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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의 문화톡톡] 부유하는 육신과 영혼의 움직임, 그리고 그 공허함-<트랜짓>
[김희경의 문화톡톡] 부유하는 육신과 영혼의 움직임, 그리고 그 공허함-<트랜짓>
  • 김희경(문화평론가)
  • 승인 2020.12.28 0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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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하는 육신의 움직임은 왠지 모르게 공허하다.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지극히 타의적이라면 더욱 그렇다. 공허한 움직임 속에 깃든 영혼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그 영혼 또한 어디에도 정박하지 못하고 애처로운 형태로 떠돈다. 크리스티안 펫졸드 감독의 영화 <트랜짓>은 이 부유하는 육체와 영혼의 이미지를 통해 과거와 현대를 관통하는 난민 문제를 그려낸다.

 

경계를 무너뜨려 만든 새로운 이미지

영화는 세상에 존재하는 경계를 지워버림으로써 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시공간의 차이를 없애고 실재와 환영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식이다. 이 작품의 원작인 동명 소설은 1940년을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영화는 이를 현재로 옮겨온다. 현대에 살고 있는 게오르그(프란츠 로고스키)는 나치 하에서 독일군이 파리로 진격하자 비점령 지역인 마르세유로 탈출한다. 나치라는 과거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카페, 바, 호텔 등은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어 초반엔 이야기가 혼란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영화는 이내 게오르그의 고된 움직임을 통해 그가 난민임을 인지할 수 있게 해준다. 이 같은 영화적 기법을 사용한 것은 난민 이야기가 비단 과거의 문제만이 아니라 현존하는 문제임을 각인시키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시공간의 혼재 뿐 아니라 실재와 환영의 뒤섞임은 영화 안에서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주요 장치로 작동한다. 게오르그는 한 여성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본다. 그 여성의 이미지는 나타났다가 금방 사라진다. 동시에 이 환영을 쫓는 게오르그의 모습은 또 다른 운동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가 본 것은 자살한 바이델 작가의 아내 마리(폴라 비어)다. 게오르그는 바이델 작가의 가방을 손에 쥐게 된다. 이 안에서 작가의 원고, 마리로부터 온 편지, 멕시코 대사관에서 온 비자 허가서를 발견한다. 그리고 게오르그는 바이델 작가인 척 멕시코로 떠날 준비를 한다. 그러다 늘 환영 같아 보였던 마리의 실재와 마주하게 된다.

 

갈구하나 부재하는 영혼

부유하는 영혼은 또 다른 부유하는 영혼을 강렬하게 갈구하게 된다. 움켜쥐지 못할 상대의 영혼을 찾아 서로 공회전 하듯 움직이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게오르그는 나타났다 금방 사라지는 마리를 갈구한다. 그런 마리 또한 누군가를 끊임없이 원한다. 자신을 떠나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남편이 그 대상이다. 마리는 다른 남자의 곁에 있으면서도, 또 새롭게 만난 게오르그의 품에 안기면서도 부재하는 남편을 갈구한다.

그러나 그 영혼들은 서로에게 정박할 수 없음을 깨닫는 순간 무너진다. 게오르그는 마리가 자신과 함께 있으면서도 또 다른 환영인 남편을 갈구하는 것을 보며 그녀를 떠난다. 게오르그 역시 누군가에겐 그런 존재다. 게오르그는 자신과 동행하던 하인츠가 죽은 이후 그의 아내에게 죽음을 알린다. 그러면서 그의 아들 드리스와 가까워진다. 드리스는 게오르그를 부재하는 아버지를 대신하는 존재처럼 여기고 따른다. 하지만 게오르그가 곧 떠날 것임을 알게 되자 게오르그를 보길 거부한다. 마리가 게오르그에게 그랬듯 게오르그 역시 드리스에겐 실재하나 부재하는, 한순간의 헛된 환영으로 남게 된다.

 

닿지 못할 이야기와 강렬한 노스탤지어

영화에는 부단히 많은 소리가 나온다. 하나는 경찰과 군인이 난민들을 색출하며 내는 소란이고, 다른 하나는 난민이 또 다른 난민에게 쏟아내는 자신의 이야기다. 게오르그는 비자를 받으러 간 곳에서 만난 사람들로부터 수많은 이야기를 듣는다. 모두 각자의 개인적인 이야기다.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를 찾고 있었고, 잠시라도 자신의 옆에 머무는 게오르그를 보자마자 그 이야기를 쏟아낸다.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게오르그의 곁을 겉돌 뿐, 제대로 닿진 못한다. 게오르그 스스로도 자신의 이야기가 가진 무게에 짓눌려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를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귀 기울이기 힘들 정도로, 이들을 억누르는 거대한 삶의 무게를 보여준다.

 

게오르그는 꾹꾹 눌러온 자신의 이야기를 나지막이 노래로 풀어낸다. “물고기도 집에 가고/ 코끼리도 쿵쿵대며 집에 가고/ 개미도 서둘러 집에 가고/ 등불이 켜지고 날이 저무네.” 물고기도, 코끼리도 날이 저물어 집에 가지만 게오르그는 갈 곳이 없다. 그의 노스탤지어가 노래에 사무쳐 부유하는 육신과 영혼을 위로한다.

 
 
*사진:네이버영화
*글:김희경(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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