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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국의 문화톡톡] 모두 늙어서 죽었으면 좋겠다
[이병국의 문화톡톡] 모두 늙어서 죽었으면 좋겠다
  • 이병국(문화평론가)
  • 승인 2021.02.15 09:3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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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국의 문화톡톡] 모두 늙어서 죽었으면 좋겠다1)

 

 

1.

출처-pixabay
출처-pixabay

2021년 연초, 유난히도 눈이 자주, 많이 내렸다.2) 겨울이라면 응당 눈이 내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눈이 내리지 않고 춥기만 한 겨울은 삭막하기만 할 테니까 말이다. 다만 이번 겨울의 눈은 지구 온난화로 인해 북극의 제트기류가 약해지면서 북극의 찬 공기가 중위도 부근까지 남하해 영향을 준 데다 열대 태평양 부근에서는 라니냐가 지속한 것이 원인3)이라는 점에서 환경 오염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 글은 환경 오염이나 지구 온난화에 관한 글은 아니다. 그저 눈이 내리는 일이 당연한 자연 현상이지만 그것이 자연적이지 않은 현상이라는 점에서 안타까운 마음을 서두에 적어두고 싶었다. 올해는 눈사람보다 눈오리를 더 많이 보았다. 유행이었는지 플라스틱 집게로 만든 눈오리떼가 사방에 넘쳐났다. SNS에도 눈오리 사진이 꽤 많은 비중으로 올라왔다. 물론 눈사람의 비중도 여전했다. 한편 남이 만든 눈사람을 무너뜨리는 이들에 대한 비난의 글이 공론화된 점이 흥미로운 부분이기도 했다. 폭력성의 분출이랄까.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 폭력이 다른 방향으로 전이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눈이 내리는 것이 그다지 즐겁지 않다.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준다지만, 그 더러움을 씻겨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은폐할 따름이며, 눈으로 인해 발생하는 각종 사고에 더 주의를 기울이기 때문이다. 눈이 녹는 과정에서 경험해야 하는 불편한 일들도 무시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보다 더 마음이 쓰이는 일이 있다. 그건 어쩌면 반려묘와 함께 생활하면서 시작된 감정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14년째 푸코라는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본 사람들은 이해할 것이다. 무조건적인 환대가 가능한 관계가 형성되고 애정과 돌봄으로 충만한 감정이 차고 넘쳐 삶과 세계에 관한 인식이 바뀐다는 것을. ‘지구에서 살아남으려면 사이보그가 되자!’라고 이야기했던 도나 해러웨이의 <반려종 선언>에서처럼 [동물-인용자]와 사람이 서로에게 소중한 타자가 되면서 함께 살아가는, 역사적으로 한결같이 특수한 삶 속에서, 자연과 문화가 내파하는 현상4)을 경험적으로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출처-개인소장
출처-개인소장

레비나스의 표현으로 하, ‘타자의 얼굴이랄 수 있는 반려동물의 존재는 나와 다른 타자 존재를 통해 나를 비롯해 나를 둘러싼 세계의 양상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이끈다. 샤워를 하고 나오다 고양이의 시선과 마주친 데리다가 수치의 감정을 사유로 확장하여 동물을 타자로 하여 세워 둔 경계가 물질적이고도 상징적인 폭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 동물을 인간에게 배타적으로 속한다고 보는 능력이 인간에게 있는지 물어봄으로써 동물 타자의 응시로부터 인간이라는 경계 안쪽에서 형성되어 온 담론을 해체시키고자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5) 반려동물과 함께 살면, 동물 타자로 인해 , ‘인간, 세상을, 그 경계를 재정립하게 만드는 일이 벌어진다. 또한, 내 반려동물만이 아닌 저 외부의 동물에게도 시선을 둘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2.

 

키를 넘겨 쌓이는 눈을 헤치고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발밑이 푹푹 꺼진다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려오는 차를 간신히 피하고도

안도하는 마음 같은 건 들지 않는다

 

삼킬 뻔한 것을 뱉고 뱉을 뻔한 것을 삼켰다

복통으로 몇 날이 간다

기척에 놀라 그런 것인데 원망 같은 건 모르겠다

 

불이 무서운가?

