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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애의 시네마크리티크]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다시 보게 되는 세상들
[송영애의 시네마크리티크]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다시 보게 되는 세상들
  • 송영애(영화평론가)
  • 승인 2020.06.19 16: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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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빅터 플레밍, 1939) 포스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빅터 플레밍, 1939) 포스터

영화는 여러 측면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여준다. 영화 안에 담긴 세상뿐만 아니라, 하필 그런 식으로 세상을 담아낸 영화 밖 세상, 이후 그 영화를 평가하는 또 다른 영화 밖 세상들도 알게 해준다.

최근 대표적인 미국 고전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빅터 플레밍, 1939)와 관련된 보도가 있었다. ‘삭제’, ‘퇴출’, ‘낙인’, ‘청산 대상’ 등 자극적 제목이 눈에 띈다. 이 영화를 바라보는 새로운 영화 밖 세상이 부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27일 워너미디어는 HBOmax라는 OTT(Over the Top) 서비스를 시작했다. 작년에 출범한 월트디즈니의 디즈니플러스에 이어 워너 역시 자체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한 건데, 넷플릭스 견제에 나섰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HBOmax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중단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해리 포터 시리즈’, ‘반지의 제왕 시리즈’, ‘매트릭스 시리즈’, ‘배트맨 시리즈’, ‘슈퍼맨 시리즈’ 등과 함께 워너의 대표적인 콘텐츠이기에 분명 이례적인 일이다. 워너는 6월 23일 프랑스 최대 규모 스크린에서 예정되어있던 상영 일정을 비롯해 미국 내 여름 상영 일정도 취소했다.

이제 막 시작한 워너의 HBOmax에서 자사 대표 영화를 내리고, 대규모 상영 행사도 취소한 배경에는 플로이드 사망 사건 이후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Black Lives Matter’ 움직임이 있다.

영화 <노예 12년>(스티브 맥퀸, 2013)의 각본을 쓴 존 리들 리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담고 있는 인종차별적 요소들을 비판하며, HBOmax가 서비스를 중단해야 한다고 공개 주장한 데 대한 워너의 즉각적인 대응이었다.

HBOmax는 서비스 일시 중단을 알리면서 조만간 역사적 설명이나 안내 등을 덧붙여 다시 서비스 하겠다 밝혔다. 구체적인 방법이 논의 중이고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비스 중단이 오래 지속되거나, 재편집되는 건 아닌지 등 우려하는 반응도 있었다고 하나,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이런 일종의 검열은 실행되기 어려운 일이다.

현재 국내외 여러 플랫폼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다운로드와 스트리밍 서비스가 지속 중이니, ‘삭제’나 ‘퇴출’이라는 표현은 좀 과장이다. 그러나 워너가 새로 오픈한 HBOmax에서 자사 대표 콘텐츠의 서비스가 일시 중단되었으니 주목할 필요는 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1860년대 남북전쟁 시기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한다. 당시 전쟁이 발발할 정도로 노예제도, 인종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과 입장은 달랐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속 세상은 남부 중심적이고 백인 중심적 입장으로 재현(representation)됐다. 바람과 함께 사라진 미 남부 사회, 문화를 낭만적으로 담아내면서 남부에 대한 향수가 느껴진다.

영화 속 흑인들 역시 그 입장에서 재현됐다. 백인에게 충실한 유모와 하인들은 착한 흑인으로, 자유인이 된 흑인은 무능하거나, 무식하거나, 폭력적이다. 흑인 남성이 백인 여성을 성희롱하는 에피소드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KKK단이 믿음직하게 그려지는 등 전형적인 인종 스테레오타입을 볼 수 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스틸, 스칼렛과 유모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스틸, 스칼렛과 유모

사실 이 영화가 제작된 1930년대 후반은 노예제도가 폐지된 지 70여 년이 지났음에도 지역에 따라 여전히 인종 분리주의가 합법이었던 시기였다. 미국에서 인종 분리주의가 법적인 차원으로라도 끝나려면 1960년대는 되어야 했다. 그 유명한 ‘버스에서 백인 자리에 앉아 있다가 경찰에 체포된 흑인 여성 로사 파커 사건’은 1955년에 발생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속 1860년대 세상은 1930년대에도 남아있던 인종차별적 입장에서 그려진 세상이었다. 개봉 당시 시사회장이나 시상식장에 흑인 배우들이 초대받지 못했다거나, 동료 백인 배우의 강력한 항의로 참석할 수 있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세월은 흘렀지만, 영화 안팎 세상이 크게 다르지 않았던 셈이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통해 또 다른 1930년대 세상도 발견할 수 있다. 전형적인 흑인 스테레오타입 캐릭터였던 스칼렛의 유모를 연기한 배우 해티 맥대니얼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아카데미 사상 첫 흑인 후보자였고 수상자였다. 그리고 첫 시상식 참석자였다. 보수적인 아카데미의 파격적인 행보였다.

2020년인 현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말하자면 ‘사극이니까.’ 라고 넘기며 보기엔 불편한 지점들이 많아졌다. 영화 자체는 그대로지만 영화를 바라보는 사람이, 세상이 바뀐 것이다.

<말콤 X>(1992) 등을 연출한 미국의 대표 (흑인) 감독 스파이크 리는 많은 사람이 이 영화를 보고 미국 사회뿐만 아니라 미국 영화계에 만연했던 미국의 인종차별 역사를 체감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점차 거론되는 영화들도 늘어나고 있다. <국가의 탄생>(그리피스, 1915), <남부의 노래>(하브 포스터, 윌프레드 잭슨, 1946) 등 인종차별적 영화로 이미 널리 알려진 영화들도 있고, <티파니에서 아침을>(블레이크 에드워즈, 1962),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제롬 로빈스, 로버트 와이즈, 1967), <더티 해리>(존 시겔, 1971), <인디애나 존스>(스티븐 스필버그, 1984) <포레스트 검프>(로버트 저메키스, 1994),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2019) 등 시대와 장르가 총 망라되고 있다. 흑인뿐만 아니라 다른 인종에 대한 관심으로도 확대 중이다.

 

'포레스트 검프'(로버트 저메키스, 1994) 포스터
'포레스트 검프'(로버트 저메키스, 1994) 포스터

같은 영화라도 다양한 평가가 가능하다. 그리고 그 평가는 변하기도 한다. 영화는 그대로겠지만 영화를 보는 사람이 그리고 세상이 변하니 당연한 일이다. 이런 재평가는 끊임없이 자유롭게 이뤄질 필요가 있다. 그래야 나 자신과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성찰도 가능해진다.

상영시간이 좀 길어 4시간 정도 투자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합법적 다시 보기가 어렵지 않으니, 영화 안팎 변화된 세상들을 목격해보기를 바란다. 어쩌면 먼 나라 옛날이야기로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동화 같은 세상으로만 느껴질지도 모른다. 이 또한 새로운 영화 밖 세상의 발견일 것이다. 다양한 측면을 지니고 있는 내가 사는 세상 말이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글: 송영애

영화평론가. 서일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 한국영화 역사와 문화 관련 연구를 지속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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