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호 구매하기
[이주라의 문화톡톡] 충분히 슬퍼하라 그리고 웃어라
[이주라의 문화톡톡] 충분히 슬퍼하라 그리고 웃어라
  • 이주라(문화평론가)
  • 승인 2020.08.10 14: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 <키딩>, 모든 고통에는 이름이 있다

키딩(Kidding) 포스터 ⒸShowtime
키딩(Kidding) 포스터 ⒸShowtime

공감과 위로, 치유와 힐링이 최근의 문화를 사로잡는 키워드가 된 지는 꽤 오래 되었다. 이들이 등장하기 전에는 생존과 경쟁의 시대 속에서, ‘생존’을 위해 ‘노력’을 하다가 꿈과 같이 ‘성공’하는 이야기들이 문화를 장악하였다. 그때에 노력의 원동력은 백 만 시간을 투자하면 누구나 한 분야의 프로페셔널이 될 수 있다는 긍정과 낙관의 마인드였으며, 웃으면 누구나 행복해 질 수 있다는 순진함이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잘 살아가기 위해, 더 이상 노력할 수 없는 피로감과 무기력, 그럼에도 힘을 더 내야 한다는 데에서 발생하는 분노와 좌절, 이렇게도 자신이 보잘 것 없는 한갓 나약한 인간이었다는 사실에 대한 자괴감을 모두 철저하게 숨겼다. 이 시간 동안 다들 고통스러웠던 것 같다. 더 이상 모든 것이 가능하지 않아졌을 때, 이제 드디어 그래도 괜찮다는 위로를 건넨다. 이렇게 힐링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그렇다면 이 치유의 시대 속에서 우리는 진짜 괜찮은 것일까?

<키딩(Kidding)>은 상처 입은 한 영혼이 치유하고 성장하는, 딱 지금 시대의 드라마다. 미셸 공드리가 연출을, 짐 캐리가 주연을 맡아 화제를 이루었던 <키딩>은, 웃음과 행복의 아이콘인 제프 피키릴로(짐 캐리 분)가 어린이들을 위한 인형극이라는 동화적 세계와 인간관계 속에서 갈등하고 상처 받는 현실 세계 속에서 어떻게 새로운 자신을 찾아 나가는지를 보여준다. 짐 캐리와 미셸 공드리의 대표성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작품이다. 시즌1은 미국 쇼타임(Showtime)에서 2018년 9월에 첫 방영을 하였고, 시즌2는 2020년 2월에 방영하였다. 한국에는 왓챠플레이를 통해 2020년 7월에 시즌1과 시즌2가 동시에 소개되었다.

제프 피키릴로는 어린이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일명 피클스 아저씨, ‘미스터 피클스’로 불린다. 그는 미국 전역의 어린이들에게 웃음과 행복을 전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우연한 사고로 제프는 쌍둥이 아들 중 하나를 잃어버리고, 그의 가정은 붕괴된다. 이로 인해 제프는 큰 슬픔에 빠진다. 이것이 제프가 처한 문제적 상황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제프의 아버지이자 <피클스 아저씨의 인형 극장>의 제작자인 세바스티아노 피키릴로가 제프의 슬픔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제프는 아들을 잃은 슬픔에 대해 방송을 통해 애도하고 싶다.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고통의 감정에 대해 어린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 고통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한다.

 

제프의 공허한 웃음 ⒸShowtime
제프의 공허한 웃음 ⒸShowtime

애도의 시간 없는 웃음은 공허하다. 제프는 아이들 앞에서 계속 행복을 말하지만, 슬퍼할 것을 충분히 슬퍼하지 않고, 고통을 아프다고 말하지 않고, 그냥 웃으라고 말하는 제프는 속이 텅 빈 깡통과 같다. 제프는 자신의 슬픔을 제대로 받아들여 주지 않는 아버지 앞에서 반항과 설득과 타협을 반복한다. 한 번은 아예 방송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머리를 밀고 아버지 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즉각 가발이 씌워진 채 방송을 녹화해야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버지를 설득한다. 모든 고통에는 이름이 있고, 아이들은 각자가 겪는 아픔의 정확한 이름을 알아야 한다고. 하지만 아버지는 이제 제프를 대신할 대타를 찾아 웃음과 행복을 주는 방송을 유지하려고 한다.

