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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영의 문화톡톡]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묻어둔 누군가의 이야기:<(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문선영의 문화톡톡]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묻어둔 누군가의 이야기:<(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 문선영(문화평론가)
  • 승인 2020.08.03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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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가족 드라마

 가족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는 한국 방송 초창기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 오랜 역사를 가진 장르 중 하나이다. 한국에서 가족 드라마는 1960년대 ‘홈드라마’라고 불리며 유행하기 시작했다. “홈드라마(Home Drama)는 가족 대상 드라마를 뜻하는 것으로 영어권에는 없는 어휘이다. 1930년대 미국 영화에서 ‘홈코미디’라는 표현을 쓴 것이 일본으로 건너가 ‘홈드라마’로 전환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다.[1] 1960년대 홈드라마는 다양했지만 그중 한 가지, 이상적 가족 모델을 설정하고 그에 따른 조건에 부합되는 일정한 형식과 캐릭터를 반복적으로 방영하는 시추에이션(situation)드라마가 있었다. 이 드라마는 당시 수용자들이 친근하게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일상성을 주요 요건으로 두고 있다. 시추에이션 홈드라마는 가정 경제를 책임지는 회사원 아버지, 전업주부 어머니, 자녀 2명으로 구성된 당시 보편적 가정이라고 설정한 도시 중산층 가족을 모델로 하고 있다. 동아 방송(DBS)의 <우리 아빠 최고>, 문화방송(MBC)의 <즐거운 우리집>은 서울의 샐러리맨 가정에서 발생하는 이야기를 풀어가며 400회 이상 장기 방송한 인기 라디오 홈드라마였다.

 홈드라마는 하루를 시작하는 오전, 가족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저녁 시간을 상정하여 대중들의 일상적 리듬에 맞춰서 방송했다. 드라마는 가족의 구성원들이 겪는 여러 가지 일상사가 반복되며 매회의 에피소드를 만들어갔다. 간단한 갈등을 통해 가정의 문제를 제시하고 가족들이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이를 통해 홈드라마는 밝고 명랑한 가정 이미지를 생산했다. KBS의 인기 라디오 홈드라마였던 <공처가 3대>의 에피소드 중에서 아내들이 준 용돈이 적다고 느낀 남편이 용돈을 몰래 숨기거나 용돈 협상하는 내용이 그 예 중 하나이다. 한국 초기 가족 드라마는 서민층 가정에서 흔히 일어나는 갈등을 재미있게 풀어가며 평범한 가족의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그려냈다. 1960년대 근대적으로 변형된 가정은 국가 사회적인 근대화의 욕망이 일상적 생활영역으로 침투하는 통로였다. 건전한 가정이나 가족 구성원의 역할 모델 등은 대중매체를 통해 종종 제시되었다. 한국 방송 초기 가족 드라마는 가족 내의 다양한 갈등과 문제를 통해 사건을 전개하고 결론적으로 화해를 통해 화합하는 서사가 중심이었다.

 1960년대에서 60년이 지난, 현재 가족 드라마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가족 드라마는 여전히 ‘해피엔딩 결말에 이르는 가족 회복, 가족 복원’의 구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주말 저녁 시간 방송되는 가족 드라마는 인물이나 사건을 조금씩 변형하며 유사한 서사 구조로 반복되지만, 매번 상위권 시청률을 유지한다. 물론 각 시대의 가족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족 드라마는 60년의 시간 동안, 수많은 가족 이야기를 통해 사회의 일면을 바라보는 통로가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가족 드라마 중에서 가족의 일상은 얼마나 현실감 있게 반영되어왔던 것인지, 가족복원이라는 강박적인 구조를 탈피한 변형된 가족 드라마에 대한 시도는 얼마나 가능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최근 방영 중인 KBS 주말 연속극 <한번 다녀왔습니다> 역시 가족 회복 서사를 착실히 밟아가는 중인 듯하다. 4남매 모두가 이혼을 한다는 충격적 설정에서 시작했지만, 크고 작은 사건을 경험하며 인물들(아니 시청자)은 가족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고 그 복원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중이다. 가족주의에 대한 집착은 비단 주말 가족 드라마에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다. 레트로 감성을 불러일으킨 <응답하라 1988>에서 주요 서사는 가족 이야기였고, 가족 간 유대를 공동체로 확대한, 가족 판타지를 형성했다는 점을 떠올려보자. 가족의 중요성과 가치를 부정할 수는 없을 수도 있다. 가족을 다룬 모든 드라마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 방송에서 가족 드라마는 대체로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가족 회복이라는 결말에 이르는 과정은 너무나 간단하고 극적인 방식으로 처리되었고, 행복한 가족 서사를 마련하기 위해서 꼭 누군가(대체로 가장 역할의 인물, 특히 엄마)의 희생이 담보되어야 했다. TV드라마가 가족을 그리는 방식이 스테레오 타입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은 가족에 대한 우리 사회의 강한 집념과 강박을 보여주는 듯하다. 새로운 유형의 가족 서사, 아니 가족에 대한 다른 상상력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2020년 방영된 tvN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는 완전히 색다른 가족 드라마는 아니지만, 조금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듯하다.

