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호 구매하기
[이병국의 문화톡톡] 동네책방, 일상적 장소의 지속가능성을 위하여 (2)
[이병국의 문화톡톡] 동네책방, 일상적 장소의 지속가능성을 위하여 (2)
  • 이병국(문화평론가)
  • 승인 2020.08.18 11: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형서점의) 도서판매업 합리화에 대한 비판은 비인격성·균일화·대형화의 나쁜 영향에 포커스를 맞춰왔다. 독립서점은 자신들 스스로를 지역 결속, 지역 특징, 지역 관심사의 수호자로 여기고 있다. 반면에 크고 기업형이며 표준화된 체인서점은 비인간적 사회관계 촉진, 지역사회의 특색 말살, 권력을 이용한 경쟁자 파괴 등의 특징으로 이해된다. (……) 독립서점을 운영하기로 결정한 사람들은 그다지 돈을 벌지 못하고 많은 시간 일을 해야 하며 굉장히 큰 불확실성을 겪는다. 이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책을 제공해줌으로써 이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바꾸고 있다고 믿는다.4)

 

사회학자 로라 J. 밀러가 이야기한 것처럼 독립서점 즉 동네책방은 대형화되는 자본주의 산업구조에 반대하여 불확실한 모험을 시도한다. 표준화된 효율성, 획일성에 저항하여 다양함으로 충만한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 2004년 13평의 동네책방으로 문을 연 부산의 ‘인디고 서원’도 주목할 만하다.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서점으로 청소년을 주제로 한 다양한 인문학 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청소년으로 구성된 기자단이 취재부터 디자인까지 참여하고 있는 『인디고잉』이라는 잡지를 2006년에 창간하여 현재까지 발행하고 있다. 홈페이지에 있는 허아람 대표의 창립취지문은 이 책방의 방향성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제시한다. “가까운 미래에 동네마다 빼곡이 들어선 학원과 교습소 자리에 도서관과 작은 책방들이 세워져서 학교를 마친 이 땅의 청소년들이 도서관과 작은 책방으로 몰려와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옹기종기 나무 그늘에 모여 앉아 열띤 토론을 하고 늦은 밤 별에게, 달에게 자신의 꿈을 새겨 넣을 수 있는 그런 날을 꿈꿉니다.”5) 현재는 4층 건물의 큰 서점이 되었지만 그만큼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통해 청소년들의 인문학적 아지트가 되어 꿈의 공동체를 실현하고 있다.

나비날다책방 - 사진출처:청산별곡 홈페이지
나비날다책방 - 사진출처:청산별곡 홈페이지

인천의 헌책방 골목으로 유명한 배다리에서 2009년 문을 연 ‘나비날다책방’은 무인책방이다. 대신 유묘책방이어서 고양이 반달이가 책방을 지키고 있다. 환경단체에서 일하다가 대안화폐, 마을공동체에 관심을 갖고 돈 없이도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꿔 인천의 원도심인 배다리에 책방을 낸 청산별곡 책방지기는 누구나 쉬어 갈 수 있는 마을쉼터로 사람이 지키지 않아도 스스로 운영되는 지속가능한 공간으로서의 책방을 염두에 두고 있다. “가난한 마음과 따뜻한 사람들의 정성으로 만들어 가는 작은 가게”6) 나비날다책방은 옛 조흥상회 건물에 자리하고 있으며 ‘요일가게 다 괜찮아’, 생활전시관을 포함하여 ‘생활문화공간 달이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생활문화공간이라는 명칭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다양한 문화 수업을 통해 이웃, 지역 주민들과 교류하며 인천의 원도심 공동체를 구축하고 있다. 인문학 스터디, 독서모임을 비롯하여 창작 워크숍과 작가초청 강연 및 배다리 지역 축제나 만국시장 등의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배다리 마을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데 큰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다양한 활동들이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수행되면서 책과 사람을 잇는다는 점에서 동네책방은 공동체의 중요한 장소가 된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뤽 랑시Jean-Luc Nancy는 책은 그 궁극적 목표를 이미 자신 안에 마련해놓고 내면을 꽁꽁 감싸 안은 봉투처럼 운신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즉자적으로 그리고 우선적으로 자기 자신과의 소통이자 거래이기 때문에 일체성과 단일성이 확실하고 강력하게 내포되어 있어7) 원칙적으로 읽기 어려운 것이라고 하였다. 그 어려움은 책의 불가독illislble에 근거하고 있는데 그것은 책을 펼쳤을 때 닫혀 있음을 의미하는 것8)으로 텍스트에 감춰진 고유한 사유를 전제로 자신의 존재 근거로 삼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책은 독자를 향해 말을 걸고 부름을 실천한다. 이러한 실천, 즉 사유의 거래를 실현하는 장소가 곧 서점인 셈이다.

