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주로 걸친 막걸리 한 잔에 초저녁잠이 들었다가 자정 즈음에 깬다. 개들과 잠시 밤마실을 다녀온다. 슬리퍼에 맨발로 나갔지만 추위를 못 느낄 만큼 겨울 날씨가 포근하다. 어릴 때 편지를 쓰면 꼭 동장군을 불러냈는데, 요 며칠 동장군이 게으르다.
개가 잠들고 사람들이 잠든 사이로 겨울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베란다 밖에서 누군가 소곤거리는 듯 하여 귀 기울이니 비님이다. “봄비는 일비고 여름비는 잠비고 가을비는 떡비고 겨울비는 술비다.” 술을 미리 마셨어도 저만치 웅성거리기라도 하면 못 먹는 술 한 잔이라도 더 먹으려만, 밤이 깊도록 소곤거리기만 한다.
알고 지낸 선배의 부음이 전해졌다. 긴 투병 생활을 했다고 들었다. 한 1년 전일까, 과거 내가 신입이고 그가 고참일 때 나에게 못되게 굴어서 미안했다는 댓글을 남겼더랬다. 그와 내가 맺은 마지막 인연이었다. 개들과 밤마실을 적기에 다녀와서 개털이 안 젖어 다행이란 생각을 하며 겨울비의 소곤거림 속에 술 대신 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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