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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영의 문화톡톡] ‘감정 없는 캐릭터’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 : <비밀의 숲>, <악의 꽃>
[문선영의 문화톡톡] ‘감정 없는 캐릭터’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 : <비밀의 숲>, <악의 꽃>
  • 문선영(문화평론가)
  • 승인 2020.10.05 11:3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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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TV드라마에는 감정이 없는 인물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범죄 드라마는 감정적 요소가 제거되거나 억압된 주인공을 사건의 중심이자 문제를 풀어가는 열쇠로 설정한다. 선천적으로 감정이 제거된 인물이 주인공이 되어 부패한 사회나 공동체의 문제를 풀어가는 해결사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사회적 환경으로 감정을 상실한 인물이 범죄자라는 낙인으로부터 벗어나 감정을 회복하는 피해자로 재현되기도 한다. 감정 없는 인물이라는 설정을 다룬 드라마에서 감정은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삭제해야 할 요소이기도 하고, 진정한 인간성 회복을 위해 복원해야 할 것이기도 하다. 다양한 감정들을 쏟아내는 데 집중한 시대, 감정이 넘쳐나는 시대에, 감정불능 캐릭터를 다른 방식으로 다루고 있는 두 드라마가 있다.

선을 위한 감정 제거: <비밀의 숲>

<비밀의 숲>(tvN)의 검사 황시목(조승우)은 뇌선엽 제거 수술로 공감능력이 결여된 인물이다. 감정이 제거된 황시목은 인지능력이 뛰어나다. 의학적으로 공감능력이 결여되고 인지능력이 과도하게 발달한 사람들은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지닌 소시오패스(sociopath)로 규정되는데, 이들은 감정이 담긴 사회적 신호에 적절하게 반응하지 못하는 대신 전략적이고 지적이고 대담하다.[1] 선척적인 뇌의 문제로 감정이 제거된 황시목은 소시오패스적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TV드라마에서 소시오패스 인물은 범죄자 캐릭터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점을 생각해볼 때, <비밀의 숲>의 황시목은 새롭고 독특한 인물이다.

tvN 비밀의 숲 공식홈페이지
tvN 비밀의 숲 공식홈페이지

황시목은 범죄와 폭력이 난무하는 감정과잉의 범죄사회에 연루되지 않는 이성적이고 지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감정은 주체가 놓여있는 구체적 맥락과 상황에 대한 이해와 판단을 포함하는데, 이는 사회적으로 습득되고 공유된 것이다. 외부 대상이나 세계에 대한 감각이 인지와 판단 및 평가와 결합하여 복합적으로 일어나는 활동이자 실천이라는 점에서 감정은 단순한 감각의 차원을 넘어선다.[2] 감정은 자아와 타자 사이의 관계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사회적 맥락 안에서 이루어진다. <비밀의 숲>에서 감정이 제거된 황시목의 경우, “부패한 사회에서 습득한 감정적 공유가 불가능하다. 그는 오로지 단서에 의존하여 사건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과학적으로 분석한다. 감정을 제거하고 오직 냉철한 이성과 합리적 인지능력이 극대화된 황시목은 학연, 지연, 혈연으로 얽힌 소수의 특권 집단이 모든 권력을 장악한 부패사회를 투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3]

그러나 이성적, 객관적 판단을 위해 사사로운 감정에 휩쓸리지 않을 황시목의 감정도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물론 수술로 제거되었지만 감정 자체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표출되지 않을 뿐이지, 어딘가에 쌓여있다. 그는 뇌선엽의 문제로 예민한 감각을 지녀서, 외부환경에 극도로 민감한 인물이다. 그의 민감한 감각들을 제거하지 않았다면, 그는 타인의 감정에 과도하게 몰입하는 감정 과잉 인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 쌓여있는 그의 감정들은 주변 인물이 위험에 빠지게 될 경우 신체적 증상으로 표출된다. 시즌1에서 황시목은 후배 검사 영은수(신혜선) 죽음 사건 이후 부작용(심한 두통)으로 쓰러진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시즌2에서도 선배 검사 서동재(이준혁)의 납치사건 이후 비슷한 증세를 보인다. <비밀의 숲>의 감정 없는 캐릭터에게 필요한 것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감정불능이 아니라, 올바른 판단과 선택을 방해하는 사사로운 감정의 제거였을 것이다. <비밀의 숲>에서 황시목의 감정은 부패한 사회에서 공공선 실현을 위해 필요한 제거였다.

