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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영의 문화톡톡] 콜라보레이션 드라마의 탄생: <SF8(에스 에프 에잇)>
[문선영의 문화톡톡] 콜라보레이션 드라마의 탄생: <SF8(에스 에프 에잇)>
  • 문선영(문화평론가)
  • 승인 2020.08.24 0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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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방송, OTT 플랫폼, 영화감독의 연출

최근 방송가의 주요 과제 중 하나는 텔레비전 방송 체제의 혁신일 것이다. 방송 채널 이외에 다양하고 새로운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플랫폼 시장이 점점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유튜브, 웨이브 등 OTT 플랫폼은 방송이라는 제한적 환경에서 제작된 콘텐츠가 아닌 보다 새로운 소재, 연출로 대중을 사로잡는다.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언제든 감상할 수 있는 짧은 웹드라마는 10대 연령층을 TV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플랫폼의 변화 속도는 급격하게 빨라지고 있어서, 앞으로 TV드라마는 어떤 변화를 수용해야 할지 심사숙고해야 할 시점이다. 플랫폼 확장에 따른 콘텐츠 전쟁의 시기, 새로운 제작 방식을 통해 탄생한 드라마 <SF8>에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시네마틱 드라마라고 불리는 <SF8>은 기존의 TV드라마의 체제와 다른 방식의 제작, 장르적 접근을 시도했다. <SF8>은 8개의 독립된 에피소드로 구성된 SF드라마이다. 이 드라마의 독특한 점은 8개의 에피소드가 영화감독의 연출이라는 점이다. SF장르라는 공통된 주제를 가지고 8명의 영화감독이 자신만의 개성이 드러나는 8개의 SF드라마를 만들었다. 영화감독이 TV드라마를 연출한 경우는 종종 있었다. 하지만 8명의 영화감독이 한 편의 드라마에 참여한 경우는 한국 드라마 제작에서 처음이다. 여기에 또 하나 메인 투자자가 OTT 플랫폼 웨이브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드라마 <SF8>은 지상파 방송 MBC와 OTT 플랫폼 웨이브, 한국영화감독조합의 결합을 통해 탄생했다. <SF8>의 문형찬 프로듀서는 인터뷰를 통해 “MBC는 신선한 콘텐츠와 새로운 파트너 십이 필요했고, 메인 투자자 웨이브 입장에서는 OTT 오리지널 작품에 대한 갈증과 이를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선보일 방법이 필요했다. 영화감독조합 입장에서는 감독의 창작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받을 수 있는 제작 시스템이 의미”가 있었다고 밝혔다.[1] <SF8>은 콘텐츠 문화의 변화의 시기에 지상파 방송, OTT 플랫폼, 영화감독조합의 협력 작업을 통해 또 다른 콘텐츠의 모습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사진출처: imbc.com
사진출처: imbc.com

SF장르라는 공통 아래, 독립된 8개의 드라마

8부작 드라마 <SF8>은 MBC에서 8월 14일부터 매주 금요일 밤마다 방송되고 있다. 8월 25일 기준 <간호중>, <만신> 2편이 방송되었다. <SF8>은 MBC의 방송 전, 8개의 에피소드 전편의 감독판이 웨이브를 통해 독점 선공개 되었다. <SF8>은 과학적 상상력을 토대로 미래사회의 기술에 따른 인간생활의 변화를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 각 에피소드 방영 시간이 45~55분 정도로 60분을 넘지 않는다는 점 등에서 영국 드라마 <블랙미러>를 연상하게 된다. 찰리 브룩커가 제작한 SF시리즈 <블랙미러>는 2011년 12월 영국 Channel 4에서의 첫 시즌을 시작으로 현재 시즌5까지 제작되었다. 시즌3부터는 넷플릿스를 통해 공개되고 있다. <블랙미러>는 각 에피소드 마다 과학적 상상력을 담은 다양한 스토리를 다루고 있지만, 미래 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디스토피아적 관점을 다룬다는 점에서 일관된 방향성을 보인다. 이에 비해 <SF8>의 경우 8명의 감독에 의해 독립된 8개의 에피소드가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미래 사회와 과학기술에 대한 다양한 주제와 개성 있는 연출들을 볼 수 있다.

이 드라마는 미래 과학 기술에 대한 경고 뿐 아니라 기술 혁명이 가져다 줄 변화에 대한 낙관적 시선도 포함되어 있다. <블링크>(한가람 연출, 강산 극본)는 어린 시절 자율주행 차 사고로 부모를 잃은 형사 지우(이시영)가 자신의 뇌에 이식한 인공지능 파트너 서낭(하준)을 통해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이야기이다. <블링크>는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자율주행 시스템, AI 기술에 대한 긍정적 시선을 담고 있다.

