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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뱀파이어는 에코백을 멘다
착한 뱀파이어는 에코백을 멘다
  • 성일권 l 문화평론가
  • 승인 2020.06.01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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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6번째 에코백

국내에서 명품 프라다가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2006년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개봉하고 나서부터일 것이다. 패션잡지를 화려하게 수놓은 프라다는 이부진, 이서진, 소녀시대 윤아 같은 유명 재력가와 연예인들이 즐겨 입고, 둘러메고, 들고, 신어서 유명해졌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심복으로 수사받던 최순실이 취재 기자들에게 쫓기면서 벗어 내팽개쳐진 신발의 브랜드로 더욱 유명세를 탔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는 악마가 나오지 않지만, 유명 패션잡지의 편집장이 일이라면 인정사정없는 악마 같은 보스로 나온다. 명문대학을 나온 소도시 출신인 ‘앤드리아’(앤 해서웨이)는 뉴욕에 올라와 저널리스트가 되기 위해 패션잡지 ‘런웨이’에 취직해 악마 같은 편집장 미란다(메릴 스트립)의 밑에서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고, 스스로 ‘악마’가 될 즈음에야 편집장의 인정을 받게 된다. 앤드리아는 화려한 패션계에서 프라다 제품을 수시로 입을 수 있는 ‘악마’가 되었으나, 고민 끝에 보스에게 “당신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선언하며 ‘프라다적 삶’을 거부하고 떠난다. 고급 가죽과 실크, 화학제품을 주 소재로 하는 프라다 제품을 즐기는 ‘프라다적 삶’은 어떤 것일까? 어쩌면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미란다가 즐겨 입는 프라다는 인간을 지치지 않는 ‘악마’로 세련되게 각인시키는 상징적인 소품이다. 

프라다, 루이비통, 에르메스 같은 명품 브랜드에서 사용하는 재질은 다양하지만, 개중에는 악어가죽이나 원숭이 가죽 등 희귀한 동물 가죽으로 만들어진 제품들도 존재한다. 가죽을 생산하는 양은 법적으로 제한되어있고, 일부 종은 국제거래 금지품목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가죽 수요가 끊이지 않는 바람에 불법 사육과 밀렵이 기승을 부리는 실정이다. 

에코백의 등장은 인간의 악마적 욕망에 대한 반성이자, 인간과 동물, 환경 간의 화해로운 공존을 위한 고민이기도 하다. 프라다가 지칠 줄 모르는 탐욕을 채워 담은 맥시멀리즘적 삶을 보여준다면, 에코백은 지친 영혼을 편안하게 보듬는 미니멀리즘적 삶을 지향한다(어쩌면, 필자의 이런 생각은 프라다 류 브랜드를 한 번도 만져보거나 구입해 본 적이 없는 데서 비롯된 편견일지도 모른다!). 무게도 가격도 가벼운 에코백이 수백만 원 내지는 수천만 원 하는 프라다 류 브랜드 가방보다도 더 가치 있게 느껴지는 건 가죽을 얻기 위해 생명체의 피와 살을 발라내지 않고, 식물의 씨, 껍질, 과실에서 소재를 구하기 때문이다. 천연섬유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식물성 섬유는 셀룰로오스라고 불리는 천연고분자로 이루어진 섬유이며, 여기에는 면, 모시, 대마(삼베) 등이 있다. 

식물성 섬유는 화학 섬유나 동물성 섬유에 비해 강도는 높지만 늘어나고 줄어드는 신장(伸張)은 낮다. 초기 탄성률이 커서 뻣뻣한 감이 있고 탄성 회복률이 작아서 신축성이 적다. 따라서 복식으로 만들어졌을 경우에 구김이 잘 가고 잘 펴지지 않는 특징을 지닌다. 또한, 열을 가하면 녹지 않고 황변이 생기며, 500℃ 정도에서 종이 타는 냄새를 내면서 연소하는 특징을 갖는다. 직접 불꽃에 접촉하면 쉽게 타는 단점도 있다. 고온 살균 시 형태변화와 강도, 신장 등 역학적 성능이 감소되지 않는다. 또한, 흡수성이 높아 쾌적한 느낌을 주고 내의 소재에 적합하다. 식물성 섬유는 화학 섬유나 동물성 섬유만큼 윤기가 나지 않지만, 피부에 닿을 때 정전기가 일어나지 않고, 아토피가 발생하지 않는다. 또한, 화학 섬유는 자연에서 분해되기까지 수십 년 걸리며 자연과 생명체에 해악을 끼치지만, 식물성 섬유는 쉽게 분해되어 다시 원래의 자연으로 돌아간다. 선순환적 흐름을 꿈꾸는 자연주의는 인간과 자연, 그리고 우리가 소비하는 ‘오브제’의 상생적 조화를 지향한다.

