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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진수의 시네마 크리티크] 수출의 여인이라 불렸던 여성들 - <구로아리랑>
[성진수의 시네마 크리티크] 수출의 여인이라 불렸던 여성들 - <구로아리랑>
  • 성진수(문화평론가)
  • 승인 2020.11.24 1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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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자의 전성시대>(김호선, 1975)에서 영자는 가정부 노릇을 하다가 주인집 아들에게 강간당하고 쫓겨나 직공, 버스차장 등의 일을 전전하다 결국 창녀가 된다. <바람불어 좋은날>(이장호, 1980)에서 이발소 직원 춘식의 여동생 춘순은 영등포 공장에 있는 친구가 알아봐 준 일자리를 믿고 오빠에게 기별도 없이 상경한다. 이 두 영화 속 영자와 춘순처럼 시골에서 도시로 이주해 공장 노동자로서의 삶을 거쳤던 많은 여성들이 존재했다는 것, 그리고 공순이라고 불렸던 이 여성들이 한국 경제 성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다는 것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한국수출공업단지(구로공단) 조성 10년이 되는 1974년에 구로공단에는 ‘근로 여인상’이 세워졌다. ‘수출의 여인상’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이 동상은 60-70년대와 80년대, 산업 역군으로 호명되면서 국가 경제 재건이라는 명분아래 착취당했던 노동자들 중 여성들이 차지하는 위치를 보여준다. 임흥순 감독의 <위로공단>(2015)이나 여성 노동자에 대한 영상 작업들을 했던 김선민 감독의 단편 영화들 속에서,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볼 수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한국 영화에서 여성 노동자들은 주목받는 주인공이 되어보지 못했다. 도시 빈민 여성을 주목했던 영화들도 ‘노동자’로서 그들의 정체성을 명백하게 내세우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는 남성 노동자와 관련해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구로공단의 여성 노동자가 주인공인 <구로아리랑>(박종원, 1989)은 주목할 만한 영화가 된다.

 

이문열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구로아리랑>은 ‘아세아패션’ 생산 공장에서 일하는 다섯 명의 여성 노동자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병든 어머니와 대학생인 남동생을 뒷바라지 하는 책임감 강한 종미(옥소리)는 야학을 다니며 배움에 대한 갈증을 채운다. 종미와 함께 야학에 다니는 짠순이로 유명한 미경은 돈을 모아 양장점을 열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DJ인 남자친구가 스타가 될 것이라고 믿는 정자,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우직한 만배와 가난한 결혼식을 올린 희분, 서울 생활이 즐겁지만 야근과 특근이 연속되는 고된 노동에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숙희까지, 다섯 인물의 비슷한 듯 다른 경험이 공장과 쪽방촌 숙소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이문열의 소설과 영화 <구로아리랑>의 등장은 노동자들의 실태를 다룬 노동문학의 조류와 1980년대 걸쳐 충무로 바깥에서 형성된 민족영화나 민중영화와 같은 비제도권 영화운동의 성장이라는 환경과 연관 지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작품들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계몽적인 성격을 공유하고 있긴 하지만, <구로아리랑>은 ‘공순이’라는 폄훼된 이름으로 불렸던 여성 노동자를 보통의 사람으로 조명하고자 하는 의도를 더 강하게 내비친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쪽방촌 숙소는 공장만큼이나 이 영화에서 중요한 공간이다.

김선민 감독의 단편영화 <가리베가스>(2005)에서 한물 간 과거의 공간처럼 그려졌던 가리봉동의 쪽방 숙소가 <구로아리랑>에서는 북적북적한 생기와 일상의 비루함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그려진다. 일주일에 90시간을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일해야 하는 상황에서, 숙소는 기계 부속품 같은 일꾼에서 벗어나 평범한 꿈과 욕망을 가진 한 명의 존중받아야 할 사람으로서의 삶이 펼쳐지는 공간이다. 수십 명의 젊은 남녀가 모여 사는 공간에 겨우 하나 있는 공동 화장실과 세면과 빨래를 함께 하는 야외 수돗가와 목욕실, 공동의 부엌 등, 그들의 일상 환경은 열악하기만 하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그들은 웃고, 울고, 싸우면서 절망하고,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다.