 

사진출처:imbc.com
사진출처:imbc.com

 미래사회의 기술혁명이 가져다 준 환경에서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이나 선택에 대한 고민도 <SF8>에서 공통적으로 다루고 있는 주제이다. <만신>(노덕 연출, 김민경 극본)은 운세 서비스 ‘만신’을 맹목적으로 믿으며 자신의 삶을 운명에 맡기는 미래 사회를 그리고 있다. 드라마 <만신>은 ‘만신’의 정체를 알기 위해 앱 개발자를 찾아 나선 선호(이연희), 가람(이동휘)이 결국 ‘만신’이 가진 기술적 한계를 밝히고 인정하게 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인간 증명>(김의석 연출·극본)은 인간의 뇌 일부와 인공지능을 결합하여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기술에 대한 상상력을 토대로 하고 있다. 사고로 죽은 아들의 뇌 일부를 아들의 모습을 한 안드로이드에 결합시켜 아들을 소생시킨 혜라(문소리)는 어느 날 안드로이드 로봇이 아들의 영혼을 삭제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드라마는 기억과 영혼이 사라진 겉모습만 남은 로봇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미래사회 인간의 존재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인간증명>처럼 미래사회 정체성에 대한 문제에 대해 답을 내리기보다 열어놓은 경우도 있지만, 인간의 의미에 무게를 두는 경우도 있다. <증강 콩깍지>(오기환 연출·극본)는 증강현실을 이용한 데이트 앱을 통해 가상 연애만을 즐기는 미래사회에서 살아가는 지원(유이), 민준(최시원)이 실제 만남을 통해 사랑을 이루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드라마는  과학기술에 맹목적으로 끌려 다니지 않는 인간의 선택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SF8>은 미래사회에 대한 상상력 뿐 만 아니라 다가올 미래 사회의 풍경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를 돌아보게 한다. AI 간병로봇에 대해 다루고 있는 <간호중>(민규동 연출, 김지희 극본)은 환자와 보호자의 생존 문제를 두고 딜레마적 상황에 빠져있는 로봇의 입장을 통해 죽음에 대한 종교적, 과학적 논란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우주인 조안>(이윤정 연출, 문주희 극본)은 미세먼지가 심각해진 2046년 항체 주사를 통해 다른 수명을 살아가는 계급사회를 보여주고 있다. 이 드라마는 예측할 수 없는 환경의 변화, 전염병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경제적 차이에 따른 기술적 접근의 차별 등 현재 우리에게 당면한 과제를 다루고 있다. <하얀 까마귀>는 구독자 80만 명을 지닌 게임BJ 스타 주노(하니)가 특정 사건으로 잃어버린 구독자 수와 대중의 관심을 회복하기 위해 무모한 도전을 한다는 이야기이다. 주노는 게임 참여자의 트라우마를 이용한 가상게임을 시도하는데, 주노의 상처를 즐기는 관중들의 모습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타인의 사생활 침해, 관음증 등을 재현하고 있는 듯하다. <일주일 만에 사랑할 수 없다>(안국진 연출, 김민경 극본)는 지구 종말까지 일주일이 남은 시간 동안 지구 종말을 막으려는 초능력자 혜화(신은수)와 자신이 초능력자라는 사실을 지구 종말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알게 된 남우(이다윗)의 지구 종말을 멈추기 위한 과정을 담고 있다. 남우의 초능력이 과거로 돌아가 기억을 잊어버리는 것으로, 4번이나 지구 종말을 경험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드라마는 취준생으로 살아가며 가장 힘들었던 남우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마지막 장면으로 보여준다. 고시원에서 취업을 준비하는 주인공 남우의 모습, 변하지 않는 현실과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지구 종말이라는 문제는 우리 사회 일면을 제시하는 것 같다.

 

사진출처: imbc.com
사진출처: imbc.com

플랫폼 변화에 발맞춘 새로운 도전

SF장르는 한국 방송에서는 흔하지 않은 장르 중 하나였다. 단막극에서 실험적인 소재로 종종 다루기는 했지만, 흥미로운 단편적 차원에서 사용했을 뿐이지 본격적인 SF드라마라고 보기는 힘들다. 최근 인공지능 로봇에 대한 주제를 다룬 <보그맘>(2017, MBC), <로봇이 아니야>(2017, MBC), <너도 인간이니>(2018, KBS) 등 SF장르 몇 편이 방영되었지만, 대중에게 SF드라마는 여전히 낯설어서 폭발적 반응을 이끌어내기 쉽지 않았다. SF드라마는 제작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MBC, 웨이브, 한국영화감독조합의 선택은 제작 방식의 도전이기도 했지만, 장르적 도전이기도 했다.

<SF8>은  8편 중 <만신>을 제외한 7편이 국내 SF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SF장르를 선택한 후 제작진은 국내 SF 단편소설을 조사하고 선별하여 적극적인 원작 발굴 작업을 거쳤다고 밝힌 바 있다.[2] 또한 각 에피소드를 연출한 감독이 원작 선택 이후 창작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하지만 창작 SF드라마에 대한 목마름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제 막 시작 단계에 있는 합작 드라마가 모든 것을 만족시켜줄 수는 없을 것이다. <SF8>은 다양한 콘텐츠 창작과 개발이 활발해지고 있는 시점에서 각 플랫폼이 개별적 방식으로 대중을 만나는 것이 아닌, 협력적 관계가 필요함을 제시하는 사례 자체라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 있는 작업이다. 앞으로 어느 한 가지 방식을 고집하지 않고, 각자가 가진 강점을 살려 다양하고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한다면, 우리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콘텐츠가 탄생할 것이다.

 

 

참고자료

[1] <SF8> 문형찬 프로듀서 인터뷰, 한국사회복지저널(http://www.ksw-news.com)

[2] <SF8> 김동현 프로듀서 인터뷰, 한국사회복지저널(http://www.ksw-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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