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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지의 문화톡톡] 세계의 심연과 표면으로부터
[이은지의 문화톡톡] 세계의 심연과 표면으로부터
  • 이은지(문화평론가)
  • 승인 2020.11.02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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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는 언어와 세계의 심연 : 『디자인하우스 센텐스』(민음사, 2020)

 

출처 : 민음사
출처 : 민음사

함기석의 시집 『디자인하우스 센텐스』의 시들은 세계의 시원(始原)에 닿아 있다. 무겁고 육중한 닻을 세상의 끝까지 깊숙이 밀어내리는 원동력은 극도로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시의 공간, 즉 ‘시원(詩原)’을 조형함으로써 발생한다. 시가 현실과 이질적인 공간을 생성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함기석의 시들은 이를 우주적 스케일에 가깝게 수행한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다. 그의 시들은 무한에 가깝게 팽창하거나 영원에 가깝게 침잠하는 식으로 새로운 공간을 창출한다.

이 공간을 형성하는 논리는 온갖 유희적인 것으로 가득 차 있다. 마치 시의 우주에는 시가 할 수 있는 모든 놀이가 들어 있어야 한다는 듯이. 시의 도구인 언어의 원초적인 힘인 미메시스를 동력으로 삼아, 서로 무관해 보이는 갖은 기호들이 서로 얽혀 시를 이끌어간다. 가령 「오렌지 공주가 사는 섬나라」에서 섬에 도착한 아이들은 공주가 사는 성문 앞에서 빙글빙글 춤을 추며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움투툼~ 움투툼~ 꿈꿈꿈~/꿈속의 춤 속의 숨 속의 움(Um)!/(…)/움(Womb) 속의 툼(Tomb) 속의 옴(Om)!” 꿈과 춤과 숨이, 자궁(Womb)과 무덤(Tomb)과 힌두교의 진언(Om)이 음운론적 유사성으로 말미암아 아이들의 노래 구절로 한데 묶인다. 세계의 시작과 끝을 노래로 부르며 유희하는 아이의 과감함은 굳게 닫힌 성문도 열리게 한다.

언어의 유희를 통해 세계의 근원에 닿을 수 있는 까닭은 그것이 언어를 어떠한 세속적 목적과도 무관하게 온전히 언어 자체로 존재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시인에게 언어란 꽃씨와 같이 폭발적 생명력이 잠재되어 있는 “지상과 천상,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둥근 문”이자 “모든 물(物)과 빛/시간과 어둠이 점으로 응집된//광대한 우주”와 같다.(「포텐셜 에너지-꽃씨」) 대지에 발이 묶였을 때 언어는 한낱 의사소통 수단에 불과하지만, 잠재력이 봉인된 채로 대지에 심어졌을 때 언어는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대지에 심어진 언어는 ‘꽃’이자 ‘시’가 된다.

언어가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세계는 현실과는 전연 다른 차원의 공간이다. 그곳은 ‘웃다’가 울고 ‘울다’는 웃는 세계, ‘말한다’가 입이 없어도 말하는 세계, “인간의 문자로 서술될 수 없는 흙비”가 내리는 세계이다.(「세 개의 격자 눈이 혼색된 유머 세계-Composition I」) 따라서 이 세계에 아이들이 자주 출몰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회의 관습과 질서에 포섭되지 않은 아이의 천진함, 세모꼴을 네모틀에 구겨 넣는 데 주저함이 없는 아이의 무구함이야말로 이 세계를 추동하기에 가장 알맞다.

 

보보는 슬플 때

때를 종이비행기로 접어 옥상에서 날리고

슬픔은 개구리로 접어 간지럼을 태우며 논다

논다랑 논다

공기놀이하며

―「파파(papa)의 파열음 /p/가 도난당한 사건」 일부

 

파열음 /p/의 파파(papa)와 비음 /m/의 마마(mama) 사이에서 태어난 파열음 /b/의 보보(bobo)는 오직 언어의 음가만을 통해 존재하고 세상을 바라본다. 규칙에 얽매이지 않은 무중력과 같은 상태에 놓인 보보는 슬플 때면 눈물을 흘리거나 위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슬플’과 ‘때’를 갖고 논다. 심지어는 ‘논다’와도 논다. “보보가 날면” 비읍이라는 같은 음가를 공유하는 “빗방울이 난다”. 또 주어의 자리를 무엇이든 차지할 수 있으므로 “돌도 날고 집도 날고 오랑우탄도 날고 마마도 난다”. 결국 보보가 날면 세계 전체가 난다. 오직 언어의 가능성에 기댄 놀이만으로 시는 세계를 움직인다.

아이의 행보는 자연스레 시의 공간을 다원화한다. 「빠세 약수터 가는 길」에서 시적 화자는 그림을 그리고, 한 아이가 화실 문을 열고 들어와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 화자가 그리는 그림을 따라 아이는 흥겹게 걸음을 옮긴다. 화자가 그림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데 그림 속에서 사라진 아이는 어느새 벨을 누르고 대문 앞에 서 있다. 물감이나 연필 대신 “밑으로” 그림을 그린 화자를 “미트로”라고 부르며 아이는 환하게 웃는다. 아이는 시와 시 속의 그림을 자유로이 드나들 뿐 아니라, 자신에게 그러한 경로를 안내한 시적 화자를 직접 명명하는 데도 거리낌이 없다.

