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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시네마 크리티크] 북군 전쟁영웅이 서부에 와서 늑대와 춤을 춘 이유
[안치용의 시네마 크리티크] 북군 전쟁영웅이 서부에 와서 늑대와 춤을 춘 이유
  • 안치용(영화평론가)
  • 승인 2021.01.13 04: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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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영화리뷰) '늑대와 춤을'

 

<늑대와 춤을>(Dances With Wolves)은 미국 서부개척사의 야만성을 경계인의 시선으로 고찰한 작품이다. 케빈 코스트너가 제작, 감독, 주연을 모두 맡아 1990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제6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촬영상, 각색상, 편집상, 음악상, 음향효과상의 7개 부문을 수상했다. 원작은 마이클 블레이크(Michael Blake)가 쓴 소설로 블레이크는 영화의 각본 작업도 맡았다.

 

야만의 미국 서부침략사

영화 <늑대와 춤을>은 미국 역사의 가장 어두운 시기를 다룬다. 상영시간이 180분이나 되는 이 영화의 시작은 남북전쟁의 한복판인 1863년 테네시주 전장이다. 북군 중위 존 던바(케빈 코스트너)가 다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고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 모습이 첫 장면이다. 군의관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던바는 전장으로 복귀한다. 의사들끼리 하는 “다리를 잘라야겠다”는 말을 듣고는 장애인으로 사느니 전장에서 죽겠다고 결심해서이다.

남군과 북군이 지루하게 대치하고 있는 한가운데로 던바는 말을 타고 질주한다. 북군 장군과 참모들에게 비친 모습 그대로 자살의 질주였다. 그러나 죽으려던 계획과 달리 그의 무모한 행동이 북군 병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려 남군에게 일제히 돌격하는 바람에 던바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 장군의 군의관으부터 특별한 치료를 받아 다리를 자르지 않고 온전히 회복할 수 있었을뿐더러 훈장까지 받는다. 게다가 그를 태우고 미친 듯이 질주한 명마 ‘시스코’가 부상이다.

 

졸지에 전쟁영웅이 된 던바는 남북의 대치 현장을 떠나 당시 미국의 서쪽 최전선으로 자원하여 떠난다. “사라지기 전에(before it’s gone)” ‘프론티어’를 보고 싶었다는 그의 소망대로 백인들이 지배하는 미국에서 서쪽으로 가장 먼 곳에 자리한 요새의 하나인 ‘세지윅’의 지휘관으로 부임한다. ‘프론티어’라는 말에 적합하게 그곳은 변경 최전방의 척박한 요새로, 서진하는 백인의 ‘미국’과 이 땅의 원래 주인인 인디언 사이의 대치전선이기도 했다.

지휘관으로 ‘세지윅’에 부임한 던바는, 그곳의 기존 주둔 병력이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모두 탈영하고 없어진 상태여서 ‘미국’과 연락이 두절된 채로 고립된 삶을 살아간다. 그러한 고립된 삶 속에서 그는 늑대와 친구가 되고 인근 인디언 부족 ‘수(Sioux)’족과 접촉하여 그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다.

‘라코타’족이라고도 하는 수족의 이웃이 된 던바는 초원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삶의 방식에 점차 동화한다. 영화의 많은 부분이 늑대와 친구가 되고, 수족의 일원이 되는 과정으로 채워진다. 던바는 수족의 삶을 완전히 조화(harmony)로운 것으로 평가하며 나중엔 아예 수족 여인과 결혼하여 부족원이 된다. 남과 북이 사투를 벌인 동쪽 ‘미국’을 떠난 그에게 서쪽은 위로와 안식을 준다. 더 나은 세상을 발견하고 그 세상의 일원이 됨으로써 그의 삶에 평화가 찾아온다.

영화는 상영시간의 약 4분의3을 지날 때까지는 던바가 다른 세상에서 조화롭고 평화로운 삶에 익숙해지는 모습을 그린다. 단적으로 그의 언어는 영어가 아닌 수족 언어로 바뀐다. 그러나 스스로 짐작했듯 그 평화와 조화로운 삶은 잠정적인 것으로 판명난다. 그가 사실상 떠나온 ‘세지윅’ 요새에 그가 모르는 사이에 미군이 새롭게 대거 배치되면서 평화로운 인디언 땅은 위기에 처한다. 극중 대사에서 드러나듯 스페인 침략자 등 많은 침략자를 격퇴하며 조상이 물려준 땅을 지킨 수족이지만 미국이란 이름의 이번 백인 침략자들을 격퇴하지 못할 것을 예감한다.

