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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문화 톡톡]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 탄 자의 숙명
[안치용의 문화 톡톡]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 탄 자의 숙명
  • 안치용(문화평론가)
  • 승인 2021.01.17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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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니 소싯적에 나는 DOS 명령어를 쓸 줄 알았다. DOS‘disk operating system’의 머리글자를 딴 IT용어로, 디스크 입출력을 포함한 운영체계(OS) 혹은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말한다. 이렇게 설명하고 나니 언어로 치면 산스크리트어를 쓸 줄 안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DOS 명령어는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일종의 화석언어가 되었다. 요즘 학생들이 플로피 디스켓을 모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요즘 사람들은 DOS 하면 아마 서비스 거부 공격을 뜻하는 ‘Denial of Service(DOS) attack’라는 해킹 용어를 떠올리지 싶다.

능숙한 수준이 아니었고 기초적인 운용이 가능한 정도였지만, 아예 아무도 안 쓰는 지금만큼이 아니어도 당시 잘 모르는 사람이 많아 그들은 내가 꽤 컴퓨터에 능통할 줄 알았다. 주변의 거의 모든 사람이 DOS 명령어란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고 써본 적도 없었다.

약간의 명령어를 기억하는 것만으로 주변에서 전문가 비슷한 취급을 받은 나의 경험은 이제 통용되지 않는다. 요즘 아이들은 다르다. 2018년 초중고에 코딩교육이 도입되어 의무교육으로 시행되고 있다.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라 영국, 일본, 이스라엘 등 여러 나라에서 코딩을 정규 교육과정에 편입한 상태다.

코딩(coding)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드는 프로그래밍과 흔히 같은 뜻으로 쓰이지만, 세부적으로는 명령을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C언어ㆍ자바ㆍ파이선 등의 프로그래밍 언어로 입력하는 과정을 코딩이라고 한다. 프로그래밍은 프로그래밍 언어를 사용해 프로그램을 만드는 구체적인 작업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서열을 따지면 코딩 위에 프로그래밍이 존재하는 셈이다. 하지만 코딩 없는 프로그래밍이 없다고 간주하기에 코딩 또한 중요하게 취급된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세계 여러 나라에서 코딩을 정규교과에 편성하여 의무교육으로 시행하는 이유는 코딩이 이처럼 4차산업혁명의 기본기술에 해당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코딩 없는 프로그래밍이 없다는 관점이다. 과거 그리스의 도시국가 스파르타에서 군사교육을 의무화한 것과 동일한 논리로, 당시엔 군사교육이 국가경쟁력을 좌우했다면 지금은 코딩교육이 그러하다고 판단한다. 그 판단이 옳을까.

IT세상의 흐름은 빠르기도 하거니와 예측하기가 힘들다. 거대 IT기업의 부침을 보면 쟁쟁한 인재들이 모여서 애를 써도 흐름을 제대로 읽어내기가 무척 힘든 모양이다. 그러니 일각에서 이미 제도 교육에까지 도입된 코딩 교육에 대해 무용론을 제기하는 게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코딩을 둘러싼 논란이 뜨거운 이유는 4차산업혁명이 그려갈 미래를 예측하는 관점의 현격한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코딩(교육) 무용론은, GUI(graphical user interface)를 쓰는 윈도 운영체계가 등장하며 DOS 명령어가 무용지물이 됐듯 코딩 또한 그런 길을 걸을 것이란 전망에 근거한다. 아이콘을 클릭하면 될 것을 뭐하러 컴퓨터의 언어를 배워서 그의 언어로 말을 거냐는 생각이다. 코딩 없는 프로그래밍이 없다는 판단이 뒤집혀 코딩 없는 프로그래밍이 있다고 보기에 코딩은 무가치해진다.

