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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흑백판 <기생충>을 다시보다
[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흑백판 <기생충>을 다시보다
  • 서성희(영화평론가)
  • 승인 2020.06.08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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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이 없으면 질감에 더 집중할 수 있다”

 

2019년 5월 <기생충>이 한국 최초로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이후, 그해 10월에는 북미 지역 관객과 만났다. 이미 많은 외신들은 <기생충>이 한국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 부문 후보에 오를 것이라 예상했다. 해외 판매 성적도 좋았다. 전 세계 192개국에 판매되며, 한국 영화 역대 최다국가 판매 기록을 세웠다.

<기생충>은 아카데미 후보 발표에서  많은 사람의 예상을 깨고, 한국 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아카데미 후보에 그것도 6개 부문에 올랐다. 한국시간으로 2020년 2월 10일 오전 10시부터 생중계된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은 국제장편영화상을 포함해 각본상, 감독상에 이어 작품상까지 들어 올리는 이변을 일으켰다.

이를 기념이라도 하듯 봉준호 감독과 홍경표 촬영감독과 색채전문가가 한 장면 한 장면씩 콘트라스트와 톤을 조절하는 작업을 거쳐 컬러와는 다른 느낌의 <기생충> 흑백판이 개봉되었다.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최초로 공개한 <기생충> 흑백판은 미국, 프랑스를 비롯한 17개국의 관객과 만날 예정이었고, 국내에서는 코로나19로 개봉이 밀려 4월 29일 개봉되었다.

이 영화를 다시 관람한다는 것은 처음 영화를 봤을 때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을 보고 느꼈던 충격을 다시 받을 수는 없겠지만. 워낙 들어있는 게 많아 볼 때마다 깨알같이 새로운 것을 다시 발견하는 기쁨이 있다. 거기다 흑백판은 색이 없으니 질감에 의존할 때 살아나는 감각과 화사한 느낌을 걷어내고 흑백의 농도만이 화면을 지배할 때 드는 확실한 암울함이 영화에서 더 냄새가 나는 느낌이다. <기생충>을 흑백판으로 다시 보면서 더 강하게 다가오는 메시지와 더 강조되는 감각을 중심으로 영화를 다시 읽어보았다.  

 

봉 감독, 계획이 다 있구나
변곡점 이전(BC: Before Centraflexure point)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설명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변곡점(Centraflexure point)’이다. <기생충>에서도 변곡점이 존재한다. 변곡점 이전의 서사는 서울의 저지대에 사는 가난한 4인 가족이 고지대 상류층 동네에 사는 박 사장(이선균) 집으로 가족 전원 취업에 성공하는 신화를 그리고 있다. 전반부의 이야기의 전개는 케이퍼 무비(caper movie) 장르 영화처럼 무언가를 빼앗기 위해 모의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경쾌하고 코믹하고 빠르게 진행한다.

 

운전기사로 들어가기 위해 꾸민 팬티 속임수에 속는 박 사장 부부

기택 가족은 박 사장네 가족을 속이고,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을 모함해 자리를 차지하는 부도덕한 행동을 한다. 하지만 그들이 겪는 가난과 그 가난으로 인해 그들이 겪는 불편과 모멸을 충분히 보여주었기 때문에, 경제적 이윤 추구를 위해 헝그리 정신으로 똘똘 뭉친 가족 구성원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작당 모의하는 과정은 통쾌하고 짜릿하다.

 

“봉준호, 하나의 장르가 되다”
변곡점 이후(AC: After Centraflexure point)

 

가족 전원 취업 축하 양주 파티

박 사장네 가족이 캠핑으로 하룻밤 집을 비운 사이, 기택네 가족은 전원 취업 성공을 축하하는 양주 파티를 벌인다. 그때 천둥 번개와 함께 벨이 울리며 문광이 찾아온다. 바로 이 지점이 <기생충>의 변곡점이다. 변곡점 이후부터, 감독은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기택 가족의 계략으로 쫓겨난 문광이 재등장하면서, 이 집에 오랫동안 감춰뒀던 지하실로 향한 비밀의 문이 열린다.

