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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진수의 시네마 크리티크] 도시 빈민 여성을 통해 구현되는 이상적 공동체 이야기, <꼬방동네 사람들>
[성진수의 시네마 크리티크] 도시 빈민 여성을 통해 구현되는 이상적 공동체 이야기, <꼬방동네 사람들>
  • 성진수(영화평론가)
  • 승인 2020.09.14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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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꼬방동네 사람들>(배창호, 1982)은 고층 빌딩과 승용차의 조명으로 화려하게 물들어가던 고도성장기 한국 사회의 이면, 판자촌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이동철의 동명 소설 중 ‘검은 장갑’이라는 제목의 에피소드를 모티프로 한 이 영화는, 도시 빈민을 주인공으로 한다는 점에서 2년 전 개봉했던 <바람불어 좋은 날>(이장호, 1980)이 연상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바람불어 좋은 날>과 <꼬방동네 사람들>, 두 작품은 도시 빈민의 현실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하지만 그 접근법은 다르다. <바람불어 좋은 날>이 상경한 세 젊은이를 주인공으로 부르주아와 빈민이 대립하는 사건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 구조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반면, <꼬방동네 사람들>의 이야기에서는 계급 간 대립 구조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이 영화는 빈민촌인 꼬방동네와 그들의 일상 자체에 주목한다. <꼬방동네 사람들>에서 리얼리즘은 한 사람이 겨우 빠져나갈 수 있는 미로 같이 좁은 골목, 철길에서 노는 아이들, 노천에 자리한 재래식 공용 화장실과 그 앞에 줄선 사람들, 그리고 동네 뒤편으로 언뜻 언뜻 포착되는 아파트의 실루엣 등, 영화의 도입부에서부터 세심하게 구성된 미장센에 빚지는 바가 크다.

 

도시 빈민의 삶에 대한 꼼꼼한 스케치 위에 전개되는 영화의 주된 이야기는 명숙(김보연), 주석(안성기), 태섭(김희라), 세 남녀의 멜로드라마인데, 계급이나 사회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는 이 멜로드라마는 종종 리얼리즘 영화로서 <꼬방동네 사람들>의 약점으로 지적된다. 그러나 계급성이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이 영화의 멜로드라마가 폄하하는 것은 부당하다. 많은 멜로드라마들이 그렇듯이, <꼬방동네 사람들>도 사회의 현실과 연루되어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 명숙은 꼬방동네의 유명한 일벌레이자 돈벌레이다. 명숙은 동네의 작은 가게를 인수하기 위해 서너 시간만 수면을 취하면서 닥치는 대로 일을 한다. 명숙에게는 초등학교에서 세 번이나 쫓겨난 말썽 많은 어린 아들 준일이 있다. 명숙과 같이 사는 태섭은 명숙이 벌어 놓은 돈으로 놀음을 하면서 지내는데, 친아들이 아닌 준일과는 사이가 좋지 못하다. 명숙이 억척스럽게 모은 돈으로 동네 구멍가게를 인수하고 고사를 지내는 날, 준일의 친아버지이자 그녀의 첫사랑인 주석이 나타나면서 세 남녀의 삼각 멜로드라마가 시작되고, 그 결말은 명숙이 주석과 함께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언뜻 상투적인 멜로드라마처럼 보이지만, 명숙과 주석, 그리고 태섭의 과거 사연이 하나씩 소개되고 세 사람의 갈등과 준일을 둘러싼 사건이 펼쳐지는 동안 드러나는 명숙의 삶과 내적 갈등을 통해서, 우리는 영화가 표면적으로는 말하지 않은 명숙과 관계된 더 많은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부모와 함께 살던 명숙은 버스에서 주석을 보고 첫 눈에 반한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는 소녀였다. 주석이 소매치기 혐의로, 그리고 소매치기 전과 때문에 억울하게 교도소를 들락거리는 동안 명숙은 지고지순하게 주석을 기다렸다. 서울로 상경한 후 주석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 빈곤한 하루하루를 보낼 때도 명숙은 스스로 일거리를 찾아 나서기 보다는 주석에게 기대는 소심한 사람이었다. 이러한 과거의 명숙과 달리, 현재의 명숙은 “이 동네 돈은 준일 엄마가 다 긁어모은다”는 말을 듣고, 속옷 한 장 때문에 이웃 여자와 흙바닥에 구르기를 주저하지 않으며, 손에는 보따리를 머리 위에는 큰 대야를 이고 억척스럽게 인생을 꾸려가는 여성이다. 소녀같은 명숙과 억척어멈 명숙의 이 격차는 그 시간의 흐름동안 쌓였을 법한 사연의 두께에 다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 사연을 구구절절 보여주는 대신 두 장면을 통해 압축적으로 전달한다.