아이의 천진함처럼 어떠한 경계나 한계를 모르는 시들은 종국에는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시를 써내려가기도 한다. 가령 어떤 시는 시집에 수록된 시들의 발표 지면을 열거하는 것으로 시를 쓴다(「목련 공원, 열세 개의 종이 무덤」). 어떤 시는 수록된 시들을 시계 위의 숫자로 배열하는 것으로 시를 쓴다(「모자이크 시계―Composition 0」). 시들이 또 다른 시 속에서 전혀 새로운 논리로 스스로를 조형하는 큐비즘적인 무한 분열 속에서, 시는 새로운 공간으로 거듭나고 또 파괴되기를 반복한다.

 

차원이 뒤틀린 잠 속에서 꿈을 꾸며 당신은 지금

‘당신은 지금 당신을 꿈꾸고 있다’고 읽고 있다

그렇게 당신도 나도

과거와 미래로, 그 균열의 크레바스로

― 「타임커피숍 센텐스」 일부

 

시의 안과 밖을 유연하게 드나들 뿐 아니라 시의 내부를 “다양체(manifold)”로 구성하는 아이-신의 전능한 유희는 종이 위에 적힌 글자로서 평면적인 시의 세계를 우주적 차원으로 도약시킨다. 현실의 감각으로 포착 가능한 그 어떤 인과성도 허용되지 않는 이곳에서 우리는 비로소 현실을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다. “조물주라고 추측”되는 물고기 “꽐라”가 어항 속에서 제멋대로 치는 헤엄에 어항 바깥 공간이 뒤틀리고 구부러지는, 조물주의 심술만큼 세계도 뒤틀리는 요지경 속에서 현실은 균열을 드러낸다(「타임커피숍 센텐스」). 이처럼 시인은 만물에 깃든 신의 흔적을 뒤적여 끄집어놓기 위해 아이의 무구함으로 시를 쓴다. 그의 시들은 달팽이의 머리 위에 놓인, “물결을 타고 하늘 가득 퍼지는 어둠과/어둠 저편 우주와 우주 밖의 더 큰 햇빛 우주들이/모두모두 들어 있는 작디작은//물방울 모자”와 같은 셈이다(「외로운 산보」).

 

움직이는 그림과 세계의 표면 : 『그녀는 내 그림 속에서 그녀의 그림을 그려요』(문학동네, 2020)

 

출처 : 문학동네
출처 : 문학동네

 

함기석의 시들이 언어의 유사성을 원동력으로 세계를 기하학적으로 조형한다면, 김참의 시들은 이미지의 유사성을 원동력으로 세계를 초현실적으로 가공한다. 함기석의 시들이 세계의 심연을 향해 무서우리만치 천진한 유희의 난장을 펼친다면, 김참의 시들은 세계의 표면을 표표히 유영하며 그 이면을 회화적으로 포착한다. 김참의 시 속에서 이미지들은 구름처럼 고요하고 느리게 떠다니며 유화와 같은 밀도의 풍경을 생성한다. 시 속에서 무수한 이미지가 연속적으로 나열됨에도 영화적인 속도감을 보여주기보다 한 폭의 그림처럼 정적으로 읽히는 까닭은 이 때문이다.

 

구름, 내가 꽃향기 맡으며 계단을 내려갈 때 뒷산을 넘어가던, 구름, 내가 달리는 기차 타고 검은 터널 빠져나올 때 포도밭 위에 떠 있던, 구름, 내가 수초 사이 작은 물고기 구경할 때 저수지 잔물결 위에서 출렁이던, 구름, 내가 참외밭을 지날 때 강 건너 산자락에 걸려 있던, 구름, 미끄럼틀 타던 아이가 엄마 손 잡고 집으로 돌아갈 때 아파트 피뢰침 꼭대기에 걸려 있던, 구름, 내가 구멍 뻥뻥 뚫린 커다란 달을 보며 음악을 들을 때 밤하늘을 횡단하던, 구름

― 「구름」 전문

 

위의 시에서 시인은 구름이 등장하는 무수한 풍경을 나란히 병렬하여 배치하고 있다. 서로 다른 여러 풍경들이 연달아 등장함에도 정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그 모든 풍경 속에 한결 같이 정체되어 있는 구름에 의한 것이다. 이러한 작법은 시 속의 풍경이 느린 유속으로 흐르게 하여 일상의 속도와는 다른 이질감을 부여하고 현실을 달리 보게 하는 효과를 낳는다. 느리고 꾸덕한 풍경 속에서 이미지들은 서로 간에 깊이 보다 간섭하며 퍽 낯선 감각을 연출한다.

