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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난의 시기에 소환된 TV 종교드라마들
환난의 시기에 소환된 TV 종교드라마들
  • 문선영 |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
  • 승인 2020.06.30 1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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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TV에서 종교를 다룬 드라마는 찾기 쉽지 않다. 물론 감춰진 비밀에 대한 고백이나 간절함의 표현을 위해 찾는 성당이나 교회, 고즈넉한 산사의 사찰은 사건 전개상 배경장소로 자주 등장했다. 하지만 종교 자체가 스토리의 중심이 된 적은 거의 없다. 특정 종교에 대해 다룰 경우 예민한 문제들을 신경 써야 하고, 논란이 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하기에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최근 특정 종교의 성직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가 성공을 거두었지만 방영하는 동안 여러 가지 논쟁들도 따라다녔던 것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불특정다수의 수용자를 신경 쓰는 방송에서 불편한 일들을 감수할 만큼 종교 관련 스토리는 매력적이지 않았던 점도 이유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사이비 종교를 전면에 내세운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한국 TV드라마에서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대중들에게 기억되는 사이비 종교 소재 드라마들을 검색하거나 다시보기 하는 사람들이 최근 들어 늘고 있다. 코로나 19사태를 통해 주목을 받으며, 시사뉴스 프로그램에서 연일 다루었던 한 종교단체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진 이유를 반영한 것이다.

    

문제는 외부에 있다. 신흥종교에 대한 공포 <거미>

1995년 MBC에서 납량특집으로 방송된 <거미>(1)는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독거미가 한국 사회를 알 수 없는 죽음의 공포에 휩싸이게 한다는 이야기를 다룬 공포드라마이다. 사람들이 붐비는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 발 사이를 기어 다니는 크고 검은 거미의 형체, 갑자기 한 남자가 거미에게 물려 쓰러지는 장면은 당시 아슬아슬한 긴장과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1995년 <거미>가 새롭고 낯선 드라마였던 이유는, 과거 공포 드라마와 달리 귀신이나 원혼이 전혀 등장하지 않고 오로지 살아 있는 거미의 공포 효과를 활용한 공포물이라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드라마의 또 하나의 낯섦은 유전자 조작의 독거미가 일으킨 공포의 배경이 사이비 종교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에 있다.

 

드라마 <거미>의 한 장면

드라마 <거미>는 거미를 초음파로 조종하는 유전공학기술을 둘러싸고 한국의 유전공학자와 일본의 신흥종교 교주가 벌이는 갈등이 중심 이야기이다(당시 배우 이승연이 유전공학자와 사이비 교주, 1인 2역을 맡았다). 드라마 <거미>는 1990년대 대중을 두려움에 떨게 한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거미> 방영 직전 1995년 일본의 옴 진리교의 지하철 독가스 사건은 한국 대중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옴 진리교는 종말론적 신앙을 중심으로 ‘일본의 세계 지배’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폭행과 살인을 일삼던 신흥종교였다. 드라마 <거미>의 첫 장면이 지하철 독거미 사건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일본 옴 진리교 사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드라마의 기획 의도에서 볼 수 있듯이, <거미>는 당시 대중의 옴 진리교 사건에 대한 충격과 맞물리며 공포 효과를 극대화했다. 이는 드라마의 여러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독거미 살인 사건을 벌이는 사이비 종교 집단의 위장, 납치, 협박, 살인 등은 당시 옴진리교가 벌였던 행동과 유사하다. 또한, 드라마에서 교주 미치코가 자신들의 은신처에서 벌이는 신도를 현혹하는 기이한 행위 장면도 옴 진리교 기사에서 자주 접할 수 있었던 정보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드라마 <거미>는 1990년대 중반 신흥종교를 둘러싼 사회적 충격에 대한 대중들의 공포를 재현한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사이비 집단이 일으킨 공포의 원인을 외부로 돌림으로써 불안과 두려움을 해소한다. 과학자의 양심을 지키며 윤리적 책임을 지려는 한국의 유전공학자 주리의 행동은 독거미를 살인 무기로 사용해 사람을 죽이는 데 죄책감이 없는 사이비 교주 미치코와는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1995년 드라마 <거미>에서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사이비 집단은 외부에 있다. <거미>의 마지막 장면에서 사이비 집단의 치명적 무기였던 독거미는 교주 미치코의 자살 도구로 사용된다. 자신이 아끼던 독거미를 통해 자살에 이르는 사이비 교주의 죽음은 충격적 결말이었지만 공포는 과학과 사이비 종교,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구도 안에서 어느 정도 해소된다. 1990년대 TV 드라마 <거미>는 너무나 뻔한 구도이기는 하지만 사이비 종교라는 새로운 소재를 실험하기 위해 예민한 문제를 비껴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인간의 나약함을 파고드는 거짓의 실체 <구해줘>

1995년 드라마 <거미>를 마지막으로 드라마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사이비종교에 대한 이야기는 2017년 OCN 드라마 <구해줘>를 통해 환기된다. <구해줘>는 조금산 작가의 웹툰 <세상 밖으로>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구해줘>는 한적한 시골 마을 ‘무지’에 자리 잡은 구선원이라는 사이비 종교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스릴러물이다. 드라마 제목에서 직접 말해주듯 <구해줘>는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하는 간절한 구조요청을 주제로 한다.