제프는 웃음으로 슬픔을 은폐할 수 없다는 것을 끊임없이 전달한다. 슬픔을 슬픔 그대로 표현할 수 없다면, 슬픔과 고통에 다른 이름을 붙인다면, 우리는 제대로 된 애도를 할 수 없고, 애도의 기간을 마칠 수 없기에, 다시 웃을 수 없다. 모든 고통을 웃음으로 극복하라고 말하던 그 긍정의 시대를 지나, 모두 아플 수 있다고 공감하는 힐링의 시대로 접어든 지금, 과연 슬픔과 고통의 감정은 충분히 표현되고 있는가.

 

2. <사이코지만 괜찮아>, 나쁜 기억을 잊지 마

사이코지만 괜찮아 ⒸtvN
사이코지만 괜찮아 ⒸtvN

2020년 6월부터 tvN에서 토·일마다 방영되고 있는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동화 작가 고문영(서예지 분)과 정신병원 보호사 문강태(김수현 분)의 로맨스를 그려내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 ‘사이코’의 문제를 그려내는 것 같지만, 사실 핵심은 ‘괜찮아’에 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공격하는 고문영은 사이코패스 캐릭터처럼 그려지지만, 사실 고문영의 내면은 그녀가 만든 동화를 통해 나타나듯이, 상처를 입은 채 살아가는 여린 아이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물론 그 상처를 덮고 강인하게 살아남기 위해 막강한 공격성을 갖추긴 했다. 부모로 대변되는 세상의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이 공격성은 생존에 부적합한 여린 감성을 먼저 지워냈고, 그래서 그녀는 감정 없는 깡통 공주가 됐다. 깡통 공주 고문영은 자신의 감정은 들여다보지도 않은 채 누군가를 보호하는 데 익숙한 자아를 잃은 소년 문강태를 만나면서 변화한다. 고문영과 문강태는 서로의 아픔을 들여다보고, 위로해주면서, 변화한다. 이렇게 그들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괜찮아’의 세계를 창조한다.

그런데 이 드라마가 ‘괜찮아’를 말하는 방식에는 독특한 지점이 있다. 이 드라마의 핵심적인 메시지는 매 회 동화 한 편을 통해 상징적으로 나타난다. 이 동화는 작중에서는 고문영의 작품으로 소개되지만, 실제로는 이 작품의 작가 조용의 창작 동화이다. 드라마 초반부에 배치된 오리지널 창작 동화는 이 작품 속 주인공 고문영과 문강태의 내면을 대변하며, 이 드라마가 전달하고자 하는 ‘괜찮아’의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정확하게 보여준다.

 

악몽을 먹고 자란 소년 Ⓒ위즈덤하우스]
악몽을 먹고 자란 소년 Ⓒ위즈덤하우스]

첫 회의 주요 모티프로 기능하였던 『악몽을 먹고 자란 소년』이 대표적이다. 매일 밤 악몽을 꾸는 소년이 자신의 나쁜 기억을 마녀에게 팔며 마녀가 원하는 모든 것을 주겠다고 한다. 그렇게 나쁜 기억을 지운 소년은 정작 행복해지지 않는다. 마녀는 말한다. 나쁜 기억을 가지고, 이겨내어, 성장한 자만이 행복을 얻는다고.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이렇게 아프고 고통스러웠던 기억들이 있어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작품은 ‘사랑은 힐링’이라는 손쉬운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 한 사람이 공감하고 위로해 주며 상대를 보살펴 주는 것은 다른 상대방의 감정을 착취하는 것일 수도 있다. 자신을 돌보지 않고 무조건 형을 위하는 강태는 그래서 자아를 잃고, 감정을 잃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축적되어 왔던 자신의 아픈 마음을 들여다보며 오열하는 순간, 강태는 새로운 관계로 나아갈 수 있었다.