나는 눈이 무섭다

친구가 갔다

친구가 가고 간신히 얻은 친구가 갔다

 

우리는 언제나 서로의 앞과 뒤를 지켜왔는데

춥고 모든 게 메마른 날 그렇게 됐다

 

사료와 물그릇

이것은 풍요도 빈곤도 아니다

밖은 언제나 밝고 어둠은 죽은 고양이의 콧잔등에나 내려앉는다

 

심정이 가루 되어 날리는지

잡히지를 않는다

이 빛 속에서 슬픔 같은 건 모르겠다

- 김잔디, 고양이 심정, 그대 고양이는 다정할게요고양이와 함께한 시간에 대하여(아침달, 2021) 전문.

 

아침달 출판사에서 지난해 댕댕이 시집에 이어 올해 냥냥이 시집을 냈다. 18, 시인의 반려묘에 대한 짧은 기록과 시를 묶어 낸 것이다. 반려견, 반려묘를 비롯한 반려동물은 앞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자신을 경유해 저 밖의 존재에게도 관심을 기울이게 한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해 발표한 ‘2019년 반려동물 보호와 복지관리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9년 한 해에 135791마리의 반려동물이 유실 및 유기되었다고 한다. 이는 2017103000마리, 2018121000마리에 이어 증가하는 추세이다.6) 많은 수의 반려동물이 버려지고 있는 상황에서 나와 함께 사는 반려동물은 자신 이외의 동물들에게도 관심을 두게 한다. 김잔디의 고양이 심정은 어쩌면 그렇게 버려진 고양이 혹은 길고양이의 심정을 유추하여 쓰여진 시라고 할 수 있다.

출처-조선일보_일러스트 이철원
출처-조선일보_일러스트 이철원

발밑이 푹푹 꺼지는 눈이 내리면 길고양이는 생존은 위협을 받는다. 이동의 어려움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추위와 굶주림을 극복하기가 어려워진다. 캣맘과 캣대디가 놓아주는 사료와 물은 금세 차갑게 얼어서 먹을 수가 없게 되기도 한다.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려오는 차만큼의 즉각적인 죽음을 야기하지 않는다고 해도 쌓인 눈은 체온 유지를 방해하며 굶주림을 구체화한다. “춥고 모든 게 메마른 날은 죽음의 공포를 실체화하며 그것을 지속하게 만든다. ‘은 제한적 공간에 머무르지만, ‘은 추위와 더불어 무제한적인 영향을 미친다. 눈 위에 찍힌 고양이의 발자국은 귀여운 인증샷이 아니라 생존의 절박함이 아로새긴 낙인처럼 보이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저 길고양이의 심정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라는 캠페인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유기된 동물의 수가 해마다 늘고 있는 상황은 반려동물을 나와 같은 생명을 지닌 존재로 보기보다는 펫샵에서 구매 가능한 상품으로 인식하는 데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잠시 잠깐 기르다 여차여차한 이유를 대며 유기하는 행동은 소모품을 소비하는 태도와 다를 바가 없다. 특히 유기묘는 도시에서도 흔히 접할 수 있어 유기견에 비해 인간의 공간 가까이에서 지각되는 존재이다. 캣맘, 캣대디라는 용어가 고유명사처럼 사용되는 것도 길고양이와 공존하려는 이들의 행위가 활발히 이루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사람과 싸우고 자동차를 피하고 눈과 추위에 웅크려야만 하는 고양이들의 가루 되어 날리는심정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을 만났을 때 세상을 흐렸고 나는 울음소리를 품고 있었어 마음에 누가 앉아 매일 흐느꼈어

 

모 래 밭  거       실

 

잡풀 소파

 

어둑한 세상을 헤매다 울음소리를 들었어 어리고 작은 고양이를 보자 바로 알아들었어 버려진 마음이 보내는 약한 구조 신호

 

  불

     벽

          지

 

                              커튼

                           넝쿨

                                     스 르 르

 

당신을 안고 돌아온 날로부터 시간이 흘렀어 나의 십 년 당신의 평생

 

아가씨

 

노란 눈망울과 우아한 꼬리의 곡선이 나를 향했다는 걸 안 순간

 

왜일까?