평온한 일상을 위해 외면했던 것들

“가족이긴 한데, 정말 모르겠단 말이다.” [2]

 TV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는 평범한 5인 가족의 일상적 모습으로 시작한다. 출근길에 걸려온 엄마의 전화에 대충 대답하고, 바쁘다고 급하게 끊으려는 둘째 딸, 엄마는 통화가 가능한 시간이 있긴 하냐며 화를 낸다. 함께 사는 막내아들은 엄마와 딸 사이를 중재하기 바쁘다. 흔한 가족의 일상적 모습이다. 하지만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의 전개는 알고 있던 가족 드라마보다 빠르다. 엄마 진숙(원미경)은 자식들을 모아놓고 아버지와의 졸혼을 통보한다. 어머니의 졸혼 선언 이후 행방불명되었다가 하루 만에 돌아온 아버지 상식은 등산 도중 발생한 사고로 인해 22살의 기억에서 멈춰진 상태가 돼버린다. 22살로 돌아간 아버지 이후, 이 가족에게는 평온한 일상을 무너뜨리는 사건들이 펼쳐진다. 그들이 마주한 비밀은 오랫동안 말하지 않고 쌓아둔 가족 구성원 각자의 솔직한 이야기이다. 상식이 우울증으로 정신과 상담을 받은 것도, 수면제를 모아서 가지고 다녔다는 것도 가족들은 알지 못했다. 아버지가 과거 자신이 낸 차사고로 장애가 된 누군가를 평생 아들처럼 책임지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생전 처음 본 상식의 등산모임 회원이 던진 “가족인데 정말 모르나봐” 라는 말처럼, 가족들은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tvN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공식홈페이지
tvN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공식홈페이지

  진숙, 상식은 각자 부모의 자리를 지키는 데 최선을 다했지만 아내, 남편이라는 친밀한 관계는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진숙에게 다정한 말 한번 하지 않고, 화만 냈던 상식과 남편에게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고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쌓아두었던 진숙, 부부는 가족이라는 이유로 서로를 견디며 살아왔다.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는 이들 부부가 왜 이런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는지 돌아본다. 이 드라마에서 상식의 단기 기억 상실증은 이들 부부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꺼내는 극적 장치로 사용된다. 1983년 10월 13일 진숙에게 청혼하던 22세로 돌아간 상식은 한없이 다정했던 신혼의 청년이 된다. 아내를 향해 부르던 ‘어이’, ‘은주야’, ‘야’ 호칭이 ‘숙이씨’로 바뀌고 진숙 뒤만 졸졸 쫓아다니며 사랑스럽게 아내를 바라보는 상식의 태도는 가족들에게 낯설다. 드라마는 진숙이 조금씩 남편의 모습을 다시 들여다보고, 상식이 자신의 과거 심정을 기억하면서 다른 국면들을 찾아간다. 이는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의 기억상실증이라는 장치가 중년부부가 22세 젊은 시절로 돌아가 과거를 재연하는 낭만성에 기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드라마는 22세 기억이 멈춰버린 상식이 어떤 남편, 아버지이었는지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몰랐던 진실들을 대면하는 데 집중한다.