겉으로는 비슷한 일상의 희로애락을 겪는 듯 보이지만 공장의 가장 말단에 있는 여성 노동자로서 그들이 처한 상황에는 특수함이 있다. 자신을 환영해주기 위해 언니들이 맥주와 싸구려 샴페인을 들고 작은 방으로 들어오는 것을 본 막내 숙희는 흥분어린 어조로 이렇게 말한다. “어머, 공순이도 맥주 마셔?” 순진하고 악의 없는 이 질문은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공장에서 일하며 가족을 부양하는 여성 노동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을 대변한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질문을 ‘공순이’ 자신이 한다는 것이다. 사회가 자신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단순히 의식하는 것을 넘어서 편견과 폭력이 담긴 그 시선을 스스로 내재화해버린 사람들. <구로아리랑>은 이 사람들이 내재화된 자기 억압과 착취에서 벗어나고자 애쓰는 이야기인 셈이다. 무산계급 노동자로서 자신의 계급을 자각하고 일어서는 인물이라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식 서사와 유사하지만, <구로아리랑>의 주인공들이 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서 외치는 구호는 계급 담론보다는 휴머니즘에 더 의지하고 있다. “노동자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대우하라.”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마지막 시위의 계기가 되는 미경의 죽음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미경은 돈을 더 아끼기 위해 다른 공장에서 일하는 남자친구 재수와 한 방을 쓰기로 한다. 미경은 공장에서 만나는 다른 남자들과 달리 어수룩하고 물정을 모르는 것처럼 말하는 재수가 재미있고 좋았다. 재수가 자취를 감춘 어느 날 회사 간부 한 사람이 돈 봉투를 들고 미경을 찾아온다. 어수룩해보이던 재수가 사장의 아들이고 공장 현실을 직접 체험하라는 아버지의 말에 따라서 공장 노동자 행세를 해왔던 것이다. 마음을 주었던 사람에게 이용당하고 배신당한 충격 속에서 힘들어하던 미경은 야근용 각성제를 먹고 공장 옥상에서 내려오던 중 낡은 계단이 부러져 추락사한다.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살인적인 노동시간과 공장의 열악한 시설이 미경이 죽음에 이르게 한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지만, 누구보다 베테랑이었던 노동자 미경의 심신을 결정적으로 흔들어 놓으며 그 죽음의 계단을 오르게 했던 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배신이다. 그렇기 때문에 활활 타오르는 횃불을 들고 ‘미경을 살려내라’고 외치는 공장 마당에서의 시위 장면과 미경의 영정 사진을 들고 공단의 도로를 행진하다가 전경들에게 맞고 쓰러지는 종미와 동료들의 모습은 보는 이에게 의심스러운 울컥함을 자아낸다.

그들도 맥주를 마신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다가오는, 노동 기계처럼 취급받는 ‘공순이’도 알고 보면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휴머니즘적 서사의 꼼꼼한 짜임새와 달리, 노동자들에게 무한히 가해지는 착취와 폭력의 제도적이고 구조적인 측면을 폭로하고 그것을 바꿀 수 있는 에너지에 대해 말하는 영화의 방식은 모호하고 애매하다. 이 서사의 핵심에 위치한 종미(옥소리)와 현식(이경영)의 관계는 지나치게 조심스럽고, 죄의식과 부채의식, 자기연민 위에 구축된 남성 지식인 현식의 서사는 영화의 진짜 주인공이 되어야 할 다섯 여성 노동자의 서사를 필요이상으로 중지시키고 희석시킨다.

<구로아리랑>의 많은 장면은 검열에 의해 삭제되거나 수정되었다. 때문에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처음에 목표했던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사회적으로나 영화적으로 급격한 변혁의 시간이었던 1980년대에, 내용이나 형식에 있어서 도전적인 시도를 한 한국 영화를 마주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중 많은 영화가 흥미로우면서도 불만스럽다는 것 또한 발견하게 되다. <구로아리랑>도 그렇다. <구로아리랑>은 여성과 노동자의 목소리와 남성 지식인의 시선을 횃불과 행진의 스펙타클로 거칠게 봉합하고, 그 봉합의 자국은 결국 <구로아리랑>을 탄생시킨 시대의 가능성과 한계로 우리의 관심을 되돌아가게 만든다.

 

글·성진수(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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