프론티어에서 백인 침략자의 일원이 되기를 거부한 던바는 하얀 피부의 인디언이 되어 백인 군인들로부터 박해를 받지만, 정신적 동족인 수족 용사들로부터 구원을 받아 수족 아내와 함께 미지의 곳에서 새로운 삶을 도모하는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역사에서 입증되었듯, 또 영화에서 자막으로 설명하였듯, “13년이 지나면, 수족의 근거지가 파괴되고 그들의 버팔로 또한 사라지게 되며, 저항하던 수족의 마지막 무리가 네브라스카 주 로빈슨 요새에서 백인에게 항복하였다. 대평원의 위대한 기마민족 문화는 사라지고, 대륙 서부의 미국 프론티어 또한 곧 역사 속으로 소멸하였다.” 던바가 프론티어에 오면서 예상한 그대로였으며, 대평원 등 미국 서부에 살던 모든 인디언 부족이 안타깝게도 수족의 운명을 답습하며 백인의 ‘미국’ 침략자로부터 조상에게 물려받은 땅을 지켜내지 못했다. 영화에서 미처 자세히 다루지 못한 서부침략의 야만성은 다른 경로로 쉽사리 확인할 수 있다.

 

‘주먹 쥐고 일어서’와 ‘늑대와 춤을’, 그리고 기록자

던바는 경계인이다. 테네시 전장에서 북군과 남군이 대치한 공간 사이로 질주한 장면이 상징하듯 그는 어느 한쪽에 소속되지 못하고 부유한다. 그의 수족 아내 ‘주먹 쥐고 일어서’(매리 맥도넬)가 하얀 피부의 인디언이란 사실은 경계인이란 그의 속성과 부합한다. 본명이 크리스틴인 ‘주먹 쥐고 일어서’는 비록 수족이 아니었지만 어린 소녀일 때 인디언 부족의 공격으로 일가족이 몰살하며 기이한 인연으로 인디언이 된다.

영화는 던바가 수족에 동화하였지만, 외양상 백인이고 영어를 할 줄 아는 아내 ‘주먹 쥐고 일어서’와 함께 마침내 그가 수족을 떠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수족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던바와 ‘주먹 쥐고 일어서’는 백인의 외양에 영어를 구사하는 ‘미국인’으로 다른 경로의 삶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며 그리하여 대미의 떠남에 약간의 희망이 버무려지지만 그것은 철저하게 백인의 희망이란 한계를 갖는다.

 

던바는 극중에서 기록자 겸 내레이터로 설정되는데, 그가 남긴 기록(저널)은 잃어버렸다가 우여곡절 끝에 다시 그의 손에 돌아온다. 역사에서 생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기록인데 그 기록까지 잠시 인디언이었던 백인에게 맡겨진 게 이 영화적 탐색의 한계라면 한계이겠다.

영화가 끝으로 치달으며 남북전쟁에서부터 서부의 프론티어까지 던바와 함께한 말 ‘시스코’가 죽고 ‘늑대와 춤을’이란 인디언 이름의 연원이 된 늑대 또한 사살당한다. 모두 미국 군인들에 의해서이다. 특히 늑대를 재미 삼아 살해하는 장면에서 미국 인디언의 운명이 겹쳐지는 느낌을 회피할 수 없다. 더불어 던바는 늑대와 춤을 추고 늑대와 잠시 친구가 될 수는 있으나 끝내 늑대가 될 수는 없는 존재라는 사실이 확인된다. 수족에 적대하는 데에 협력하기를 거부한 던바가 종국엔 가해자 진영의 일원이 되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늑대가 아니라 늑대와 춤을 추는 존재라는 한계가 마찬가지로 이 영화의 관점의 한계로 지적될 수 있지만, 재미 삼아 늑대를 죽이는 유형의 역사관과 문화가 만연한 상황에서 미흡하지만 그나마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접근법이라고 평가하는 게 온당하겠다. 영화에는 영어 외에 수족 말이 제법 비중 있게 등장한다. 수족 언어 전문가가 출연진을 착실하게 교육한 결과물이며, 이로써 <늑대와 춤을>은 수족의 언어가 제대로 등장한 드문 영화로 기록되었다. 버팔로 사냥 등 영상미가 뛰어난 장면이 많은 건 널리 알려진 이 영화의 매력이다.

영화가 많은 이야깃거리를 담았지만 그중 가장 눈에 띄는 두 가지는, 야만에 스러진 인디언 문화를 긍정적으로 조명한 것과, 인간과 사랑에 집중한 전언이라 하겠다. 남편을 잃고 상심에 빠져 자해한 ‘주먹 쥐고 일어서’를 던바가 구해주는데, 그때 던바가 ‘주먹 쥐고 일어서’의 상처를 싸맨 천이 그가 요새 주변을 순찰하러 나가며 당당하게 휘날린 미국 국기였다. 인종, 국가, 소속 등은 인간 앞에 무력하다는 비유로 제시된 장면이며 대미의 떠남까지, 인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사랑하며 역사를 통과할 수 있다고 수정주의 서부극에 해당하는 <늑대와 춤을>은 이야기한다.

 

 

글·안치용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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