괜찮기 위해서는 슬퍼할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상처와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들여다보아야 한다. 공감과 위로는 일시적인 진통제일 뿐이다. 상대의 상처에 공감하고 위로해 주며 사랑을 키워나가는 것이 요즘 로맨스의 공식이기는 하지만, 보통은 상처 이전에 매력이 먼저 그려지면서, 사랑을 하면 위로가 가능하다는 공식을 전달한다. 먼저 사랑을 해야 마음의 상처도 치유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와 달리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사랑 이전에 자신을 돌아보고, 아픔을 들여다보고, 그 고통을 받아들여야지만,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며, 그렇게 사랑이 시작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사랑이 먼저가 아니라, 슬픔이 먼저다. 그리하여 사랑하고, 웃을 수 있으며, 괜찮아질 것이다.

 

3. <이터널 선샤인>, OK의 조건

이터널 선샤인
이터널 선샤인

이런 괜찮은 사랑을 그린 또 하나의 작품이 바로 미셸 공드리 감독의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 on the Spotless Mind>이다. 이 작품의 가장 유명한 대사도, "OK? OK"다. 조엘(짐 캐리 분)과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 분)은 나쁜 기억을 지운 채로 서로를 다시 만나 설레는 시간을 보내다가, 그들의 기억을 지워 준 라쿠나 의원에서 보낸 녹음테이프를 함께 들으면서, 그들이 서로를 힐난했던 그 나쁜 기억을 다시 마주한다. 과거의 나쁜 기억 앞에서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충격과 자괴감에 휩싸여, 새로운 만남을 시작하는 것을 포기하려 한다. 하지만 조엘이 클레멘타인을 붙잡으며 말한다. 괜찮아. 괜찮아? 클레멘타인이 울며 대답한다. 괜찮아.

<이터널 선샤인>의 ‘괜찮아’는 많은 해석을 남기는 명대사다. 아무리 기억을 지워도 운명적인 상대는 바뀔 수 없다는 낭만적 사랑으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영화의 맥락상 서로의 치부가 모두 드러나고, 서로를 증오했던 지점도 모두 드러난 상태에서,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괜찮아’는 오히려 사랑의 낭만성을 깨는 지점을 보여준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이상형인 줄 알았으나, 그렇지 않은, 단점이 많은 상대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시작하는 현실적이고도 성숙한 사랑인 것이다. 사랑은 이렇게 상대에 대한 콩깍지가 벗겨지고, 환상의 세계에서 일상의 세계로 내려오는 순간, 새로운 전환 국면을 맞는다. 상대가 정말, 완벽하게, 괜찮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현실의 사랑이 시작된다.

이 나쁜 것을 받아들이는 일이 사랑의 시작이며, 진짜 괜찮음의 시작이다. 나의 결함과 너의 결함 모두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생기는 아픔과 고통 그리고 슬픔을 모두 겪어야 한다. 이런 슬픔을 통과해야만 우리는 타인과 진정한 공감을 나눌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나의 아픔만 말하면서 타인의 아픔을 돌아보지 않는 것은 아닌지, 타인에게 너무나 쉽게 괜찮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혹은 힐링의 시대라고 불리는 지금, 마음의 아픔과 고통과 슬픔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고, 그 마음들을 외면하며, 그들에게 제대로 된 이름도 붙여주지 않은 채, 무조건 그 마음만을 지워내려고 하고 있지는 않은지도 함께 되돌아 본다. 힐링의 방법, 행복하게 사는 방법,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지 않는 방법, 이 모든 방법론이 횡행하는 이 순간, 오히려 우리의 복잡하여 찬란한 마음과 감정의 어느 한 쪽이 부당하게 부정당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