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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민의 시네마 크리티크] <카일라스 가는 길> - 자연으로 가는 길
[이승민의 시네마 크리티크] <카일라스 가는 길> - 자연으로 가는 길
  • 이승민(영화평론가)
  • 승인 2021.01.11 09: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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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새해가 밝았다. 2020년 한해는 매순간 낯선 상황들에 적응해가는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셧다운으로 생긴 시간과 불안에, 이어서는 갑자기 활짝 열린 온택트 시대에, 하반기에는 몇 번의 희망과 이어지는 좌절 속에서 더 이상 시도하기를 멈추는 정지모드로 분주하게 지냈다. 꿈꾸지도 않고 도전하지도 않고 최선을 다해 멈추어 있는 시간들을 보낸 셈이다. 그리고 신축년 2021년을 맞아, 몸은 여전히 제자리에 붙어 있지만 꿈을 꾸고 싶었다. <카일라스 가는 길>은 지금 현실에서는 꿈같은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여행도 도전도 심지어 대면도 어려운 시기에, 팔십대 할머니의 카일라스 여행기는 리얼-판타지인 셈이다. 그 풍경과 도전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슴 벅찬 작품이지만, 영화를 다보고 나면 나이듦과 자연에 대해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다. 이 또한 지금이기에 읽히는 그 무엇이 아닐까 싶다.

영화는 이춘숙 할머니의 뒷모습에서 시작한다. 혼잣말도 잘하고,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손도 잘 흔들고, 만나는 사람들과도 곧잘 어울리는 그녀는 카일라스까지 육로 여행 중이다. 영화는 전체적으로는 아들의 시선으로 본 어머니라는 외피를 두르고 있다. 영화 시작과 끝은 ‘어머니’를 언급하고 있고 아들이자 감독의 시선이 투영되어 둘이 함께하는 여행을 담고 있다. 그렇지만 감독은 아들로서 어머니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크게 투영하거나 드러내지 않는다. 그저 카메라 뒤에서 묵묵히 그녀를 바라보며 함께한다. 그래서일까? 영화의 대부분은 앞서가는 그녀의 뒷모습이나 뒷 서있는 그녀의 모습을 담고 있다. 둘은 인생 동반자이자 여행 동반자인 셈이다.

 

영화의 매력은 이춘숙 할머니의 존재에서 나온다. 그녀는 특이한 억양과 타고난 친화력을 가지고, 부처님과 늘 대화를 하듯 혼자말을 한다. 무엇보다 그녀는 독립적인 태도와 거시적인 시선을 가진 어른이다. 그녀는 얼음산과 사막에서 몇 차례 체력의 한계를 만나도 포기하지 않는다. 힘든 고난을 극복하고 만난 대자연 앞에서 기도를 한다. 나무에 노란 수건을 달아 세월호 희생자를 위해 묵념하고, 슬픔에 헤매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해 기도한다.

 

언제부터인가 이 사회는 노인과 나이듦을 해결해야 할 ‘문제’로 다루고 있다. 고령화 사회, 독거노인, 노인의 무위고, 노령 빈곤 등을 사회의 문제로 다루면서 ‘노인-되기’를 두려워하고 불안하게 한다. 영화는 이춘숙 할머니의 모습에서 존재 그 자체의 가치를 찾게 한다. 매순간 마주하는 세상 만물에 감탄하며 합장하고 자연 앞에서 순수하게 춤을 춘다. 그녀는 일기를 통해 자기를 돌아보지만 동시에 공동체를 생각하고 멀리 보는 시선을 가진다. 나이듦의 가치를 지혜로 이어내고 있는 그런 어른이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여든다섯의 생일을 맞은 날, 그녀는 말한다. “이 광경을 85회 생일날에 봅니다. 내 생일은 내 자신이 축하합니다. 대단합니다” 청춘에 머물러 있도록 강요하는 사회에서, 늙음과 병듦을 두려워하게 하는 세상에서, 나이 든다는 사실을 자연 앞에서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맞는 그녀는 정말이지 대단하다.

<카일라스 가는 길>과 유사한 시기에 개봉한 <69세>도 나이든 여성에 대해 공명하는 지점이 있다. 나이든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폭행 당한 피해자가 아니라 치매 환자로 매도되는 현실을 담은 영화는 주인공 효정의 자존감과 당당함으로 노인 여성에 대한 시선을 고발하고 맞받아친다. 우리 사회에서 노인 그것도 나이든 여성에게 가해지는 편견을 촘촘하게 짚어낸 영화는 효정이라는 인물의 시선과 태도 그리고 그녀의 결정을 통해 나이듦의 가치와 존재의 존엄함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자연스러운 인간의 수명을, 생산성과 효율성으로 직결해 위계를 매겨 노년을 차별하는 현실 사회에 일 칼을 날리는 작품이다. 주어진 상황이 다르고 주제로 다르지만 <69세>의 효정과 <카일라스로 가는 길>의 이춘숙은 우리 사회가 강제하는 나이든 여성의 편견에 갇히지 않는 독립적이고 자존감을 가진 어른이라는 점에서 닮아있다.

 

영화는 여행을 순차적이고 선형적으로 나열하지 않는다. 일종의 사진첩처럼 여행의 단상들을 담아낸다. 목적지가 목적이 아닌, 여정 자체가 목적인 영화는 계속되는 길 위에서 해가 지고 해가 뜨는 장면을 만나고, 시베리아 벌판을 지나 바이칼 호수에서 춤을 추고, 히말라야 설산과 몽골 고비 사막을 오른다. 여행지에서 매순간 만나는 자연은 아름답고 숭고하다. 그러나 영화는 숭고한 자연을 아름다운 이미지로 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숨결을 소리의 질감으로 담아낸다. 영화는 피아노 선율과 불교 음악으로 극적 감성과 리듬을 다소 강하게 조율하고 있지만, 공간이 뿜어내는 고유한 소리를 통해 자연이 가진 힘과 변화무쌍함을 놓치지 않는다. 각 장소마다 들리는 바람소리, 눈 밟는 소리, 파도 소리, 해발고도에서 품어져 나오는 청명한 공기의 기운까지 무엇보다 그 속에 있는 가쁜 인간의 숨소리는 자연을 풍경이 아니라 인류의 환경으로 마주하게 한다. 인간 존재의 자기자리 보기를 일깨운다. 여행의 이유이지만 여행을 할 수 없는 지금, <카일라스로 가는 길>이 리얼-판타지 다큐멘터리 영화인 이유이다.

 

 

 

사진출처: 네이버

 

글·이승민

영화 연구자, 평론가, 기획자, 강연자로 활동,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영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다큐멘터리의 오늘>(공저), <아시아 다큐멘터리의 오늘>(공저), <영화와 공간> 등의 저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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