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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훈의 시네마 크리티크] 스머프 나라의 스머페트, <도니 다코>
[최재훈의 시네마 크리티크] 스머프 나라의 스머페트, <도니 다코>
  • 최재훈(영화평론가)
  • 승인 2020.10.30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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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열로 마른 밤을 새워야 했던 10대 시절, 삶은 그 여린 하찮음에도 불구하고 꽤 무거웠다. 어린이라는 꼬치에서 탈피해 세상을 배워나가는 성인의 문턱에서 매일 마주치는 세상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의 진창이다. 그 속에서 헛발질 없이 걸어가기 위해서 아이들은 점점 상상력을 키워야 한다. 엔딩 장면이 뒤통수를 탁 치면 우수수 쏟아지는 퍼즐 조각을 끼워 맞춰야 하는 <도니 다코>는 잊고 있었던 10대 시절의 모순과 혼동 속으로 우리를 끌고 간다. 영화의 가장 중요한 모티브가 되는 시간 여행을 우리의 현실로 끌고 들어와, 맘 편하게 도니로 대변되는 우리의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그 시절의 그 먹먹함을 동감할 수 있다면 <도니 다코>는 기이한 SF가 아니라 기묘하지만 아릿하게 공감되는 성장영화가 된다.

 

<도니 다코> 오리지날 포스터 

<도니 다코>는 쓱 훑어보면 평온해 보이는 일상의 밑바닥에 깔린 모순, 그 모순을 견디지 못하는 10대 소년의 지독한 아픔을 그리는 것처럼 보인다. 우수수 떨어진 퍼즐의 각진 모서리를 찾아 만든 틀, <아이스 스톰> 이후 가장 위선적인 중산층 가정, 중국 이방인과 진보적 여선생이 끼어들 틈이 없는 학교는 숨 쉴 틈 없는 철옹성처럼 단단하다. 그렇다면 도니 앞에 놓인 모순은 무엇인가? 마치 최면에 걸린 듯 환상의 세계를 오가는 도니의 정신세계가 정신과 의사에 의한 진짜 최면과 만났을 때, 그제야 그는 사춘기 소년다운 자신의 환상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하지만, 최면에서 깨어났을 때 그를 맞이하는 것은 어느 것 하나도 아귀가 맞지 않는다. 정신 개조 운동가는 아동 포르노 수집가이고, 진보적인 여선생은 퇴출당한다. 이해심 많은 아버지와 자신을 암캐라고 부르는 아들마저도 포용하는 인자한 어머니, 그 이상적인 가정 속에 덩그러니 놓인 도니 다코의 그 존재 자체가 애초에 모순이다.

어린 나이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유명세를 견디지 못해 마약으로 몽롱하게 10대 시절을 보낸 적 있는 드류 베리모어가 선뜻 이 영화를 제작하겠다고 나섰던 것도, 이 기막힌 시나리오에 깔려 있는 그 도피적 환각의 매혹을 이해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도니 다코>는 도식적 설명이 가능한 영화가 아니다. 토끼 가면을 쓴 미래의 메신저 프랭크와 소통하는 도니의 정신세계, 죽음의 노인이 서성이는 가운데 도니가 발견하게 되는 시간 여행이 가능하게 하는 웜 홀. 정체불명의 비행기 엔진의 등장과 함께 도니의 주위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은 전후 시간 뿐 아니라 현실과 환상, 인과관계를 뒤엎는다. 마지막을 보고서야 회오리쳐 이어지는 비틀린 시간의 끈은 원인을 결과로, 결과를 원인으로 만든다. 이렇게 온통 먹빛으로 물들여 놓은 가운데 토막을 발견하게 되면 <도니 다코>는 더 이상 장르 영화로 불릴 가능성을 잃고 그저 그 자체가 장르인 영화가 된다.

 

<도니 다코> 스틸 컷

가장 순진한 여성성을 가진 것처럼 위장되어 있지만 스머페트는 스머프를 이용해 금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연금술사 가가멜이 스머프를 교란시키기 위해 만들어 놓은 기괴한 변종이었다. 사실 버섯 요새 속으로 뛰어들어 평온한 중산층 가정을 온통 휘저어놓은 스머페트의 존재는 늘 삶의 소동 속에 있다. <도니 다코> 속 토끼 가면을 쓴 메신저 프랭크일수도 근친 살해의 기억을 껴안은 자폐적인 소녀 그레첸일 수도 있다. 도니는 자신을 비행기 엔진 아래 희생양으로 만들면서 프랭크와 그레첸을 밝은 햇살 아래, 그 외피적 세계의 일원으로 남겨 둔다. 어쩌면 삶의 눅진한 이물감을 느끼고 있는 도니 자체가 스머페트인지도 모르겠다. <개구장이 스머프> 속에서는 파파 스머프가 마법으로 스머페트를 구원한다. 마법이 풀리는 순간, 혹은 마법에 걸리는 순간 그들은 다시 평화의 외피로 돌아간다. 평화라는 위선으로 덮인 파란 자기들의 세계로…….

 

<도니 다코> 스틸 컷

사진출처_네이버영화_도니 다코

 

글·최재훈

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37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등단하였다. 2019년 제3회 르몽드 영화평론가상을 수상하였다. 2018년 이봄영화제 프로그래머, 3회 서울무용영화제 심사위원으로 활동했으며 객석, 문화플러스 서울 등 각종 매체에 영화와 공연예술 관련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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