 대학 때 연인과 결별한 후, 임신 사실을 알아버린 진숙은 우유배달차를 운행하는 상식을 우연히 만났다. 그녀는 진숙에게 첫눈에 반한 상식의 청혼을 수락하고 그와 급하게 결혼을 했지만 상식의 성실함이 마음에 들었고 그를 신뢰했다. 부부는 그들이 가족이 된 첫날, 1983년 10월 13일에서 멈춰진 상식의 기억을 통해 각자의 진실을 확인한다. 평생 운수노동자로 일하며 대학생이었던 진숙에게 콤플렉스를 가졌던 상식은 아내에게 자신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믿었다. 그는 어느 날 진숙이 즐겨 읽던 책 <메디슨 카운티 다리>의 밀줄 그어진 부분,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 이런 확실한 감정은 단 한번만 오는 거요.”라는 부분을 본 후, 진숙이 큰딸 은주의 친아버지를 그리워한다고 생각한다. 그 후 상식의 애증은 아내를 함부로 대하는 미성숙한 행동들로 이어진다. 심각해보였던 부부의 문제는 사소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아는 건 없지만 가족입니다>는 가족의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별 것 아닌 일들로 묻어 두었던 가족 개인의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지 확인하게 한다.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에서 진숙, 상식 이외 가족들도 서로에 대해 알지 못했던 사실들은 많다. 5년 동안 언니와 연락을 끊고 살았던 둘째 은희(한예리)는 실연의 상처를 언니에게 위로받고 싶었지만 이성적이고 냉철한 은주(추자현)의 태도에 실망한 사건을 돌아본다. 은희는 그 시절 언니 은주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사고로 다쳐서 한동안 일할 수 없었던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큰딸 은주에게 가족은 지긋지긋했고 벗어나고 싶었던 존재였던 것도, 은주가 자신의 20대를 바친(?) 가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태형(김태훈)과 결혼을 했다는 것도, 가족들은 알지 못했다. 은주가 말하지 않고 견딘 시간들, 가족들이 알지 못했던 은주의 일상은 평범한 가족의 일상을 위해 희생되었다. 어머니 진숙은 큰딸에게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미안했고 고마워서 말하지 않았다고 지난 시간들의 심정을 고백한다.

 아버지처럼 가족에게 평생 얽매여서 살기 싫다며, 갑자기 뉴질랜드로 떠난 막내 지우(신재하)의 마음은 편지 한 장과 엄마, 누나들을 위해 준비한 목걸이 선물로 정리된다. 물론 그는 사기를 당하고 빈털터리로 다시 가족에게 돌아오지만, 그가 가족에게 던진 충격은 생각보다 큰 것이었다. 그들에게 가족은 무엇이었는지, 가족이니까 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만, 언젠가를 떠나고 싶은 것인지, 그런 순간이 올 때 쉽게 통보하듯 버릴 수 있는 것인지...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는 하나씩 드러나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가족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묻는다. 가족이기에 알고 있지만, 상대방에게 확인해주지 않는 마음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수없이 외면당해온 것은 아닌지, 평온한 가족의 일상 뒤에 누군가는 말하지 않은 채 아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고 애는 썼는지에 대해, 우리에게 드라마는 질문한다.

