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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면 까짓것 리셋해볼까 - 산경, 『재벌집 막내아들』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면 까짓것 리셋해볼까 - 산경, 『재벌집 막내아들』
  • 서은영 |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외래교수
  • 승인 2020.06.30 1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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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막내아들> 포스터

“현재의 결과를 바꾸고 싶다”라는 욕망

웹소설에서는 차원을 이동하기 위해 회귀, 빙의, 환생을 장치로 사용한다. 그 가운데 회귀물은 캐릭터가 특정 시간을 거슬러 역행해 간 장르물이다. 캐릭터는 지금까지의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회귀하거나, 자신이 가진 능력치를 유지한 채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전제로 한다. <재벌집 막내아들>의 주인공 윤현우(현재 40세) 역시 그가 살았던 시대의 기억을 모두 간직한 채 재벌집 막내 손자인 진도준(10살)으로 회귀한다. 물론 회귀물과 환생물이 중첩되거나 구분이 모호한 경우도 존재한다. 그러나 환생물은 공간 차원의 이동이 가능하다는 것도 포함한다는 점에서, 보다 넓은 의미를 지닌다. 예를 들어 <왕의 딸로 태어났다고 합니다>의 경우 여주인공 상희는 칼에 찔려 고려왕국의 서른세 번째 공주로 환생하는데, 여기에서 고려왕국은 시간을 과거로 거슬러 간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공간 차원의 이동이다. 고려왕국은 마력으로 작동하는 세계이며, 절대적 남존여비가 사회체제를 구성하는 절대군주제다. 때문에 환생물은 시공간 모두를 틀어버리지만, 회귀물은 공간 차원의 이동이 좀처럼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리셋물, 리턴물, 역행물로 불린다. 즉, 회귀물은 시간의 축을 중심으로 이동하며, 반드시 과거로 돌아간다. 

이때 과거로 역행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욕망은 하나다. “현재의 결과를 바꾸고 싶다.” 이 욕망은 강렬한 것일수록 내적 동기가 설득력을 지니며, 과거로의 회귀에 타당성을 부여받는다. <재벌집 막내아들>의 윤현우는 순양그룹 첫째 아들 진영기 집안의 심부름을 도맡아 한다. 그는 지방대 출신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자 스스로 노예를 자처하며 승진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자살로 위장된 죽음뿐이다. 윤현우의 욕망이 좌절되어 더 이상 손쓸 도리가 없을 때 그는 회귀한다. 그리고 그에게는 ‘인생 2회차’ 삶의 목표이자, 이 소설의 목표인 ‘복수’가 발생한다. 그가 회귀할 이유는 충분하다. 이제 그는 복수를 향해 움직이기만 하면 되고, 그가 하는 행동 모두는 복수를 위한 것으로 설득력을 얻는다. 

 

흙수저라면 리셋하는 게 더 쉬울지도…

한국에서 회귀물은 2000년대 들어 삼두표의 <재생>이라는 작품을 통해 등장했으며, 곽건민(이그니시스)의 <리셋라이프>에 와서 폭발적인 인기를 끈 이후 양판소에서도 대세 중 하나가 되었다.(1) 국내에 회귀물이 인기를 끌게 된 시점이 2000년대 이후라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이 시기는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어떤 변혁의 지점을 통과한(혹은 통과하고 있던) 시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회적으로는 IMF가 지난 이후 경기 침체의 가속화와 고용불안의 장기화가 전 세대에 걸쳐 영향을 주었다. 그 가운데서도 이제 막 사회에 발 딛는 20대들에게는 ‘88만원 세대’라는 불명예를 안겼다. 청년세대들에게 2007년에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고스펙을 갖추어도 88만원의 비정규직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현실의 가혹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자독식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펙 경쟁을 끊임없이 해야 하는 ‘배틀로얄(Battle Royal)’에 놓여있다는 우울감이 사회적으로 증폭되던 시기였다. IMF 이후에 한국 사회는 빈부격차는 심화되고 계층 간 이동은 더욱 어려워졌다. 절망적인 시대의 자화상은 3포세대(연애·결혼·출산 포기)를 너머 N포세대로까지 확장되었으며,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의 이동은 ‘숨겨진 결계를 찾아 넘어서는 것’만큼이나 어려워졌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며 흙수저나 헬조선이라는 신조어가 공론장에까지 등장했다. 사회에 대한 절망과 허무적 인식이 내포된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는 유행어는 2000년대에 시작된 고통이 2010년대 말에도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비극적 인식을 집약한 청년세대의 자조적 표현이다. 

