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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의 문화톡톡] 고요하지 않은 청춘의 초상- <마티아스와 막심>
[김희경의 문화톡톡] 고요하지 않은 청춘의 초상- <마티아스와 막심>
  • 김희경(문화평론가)
  • 승인 2020.10.26 0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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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초상은 고요하지 않다. 작은 소용돌이에도 낙엽이 이리저리 흩날리듯, 잔잔한 물결 속에서도 길을 잃듯 요란하고 혼란스럽다. 자비에 돌란 감독의 영화 <마티마스와 막심>은 세련되고 감각적인 영상과 스타일로 생기 넘치는 청춘의 소란스러움을 담아낸다. 요동치는 리듬에 맞춰 투박하고 때론 날카롭기까지 한 감정의 덩어리를 흩뿌리며.

 

청춘의 생기는 감정의 갑작스런 증폭에서 생겨난다. 절제와 포기라고 하는 성숙한, 그러나 고리타분한 수단이 폭발적으로 터져버리는 감정을 막아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인생에서 반드시 한번쯤 거치게 되는 정류장 같은 그 지점을 경유한다.

오랜 친구인 마티아스와 막심은 친구 동생의 영화 수업 과제 때문에 키스씬을 찍다 돌연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이 감정은 두 청춘을 통째로 흔든다.

그런데 영화는 초반엔 마티아스의 감정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중반을 지나서야 마티아스에서 막심으로 무게를 옮겨간다. 번듯한 직장을 가지고 여자친구도 있는 마티아스와 달리 막심은 가정 환경이 좋지 못하며 다른 나라로 일하러 떠나야 하는 상황이다. 영화가 초반 마티아스의 감정에 좀더 초점을 둔 것은 스스로의 틀을 깨는 것이 더 낯설고 익숙지 않은 인물로부터 억눌러도 억눌러지지 않는 감정의 폭발성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마티아스는 막심과의 키스 이후 극심하게 흔들린다. 카메라는 키스 직후 다음날 새벽 호수에서 수영을 미친 듯이 한 후 혼란스런 표정을 짓는 마티아스의 얼굴을 클로즈업 한다. 검푸른 호수 안에서 하염없이 헤엄을 치는 그의 모습에서 자신도 알 수 없는 감정의 심연으로 파고들고 있음을 알수 있다. 영화는 길을 잃었다며 겨우 호수 밖으로 나온 마티아스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막심의 얼굴을 잠깐 비춘다. 이를 통해 막심 역시 감정을 똑같이 겪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긴 한다. 하지만 이후 마티마스의 감정선을 충실히 따라가며 더 극심히 흔들리는 모습을 담아낸다. 마티아스는 자신의 마음을 생채기 내다 못해 막심에게도 상처를 주며 혼란스러워 한다.

 

 

영화는 이 혼란을 만들어낸 첫 키스를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갑자기 장면이 전환될 뿐이다. 자욱한 안개 속에 갑자기 들어선 듯한 두 인물의 감정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로 인해 관객들도 두 사람의 감정의 발화 순간부터 깊이까지 어느 것도 가늠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그래서 이 감정의 파고가 높고 거세게 느껴지게 된다. 발이 닿지 않는 물 속에선 깊이를 알 수 없어 수심이 더 깊게 느껴지는 것처럼,

두 인물의 고요하지 않은 마음은 정적이 아닌 소란스러움 속에서 부각된다. 두 사람을 제외한 주변 인물들은 영화에서 계속해서 많은 말들을 쏟아낸다. 친구, 가족 모두 말에 말을 이어가는데, 이 가운데서도 카메라는 몰래 막심을 바라보는 마티아스의 시선과 이를 느끼는 막심의 시선을 반복해 비춘다. 수많은 말로도 덮여지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감정은 일상의 모든 소란을 뛰어넘는 또다른 거대한 소란으로 존재한다.

 

 

거대한 소란은 두 사람을 제외한 소음을 떠났을 때 폭발한다. 두 사람은 덩그러니 놓이게 된 정적의 공간에서 억눌렀던 감정을 쏟아낸다. 첫 키스를 비추지 않았던 카메라는 두 사람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지는 순간부터 또 갑자기 멀어지는 순간까지 정교하게 잡아낸다. 두 사람만이 존재하는 고요 속에서 고요하지 않은 청춘의 초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것이다.

이들의 혼란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하지만 두 사람은 돌고 돌아 마주하게 된다. 청춘의 소란스러움은 그렇게 흔들리며 작은 꽃을 피어낸다.

 

*사진:네이버영화

*글:김희경(문화평론가)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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