 나, 우리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

“엄마와 우리는 가족이 아닌 개인의 시간을, 가족이 아닌 나를 찾아갔다.” [3]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에서 진숙, 상식 부부는 서로에 대해 가졌던 오해를 풀고 부모 또는 부부를 떠나서 서로를 바라보게 된다. 두 사람은 지나간 각자의 시간을 존중하고 수용함으로써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게 됐지만, 예전처럼 한 집안에서 함께 사는 부부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부부는 졸혼 계획에서 각자 독립해서 살기로 했던 약속을 그대로 이행한다. 상식은 아내 진숙과 데이트를 하고 집 앞까지 데려다주고 자신이 머무는 숙소로 돌아간다. 오해가 풀리고 관계는 회복되었는데, 독립된 공간에서 각자의 일상을 보내는 중년부부의 모습은 가족 드라마의 익숙한 관습은 아니다. 이 드라마는 우리에게 익숙한 주말 가족 드라마의 결말과는 다른 결말을 향해 한걸음 더 나간다. 진숙은 오랫동안 꿈꿔왔던 여행을 홀로 떠난다. 가족을 위해 헌신했던 엄마가 가족에서 벗어나 독립적 공간을 얻거나, 홀로 여행을 가는 장면은 종종 가족 드라마에서 보여준 결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가족드라마에서 엄마의 빈자리를 확인한 가족들이 엄마의 소중함을 깨닫고, 엄마는 원래의 자리로 다시 돌아오는 것을 결말로 제시해왔다. 가족은 위기를 겪고 흔들렸지만 다시 제 자리를 찾게 되는 가족회복의 결말, 여기서 가족이라는 기존체계는 더 공고해진다.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의 엄마 진숙의 여행은 단순한 휴가, 일상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진숙의 여행은 자신만의 일상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나’를 찾는 시간 중 하나이다. 가족 구성원에게도 엄마의 여행은 엄마 또는 아내의 빈자리를 확인하거나, 그 소중함을 되새기는 것에 집중되지 않는다. 엄마가 여행을 떠난 후 가족들은 각자 개인의 시간들을 보낸다. 개인의 일상을 보내며, “우리의 일상이 엄마의 시간을 희생한 대가라는 빚진 마음”을 아주 조금씩 덜어내는 과정을 거친다. 가족의 안정이 누군가의 희생이라는 사실을 쉽게 인정하는 것은 다시 똑같은 과정을 반복하기 쉽다는 것일 수도 있다. 이 드라마는 가족이란 단지 한 사람의 희생을 통해서 회복되거나 유지되는 것이 아님을 이야기한다.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는 큰딸 은주가 가족을 벗어나기 위해, 선택한 남편 태형과의 결혼생활의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을 통해서도 가족의 의미를 다시 그린다. 은주에게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기고 결혼한 태형은 정상적(?)이고 평범한 가정을 이루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강한 바람으로 은주와 결혼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 가족에게 벗어나기 위해 태형은 은주와 또 다른 가족을 이루었다. 그들은 기존 가족주의에서 의미하는 가족을 이루는 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부부로서 성립이 불가능했던 그들의 이혼 과정은 단순한 가족 해체를 넘어서, 새로운 가족의 의미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은주는 남편의 비밀을 알게 된 동시에 자신이 남편을 사랑했음을 깨닫는다. 남편 태형을 향한 사랑과 증오의 감정들이 조금씩 정리되고, 은주는 태형을 남편으로서 사랑하기보다 인간으로 이해하고 수용한다. 은주, 태형은 부부로 맺어진 가족 대신 “슬픔을 대신 등에 지고 가는” 친구이자 영원한 가족으로 남는다. 이혼한 태형에게 은주 가족은 어머님, 아버님, 처제, 처남으로 공유되는 존재들이다.

tvN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공식홈페이지
tvN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공식홈페이지

이후, 가족 이야기

 지금까지 방송에서 수없이 다루어졌던 가족 이야기는 1990년대 IMF이후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재현되었다. 유교적, 가부장적 가족의 모습은 2000년대 드라마에서 별거, 이혼 등으로 가족해체의 양상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여전히 일일 저녁 연속극, 주말 가족 드라마에서는 보수적인 가족 개념을 유지하고 있다.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는 가족 해체나새로운 가족 유형을 제시하는 드라마는 아니다. 가족의 의미를 돌아보고, 가족의 중요성을 되새긴다는 점에서는 기존 드라마의 주제에서 큰 차이점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가족의 의미를 찾은 과정이다.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는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의 헌신의 시간을 부각시키며 가족회복을 제시하기보다 가족이기 전에 개인으로 각자의 삶을 이해하고 수용해야 함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임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데 한 사람의 인생을 책임진다고 함부로 말할 수 있냐”는 은주의 말처럼, 가족이라도 한 사람의 인생을 전적으로 책임질 수 없다. 가족이기에 가족 누군가의 삶을 온전히 책임진다는 무거움은 내려놓아야 하지 않을까. 아는 건 별로 없지만, 조금씩 알기 위해 다가가는 마음과 태도, 그리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주는 것이 가족이라서 가능해야 할 것이다.

 

참고자료

[1] 안환웅, 「텔레비전 드라마에 나타난 여성상 연구-시대별 주요 홈드라마를 중심으로」, 강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 18쪽.

[2] tvN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1회 내레이션 중 일부

[3] tvN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16회 내레이션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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