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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의 문화톡톡] 교차와 순환은 이뤄질 수 있을까 <하워즈 엔드>
[김희경의 문화톡톡] 교차와 순환은 이뤄질 수 있을까 <하워즈 엔드>
  • 김희경(문화평론가)
  • 승인 2020.09.29 0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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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극단에 있던 존재들도 언젠가는 마주하게 된다. 시간이 흐르고, 그 흐름에 맞춰 각자 유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교차점이 생겨난다. 이 존재들은 이 교차점 주변을 맴맴 돌다 때론 부딪히기도 하고, 어느 순간 혼재되기도 한다. 시대와 지역을 관통해 나타나는 현상이 아닐까 싶다. 최근 재개봉한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하워즈 엔드>가 1992년 작품임에도 낯설거나 촌스럽게 느껴지지 않고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이 보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계급을 연결하는 교차점

<하워즈 엔드>는 20세기 초 영국을 배경으로 한다. 기존의 관념이 여전히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으면서도 새로운 변화에 대한 열망이 싹트던 시기와 공간이다. 마차가 다니는 동시에 기차가 다니고 있는 것은 이를 상징한다.

영화는 이 안에 자리한 계급의 문제를 들춘다. 초반엔 상류층, 중산층, 빈곤층이라는 세 계급이 명확히 나눠져 있다. 그리고 영화가 진행될수록 양 극단에 있는 상류층과 빈곤층은 중산층의 자매 마거릿(엠마 톰슨), 헬렌(헬레나 본햄 카터)을 통해 연결되고 마주하기 시작한다. 이 자매가 곧 교차점이 되는 셈이다.

변화의 물결에도 계급이란 사회의 견고한 벽을 무너뜨리는 것은 쉽지 않다. 영화에서 마거릿과 상류층 헨리 윌콕스(안소니 홉킨스)가 만나는 과정, 헬렌과 빈곤층 레너드 바스트(사뮤엘 웨스트)이 알게 되는 과정은 이 불편한 진실을 함축하고 있다. 마거릿은 헨리의 전 부인의 친구가 된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는 일반적인 친구 사이의 대화와는 사뭇 다르다. 엄연한 신분의 차이가 강조되는 말들이 오간다. 전 부인은 각 계급이 사는 집, 여성 참정권에 대한 반대 의사를 거리낌없이 드러낸다. 이후 마거릿이 자신과 오랜 시간 교류했던 인물의 남편 헨리와 결혼하는 과정은 다소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는 이를 통해 그런 인위적인 결합이 있어야만 계급의 혼재가 1차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냉정한 현실을 드러낸다.

헬렌이 레너드를 만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영화은 두 사람을 연결할 때 지극히 우연성에 기댄다. 비 오는 날 우산에 의해 인연을 맺게 된다. 이들 역시도 서로 상이한 공간에서 각자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서로를 인지하고 대화를 하려면 우연성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영화는 이 견고한 벽을 허무는 역할을 자매에게 부여한다. 자매는 자신들과 다른 계급이며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적극 포용하고, 이들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는다. 마거릿은 헨리 전 부인, 헨리에 대해 그들의 편협한 생각과 부정한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계속 문을 두드린다. 헬렌이 가지는 레너드에 대한 책임감도 투철하다.

고통을 경유해 도달한 순환

교차점이 되는 자매들도 완전한 중립을 유지하는 것은 어렵다. 헬렌은 헨리와 결혼을 하게 되고, 헬렌은 레너드의 아이를 갖게 된다. 이것은 단순한 계급의 또 한번의 구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헨리로 상징되는 물질성, 레너드로 표현되는 낭만성이 중간자들 각각에 깃드는 정도와 방식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는 마지막까지 순환의 여지를 남겨두려 한다. 이를 구현하는 인물은 교차점에 있는 자매 중에서도 마거릿이다. 마거릿은 감정에 치우치는 헬렌과 달리 중재자적인 성격을 띤다. 양 극단의 분열과 충돌을 막고자 대화도 반복적으로 시도한다.

그리고 결말에선 마거릿을 중심으로 이들의 교차와 순환의 가능성이 새롭게 제시된다. ‘하워즈 엔드’라는 영화 제목과 동일한 집이 마거릿에게 주어지고, 이곳에서 세 계층이 함께 머물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잘못된 교차와 순환도 발생한다. 레너드의 불행은 처음엔 헨리로부터, 나중엔 헨리의 아들로부터 찾아온다. 즉 상류층의 오만과 횡포가 빈곤층의 불운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마거릿, 헨리, 헬렌, 그리고 헬렌과 레너드의 딸이 한 공간에 존재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복잡한 오류와 고통이 지나고 나면 언젠가 진정한 순환이 이뤄질 수 있음을 암시하며.

 

*사진:네이버영화

*글:김희경(문화평론가)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겸임교수

출처 : 르몽드디플로마티크(http://www.ilemon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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