 

한 존재가 날 보네 저렇게 완벽한 하나의 생명이 냉장고 나무 위에서 물끄러미

 

왜일까?

 

울음소리는 그때 멈추었던 것 같은데 당신은 이제 늙고 작은 고양이 얇은 줄무늬에 새겨진

 

당신의 십 년

나의 평생

 

마 나 님

마 드 모 아 젤

 

당신을 데려와 내 집에 살게 했지

 

나는 지금 당신의 집에

산다

- 박시하, 너의 집에 산다, 그대 고양이는 다정할게요고양이와 함께한 시간에 대하여(아침달, 2021) 전문.

 

박시하의 시 너의 집에 산다에서 버려진 마음이 보내는 약한 구조 신호를 듣고 작은 고양이를 들인 는 이후 십 년을 당신과 함께 산다. “울음소리는 그때 멈추었지만 십 년이라는 시간은 얇은 줄무늬에 새겨져 사는 동안 지속될 것이다. 당신을 만나기 전 나의 세상은 흐렸. “울음소리를 품고 있었던 나에게 들려온 약한 구조 신호는 그러니까 고양이의 것이면서도 화자 자신의 것이기도 하다. 삶의 어떤 면이 고통이 되었는지 알 길은 없지만, 고양이에게 투사된 마음을 짐작할 만하다. 타자의 눈에 비친 나는 그것을 인식하는 비대칭성으로 말미암아 역설적 존재로서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가 품고 있는 울음이 어떤 부조리와 무의미에 직면해 있는지 알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것은 그 자체로 무력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을 감당하게 한다. 그 알 수 없는 무력감이야말로 로 현존하게 하는 기원인지도 모른다. 길거리를 헤매는 고양이는 결핍과 고통 속에서 나와 마주하게 되고 그 비대칭성으로 나로 하여금 타자인 자신을 로 받아들이게끔 한다. 지배 관계를 넘어서는 윤리적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순간을 가능케 하는 것, 그럼으로써 모래밭과 같은 거실이나 잡풀처럼 느껴지는 소파가 새로운 공간으로 기능하게 되고 저렇게 완벽한 하나의 생명이 삶의 비극성을 초월하여 원초적인 무력감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은 아닐까.

 

반려묘와 인간의 관계는 상호호혜적 관계처럼 보인다. 둘은 비대칭적 관계임에도 한쪽으로 치우친 관계에 매몰되지 않는다. 반려견이 보호자에게 보이는 맹목적 태도와는 달리 반려묘는 보호자와 대등한 지위를 영위하려 한다. ‘집사라는 표현처럼 어쩌면 반려묘를 상위에 놓고 생각하려는 모습이 인간에게 있지만 그건 집사의 자리에 스스로를 낮추는 우스개 겸양일 따름이다. 확실한 건 우리는 반려묘에게 복종을 요구하지 않으며 최소한의 영향력에 기반을 둔 채 각자 다른 형태의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 그 적당한 거리감이 오히려 동물과 인간의 차이를 무화시킨다. “당신을 데려와 내 집에 살게 했던 최초의 감각은 나는 지금 당신의 집에/ 산다는 감각으로 전환되며, 이때 당신의 집은 분리가 아닌 통합된 장소 감각에 기인하게 된다. 본질적 차이는 차이가 있다는 것일 뿐이다. ‘자연과 문화의 내파는 차이의 무화가 아니라 그 차이를 인정하는 관계로부터 비롯되는 셈이다. 그 차이로 말미암아 다른 어떤 것도 요구할 이유는 없다.

출처-아침달출판사블로그
출처-아침달출판사블로그

 어둠 속에서 그녀가 나를 깨웠다. 다리를 다친 노랑이가 사라졌다며 전화기 속에서 떨고 있었다. 라라는 꼭 돌아올 거라고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부러진 다리를 끌고서라도 가장 따듯했던 자리로 돌아올 거야.