악을 피하기 위한 감정 회복: <악의 꽃>

<악의 꽃>(tvN)의 도현수(이준기)는 연쇄살인범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범죄자라는 오해와 사이코패스라는 낙인 속에서 오랜 시간을 살아온 인물이다. 연쇄살인범 아버지의 죽음 이후 동네 사람들은 도현수를 연쇄살인범의 피를 물려받은, 비정상적인 인물이라며 잠정적 범죄자로 취급한다. 이장은 도현수가 귀신에 씌었다며 굿판을 벌이고,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폭력적인 상황에 동조한다. 결국 공동체를 운운하던 마을 이장의 행동은 아버지를 잃고 홀로 남은 남매의 재산을 노린 계략이었고 도현수를 둘러싼 거짓 소문을 믿고 따른 마을 사람들은 범죄에 동조한 한 가해자들이었다. <악의 꽃>에서 도현수는 사회에 의해 만들어진 ‘감정 없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tvN 악의 꽃 공식홈페이지
tvN 악의 꽃 공식홈페이지

<악의 꽃>이 흥미로운 지점은 한 인물이 소문에 의해 규정되어진다는 것 이외에 소문의 주인공 스스로도 자신의 존재를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현수는 사람들의 편견과 거짓 소문에서도 자신을 해명하거나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는다. 오히려 거짓과 소문을 스스로 수용한다. 그 이유는 연쇄살인범 아버지와의 기억과 관련되어 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비정상적 범죄 현장을 종종 목격했다. 아버지가 지하 작업실에 가둔 피해자에 대한 기억들은 아버지의 범죄에 가담하진 않았지만, 누군가 희생될지도 모르는 상황을 눈감아버렸던 죄책감으로 남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도현수가 자신도 아버지와 동일한 성향을 가졌다고 믿는 것은 죄책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그는 종종 아버지의 환영에 시달린다.) <악의 꽃>의 ‘감정 없는 인물’은 아버지 또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한 두려움에 대한 자기방어이자 유년시절 죄책감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체성이다. 타인과의 경험이 대부분 고통과 두려움인 그에게 감정의 제거는 다른 사람과의 교류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무기가 된다.

<악의 꽃>은 스스로를 ‘감정 없는 인물’이라고 믿는 도현수가 애초부터 그렇지 않았음을 증명해가는 방식을 통해, 그의 상처를 극복하고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 집중한다. 도현수는 타인의 감정을 읽어서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것만이 아닌,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누나를 위해 살인자가 되고,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악의 꽃>은 도현수가 자신을 사랑하는 아내 차지원(문채원)을 통해 잃어버린 감정을 회복하고 진정한 정체성을 찾는 절절한 과정을 그려낸다. 그러므로 <악의 꽃>은 ‘감정 없는 인물’이 다루면서도 과잉된 감정의 표출로 감성적이기까지 하다. 이 드라마를 ‘감성 추리’, ‘감성 스릴러’라고 이름 붙인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악의 꽃>은 ‘감정 없는 인물’이 발생한 원인을 추적하고, 감정 회복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묻는다. 여기서 감정은 사람과의 온전한 관계 안에서 형성된 진정한 인간성 회복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감정과잉시대, 이상적 인간상에 대한 기대

감정들이 폭발하는 시대, 감정과잉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TV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감정 없는 인물’은 적절한 상황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감정 조절 능력이 뛰어난 사람에 대한 기대일 수도 있다. 올바른 정의 실현을 위해서는 사사로운 감정을 접고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고, 타인의 어려움과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공감하는 인물. <비밀의 숲>의 황시목과 <악의 꽃> 도현수는 우리가 바라는 인간형에 대한 기대가 각각 반영된 것은 아닐까.

 

<참고자료>

[1] M.F. 토마스, <나, 소시오패스-차가운 심장과 치말한 수완으로 세상을 지배한다>, 김학영 옮김, 푸른숲, 2014, 17~22쪽.

[2] 이명호, <문화연구의 감정론적 전환을 위하여: 느낌의 구조와 정동경제론 검토>, <<비평과 이론>>24권, 2015, 114쪽.

[3] 이정옥, <부패사회를 해부하는 도덕이성과 정의구현이라는 환상>, <<대중서사연구>>24권 3호, 2018. 3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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