 

드라마 <구해줘> 포스터

평화롭고 조용한 시골 마을처럼 보이는 ‘무지’는 너무 좁아서 비밀을 숨길 수 없는 지역사회다. 작은 지역사회는 한 가족 같은 분위기를 형성하기도 하지만 지역 전체가 잘못된 방향에 쉽게 흔들릴 때,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데 어려움이 되기도 한다. 드라마 <구해줘>의 배경이 되는 마을이 그렇다. 구선원이 마을에 자리 잡게 되면서 ‘무지’라는 지역사회는 구선원의 거짓 전략에 휩싸여 헤어 나오지 못한다. 드라마는 구선원이라는 사이비 종교 집단에 흔들리고, 무너지는 지역사회의 허약함과 개인의 나약함을 재현하고 있지만 마을 ‘무지’는 우리 사회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실패하고 한적한 시골을 선택한 상미 가족에게 ‘무지’에 대한 첫인상은 친한 지인의 사기 행각으로 인해 정착할 공간조차 마련하지 못하는, 또 다른 절망의 장소이다. 허름한 축사 옆 좁은 창고에서 기숙하게 된 4인 가족은 비극적 현실을 애써 웃음으로 극복하려 하지만 현실은 허름한 집의 문제에서 그치지 않는다. 학교 폭력의 피해자 오빠 상진의 현실은 시골 마을 무지에서도 이어지며 더 극단적인 상황에 이른다. 오빠 상진의 죽음, 어머니의 정신분열, 아버지의 죄책감은 냉정한 도시에서 도망친 가족을 벼랑 끝으로 내몬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인간의 나약함은 현실에서 도망치거나 새로운 것에 의지하고 싶은 간절함으로 드러난다. 

드라마 <구해줘>에서 구선원은 상미 가족처럼 절망적 현실에서 나약해진 인간의 마음을 이용한다. 구선원의 교주 백정기(조성하)는 ‘새하늘님’이라 불리는 신의 말을 대신 전하는 사람으로 ‘영부’라 불리며 마을 사람들을 자신의 말에 복종하도록 현혹시킨다. 겉으로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성스러운 성직자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거짓과 속임수로 사람들을 속이며 자신을 신처럼 받들기를 바라는 비틀어진 욕망에 사로잡힌 교주 백정기, 구선원의 사람들을 속이며 돈을 축적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조완태(조재윤)는 권력, 부를 위해 가짜를 진짜인 것처럼 속인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거짓된 신앙을 조작하는 이들과 달리, 구선원의 사도 강은실(박지영)은 성격이 조금 다르다. 그녀는 가정 폭력을 참다못해 남편을 살인하고 딸과 함께 도망쳐 신앙에 의지하게 되었지만 백정기의 탐욕과 속임수에 의해 딸마저 잃어버린 상처를 가진 인물이다. 그러나 그녀는 백정기의 사기 행각에 속았다고 판단하기보다 죽은 딸과 자신의 구원이 구선원에 있다고 믿는다. 백정기의 실체가 드러나도, 자신이 만들어낸 신에 대한 믿음을 의심하지 않는 그녀는 진실을 외면하는 인간의 나약한 실체를 재현한다. 

드라마 <구해줘> 속 구선원에 빠진 사람들은 모두 불안과 두려운 상황에서 나약해진 자신을 붙들어주는 유일한 탈출구로 구선원과 교주 백정기를 선택했다. 자신의 무능력으로 아들이 죽고 아내마저 병들어버렸다고 생각하는 상미 아버지의 죄책감은 딸이 교주의 희생제물이 된다는 사실마저 구원의 길이라는 헛된 믿음을 형성한다. 남편을 죽이고, 딸마저 잃게 된 강은실은 현실을 수용하지 않는, 거짓을 맹신하는 태도를 버리지 못한다. <구해줘>에서 구선원에 감금된 상미(서예지)의 동창생 4인방이 그녀를 구출하는 과정은 16회에 걸쳐 위험하고 아슬아슬하게 펼쳐진다. 어둠 속에서 간절히 부르짖던 상미의 ‘구해줘’란 말 한마디가 진정한 구원의 길에 이르게 되는 마지막, 사이비 종교 구선원의 실체는 드러난다.

 

불안한 시기, 우리의 간절함은

불안한 시대를 사는 인간의 절망은 의지할 대상을 찾는다. 지금까지 한국 TV 드라마의 사이비 종교를 다룬 작품들은 그러한 인간의 현실을 재현하고 있다. 진실을 알 수 없는 또는 진실을 분별하기 쉽지 않은 사회에서 거짓을 진실처럼 속이며 현혹하는 가짜 신앙은 그렇게 탄생하였다. 불안함은 거짓을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며 현실을 외면하게 된다. <구해줘>의 ‘무지’ 마을 사람들이 구선원의 실체를 알면서도 끝까지 자신들의 헛된 믿음을 인정하지 않은 것처럼, 현실을 인정하고 진실을 대면할 때 더 끔찍한 현실을 수용해야 한다는 공포는 거짓 투쟁을 지속하게 한다. 사이비 종교문제를 다룬 TV 드라마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가짜가 아닌 진짜의 신앙, 종교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다. 드라마 <구해줘>의 사이비 종교 구선원에서 사람들을 현혹하기 위해 사용하는 반복적인 구절이 있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모든 종교에서 강조하는 보편적 원리인 사랑에 대한 진정한 실천이 필요한 때이다. 어둠 속에서 간절히 부르짖은 구원의 요청에도 외면하지 않는, 온전함은 거짓을 외면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되지 않을까. 

 

 

글·문선영 
한국산업기술대학교 지식융합학부 조교수. 라디오부터 텔레비전까지 한국 방송극 전반을 연구하며, 특히 한국 방송극의 장르 문화와 형성에 관심을 두고 있다.


(1) 필자의 아래 글 중 일부 내용을 정리한 것임.
 「과학과 공포의 결합: <거미>」, 한국의 공포드라마, 커뮤니케이션북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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