 아무도 없는 겨울 새벽길을 나가보았다. 그녀의 집 앞을 지나는데 라라가 정말 와 있었다. 상자 안에 방석을 한 장 깔아주었다. 뒤척거리고 있을 그녀에게는 문자로 알렸다. 어쩌면 이제 막 잠들었을지 모른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쓰레기봉투를 뒤지고 있다. 우린 세 번째 만남이지만 먹이를 꺼내는 사이 아이는 달아났다. 내가 사라져야 배를 채울 것이다. 모퉁이에 숨어 기다렸지만 돌아오지 않았다. 텅 빈 젖이 달처럼 차올랐다. 젖꼭지에서 달빛이 뚝뚝 흘렀다.

 젖은 몸을 끌고서 라라에게로 다시 갔다. 비어 있는 상자 안에 죽은 애인이 돌아와 있다. 여기저기 해진 몸에서 바람이 불었다. 큰 소리로 울지 않아도 상처는 눈에 띄는데 울긴 왜 우니. 방석 위에 음악을 한 장 깔아주었다. 다시는 떠돌지 않게 얼어붙은 밥을 갈아주면서 그녀를 기다렸다.

 

 이제야 잠에서 깼다고 응답이 왔다. 밤바다를 보러 왔다며 너무 멀리 있다고도 했다. 내 손엔 전화기가 없는데 귓가엔 그녀의 숨소리까지 들렸다. 천천히 잠이 왔다.

 그녀와 나는 마주친 것이 없다. 내가 잠들어야 그녀가 돌아올 것이다. 돌아와 나의 옷을 입고 나의 일기를 쓸 것이다. 라라는 어디 갔을까. 조금씩 굳어지는 다리를 끌고 따뜻한 상자 안으로 들어갔다. 여긴 어느 날의 꿈속일까.

-  이민하, 시간 속의 산책, 그대 고양이는 다정할게요고양이와 함께한 시간에 대하여(아침달, 2021) 전문.

 

이민하의 시 시간 속의 산책은 몽환적인 측면이 강하다. 그런 이유로 재현된 표면을 그대로 따라 읽으면 곤란을 겪기가 쉽다. 하지만 그 곤란을 따라가다 보면 어떤 깨달음의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라라라는 이름에 관해 생각해보자. 타자를 이름으로 부른다는 것은 타자를 나의 내부로 이끌고 와 관계를 맺고자 함을 의미한다. 이미 이름이 있는 존재와 달리 고양이는 스스로 이름을 갖지 않는다. 누군가가 붙인 이름은 이름 붙인 누군가의 의지가 깃들어 있기 마련이다. ‘노랑이혹은 라라’. 대상의 특징으로 갈음된 호칭과 부르는 이의 무의식이 성취하고픈 호칭의 차이. 어쩌면 그 차이만큼의 마음의 결이 나로 하여금 아무도 없는 겨울 새벽길을 나가보게 하는 것이지 않을까. 라라가 되돌아올 가장 따뜻했던 자리는 돌봄의 자리일 것이다. “겨울 새벽길을 헤매다가도 다시 돌아갈 보금자리. 비록 그곳이 상자일지라도 고단한 몸을 뉠 수 있는 곳. 하지만 다른 삶은 안전이 보장된 장소를 갖진 못한다. “쓰레기봉투를 뒤지고 있새끼 고양이처럼. 측은지심으로 돌볼 수는 있지만, 그 이상 진전된 관계를 맺을 수 없기에 라라를 위한 장소 역시 다시 비어 있을 수밖에 없다. “여기저기 해진 몸으로 죽음 이후에야 도달할 수밖에 없는 곳. 즐거운 흥얼거림이 되길 바라는 마음은 그것의 어려움을 실감하게 하는 겨울의 현실에 매여 있다. 어쩌면, 돌보고자 하고 환대하고자 하는 마음은 다시는 떠돌지 않게 얼어붙은 밥을 갈아주면서기다리는 일에 머무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출처-개인소장
출처-개인소장

