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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터즈 칼럼] 아기와 페미니즘, 그리고 미투
[서포터즈 칼럼] 아기와 페미니즘, 그리고 미투
  • 민보영(르디플러)
  • 승인 2020.09.15 13: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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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살배기 아기를 키운다. 설명하지 않아도 그려지겠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은 그렇지 않을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르다. 뾰족한 가구 모서리에 푹신한 보호대를 덧붙이고, 내 취향과 무관하게 집 바닥은 넘어져도 다치지 않는 푹신한 매트를 깔아야 한다. 음식은 가급적 맵거나 짜지 않은 슴슴한 종류로 먹는다. 10시 전에는 같이 잔다. 밤이 깜깜한 이유는 모두가 자는 시간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핸드폰을 보거나 책을 읽고 싶다. 취향과 기호가 확실한 나는 숨이 턱턱 막힌다.

그래도 보람이 더 크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모습도 그렇지만, 내가 이 무력한 존재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만큼 힘이 있다는 효능감을 느낀다. 아이가 생기고 나서야 내가 누리는 많은 자유가 힘과 인지능력의 우위에 있는 어른의 소유물이라는 점을 알게 됐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춤으로써, 어른보다 강자인 어른의 위계를 올바른 방향으로 쓰는 느낌이다. 나와 다른 존재와 공존하기 위한 노력이 결국 내게 기쁨으로 돌아온다.

남성과 여성 모두가 페미니즘을 알아야 하는 이유도 비슷하지 않을까. 신체와 연령의 차이가 어른과 아이의 위계를 만들듯, 남성과 여성도 신체와 성별의 차이를 통해 위계를 만든다. 그동안 신체와 성별에 따라 비교적 높은 임금과 경제·사회적 지위를 누려왔던 남성은, 그렇지 않았던 않은 여성과 공존하기 위해 그동안 누려왔던 권리에 대해 돌이켜봐야 한다. 이런 노력 후에는 "남자는 태어나서 평생 세 번 울어야 한다"는 식의 억울한 선언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자신의 성별 때문에 개인적인 취향과 무관한 직업을 갖지 않아도 된다. 여성학자 정희진의 주장처럼 페미니즘은 어느 한 쪽의 권리만을 주장하는 이기적인 담론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실천적 학문인 셈이다.

이런 생각의 변화는 내게도 뜻밖이다. 김희정 전 충남도 정무비서가 상사에게 당한 일을 세상에 알릴 때였다. 나는 페미니즘에 관심이 없었고, 심지어 그의 의도를 의심하기까지 했다.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로 떠오르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를 한 방에 날릴 만큼 여파가 컸기 때문이다. 나는 386세대의 후배의 후배가 대학에 유산처럼 남긴 진보 담론을 흡수한 마지막 세대였다. 주한미군, 통일 등 학보사에서 배운 세상은 고등학교 때 접했던 교과서처럼 고요하기보다, 갖가지 모순이 들끓고 변화의 목소리가 분출하는 곳이었다. 각 분야의 진보 담론에 매료됐고, 이들 각 분야에 '정치적 올바름'을 갖는 일만이 내가 존재하는 이유인 것처럼 느껴지던 때였다.

일을 하고 아이를 돌보며 깨달았다. 일과 삶의 영역에서 갈등을 조정하는 영역이 '정치', 자신 뿐만 아니라 타인과 공존하려는 시도가 곧 '정치적 올바름'이다. 정치적 올바름이 손에 잡히지 않는 영역이 아니라는 얘기다. 정치적 올바름은 내가 속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위계와 부당함을 바로잡으면서 실현해야 한다. 이 사회에선 아동과 어른, 남성과 여성, 장애인과 비장애인 등 다양한 차이가 곧 차별이 된다. 박원순 전 시장의 부당한 행동을 알리기 위해 준비했던 피해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상사와 부하직원, 남성과 여성의 위계를 동시에 떠안고 있었던 박 전 시장과 피해자의 폭력적인 관계를 바로잡는 일이 자신의 삶을 통틀어 그 어떤 일보다 중요했을지 모른다.

누군가는 피해자에게 '기획 미투' 의혹을 던지고, 다른 누군가는 '박 전 시장 그럴 줄 알았다'고 비아냥거린다. 그들의 주장을 뒤짚을만한 날카로운 논리나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 하지만 그런 의견이 일이나 삶의 영역에서 차별받는 이들을 좀 더 살만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상대방을 향한 과도한 비난이나 편들기, 혹은 뜬구름 잡기식 주장은 결국 그 결과로 얻는 이득을 노리는 경우를 몇 번 겪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이득을 취하려는 시도보다, 박 전 시장의 과오를 바로잡는 일이 그의 공을 무색하지 않게 만드는 길일 수 있다.

피해자의 '미투' 과정에서 나온 숱한 논쟁과 결론이, 우리 사회가 그동안 배제해 왔던 여성의 인권과 목소리를 제도에 좀 더 반영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 열매는 워킹맘에 느끼는 유리천장에 가 닿을 수도 있고, 내 아이가 'N번방' 사건의 피해자나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할 수도 있다. 풋내기 시절 믿었던 통일 문제나 주한미군 문제보다, 일과 삶의 영역에서 드러나는 갈등의 조정이 우리 사회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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