이미지들 간의 간섭은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낯선 사람들의 형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집안에 낯선 사람들이 가득한데 “모두 모르는 사람이지만 모두 나를 알고 있”는 기이한 장면이 그러하다. 낯선 사람들은 나에게 안부를 묻고 집안일을 하고 생선 비늘을 벗겨 찌개를 끓인다. 모두 모르는 사람인데 모두 나를 알고 있으니 “어쩌면 여기가 내 집이 아닌지도 모른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친다(「손님」). 낯섦을 가까이 하는 것은 가장 익숙한 내 집도 내 집이 아닌 듯 여기게 한다. 혹은 한 마을의 집들이 크기나 구조가 모두 비슷하여 사람들이 하나같이 집을 잘못 찾아들기도 한다.

 

산책길에서 나는 가끔 파란 남방 입은 여자와 마주쳤다 어느 날 집에 돌아와보니 그녀가 우리집 소파에 누워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그녀에게도 가끔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했다 현관문 열고 들어가면 이웃에 사는 늙은 군인이 그녀의 피아노를 치는 날이 있다고 했다 나도 그녀도 늙은 군인도 늙은 군인의 딸과 그녀의 애인도 모두 집을 잘못 찾아와 깜짝 놀랐던 어느 일요일 오후 우리는 모두 사과처럼 붉어진 얼굴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 「나선의 마을」 일부

 

비슷하게 생긴 집에 잘못 찾아들어 어색하게 마주치는 마을 사람들처럼, 이미지들은 유사성을 매개로 끊임없이 마주치고 서로에게 개입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시집에서 자주 소환되는 이미지가 ‘기린’인 것은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이라는, 발음을 연습하기 위해 착안된 저 유명한 문장 속에서 기린은 음이 유사한 ‘그린’이나 ‘그림’과 더불어 정확히 읽히기 위해 소환되고 있다. 그러나 ‘기린’과 ‘그린’을 구별하고, 이 둘과 ‘그림’을 또 구별하여 또박또박 읽기란 쉽지 않다. 위의 시에서 얼굴을 붉히던 사람들처럼 ‘기린’과 ‘그린’과 ‘그림’은 의도치 않게 서로의 발음에 영향을 준다. 그런 기린은 시 속에서도 숱한 풍경 속에 출몰하며 초현실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반지하 연립주택 거실 벽지 속에 자리한 붉은 기린은 일몰에 하늘이 붉게 물들면 거리로 뛰쳐나와, 마을을 빠져나와, 붉은 포도가 열린 포도나무숲으로 달려간다(「붉은 기린」).

이미지들의 무한한 연쇄와 간섭은 시 속의 세계를 미로와 같이 조형한다. 그의 시들은 마치 캔버스 위에서 영원히 움직이는 그림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그림의 평면 속에 무한한 영원이 존재한다. 「내가 그린 그림들」에서 화자는 “거꾸로 매달린 남자와 여자”를 그렸지만 그들은 그림 속에 없고 어딘가로 가버렸다. 화자는 다만 파란 소파에 앉아 눈 내리는 거리를 보고 있다. 한편 바로 다음에 수록된 「그녀가 그린 그림들」에서 그녀 또한 “거꾸로 매달린 남자와 여자”를 그렸지만 “그녀는 내 그림 속에 있”고 “그녀는 내 그림 속에서 그녀의 그림을 그”린다. 남자와 여자는 그녀가 그리는 그림 속에도 있고, 내가 그린 그림 속에서 그녀를 바라보기도 한다. 남자와 여자는 여러 겹으로 중첩된 그림 안팎을 드나든다. 이 시와 저 시가 마치 포개어진 캔버스처럼 작동한다.

기린과 초록뱀이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는 초현실적인 이미지의 세계에서 홀로 존재하는 이미지는 찾아볼 수 없다. 그의 시들은 모든 것이 서로를 매개하는 신비롭고 기이한 의미의 타래를 엮는다. 이미지들이 서로에게 깊이 관여하고 있으므로 의미 없는 이미지는 없다. 설혹 원치 않는 마주침으로 얼굴을 붉힐지라도 시 속의 모든 이미지는 세계의 표면 한편을 차지하고 있다. “빵집이 있는 골목엔 약국이 있고 약국 옆엔 병원이 있고 병원 옆엔 공터가 있고 공터엔 버려진 자전거가 있고 어둠 속에선 누군가 울고 있었다.”(「백합」) 영화 속의 잘 계산된 한 장면 같은 대목에서도 시인은 장면 속 모든 이미지를 동등한 지위로 배치하여 이미지들 간의 연관을 수평적이고 고르게 설정한다. ‘기린’과 ‘그림’이 서로에게 관여하지 않을 수 없는 만큼 그의 시 속에서는 그 무엇도 서로를 모른 척할 수 없다. “기린이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집들의 심장에 주황색 등불이 켜지고”, “은행나무숲에 앉아 있는 연인의 등뒤로 기린이 지나간다. 아니, 기린 지나가는 소리 들린다”(「은행나무숲으로 가는 기린」).

 

* 이 글은 계간 <시와사상> 2020년 가을호에 실린 서평임을 밝혀둡니다.

 

글 : 이은지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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