하지만 이 시에서 흥미로운 점은 화자가 자신을 그려내는 지점에 있다. ‘노랑이이기도 하고 라라이기도 한 존재의 부재는 에게 결핍을 환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보다 더 라라의 부재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인지 모른다. 나는 부재한 라라를 찾는 그녀의 마음을 전유해 라라를 생각하며 새끼 고양이를 거쳐 돌봄을 수행하는 위치에 스스로를 자리매김하는 한편, “조금씩 굳어지는 다리를 끌고 따뜻한 상자 안으로 들어가는 라라 자신이 되기도 한다. 그것은 라라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난 라라를 애도하는 기억 속의 산책으로 적어 내려간 흔적을 톺아보는 건 이름을 부르고 시공간을 공유하며 함께 나눈 기억을 우리 역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돌봄을 필요로 하는 타자 곁을 비워야만 비로소 관계 맺을 수 있다는 것, “텅 빈 젖이 달처럼 차올젖꼭지에서 달빛이 뚝뚝 흘러 내리더라도 그것을 자신이 뒤집어 맞고 견뎌야 한다는 것. 그 기다림이 타자와 나를 잇는 유일한 방법임을 깨닫는 과정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다른 존재와의 관계 양상이 이 시를 채운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이러한 과정의 산책을 같이하는 것이겠다.

 

3.

출처-개인소장
출처-개인소장

지난해 말, SNS를 통해 알게 된 김하연 작가의 길고양이 사진 달력을 구매했다. 김하연은 길고양이 사진을 찍는다. 프로필을 보면, “우리 이웃으로 살아가는 길고양의 삶을 지켜보고 기록하고 하며 알리는존재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하고 있다. “우리와 길고양이 삶이 바뀌는 그날까지7) 기록을 이어가겠다고 한다. 알다시피 길고양이의 평균 수명은 집안에서 생활하는 반려묘와는 달리 그리 길지 않다. 2, 3년 정도일 것이다. 이번 겨울처럼 눈이 많이 내리고 강추위가 닥치는 시기에는 어쩌면 그만큼도 버틸 수 없을지 모른다. 수많은 길고양이가 추위에, 굶주림에, 교통사고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꽤 많은 숫자의 길고양이가 유실, 유기된 반려묘이기도 하다. 모든 인간들이 캣맘, 캣대디가 되어 그들을 챙기길 바라는 마음은 없다. 그저 그들이 모두 늙어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마음 정도는 가져도 되지 않을까. 뻔한 이야기겠지만, 따뜻한 세상은 그것을 바라는 마음을 소망의 자리에서 실천의 자리로 옮겨 놓는 데에서 비롯될 것이다. 소외된 존재를 향한 인간적인 마음을 인간에게만 제한하여 쓰는 것도 너무 각박한 마음일 테다. 자기 본위의 삶조차 영위하기 어려운 시절이지만 거울 속의 시선을 나의 반려묘에게, 그리고 반려묘를 통해 저 밖의 존재들에게 시선을 두는 것이 어쩌면 더 절실한 필요인지도 모른다. ‘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그들이 오래오래 덜 힘들게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야말로 로 바르게 세우는 일이 되지 않을까.

 

 

 

 

1)김하연 작가의 이천이십일년 길고양이 사진 달력 표제김하연 작가는 길고양이 집사 겸 찍사로 길고양이의 삶을 지켜보고 기록하며 알리는 일을 한다.

2)기상청은 올해 1월 전국 평균 눈이 온 일수가 7.2일로 평년보다 3.1일 많아 1973년 관측을 시작한 이후 가장 많았다고 밝혔. ‘[날씨] 올겨울 잦은 눈, 이달에만 7.2..역대 1위 기록’, <YTN>, 2021. 1. 20.

3) 같은 기사.

4)도나 해러웨이, 해러웨이 선언문, 황희선 옮김, 책세상, 2019, 136.

5) 김은주, 고양이 앞에 선 철학자, 인문잡지 한편4 동물, 민음사, 2021, 82~88쪽 참조.

6)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인구이동이 줄면서 유기동물 발생도 줄었다고 하지만 정확한 내용은 실태조사 결과를 확인해 봐야 할 문제이다. ‘코로나에 '집콕' 추석..반려동물 유기 줄어’, <파이낸셜 뉴스>, 2020. 10. 5.

7) 김하연 작가 인스타그램

 

 

글·이병국

시인, 문학평론가, 그 외 이런저런 알바. 시집 『이곳의 안녕』이 있음. 4회 내일의 한국작가상 수상. 동시대 한국인이 쓴 시와 소설 읽는 걸 좋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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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아옹 2021-02-27 10:35:34
그냥 자기좋아하는 꼬냥이 얘기 일뿐..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