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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의 문화톡톡] 교체, 그 소멸과 재생의 간극을 경유하는 리듬-<운디네>
[김희경의 문화톡톡] 교체, 그 소멸과 재생의 간극을 경유하는 리듬-<운디네>
  • 김희경(문화평론가)
  • 승인 2021.02.08 10: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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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체되고, 교체하는 것의 주기와 호흡을 체감할 수 있을까. 긴 호흡의 역사 속에서도, 한 사람의 인생에서도 그 주기와 호흡을 지속적으로 인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크리스티안 펫졸드 감독의 <운디네>는 이를 관통하는 하나의 시선을 통해 교체, 즉 그 사이에 소멸하고 재생하는 것의 간극을 경유하며 생동하는 리듬과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교체의 대상이자 주체가 된 물의 정령

영화 속 여주인공 운디네(폴라 비어)는 교체의 대상 혹은 주체가 되는 운디네(폴라 비어)는 그 주체가 된다. 신화 속 물의 정령인 운디네는 ‘인어공주’의 원형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면 영혼을 가진 인간이 될 수 있지만, 상대방이 자신을 배신하면 그를 죽이고 다시 물로 돌아가야 한다.

영화에서 운디네는 그 정령인 듯 사람의 모습을 하고 현실에 존재한다. 펫졸드 감독은 신화와 현실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그녀의 이미지를 하나의 환상이자 실재처럼 활용한다. 감독은 이미 <트랜짓> 등 전작에서 시공간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난민과 같은 다양한 소재를 다뤄왔다. 그중에서도 이를 위해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고, 없지만 늘 있는 것만 같은 유령의 이미지를 적극 활용해 왔다.

 

이 영화에선 운디네가 소멸과 재생을 반복하며 교체의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유령 이미지 그 자체가 된다. 우선 운디네는 스스로 교체의 대상이자 주체가 된다. 그녀가 사랑하던 요하네스(야코프 마첸츠)는 운디네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음을 알리며 냉정하게 이별을 통보한다. 그 이별을 통보받던 장소인 카페에서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교체가 이뤄진다. 이곳에서 요하네스의 부재를 느끼고 절망하던 운디네에게 산업 잠수사 크리스토프(프란츠 로고브슈키)가 찾아온다. 영화는 운디네의 이전 연인과의 이별, 새로운 사랑으로의 교체를 순식간에 이뤄냄으로써 그 주기와 호흡을 매우 짧게 가져간다.

이후에도 영화에서 사랑의 교체 주기는 짧게 그려진다. 운디네와 크리스토프는 운명적인 사랑을 만난 것처럼 열렬히 서로에게 빠진다. 그러나 이 또한 서로의 오해, 이어진 크리스토프와 운디네의 비극으로 짧게 끝나 버린다. 운디네가 떠난 후 2년이 지나고 나서 비춰진 크리스토프의 모습은 충격적이면서도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다. 2년 후를 그리고 있지만, 이미 2년 전 이를 암시하는 복선이 나온다. 2년 전 크리스토프의 병실엔 이미 그의 어깨에 얼굴을 기댄 또 다른 인물이 있었다.

영원히 바라보는 시선

운디네는 수많은 교체를 바라보고 텍스트화 하는 하나의 시선으로도 존재한다. 영화에선 사랑의 교체와 도시 속 풍경의 교체를 중첨하고, 운디네를 이를 조망하는 시선으로 배치한다. 운디네는 도시개발 전문 역사학자이자 박물관 관광 가이드로 나온다. 그녀는 관광객들에게 베를린의 역사를 설명하고 그 안에서 이뤄진 도시개발에 대해 이야기 한다. 동독의 기억이 서독에 의해 지워지는 과정을 반복적으로 설명함으로써, 재생의 이름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옛것을 반복해 들춰내는 식이다. 영화는 운디네의 설명을 중간에 자르거나 생략하지 않고 가급적 하나의 완결된 텍스트로 매듭지으며 도시개발로 인한 잦은 교체를 부각시킨다.

 

운디네가 카페를 바라보는 시점숏이 여러 번 나오는 것도 이 같은 이유다. 카페는 사랑이 교체되는 장소이자, 도시의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지점으로 존재한다. 이후 운디네가 바라보는 시점숏은 카페가 아닌 물 속에서 이뤄진다. 현실의 공간에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놓인 공간으로 전환된 것이다. 그러나 이같이 공간이 전환되고, 시간이 흘러도 운디네의 시선은 그대로 어딘가에 머무르고 있다. 클로징에서 크리스토프의 모습을 바라보는 시선은 교체를 아프게, 그러나 수용하며 끝까지 지켜보고 있는 것을 암시한다. 영화는 이를 통해 역사와 인간의 시간 속에서 이뤄지는 수많은 교체, 그리고 이를 관통하는 영원한 존재와 시선이 어딘가 있음을 보여준다. 그것이 환상일지라도.

 

글·김희경(문화평론가)

*사진: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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