어찌 되었든 ‘이번 생이 망했다’는 자조적 인식이 ‘이번 생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증으로 발현된다면, 이것이 판타지에서는 ‘지금 생과는 전혀 다른 생을 살겠다’는 환생이나 회귀로 실현된다. 그리고 오늘날의 20대 독자들(그들이 주로 웹소설의 소비층으로 예상되므로)에게 가장 친숙한 게임 서사에서 그들은 언제든 ‘리셋’할 수 있는 환생이나 회귀에 매력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이생망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현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좌절이 깊게 깔려 있다. 애초에 태어나기를 흙수저로 태어났고, 무한경쟁으로 소진증후군에 시달려야 하는 헬조선의 청년으로 태어났다면 이번 생은 어떤 노력을 해도 현실을 바꾸기 힘들다는 인식, 이것은 현재의 시공간을 벗어나 아예 새로운 차원의 시공간으로의 이동을 소환한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다시 태어나는 것 뿐’. 이것이 가장 경제적 효율성이 높은 선택이며, 흙수저가 가진 파이 안에서 비용을 가장 적게 지불하는 방법이다. 

한편, 게임 서사에서 플레이어가 캐릭터를 죽게 했다면 그는 손쉽게 다시 리셋(reset)할 수 있다. 원한다면 처음부터 시작할 수도 있고, 혹은 그가 선택한 지점에서 출발할 수도 있다. 셋팅(세계관)은 그대로지만 플레이어의 능력치는 향상되었으므로 두 번 다시 이생망은 없다. 이 말인 즉, 현실에서는 이룰 수 없는 또는 이루기 힘든 욕망을 회귀물의 서사 속에서는 성취가능하다. 그렇기에 회귀물을 역행물(逆行物), 리턴물, 리셋물이라고도 부른다.  

주의할 점은 앞선 문장의 “-살겠다”라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혀서는 안 된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살고 싶다”이거나 “살아보고 싶다”의 욕망의 작용들일 뿐이고, 그 시도가 사회 실천, 혹은 전복적인 행위까지 내포하지는 않는다. 회귀물은 현실에 발을 디디고 있지만, 현실을 재현하고 고발하며 그로부터 사회변혁을 꿈꾼다는 전통적인 리얼리즘 소설과는 확실히 다르다. <재벌집 막내아들>이 실제로 존재했던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IMF, 서브프라임 모기지, 한보그룹 사태, 중동건설 붐, PC보급과 인터넷 등) 실존하는 인물(마이클 델, 손정의, 노태우, 김영삼 등)을 등장시키며, 약간의 은유로 개연성 있는 인물이나 사건(순양그룹과 이학재 등이 마치 삼성그룹의 일가와 임원을 보는 듯함, 삼성자동차, CJ엔터테이먼트(CGV극장 건설과 영화배급))을 쉽게 유추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할지라도, 이 작품이 리얼리즘이 아닌 판타지로 읽히는 이유는 캐릭터가 회귀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마치 캐릭터(주인공 진도준)는 순양그룹을 붕괴시키고 새로운 세상을 열 것처럼 전개하지만, 종국에는 왕좌의 자리를 이양한 것일 뿐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특히 <재벌집 막내 아들>에서 주인공은 할아버지 진양철 회장의 인정을 받고자 하는, 즉 맏아들에게만 물려주는 재벌의 승계권을 제일 막내 손자인 자신이 물려받을 능력이 충분히 있음을 입증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복수’의 의미가 모호해진다. 재벌은 건재하고, 세계관은 현실을 그대로 복사했으며, 여전히 유지된다. 캐릭터는 세계를 향해 싸울 생각이 애당초 없다. 그가 외치는 “복수”는 이 세계(서사 속 세계)의 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다툼이고, 이것을 차지하면 모든 서사(게임)는 끝난다. 

