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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마스크 시론(時論): 베인의 마스크와 렉터 박사의 마스크
[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마스크 시론(時論): 베인의 마스크와 렉터 박사의 마스크
  • 지승학(영화평론가)
  • 승인 2021.01.26 1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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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나이트라이즈>, <양들의 침묵>

서구에서 ‘마스크’가 부정적인 시그널로 작동하는 이유는 재갈물린 동물의 억압적 이미지가 강화되면서 불거진 시각적 편견 때문일 수 있다. 어쩌면 서구 사회에서 팬데믹 상황임에도 마스크 쓰기가 잘 이행되지 못한 탓도 이러한 편견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마스크는 얼굴전체를 가리는 ‘가면’의 성격이 강하지만, 대체로 ‘입’만은 반드시 내놓으려 하는 집착에는 상당 수 이런 편견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영화적 관점에서 보면 영화 <마스크>(1994)에서 등장하는 ‘마스크’는 얼굴 전체를 가리면서도 입만은 특히 강조하려 했었던 조커 식 ‘화장술’로 발전해 갔을지 모르며,

 

조로(zorro)의 ‘마스크’는 철저하게 입만 드러내는 배트맨 식 마스크로 끊임없이 계승 발전할 수밖에 없었을지 모른다. 어쨌든 소위 영웅 캐릭터들의 가면은 동물 재갈이라는 부정적 이미지에 저항하기위해 어떻게 해서든 ‘입’만은 반드시 드러내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산물일 공산이 크다.

 

거기에 더해 발화하는 음성언어의 중요성을 결코 간과하지 않았던, 서구식 음성중심주의적 전통도 한 몫 했으리라 짐작이 된다. (진리를 말하는 입이 가려진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반대로 입을 가리는 마스크가 등장하면 그것은 가면 재현의 역사상 꽤 전복적인 캐릭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베인(톰 하디)이 강렬하게 다가왔던 이유는 그의 입을 가리고 있었던 마스크 덕이라고 해도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마스크라기보다 ‘산소호흡기’에 더 가까운 이것은 (이후 영화 <테넷>에 이르기까지 특히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영화에 은근히 자주 등장하고는 했다.) 어디까지나 입을 가린다는 특징으로써 분명 ‘마스크’의 범주에 넣을 만하다. 게다가 <테넷>에서 주인공이 착용하는 투명한 마스크의 의미는 전에 없던 조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장치로 등장하는데, 이는 코로나19 상황과 겹치면서 생명 연장의 목적을 더욱 사회화하는 측면으로도 읽을 수 있을 정도다.

 

비행기 조종사가 써야 하는 마스크(<덩케르크>)와 우주복의 헬멧조차(<인터스텔라>)도 이러한 관점을 약간 확대해석하면 마스크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아는 ‘통제’ 장치로서의 ‘마스크’를 인식하게 되는 주된 과정은 영화에서는 이런 식으로 다변적 상황을 겪으며 나타난 결과물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베인의 마스크(<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사실 상 통제 관계를 넘어 복종 관계마저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 정도다. 실제로 미란다(마리옹 꼬띠아르)의 자유로운 ‘음성’이 베인의 억압된 ‘음성’을 억누르듯 베인은 어떤 말로도 그녀에게 저항하지 않는다. 그는 그녀의 명령 없이는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이것을 상징하듯 그의 마스크는 ‘통제’의 의미를 넘어 그녀를 향한 절대적 의존성마저 드러낸다. 실제로 그와 미란다의 관계는 ‘명령어’로 이뤄진 주종관계였을 뿐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무엇보다 베인과 배트맨의 두 가면의 이미지가 마주할 때면 서로의 입과 입이 딱 들어맞는 퍼즐 조각처럼(마치 흑백사진 필름의 음양 이미지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것은 그 둘의 대립각이 마치 말하는 자와 말하지 못하는 자의 관계처럼 보이는 주된 요인이기도 하다. 서구에서의 마스크는 바로 이런 ‘재갈’이자 ‘통제’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양들의 침묵>에서 렉터(Lecter) 박사의 마스크는 베인의 이런 마스크의 의미와 같은 듯 다르다. (포스터에서의 박각시나방은 마스크의 위치에서 같은 듯 다른 맥락을 보여준다.) 일단 그의 마스크가 지니고 있는 의미는 지하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것으로도 모자라 대화 시 나누게 될 단어 역시 통제받는다는 점에서 베인의 통제적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스탈링(조디 포스터)이 렉터 박사를 만나야할 때 제약 받은 것은 하지 말아야 될 ‘말’들이지 않았나. 그런데 렉터 박사는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해서 렉터 박사의 폭로는 베인의 ‘무기력한 입’과 달리, 사람의 살점을 뜯어내고야 마는 ‘충동의 입’으로 부터 비롯되었다.

 

그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마스크 특히 감옥의 철창과 같은 철망으로 입이 짓눌려 있는 장면은 역설적으로 부정의 ‘봉쇄’에 방점을 찍는 것이 아니라 ‘강렬한 폭로’로서의 새로운 말하기를 더욱 강조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그러므로 거칠게 말하자면 베인의 마스크는 통제와 봉쇄의 관습적 맥락으로 읽힌다면 렉터 박사의 마스크는 충동과 폭로의 혁신적 맥락을 갖는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서구에서 마스크를 이해하는 방식은 ‘베인’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이 명백하다. 자유와 저항의 맥락이 맹목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영화 제작의 연대를 뛰어 넘어, 우리가 직면한 ‘마스크’의 의미를 마치 선지자처럼 예견하는 ‘마스크’는 그래서 베인의 마스크가 아니라 ‘렉터 박사의 마스크’다. 렉터 박사의 마스크가 가진 의미는 단순히 베인과 미란다와의 관계를 거부하는 것에서 그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왜곡적 입막음, 일방적 봉쇄, 부정적 통제가 전혀 통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 했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충동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살짝 거둬내고 새로운 에너지로 이해하고 보면 렉터 박사의 마스크는 강렬한 혁신의 에너지를 상징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 입 주변이 피로 범벅이 된 이미지가 주는 끔찍함은 이 민감도에 대한 장애물로서 일종의 편견일 뿐이니 당연히 극복해야하는 과제이고 말이다. 

 

이 편견을 뚫게 되면 그 에너지는 국가차원의 순위를 뒤엎을만큼 충분히 증폭될 것이다. 이제 한 사회, 한 국가의 성공 여부는 그 편견을 뚫고 이 힘을 얼마나 빨리 감지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쨌든 그 편견의 극복과 민감도에 있어서 저쪽은 무뎠고, 우리는 빨랐다.

 

 

글·지승학
영화평론가. 문학박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홍보이사,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으로 등단. 현재 고려대 응용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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