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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의 시네마 크리티크] 검은 피부, 하얀 가면 : 오바마 시대의 은유, 조던 필의 <겟 아웃>
[김경욱의 시네마 크리티크] 검은 피부, 하얀 가면 : 오바마 시대의 은유, 조던 필의 <겟 아웃>
  • 김경욱(영화평론가)
  • 승인 2020.06.22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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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전역으로 번져간 시위의 방아쇠는 흑인 조지 플로이드를 죽음에 이르게 한 백인 경찰의 폭력이었다. 흑인 감독 조던 필의 <겟 아웃>(2017)에는 백인 경찰이 주인공인 흑인 남성 크리스에게 신분증을 요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크리스의 백인 애인 로즈가 운전하다 사슴을 치었기 때문에 출동한 경찰은 흑인 남성을 무조건 범법자로 취급하려고 한다. 로즈는 “잘못한 게 없으니 신분증을 보여줄 필요는 없다”고 항의하지만, 크리스는 익숙한 상황인 듯 조용히 신분증을 꺼낸다.

사진작가인 크리스는 세상의 관찰자로서, 미국사회에 드러나지 않게 만연해있는 인종편견에 민감한 편이다. 영화 도입부에서 크리스의 직업을 설명하려고 제시되는 사진들은 흑인을 중심으로 흑백의 대비가 선명하다. 로즈가 부모 집에 크리스를 데려가려 할 때, 그는 그녀의 부모에게 자신이 흑인이라는 사실을 알리라면서, “샷 건에 쫓겨 도망 다니고 싶지 않다”고 인종편견을 언급한다. 로즈 집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한 일본인이 “요즘 세상에서 흑인으로 사는 게 장점이 많은지, 단점이 많은지” 질문할 때, 크리스는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파티에 참석한 유일한 아시아인인 그 일본인은 아마도 자신이 (한국인이나 중국인 등과는 차별화되는 존재로서) 백인과 다름없다고 믿기 때문에 그런 질문을 했을 것이다. 백인으로 가득한 파티에서 그 일본인이 크리스에게 듣고 싶었던 대답은 ‘인종편견 따위는 전혀 없는 요즘 세상의 장점’이었을 것이다.

<겟 아웃>은 <초대받지 않은 손님>(1967)처럼, 백인 여성이 흑인 애인을 부모에게 소개하면서 ‘인종편견’을 놓고 미묘하게 갈등이 빚어지는 영화처럼 전개된다. 로즈의 부모인 딘과 미시가 외과의사와 정신과의사/최면치료사로서, 흑인의 몸에 백인의 뇌를 이식하는 소름끼치는 수술을 실행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날 때, 영화는 ‘공포영화’로 넘어간다. 그들의 딸과 아들이 흑인을 데려오거나 납치해오면, 그들은 운동이나 성적 능력이 탁월한 흑인의 몸을 갖고 싶어 하는 백인(또는 일본인)에게 거액을 받고 수술을 해준다. 로즈 집의 흑인 집사와 가정부 그리고 파티에 참석한 유일한 흑인 로건은 그 수술의 결과물 이다. 공포 장르의 핵심이 주인공을 공격하는 ‘괴물의 정체’라고 할 때, 이 영화에서는 로즈의 가족과 파티의 참석자들이 괴물로 자리매김 하게 된다.

조던 필은 ‘겉모습은 흑인인데 속은 백인’이라는 설정을 공포장르를 통해 흥미진진하게 만들면서, 흑인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미시가 크리스의 금연을 도와주겠다면서 최면을 거는 장면을 보자. 미시는 크리스가 11살 때 뺑소니 사고로 죽은 엄마의 기억을 소환하게 만든다. 어린 소년 크리스는 엄마가 죽어가는 상황에서 어떤 조치도 취하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TV만 보고 있었다. 어릴 때 부모 형제 같이 아주 가까운 사람이 사고나 죽음을 당하게 되면, 그것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아이는 자신의 잘못(예를 들어 내가 착한 아이가 아니어서, 내가 거짓말을 해서 등등)때문이라고 죄책감에 빠지게 된다. 크리스 역시 엄마의 죽음에 죄책감을 갖고 있었고, 그래서 로즈의 차에 치여 죽어가는 사슴을 안타깝게 지켜보았다. 미시는 죄책감을 고리로 해서 크리스를 조정하려고 한다.

 

<사진1>

이 때 크리스는 무의식의 깊은 심연에 빠져 들어가는 공포에 사로잡히는데(사진1), 그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공포이기도 하다. 크리스는 자신이 흑인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흑인 집사와 가정부 그리고 로건과 처음 마주했을 때 뭔가 자신과 다른, 흑인 같지 않은 기묘하게 이질적인 느낌을 받는다. 그들은 모두 얼빠진 표정으로 평온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신체를 제어하기 위해 뇌의 일부를 남겨놓았기 때문인지 어떤 자극이 주어지면 정체성에 혼란이 생긴다. 크리스가 뭐라고 할 때 흑인 가정부는 입으로는 웃고 있는데 눈에서는 눈물을 흘리고(사진2), 순한 양 같던 로건은 크리스의 카메라 플래시에 자극 받아 공격성을 드러낸다. 크리스는 소파의 (흑인 노예가 주로 일했던 목화 농장을 연상시키는) 솜으로 귀를 막아 미시가 내는 소리를 듣지 않음으로써 최면에서 벗어난다. 다시 말하면, 노예로 세뇌시키려는 백인의 소리를 듣지 않음으로써 흑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내게 된다.

그러므로 영화 제목 ‘Get Out'에는 크리스가 로즈의 집에서 탈출하는 표면적인 의미에 크리스/흑인의 정체성을 교란시키는 백인의 목소리/이데올로기를 몰아내라는 의미가 더해진다. 

 

<사진2>

딘은 로즈가 사슴을 쳤다고 하자, 사슴(Buck)은 죽어 마땅하다고 말한다. 남북 전쟁 이후 백인에게 협력하지 않는 흑인을 ‘검은 사슴(Black Buck)’으로 비하한 것과 연결해보면, ‘반항적인 흑인’은 없애버려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그럼에도 로즈는 “우리 부모는 인종 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아버지는 가능했다면 오바마를 3번이라도 찍었을 정도로 진짜 오바마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파티에 참석한 백인들은 흑인의 신체적 우수성을 추켜세우지만, 사실은 크리스의 신체가 이용가치가 있을지 점검하는 중이다. 로즈 부모의 작품인 로건이 기묘하게 오바마를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등장할 때(사진3), 백인의 뇌를 이식받은 그의 상태가 어머니가 백인이고 아버지가 흑인인 오바마를 떠올리게 할 때, 로즈 가족과 파티 참석자들의 엽기적인 행태는 미국사회의 은유가 된다.

 

<사진3>

로즈 부모가 오바마를 찍었으니 인종 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미국사회는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선출함으로써 인종편견이 없는 것처럼 포장했다. 대다수 흑인들도 그렇게 믿었을 것이다. 따라서 흑인 로드가 친구 크리스에게 문제가 생겼다고 판단하고 경찰서에 신고하러 가는 장면에서, 흑인 경찰 모두가 흑인에 대한 백인의 엽기적인 범죄 가능성을 무슨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처럼 취급한다. 결국 오바마 시대의 미국사회는 인종편견을 보이지 않게 만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오바마를 롤 모델로 전시하고 흑인의 정체성을 말살하거나 백인처럼 순화시키려고 시도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결과는 트럼프의 등장이라는 대대적인 재앙 이었다!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 김경욱

영화평론가. 세종대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면서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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