 식물성 섬유로 만든 에코백은 인간과 자연을 잇는 오브제다. 자연을 도륙하고 발가벗겨 만든 값비싼 가죽 백을 부와 계급을 과시하려는 ‘자본주의자’들의 욕망의 상징이라면, 에코백은 자연주의자들의 소박한 꿈의 표출이라 할 수 있다. 화려한 삶을 추구하기보단 자신이 일부인 자연의 선순환적인 영속성을 도모하려는….

 개인적으로 나는 요즘 코로나19 탓에 넷플릭스에서 뱀파이어 영화들을 보며 ‘집콕’을 고수하고 있다. 뒤늦은 발견이지만 과거의 뱀파이어들이 영원히 살기 위해 타인의 피를 들이키는 이기적인 거머리였다면, 오늘날 뱀파이어들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인간 친구를 위해 자신의 욕망을 희생하는 이타적인 존재로 바뀌었다. 에코백을 둘러멘 젊은이들의 경쾌한 발걸음과 상큼한 얼굴에서 영화 속 ‘착한 뱀파이어들’을 떠올리는 것은 어쩌면 필자가 요즘 뱀파이어 영화들을 너무 많이 본 탓이리라. 

영화나 TV 드라마 같은 대중매체는 현실을 반영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현실에서는 에코백을 맨 ‘착한 뱀파이어들’이 프라다 류의 백을 든 ‘악마’들보다 훨씬 더 많지만, 몇몇 독립영화 외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주류 영화나 TV 드라마가 ‘악마’들의 욕망을 대리 충족시키는 도구인 탓일 것이다. 누적 관객 6만명도 안되는 독립영화 <소공녀>의 주인공 미소가 하루 벌이 4~5만원의 3분의 1이상을 위스키와 담배 같은 사치품에 쓰면서도, 굳이 에코백을 고집하는 것이 ‘악마’의 늪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으로 읽힌다면, 필자의 과잉 해석일까?  

 

“집은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어!”

하루 한 잔의 위스키와 한 모금의 담배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친구만 있다면 더 바라는 것이 없는 가사도우미 미소가 내뱉은 이 말은 그녀가 에코백을 들었기에 더욱 현실적이다. 욕망과 투기의 공간인 집만 없을 뿐 일도, 사랑도 자신만의 방식대로 꾸려나가는 현대판 ‘소공녀’ 미소의 식물성 천 가방에는 그녀의 생각과 취향이 가득하다. 

에코백은 ‘악마’가 아니라 고민하는 ‘천사’를 위한 가방이다. 에코백은 1997년, 영국의 디자이너 안냐 힌드마치가 환경자선단체와 손잡고 '나는 비닐백이 아니다(I'm not a plastic bag)'라는 문구가 새겨진 천 가방을 내놓으며 대중화되었지만, 필자의 아련한 기억 속에는 천 보자기를 둘둘 말아 허리에 둘러맨 ‘수제 책가방’이 더 설득력 있는 기원인 듯싶다.

‘카운트 다운’에 들어간 종이의 종말시대에, 호기롭게 지성과 사유를 천명해온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독자분들의 생각과 취향을 가득 담아낼 6번째 에코백을 선보인다. 이름하여, ‘르디백’이다. <르몽드>의 창업자 위베르 뵈브-메리가 포효한 '진실을, 모든 진실을, 오로지 진실만을 말하라!’(Dire la vérité, toute la vérité, rien que la vérité!)라는 문구를 새긴 이번 ‘르디백’은 최근 유행에 맞춰 멋진 맵시가 나는 비닐백 형태로 제작했다. 부디, 우리의 ‘르디백’에 독자분들의 개성 가득한 취향과 사유, 그리고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담기기를 기대해본다. 도처에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에코백을 든 ‘착한’ 뱀파이어들을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한다. 

*프라다류(類) 브랜드를 애용하거나, 혹은 어쩌다가 이용하신 분들에겐 심심한 유감의 념(念)을 담아서 넓은 해량을 구합니다. 

 

 

글·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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