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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민의 시네마 크리티크] <재춘언니>의 시간 리듬
[이승민의 시네마 크리티크] <재춘언니>의 시간 리듬
  • 이승민(영화평론가)
  • 승인 2020.12.14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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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못해서 없는 일이 너무 많다. 세월호 마지막 생존자 김성묵씨가 청와대 앞에서 노숙 단식을 한 지 40일째가 될 때까지 몰랐다.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씨가 강남역 철탑 농성을 300일 가깝게 이어갈 때까지도 몰랐다. 그저 매일 서로의 안전을 위해 코로나 확진자 수를 보며 코로나 바이러스의 존재만 확인하고 있었다. 이수정 감독의 <재춘 언니>를 보기 전까지 콜트콜택 해고노동자가 무려 13년을 투쟁했다는 사실도 몰랐다. 10년 전 <꿈의 공장>(김성균, 2010)을 통해 콜트콜텍 투쟁을 알았고, 그 후로 간혹 밴드와 공연 소식을 듣고 있었지만 천막농성을 13년 동안 이어가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알지 못해 없는 일, 없어져 버린 일이 너무 많다. 알지 못하도록 지워진 일도 그만큼 많다. <재춘 언니>는 콜트콜텍 해고 투쟁을 알려 지워지지 않게 한다. 그리고 투쟁이 사건이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임을 알려준다.

 

흑백의 시간

영화는 2007년 콜트콜텍 기타 공장에서 부당해고를 당한 후 회사를 상대로 13년간 복직 투쟁을 해온 임재춘 씨를 담는다. 보다 정확히는 임재춘의 시간을 담고 있다. 영화는 무심한 듯 숫자를 배경에 두고 있다. 2008년, 2012년, 8년, 단식 35일, 12년, 4,464일... 숫자는 쉽게 체감되지 않는다. 그러다 잠시 멈추어 생각하는 순간, 아마득해진다. 농성 8년 차 어느날 재춘은 말한다. 당시 20살 아이들이 8년을 자기끼리 밥을 먹었다고. 생각해보니 해고 당시 아이들은 12살 초등학생이었고, 52살 재춘도 44살이었다. 또 다른 장면이 있다. 농성장에서 활동가들과 함께 음악에 맞춰 웃으며 춤을 출 때, 현수막에 적혀 있다. 정리해고 13년, 4382일. 숫자가 세월로 치환되는 순간, 혹은 세월이 숫자로 치환되는 순간 느끼는 어떤 막막함이 장면 장면 담겨 있다. 영화는 그 세월을 흑백 이미지로 담는다. 흑백은 천연색 칼라에 비해 화려하거나 생생하지 않지만 담담하고 묵직하고 응축되어 있다. 임재춘을 비롯해 콜트콜택 해고노동자가 감각하는 13년의 시간이 그러할 터다.

 

무성의 리듬

그렇다고 그 시간이 견딤의 시간이기만 할까? 영화는 13년의 시간을 두고 또 다른 물음을 던진다. 13년의 복직투쟁을 할 수 있었던 저력은 무엇일까? 영화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나는 낯을 가리고 소심한 성격이다 보니 남에게 얼굴 내밀기가 싫어 새로운 시도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리해고 7년째 공장에서 쫓겨나면서부터 성격에 변화하기 시작했다.”며 이어 햄릿 연극에서 오필리어 역을 하고 있는 재춘을 보여준다. 영화는 설명하고 있지 않지만 시작부터 그의 변화에서 출발한다. 낯가리고 소심한 그는 농성을 하면서 함께 연극을 하고 밴드에서 연주를 하고 농성일기 『우리에겐 내일이 있다』를 쓴다. 시간은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함께 흐르는 것이다. 시간의 균열은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열기도 한다.

영화는 무성영화 형식을 차용한다. 1인칭 재춘의 목소리이자 글을 자막으로 담는다. 무성이 소리가 지원되지 않던 시절 자막으로 소통했다면, 영화가 취한 무성영화 형식 속 1인칭의 자막은 소리를 내고 있지만 듣지 못하는 그럼에도 계속 소리를 내고 있는 투쟁의 현주소로 읽히기도 한다. 무엇보다 영화는 재춘의 시간을 라 폴리아 연주로 함께 한다. (영화를 좀 본 사람이라면 스탠리 큐브릭 <베리린던>을 떠올리면서 우아함과 차분함 속 내재된 광기 혹은 열정을 떠올리게 된다.) 퉁쳐진 13년의 시간이 아니라 굴곡과 방황이 있고, 견딤과 함께 저력도 내재된 시간이었다. 영화의 힘은 여기에 있다. 삶은 계속되고 그 삶의 시간은 매순간 살아 숨쉬고 있다.

 

여성적 연대, 언니

영화는 임재춘을 재춘 언니로 소개한다. 햄릿의 오필리어에서 출발한 그는 평범한 우리 같다. 자신을 과시하거나 포장하지 않고 앞장 서 나서지도 않고 강한 신념으로 뭉쳐진 사람도 아니다. 오히려 잘 씻지도 않고, 집회 나간 통에 말라있는 토마토를 보며 속상해하고, 천막을 떠나는 사람도 이해가 되고, 천막을 찾아온 사람들이 마냥 고마운 사람이다. 그가 천막을 마지막 까지 지키고 단식 투쟁을 하는 것도 거창한 대의나 신념이 아니라 그동안 함께한 동료와 연대자들에 대한 의리 때문이다. 방황하고 흔들리지만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사람들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환대하는 그를 영화는 ‘언니’라 부른다. 목적을 향해 전략과 기술을 벼루는 노동 운동의 리더와는 다른 유형이다.

영화는 재춘과 함께하는 노동운동을 여성적 공동체로 읽어내고 그 천막에 초대한다. 결연하고 의미심장하고 엄숙한 투쟁이 아니다. 영화는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의 복직투쟁을 리듬감 있게 담는다. 연극을 하고 밴드에서 기타치고 노래하고 함께 밥을 먹는다. 가끔 니체의 글도 읽는다. 천막은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고, 그 곳에는 재춘 언니가 있다. 영화는 섣부르게 설명하거나 규정하는 방식 대신 그 자체로 그 사람과 함께 한다. 가끔 감독과 재춘은 수다를 떤다. “연극 대사는 뭐예요? 햄릿이 배신하는 거지.“ ”여기가 동문이예요? 정문에서 해. 따라갈까요?“ 정보적 가치로 배치된 효율적 영화가 아니다. 감독과 재춘의 관계가 불쑥 개입되고 재춘의 얼굴이 가만히 담긴다. 재춘은 감독에게 혹은 영화에게 언니이다.

영화는 칼라로 바뀌고, 현재 재춘의 모습을 담는 것으로 끝이 난다. 지금까지와 달리 멀찌기서 그의 일과 일터를 담는다. 다시 세상에 나간 그를 지켜보는 것이다. 커다란 벽 앞에 서 있는 그와 그의 시간을 지지하면서. <재춘 언니>는 2020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비프 메세나 상을 수상하고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집행위원회 특별상을 수상 한 작품이다.

 

사진출처: 네이버, 구글 

 

 

글·이승민

영화 연구자, 평론가, 기획자로 활동,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영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다큐멘터리의 오늘>(공저), <아시아 다큐멘터리의 오늘>(공저), <영화와 공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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