지하실에는 문광의 남편 근세가 살고 있었다. 기택과 마찬가지로 대왕 카스테라 사업이 망하면서 무일푼이 된 문광의 남편 근세가 수년간 박 사장네 지하 피난처에 기생해 살고 있다. 변곡점 이전에는 세상에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라는 두 계급이 있다고 설정하고 이야기를 전개한다. 변곡점을 지나 후반부로 접어들면, 영화는 반지하에 사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 더 밑 지하에 사는 사람도 존재한다고  재설정한다. 감독은 사실 이 두 가족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다. 이 영화의 원제목이 기택과 근세 가족이 좌우 대칭을 이루는 같은 계급의 사람이라는 의미의 ‘데칼코마니’인 이유이다.

 

초반의 경쾌함은 이 영화가 네 명이나 죽는 유혈극으로 끝날 거라고 상상하기 어렵다. 봉 감독은 영화 초반에는 장르 규범에 착착 맞아떨어지는 장르적 쾌감으로 관객을 유인한 뒤, 변곡점을 지나면 이전에 전개되던 장르의 관습을 와락 무너뜨린다. 이 영화가 무서운 지점이 바로 여기다. 등장인물의 욕망에 따라 궁극의 성취를 향해 가는 목적론적 서사로 신나고 유머 있고 경쾌하게 달리다가 관객을 엉뚱한 지점에 데려다 놓는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더 섬뜩하고 무섭듯이, 봉준호 감독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이런 무서움에 있다. 장르 감독인데,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장르의 관습을 깨는 작업을 한다. 그래서 “봉준호 감독 자체가 장르”가 된다.

이 무서움은 흑백판에서 더 잘 느낄 수 있다. 흑백 버전은 전반부 박 사장네의 화사한 집안 분위기를 그대로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에 장르 영화의 경쾌함이나 산뜻한 부르주아의 감각적 느낌이 컬러보다는 상대적으로 약하다. 그런데 흑백 포맷은 후반부에 진가가 드러난다. 지하실 장면 이후 흑백 장면은 반지하와 지하의 삶을 더 어둡고 비참하게 보이게 한다. 보는 이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삶의 풍경은 변곡점 전후 낙차를 더 크게 만들어 흑백영화가 더 잔인하게 느껴지는 효과를 낸다. 

 

계급의 계단

봉준호 감독도 인터뷰에서 얘기했듯이 이 영화는 계단으로 상징되는 계급에 관한 이야기이다. 기택 가족은 박 사장네 집, 남궁현자 선생이 지었다는 그 으리으리한 저택에 가기 위해서는 언제나 위를 향해 걸어야 하고, 카메라 역시 아래에서 위를 바라본다. 박 사장과 기택네 가족은 분명히 상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변곡점 이후, 최고의 장면은 갑자기 나타난 박 사장네 가족을 피해 도망 나오듯 빠져나와 자신들의 반지하 집으로 가기 위해 폭우 속에서 끝없이 아래로 이어진 계단으로 내려가는 장면이다. 미학적으로 뛰어난 장면이면서, 주제적으로도 처연한 감정을 자아낸다.

 

이 영화는 수직적 구조가 영화의 구석구석에 치밀하게 들어가 있다. <설국열차>가 수평으로 펼쳐 놓은 계급 구조라면 <기생충>은 그걸 수직으로 세워 놓은 계급의 수직구조를 의미한다. <설국열차>에서 좀 더 높은 계급으로 상승하기 위해 앞 칸으로 앞 칸으로 전진하듯, <기생충>에서 기택 가족은 위로 올라가고 싶어 한다. 하지만 결국 밑으로 끝도 없는 밑으로 다시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이를 이미지로 보여주는 것이 반지하와 지하다. 기택네 가족은 반지하에 살고 있고, 이들의 계급을 보여준다. 아주 낮은 곳에 위치해 있다. 다른 사람보다 조금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며 살아가고 있다. 집중호우가 있던 날 기택네 집은 침수가 되고, 하수는 역류한다. 흑백판으로 보면, 기택네 집과 동네를 가득 메우는 흙탕물과 변기에서 역류되어 나오는 오물의 시커먼 역류가 더 잔인하고 처연하게 느껴진다.