일견 타당해 보이는 게 한순간 갑자기 영어회화를 포기하며 내가 자신을 설득한 논리와 비슷하다. 내가 영문학자가 아니고 또 미국에 이민 갈 계획을 세우지 않은 이상 기본적인 영어문해 능력을 갖춘 것으로 만족하고, 굳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회화를 배우지는 말자고 결심했는데 어느 순간 핸드폰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영어로 외국인과 소통하는 데 어려움이 없어질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IT업계에서도 노 코드(no code) 프로그래밍이 세를 불리고 있다. ‘노 코드(no code)’로 코드(low code)’ 플랫폼은 실제로 코딩을 잘 모르는 사람도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게 한 프로그램용 소프트웨어다. 예컨대 외국인과 소통하기 위해 당연시된 외국어 학습 과정을 없애고, 그러한 사전 학습 없이 외국인과 곧 바로 소통할 수 있게 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지난한 언어습득 과정 없이, 소통 자체이든 토론의 결과물이든 현실적인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제안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하여 과거엔 특정한 언어를 익힌 것이 무역 등에서 이점이었다면, 이제는 언어보다는 교역 상대국이나 상품에 정통한 게 더 이점이 된다. 언어공부할 시간에 다른 공부를 할 수 있으니 경쟁력이 확 올라간다. 또 특정 교역국과 무역하는 데 필요한 그 나라 말을 몰라 유입되지 않았던 아이디어가 많고 마케팅에 강점이 있는 인재가 이제는 유입될 수 있다. 외국어 습득에 빗대어 설명하면 노 코드(no code) 프로그래밍지지자들은 이처럼 더 적은 사전(事前)’ 투자로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지금 코딩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나중에 성인이 되면 왜 그때 그런 교육을 받았는지 의아해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코딩 교육에 대한 회의는 노 코드(no code) 프로그래밍에 대한 회의와 맞물려 있는데, 주로 프로그램 개발자를 중심으로 노 코드(no code) 프로그래밍낙관론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 주제와 관련하여 회자되는 개발자들이 로 코드를 싫어하는 9가지 이유라는 인포월드20199월 기사는 노 코드(no code) 프로그래밍비판론의 핵심을 짚었다고 할 수 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처음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소스 코드를 갖고 있지 않은 까닭에 개선 요구를 반영하여 추가 기능을 얹는 게 힘들다, 즉 유지보수가 어려워진다는 게 가장 눈에 들어오는 비판이다. ‘붕어빵 프로그램우려는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로 코드혹은 노 코드플랫폼 자체의 비효율은, 이 플랫폼이 범용(汎用)이어야 하기에 모든 것을 제공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당연히 민첩성과 효율성이 떨어지게 된다. 예를 들어 쾌속정 한 척으로 충분한 작전에 항공모함을 보내는 격이 된다는 설명이다.

결국 모두에게 맞는 단일 사이즈의 역설이 발생한다. 공정 단순화와 비용 절감을 위해 모두에게 맞는 단일 사이즈가 박수를 받으며 등장했지만 그것은 어쩌면 누구에게도 맞지 않는 사이즈로 판명날 수 있다는 반론이다.

 

개발자의 우려는 납득할 만하다. 그러나 단기적인 ROI에 집중하기 마련인 경영진은 적은 비용에 높은 효율을 내세운 로 코드혹은 노 코드플랫폼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의사결정권자들이 선호하는 흐름이 주된 흐름이 될 확률이 높다. 시장조사회사 마켓스앤마켓스(MnM)2020132억 달러 규모인 이쪽 시장이 2025455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노 코드(no code) 프로그래밍이 대세라는 얘기겠다. 그렇다고 이 전망이 코딩 교육 무용론을 확증하지는 않는다. ‘노 코드(no code) 프로그래밍과 코딩 교육이 병립할 근거를 찾자면 찾지 못할 것은 아니지 싶다.

개발자들이 로 코드를 싫어하는 9가지 이유의 마지막은 종속성이었다. 이들은 로 코드혹은 노 코드플랫폼을 시작하는 일은 폭력 조직에 들어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즉 자유로 들어가지만 나오는 건 자유가 아니다.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게 돼 일이 줄고 성과가 커지지만, 그 대가로 거인에게 종속된다. 거인의 어깨에서 내려올 수 없는 것은 물론 거인이 움직이면 함께 움직이고 거인이 쓰러지면 한동안 같이 쓰러져 있어야 한다는 운명은 심각한 곤경이 아닌가 하는 질문이다.

맞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4차산업이 불러올 세상이 바로 그런 세상이기에, ‘노 코드(no code) 프로그래밍이 상징하는 거대한 블랙박스 또는 거인의 어깨가 없는 세상은 불가능하며 관건은 그 어깨에 올라가야 하느냐가 아니라, 그 거인을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느냐이다. 거인은 어쨌든 올 것이다. 거인의 발바닥에 깔리느냐, 어깨 위에 올라타느냐의 선택만이 있을 뿐. 아이작 뉴턴은 거인의 어깨에 올라 근대를 열었고, 우리는 또 다른 거인의 다가옴을 교차하는 감정으로 목도하고 있다. 뉴턴이란 거인의 어깨에 올라탄 현재 인류는 4차산업혁이란 전혀 새로운 속성의 거인 어깨 위로 추락하지 않고 잘 옮겨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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