첫 번째 장면은 자기 키를 훌쩍 넘는 이삿집을 직접 리어카에 싣던 명숙이 우연하게 땅바닥에 떨어져 있던 깨진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다. 비록 꼬방동네이지만 자리 잡고 살고자 그토록 노력했고 그 결과 삶의 터전이 될 작은 가게도 마련했지만, 결국에는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야만 하는 기구한 자신의 운명에 대한 연민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두 번째 장면은 최근에 꼬방동네에 흘러들어온 네 아이를 키우는 과부를 만나는 장면이다. 이삿짐이 실린 리어카를 끌고 마을 밖으로 나서던 명숙은 그녀가 하는 노점을 찾아간다. 과거에 태섭으로 인해 남편을 잃고 혼자가 된 그 여자는, 노점에 옹기종기 매달린 네 아이를 보는 명숙에게 아이들의 아버지가 모두 다르다는 말을 민망한 듯 농담처럼 건넨다. 그녀의 말에 명숙은 웃음을 짓다가 이내 눈물을 흘리고, 둘은 서로를 마주보며 눈물짓기와 웃기를 반복한다. 이어 명숙은 자신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돈을 그녀에게 건넨다. 그리고 돈 받기를 주저하는 과부에게 명숙은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것이 어떤지 잘 알고 있으니 그 돈을 받아두라고 말한다. 바로 그 순간, 거울 보듯 마주보며 울기와 웃기를 반복했던 두 여인의 부조리한 이미지는, 혼자 힘으로 아이를 지키며 삶을 이어나가야 하는 빈민 계급 여성이 마주해야만 하는 부조리한 존재 조건에 대한 인식의 순간으로 전환된다. 연이어 전개되는 이 두 장면은 영화 내내 꼬방동네 억척 여성의 전형적인 캐리커처처럼 그려졌던 명숙이라는 캐릭터에 다층적인 의미와 사실성을 부여하면서, 관객에게 예상치 못한 울림과 현실 인식의 계기를 제공하하는 순간이다.

<꼬방동네 사람들>의 플롯은 크게 두 개의 줄기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가 명숙의 이야기라면 또 다른 하나는 제목 그대로 꼬방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영화는 나와 함께 숨 쉬며 살던 다정한 이웃사람들의 솔직한 기록입니다. 갖가지 사연을 안고 정답게 훈훈하게 살던 꼬방동네 사람들, 같은 땅에서 숨 쉬며 살아가는 꼬방동네 사람들” 이라는 영화 도입부의 내레이션이 선언하듯이(이 내레이션은 원작 소설의 작가인 이동철의 목소리로 녹음되어 있다), 이 영화는 꼬방동네 사람들의 삶을 연민과 애정으로 조명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동네 노인의 회갑잔치 장면과 가게의 고사를 지내는 장면, 영화 후반부에 동네사람들이 공터에 둘러 앉아 공목사와 함께 기도하는 장면은, 꼬방동네 공동체를 도시가 잃어버린 이상향으로 그리려는 영화의 시도를 대표한다.

 

회갑 잔치와 고사 장면에는 함께 했던 명숙이 마지막 마을 사람들의 기도 장면에는 함께하지 않고 공동체 밖으로 혼자 떨어져 그들을 바라보기만 하는데, 그렇다고 그녀가 영화가 지향하는 공동체와 상충하는 인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명숙이 곧바로 과부를 찾아가 자신의 전 재산을 나누면서 영화가 꿈꾸었던 공감과 연대의 행위를 직접 실천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명숙은 영화가 낭만적으로 바라보는 꼬방동네 사람들이라는 집단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도시 빈민 여성이라는 개별적인 정체성을 대표하는 캐릭터인 셈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명숙 덕분에 <꼬방동네 사람들>은 도시 빈민의 삶과 도시 빈민 여성의 삶이라는 보편적이고도 특수한 현실을 재현하는 영화에 이르게 된다.

 

 

글·성진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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