 

계급의 음식

<기생충>에는 계급을 상징하는 음식이 많이 나온다. 특히 노동 계급의 상징인 맥주와 공정한 분배를 중시하는 피자가 중요하다. 무엇보다 박 사장 가족이 호명하는 두 음식은 또 다른 지점에서 중요한 상징적 의미가 있다. 하나는 박 사장이 먹고 싶다고 말한 갈비찜이다. 박 사장이 자신의 가족을 위해 오랫동안 일해 온 문광을 기억할 때 갈비찜을 잘 하는 사람으로 기억한다. 이는 상층계급인 박 사장에게는 문광이 어떤 사람이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을 잘하는가, 즉 기능이나 노동력으로 기억된다.

 

공평한 분배를 상징하는 음식인 피자 상자를 조립하는 기택네 가족

박 사장의 회사이름이 ‘Another brick’이다. 벽돌의 고유성은 없고, 기능만 있다. 그들은 하층계급을 하나의 벽돌로 인식한다. 벽돌이 깨지면, 다른 벽돌(another brick)로 갈아 끼우면 되는 대처 가능한 존재이다. 그들은 문광을 충숙으로 대처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박 사장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일자리이고, 일자리에 들어오는 벽돌은 누구라도 상관없다.

이 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또 하나의 상징적 음식은 짜파구리이다. 이 영화의 핵심은 두 가족 이야기가 아니라 짜파구리로 대변될 수 있는 세 가족 이야기라는 설정이다. 짜파구리는 짜파게티와 너구리로 대변되는 빈곤층 두 가족과 한우 채끝살로 대변되는 상류층이 한 접시에 담기듯, 박 사장 집은 한 지붕 아래 세 가족이 공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흑백 판에서의 짜파구리는 색은 없고 질감만 남아 다 같이 범벅이 되어 버무려진다.

 

계급의 냄새

계급의 갈등을 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냄새이다. 기택과 그의 가족은 겉으로 보기에는 박 사장의 집에서 기생하기 시작하면서 쉽게 신분이 상승된 것처럼 보인다. 기택의 가족은 능수능란하게 사람을 속이고 취업에 성공하고 상류층 사람들과도 잘 어울려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기택 가족은 느낄 수 없었지만, 박 사장 가족에게는 느껴지는 이상한 냄새가 장벽으로 작용한다. 냄새는 박 사장이 그렇게 강조했던 계급의 선을 지키지도 못하고, 눈치도 없고, 쉽게 감출 수도 없다. 기택이 어떻게 그 냄새를 없앨 수 있는지 고민하자, 기정은 반지하에서 나가는 수밖에 없다. 즉 위치의 이동밖에 없다고 말한다.

 

봉준호 감독은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계급에 혼돈을 느끼지 말라고 말한다. 문광이 충숙에게 “언니 우린 같은 불우 이웃, 불우 이웃끼리 우리 이러지 말자”라고 말하자, 충숙은 “난 불우 이웃 아니야”라고 바로 잘라 말한다. 그러나 일층에 사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반지하나 지하나 모두 그냥 지하에 사는 사람들 즉 자신의 계급과 다른 사람들이다.

감독은 “지하철 타면 나는 냄새 있잖아”라는 대사를 통해, 지하철을 타는 대다수의 국민에게 자신이 속한 계급이 어느 계급인지 혼돈하지 말라고 냉정하게 말한다.

일반적으로 계급이 싸우면 상층 계급과 하층계급으로 짜여 진다. 그런데 <기생충>은 상층과 하층이 싸우는 이야기가 아니라 같은 냄새가 나는 하층 계급끼리 싸우는 걸 그리고 있다. 기택일가가 투쟁하는 계급은 상층계급인 박 사장네 가족이 아니라, 같은 계급끼리 사투를 벌이고 서로를 제거하려 해서 일어난 비극이다. 

 

잔혹한 판타지로 만든 우화

<기생충>의 폭발력은 주위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을 것 같은 현실적인 이야기에서 비롯된 듯하다. 씁쓸함을 남기는 봉준호표 블랙코미디는 “달콤하게 포장하기보다는 현 사회가 가진 쓰라린 면을 피하지 않고 정면 돌파하려” 한다.