  

불가능한 세계에서 취해버린 현실 인식  

“현재의 결과를 바꾸고 싶다.” 이것이 회귀물의 욕망이라면 독자는 이 욕망을 들춰보는 것을 통해 무엇을 욕망하는가. 회귀물에서 캐릭터가 현재를 바꾸기 위해서는 반드시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 필요하며, 캐릭터 앞에는 여러 선택지가 놓인다. 그는 이 선택지들을 자신의 목표에 맞게 바꿔 나가야 한다. 일반적인 문학이라면 주인공의 선택 앞에는 위기가 봉착하고, 이것을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그의 성격을 드러낸다. 그리고 주인공은 이 위기를 통해 한층 성장한다. 그런데 <재벌집 막내아들>에서는 성장할 시간이 없다. 물리적으로는 20살에 죽게 되어 있으므로 죽음을 모면하기 위해서라도 10년 안에 성장을 마쳐야 한다. 게다가 재벌집에 환생했다 하더라도 이미 진양철 회장의 눈 밖에 난 부모를 둔 덕에 출발 선상에서부터 불리하다. 자칫하면 제로게임에 머물 위험이 크다. 10년 안에 진영기, 진영준 부자에게 맞설 힘을 키워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런데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오히려 리얼리티가 살아나는 것은 아닐까. 10살의 정신을 가지는 것보다는 40살의 능력을 가지는 것이 오히려 회귀의 목적(복수)에 한 발 더 다가설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결국 회귀물은 전생의 결과를 바꾸기 위해 혹은 다시 살아보기 위한 것이므로 신체는 변화해도 정신과 능력치는 전생 그대로 회귀해야 한다. 40세의 윤현우는 10살의 어린 소년이 되었지만, 남은 30년 어치의 기억과 어른으로서의 정신력, 매너, 처세 등 생존의 능력치는 그대로 남아있다. 한 번 살아 본 인생이기 때문에 두 번의 실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무엇보다 독자는 캐릭터의 성장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편이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과잉된 경쟁 환경에서 빚어낸 생산과 소비의 속도는 새로운 방식의 창작환경과 소비를 주조했다. 주인공은 성장할 겨를이 없다. 처음부터 완벽해야 한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진도준의 성장은 물리적 성장에 불과하다. 재벌에 맞서기 위해 건물을 사들여야 하고, 땅 투기를 하거나 벤처기업 투자를 통해 최대한 자본을 많이 축적해 놓아야 한다. 자신이 발언권을 갖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나이도 먹어야 한다. 그의 성장이 물리적인 측면에 머무는 동안 그의 내면은 좀처럼 성장하지 않는다. 백번 양보해서 그의 정신이 성장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오로지 더 많은 자본을 축적하기 위한 처세술에만 능란해진다. 이 처세술마저도 주변인들에게는 회장인 진양철을 닮은 유전적인 것으로 이해될 정도로 이미 완벽하게 구사하고 있지만, 간혹 뜻밖의 면에서 한 번씩 자신을 다그친다. 그 성장은 자신이 놓친 처세술을 다시 검토하는 것, 그리고 전생의 노비였던 정신 상태에서 벗어나 재벌의 마인드를 가지는 것이다.

이처럼 <재벌집 막내아들>의 윤현우(진도준)는 이미 한 번 겪어서 익숙한 시·공간에서 그가 복수할 시간을 버는 데 필요한 셋팅은 마치 게임 속 아이템을 모으는 플레이어와 같이 작동한다. 이를 위해서는 전지전능한 시점에서 모든 상황과 인물의 심리를 꿰뚫고, 캐릭터가 유리한 상황을 선점할 수 있도록 그를 둘러싼 모든 배경, 인물이 세팅된다. 캐릭터는 앞으로 어떤 사건이 벌어지며, 그것이 어떻게 전개될지 이미 알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하나뿐이다. ‘승리’. 어차피 인생 2회차라면 과정의 복잡함과 고단함보다는 복수의 목표를 이루었을 때의 쾌감이 더욱 통쾌하다. 현실의 고단함을 콘텐츠 소비로까지 끌어들일 필요는 없다. 기존의 세계(재벌의 맏아들 승계)가 파멸하고 그 파멸을 내가 이루었다는 상상, 그리고 맏아들 일가를 무일푼으로 쫓아내고 그 자리를 주인공이 차지했다는 데서부터 오는 통쾌함. 

웹소설의 판타지가 먼치킨을 소환하고, 전혀 불가능한 세계를 창조하며 정통 소설의 문법을 깨뜨려버리는 것은 계층의 사다리가 끊어진 현실의 비극을 더욱 잘 알기 때문은 아닐까. 그렇다면 이 지점에서 이생망을 부르짖는 현실의 청년들은 더욱 가혹한 리얼리즘을 취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글·서은영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외래교수


(1) https://namu.wiki/w/회귀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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