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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에서 아우디 팔기
미얀마에서 아우디 팔기
  • 세르주 알리미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발행인
  • 승인 2020.05.29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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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의 창설에서 EU 결성에 이르기까지, 로마 조약과 유럽공동시장 등을 거치면서 통일 유럽을 일궈온 이들에게 공공연한 적이란, 주권의 개념과 보호주의였다. 그러니 세계 경제가 무너지고 실업률이 치솟는 상황에서도 EU가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알바니아, 북마케도니아로의) 새롭게 확장을 시도하고, (멕시코, 베트남 등과 함께) 차기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벌이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영국이 나간 자리에 발칸이 들어오고 있으니, 조만간 우크라이나에도 러브콜을 보내지 않겠는가.

‘닥치고 통합’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분리의 필요성을 설득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유럽은 거의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거대시장을 만들지 못해 안달이다. 국경도, 관세도, 보조금도 없는 세상을 꿈꾸며 계속 새로운 무역 자유화를 시도한다. 잠시라도 그 행보를 멈추면 마치 큰일이 날 것 같다. 이른바 ‘자전거 이론’이다. 쉼 없이 페달을 밟아야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자전거처럼, 쉬지 않고 통합을 시도해야 붕괴하지 않는다고 믿는 것이다. EU가 꿈꾸는 세상은 환희의 송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수많은 컨테이너선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 같은 것이다.

가령 필 호건 EU 통상집행위원의 말을 한 번 들어보자. 코로나바이러스가 한창인 시기, 유럽 대다수 국민에게 이동제한 명령이 내려지고 미·중 갈등이 악화일로로 치달으며, 미국이 스스로 조인한 무역규정조차 우습게 어기는 상황에서 필 호건 위원은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더욱 속도를 낼 뿐이다”라며 세계화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유럽으로 재이전하는 기업의 사례를 언급해도, 그는 “예외적인 경우일 뿐”이라고 답변한다.(1) “더 이상의 성장은 무리”라고 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는 20년 후의 핑크빛 세상을 예고한다. “2040년에는 세계 인구 절반이 미얀마와 다섯 시간도 안 되는 거리에 살고 있을 것이다. (...) 더없이 좋은 이 사업 기회를 놓치고자 하는 어리석은 유럽 기업은 없으리라 본다.” 따라서 향후의 계획도 확실하다. “현재 약 70여 개 국가와 자유무역협정을 맺고 있는데, 이를 더욱 심화함과 동시에 새로운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언론과 인터넷에서는 ‘앞으로의 세계’에 대한 저마다의 구상안을 내놓는다. 아름답고 다채롭고 훈훈하며 멋진 아이디어들도 많다. 하지만 수십 년에 걸쳐 ‘세계화의 표본’(2)을 구축해온 유럽연합에 대한 비판 없이 내놓은 그들의 아름다운 청사진은 상상 속의 그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유럽이 그 규모를 앞세워 전 세계로 확대 적용하고자 했던 무역기준들이 산산조각이 나버리자, EU는 말도 안 되는 진부한 EU 규정의 준수에 목을 매는 상황이다. 

유럽이 꿈꾸는 ‘유럽스러운’ 유일한 이상향이란, ‘미얀마에 아우디를 가져다 파는 것’이기 때문이다.  

 

 

글·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발행인. 미국 버클리대 정치학 박사 출신으로 파리 8대학 정치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1992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합류한 뒤 2008년 이그나시오 라모네의 뒤를 이어 발행인 겸 편집인 자리에 올랐다. 신자유주의 문제, 특히 경제와 사회, 언론 등 다양한 분야에 신자유주의가 미치는 영향과 그 폐해를 집중 조명해 왔다.

번역·배영란
번역위원


(1) ‘L’Union européenne doit rester ouverte sur le monde’, <르몽드>, 2020년 5월 8일. 
(2) Henry Farrell, ‘A most lonely union’, <Foreign Policy>, Washington, DC, 2020년 4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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