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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터즈 칼럼] 죄와 벌
[서포터즈 칼럼] 죄와 벌
  • 박대호(르디플러)
  • 승인 2020.08.11 16: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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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디플러 1기=박대호] 죄를 묻는다는 건 응분의 처분을 내린다는 말이고 응분의 처분을 내린다는 건 법이 정한 절차를 밟아 죄에 맞는 벌을 준다는 뜻이다. 죄를 밝히는게 먼저고 벌을 주는게 다음이다. 이때 죄가 있다는 혐의를 받는 자가 죽어 없어지면 송사를 치를 수가 없다. 모든 권리와 의무의 주체는 산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으로 기소가 될 사람이 죽으면 공소권이 없다는 처분을 내리는 것이다.

그러나 죄 의심이 무겁고 더욱이 그것을 받는 이가 사회에서 큰 구실을 하던 사람이라면 비록 송사의 실익은 없으나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수사를 다시 시작하는게 옳다고 생각한다. 그것으로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망자도 받아 마땅한 대우가 돌아가게끔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죄를 밝히는게 먼저다. 그리고 그 죄는 우리 법이 정한 방법에 맞게 객관으로 확인하여 움직일 수 없는 증거를 바탕으로 구성하여야 한다. 못해도 그런 확신이 들 수밖에 없게끔 하는 정황 증거라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 말뿐으로 벌을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말과 주장이 있다면 근거가 있어야 하고 그 근거는 당연히 사실이어야 한다. 그때 드러난 사실이 모든 사건의 흐름과 크게 어긋나지 않으면 우리는 어느정도 진실에 가까이 갔다고 말할 수 있다.

벌을 주는건 그 다음이다. 그리고 벌은 그 죄에 맞는 형벌을 주는게 원칙이다. 모든 사람은 법이 정한 테두리 안에서 죄에 맞는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죄의 모습이 대낮에 해처럼 환히 드러나더라도 사람이 죽고 없으면 벌을 줄 방법이 없다. 무덤에 들어간 망자의 한 줌 재를 꺼내다 벌금을 매길수도 감옥에 가둘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죄인에게 벌을 줄 수 없으면 그 가족친지를 벌했다. 합당한 책임을 묻기보다 형벌을 통한 응징을 꾀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일어난 죄와 관계없는 많은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었다. 그래서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말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국가가 보장하는 사법체계를 갖고 잘잘못을 가리며 사람들을 벌한다.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미리 정한 약속 안에서 그 약속을 믿고 살 수있도록 하기 위한 우리 나름의 방법일뿐이다. 아주 옛날에 국가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법도 필요 없었다. 관습과 사회상규 또 모종의 영적 믿음이 사람들의 행동을 하나하나 규제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법은 목적이 아닌 수단임을 알아야 한다. 말인즉슨 법은 죄를 응징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지 못한 상황을 풀기 위한 수단으로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이 말하고 쓰는 내용을 보면 법으로 사회를 올바르게 바꾸는 일보다 죄인을 응징하는데 더 관심이 있는 것 같다. 때때로 그 마음은 우리 사법부가 제 할일을 포기하고 온갖 범죄자를 꼴리는대로 풀어주는 짓거리에 반발하여 더욱 드세게 불타오르는 듯하다. 이는 물론 사람들의 양심이 자연스레 일어나는 모습이지만 그것이 나아가는 방향은 옳지 않아 보인다. 애초에 사람은 다른 사람의 죄를 심판할수도 씻어낼수도 없기 때문이다. 법은 그저 죄인을 징계하여 다시 죄를 짓지 않도록 막고자 할뿐이다. 죄값을 치르고 응분의 처분을 다 받아도 지은 죄가 씻겨지고 말고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뜻이다.

성경에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는 격언이 있다. 이는 죄인을 벌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모두가 죄인 될 수있음을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는 뜻이다. 나아가 스스로 죄인 될 수있음을 아는 사람은 감히 다른 사람의 죄를 꾸짖으며 돌팔매질 할수도 없을것임을 깨우치는 말씀이다. 인간은 모두 공감하는 능력이 있고 남의 처지가 곧 내 처지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건강한 상식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하기 마련인 까닭이다.

그러니 준엄한 심판자가 되어 사람을 돌로 치지 말자. 그것은 우리가 할 수도 없고 할 일도 아니다. 우리 사회에 옳지 못한 일이 있으면 바로잡고,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이 곧이 가게 하는 것이 오직 한 가지 나아갈 길일 뿐이다. 있지도 않은 이름을 앞세워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권한은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정 사람을 심판하여 죽이고 싶으면 다른 이름을 가져다 붙여라. 그리고 그 이름은 결코 법도, 정의도 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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