 

서점은 거래가 이루어지는 주된 장소이다. 그곳은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저자에서 독자로, 편집자에서 저자 혹은 독자로, 저자들 간의, 서적상에서 책으로, 책에서 독자에게로, 혹은 한층 더 나아가 책을 읽지 않는 이들에게, 하지만 오래전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날엔가 단어들, 표현법들, 말하거나 생각하는 이러저러한 방식들에 감동을 받은 사람들에게로 지나가는 통로로 채워져 있다. 그러한 언어와 사유 방식이 이곳에서 출판되었거나 발표되었기에, 팔리거나 사들여졌기에, 제창되거나 선택받았기에, 대면과 대처가 일어났던 곳이기에, 무시되었거나 잊혔기에, 각각의 방식은 (불)가독성이라는 울타리에 둘러싸인 동시에 그 바깥을 점유한다.9)

 

서점, 그중에서도 동네책방은 책이라는 사유의 거래처이면서 책을 매개로 온갖 종류의 방식으로 저자와 독자, 책방과 이웃 간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 너머로 사유를 퍼트린다. 책방은 독자들로 하여금 책을 단순히 소비하도록 이끄는 것이 아니라 책을 독서의 대상으로 만들어 가치를 생산하고 확산시키는 능동적 주체가 된다. 이를 위해 동네책방지기가 짊어져야할 짐의 무게는 상당하다. 낮은 공급률은 이윤을 창출하기 어렵기도 하거니와 최소한의 생활을 가능하게 할 소득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기도 어렵다. 좋아하는 일이지만 비즈니스 차원에서 고려해야할 것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특히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사태 속에서 공동체 형성은커녕 책 판매도 어려운 실정이다. 그나마 한국작가회의에서 진행하는 ‘작은서점지원사업’과 지역문화재단의 지원사업을 통한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제한된 인원과 교류를 이어가고 있으며, ‘동네 비대면 우편함 배달’, ‘드라이브 스루’, ‘워킹 스루’, ‘꾸러미 배송’ 등10)으로 지금의 위기를 돌파하고 있다. 하지만 문을 닫는 책방들이 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책방산책 - 사진출처:계양구 블로그
책방산책 - 사진출처:계양구 블로그

어쩌면 이는 책이라는 기본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책은 특별한 사람이 특별한 장소(서점)에서 구매하는 별난 물건”이 되어버린 것도 사실일 수 있다. 예전처럼 책이 문화의 구심점으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양한 매체들이 책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경상남도 진주의 진주문고 대표가 말하는 “책과 사람이 온전히 만나는 집” 그럼으로써 “꿈과 희망이 있는 집”을 만들기 위해서는 책의 구매 유무와는 상관없이 누구라도 쉽게 와서 즐기고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러다보면 책도 자연히 접하게 될 것이다.11) 그러니 ‘좋은 책은 반드시 팔린다’는 옛 말은 현재로서는 아이러니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책방이라는 공간이 책과 사람을 잇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 우리의 일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동네책방의 등장은 독서를 둘러싼 다양한 사람들의 관계를 다시 접근하도록 만든다. 독서는 혼자서 하는 일상적 행위일 수 있겠지만, 그 일상의 공유는 우리로 하여금 정서적 풍요로움과 문화적 충만감을 경험하게 하고 그로부터 새로운 가능성을 마주하도록 이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개별 주체의 다채로운 사유의 거래와 교환을 넘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공동체적 삶의 토대가 될 것이라 믿는다.

사진출처: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인스타그램
사진출처: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인스타그램

 

 

 

 

 

4) 로라 J. 밀러, 『서점 VS 서점』, 박윤규·이상훈 옮김, 한울아카데미, 2014, 31쪽.

5) 인디고 서원 홈페이지.

6) 청산별곡, 「나눔과 비움으로 열리는 책방」, 《인천IN》, 2020. 4. 24.

7) 장 뤽 랑시, 『사유의 거래에 대하여-책과 서점에 대한 단상』, 이선희 옮김, 도서출판 길, 2016, 25쪽.

8) 같은 책, 39쪽.

9) 같은 책, 42~43쪽.

10) 홍지연, 「동네책방에서 ‘착한 구매’를」, 《인천IN》, 2020. 5. 8.

11) 문희언, 『서점을 둘러싼 희망』, 여름의숲, 2017, 110~111쪽.

 

 

글: 이병국

시인, 문학평론가, 그 외 이런저런 알바生. 시집 『이곳의 안녕』이 있음. 내일의 한국작가상 수상.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