 

기정은 상류층 파티에 정식으로 불려 나온다

봉 감독이 잔인하게 느껴지는 건, 기택네 가족 중에서 죽는 유일한 인물이 기정이라는 사실이다. 기정은 미술치료라는 기존에 없던 창의적 일자리를 만들어 들어간 캐릭터로, 영화에서 상층계급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고, 계급의 사다리를 타고 신분 상승을 할 수 있는 가장 가능성이 큰 인물이다. 

또 하나의 잔인한 이미지는 마지막 기우의 이미지이다. 결국 기택이 지하실에 갇혀 살게 되자, 기우는 열심히 돈을 벌어서 그 집을 사겠다고 말한다. 카메라가 밑으로 천천히 내려오면 그 대사를 하는 기우는 여전히 반지하에 사는 모습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반지하에 사는 기우가 서울 한복판에 그 정도의 엄청난 저택을 살 정도로 돈을 모은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래서 이 영화의 끝에는 아무런 꿈도 희망도 없고, 오히려 기우가 그 집을 사겠다고 말하는 모습이 더 끔찍하게 느껴진다. 기우가 도대체 무슨 일을 해야 그 집을 살 수 있을까. 그래서 봉준호 감독이 더 잔인해졌다고 말한다. 설국열차는 그래도 앞으로 전진하는 에너지가 느껴졌다. 결국 계급을 뒤흔들 수 있다는 메시지, 희망이 있었다. <기생충>은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는 암흑과 같다. 결국 계급의 역전이라는 것이 사실상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봉준호 감독은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하고 끔찍한 방식으로 그러나, 가장 일상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보고 나서 오만 생각이 다 드는 영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 그의 영화적 계획이다. “같이 사는 삶의 어려움”에 관한 영화라는 봉준호 감독의 말처럼 영화 <기생충>은 웃음과 공포를 영화적으로 자신이 아는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보여주는 줌으로써, 극장 문을 나서면서 ‘상생’의 가능성에 대해 치열한 고민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게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예술작품이 위대한 이유는 작품을 통해 세계(영화)인들과 소통하고 공감하게 한다. “빈부 문제, 그리고 그것과 관련된 인간에 관한 예의가 바로 <기생충>의 테마다. 이는 20세기와 21세기를 관통할 수 있는 지속적인 테마”이자 세계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박사장은 극중에서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는 상층계급으로 죽임을 당한다. 결정적으로 기택은 개인적인 모멸감 때문에 박사장을 죽인 게 아니라 같은 냄새가 나는 동일한 계급에 있는 근세의 주검까지 모멸당하는 계급 동질성을 느끼는 순간 살인을 했다. 따라서 기택은 하층계급의 이름으로 박사장을 처단한 것이다. 특정한 사람이 나빠서 죽인 게 아니라 명확한 계급적 살인, 계급에 관한 메시지, 비극적인지만 계급적인 연대가 이루어진 순간으로 볼 수 있다.

양극화되는 빈익빈 부익부, 극단적인 빈부의 격차는 흑백이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그건 아마도 살아남은 기우의 현실이 막막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흑백이 더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감독의 말대로 알록달록한 색들이 사라지니 배우들의 눈빛과 표정에 더 집중할 수 있다. 특히 흑백판을 보고 난 후 극장문을 나서는데 그들의 눈을 잊을 수가 없었다. 기택은 박 사장네 부부가 누워있는 소파 밑에서 차마 자식들과 함께 듣기 민망한 소리들을 들으며 결국 눈을 가린다. 가족 앞에서 모든 것이 발가벗겨진 기택의 눈빛에서 그 눈빛을 보이지 않으려고 손을 올리는 그 몸짓에서 내가 어른거리고, 그 모멸을 흠뻑 뒤집어쓴 채 기생충처럼 기어 나온 기택의 뒷모습에 무시와 모멸을 뒤로하고 주춤주춤 빠져나오던 내가 업혀있다. 그러나 박 사장을 살해 직전 기택의 클로즈업 샷에서 보인 눈은 소름 끼치게 느껴진다. 그의 눈빛을 보았다. 그의 눈빛은 누구를 닮았다. 삶의 모든 것을 놓아버린 사람의 눈빛이 아른거린다.

 

 

글·서성희
영화평론가.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으로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대표,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센터장으로 영화영상 생태계를 살리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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