보는 새로운 영화가 나와도 좋겠다는 생각은 덤.

“The last full measure of devotion.”은 링컨 미국 대통령이 국가를 위한 궁극의 희생을 표현하며 쓴 말이다. “The last full measure”가 꼭 피첸바거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님은 물론이다.

 

글 안치용/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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