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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꽃님이라는 'Ghost'
[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꽃님이라는 'Ghost'
  • 지승학(영화평론가)
  • 승인 2021.02.24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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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승리호>

‘Ghost’, ‘유령’은 죽음을 상기시키는 공포스러운 존재로 인식되기 마련인데 그렇게 된 데에는 산스크리트 어의 ‘분노’ 혹은 ‘놀라움’이라는 의미에서 출발했다가 성서 상에서 '악마'나 '나쁜영혼' 등의 의미로 변하게 된 이후 그 의미가 가장 강력하게 자리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원래 '유령'의 의미는 죽음이나 공포스러운 존재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실제로 'Ghost'는 '호흡'이라는 뜻의 고대영어인 'Gast'와 그것과 관련이 깊은 독일어 'Geist'(정신)에서 파생된 것으로 추측되며 프랑스 북부지역에서는 ‘되돌아온 존재’(Revenant)로서 악마로부터 희생자를 구하는 존재를 의미하기도 했다. 켈트신화 속에서 이런 존재는 ‘밤의 아이’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이 의미는 어떤 상황을 회복시키거나 되돌려 놓는 역할(returning)을 강조하는 말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런 뜻에서 영화<승리호>의 ‘꽃님이’(박예린)는 켈트신화 속의 ‘밤의 아이’(여기에서의 밤은 우주의 어둠을 의미하기도 한다.)로서 '유령', 'Ghost'라고 이해해 볼 수 있다.

 

이유는 이렇다. 사실 꽃님이는 돈벌이에만 급급했던 ‘승리호’ 선원들에게 어떤 ‘선한 목적’을 선물하기도 했으며, 한편으로는 자연 생태계의 복원가로서 죽어가는 지구를 되살리는 초자연적 힘을 발휘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요컨대 꽃님이는 ‘되돌아온 존재’로서 ‘창조자’이자 ‘초자연적 정신’(Geist)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꽃님이가 신성한 존재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꽃님이는 영화 초반, 모두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을만큼 강력한 '죽음의 공포이미지' 그 자체이기도 했었다.(수소폭탄이라는 가짜뉴스) 하지만 ‘꽃님이’는 결국 지금 무엇이 회복되어야 하는지, 무엇이 제자리로 되돌아와야하는 지를 알려주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꽃님이는 '밤의 아이'다. 그래, <승리호> 속에서 서서히 부각되는 주제는 ‘부모와 아이’의 신파가 아니라 무언가로부터 '회복되거나 되돌려지는 것들(마주하는 진실)’에 대한 것, 바로 그것이다.

 

먼저 <승리호>는 근 미래의 변화를 책임지는 ‘기술발전’ 역시 대출상환과 벌금체납 등과 같은 현실적인 자본주의식 시스템 속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음을 강조한다. 그 집요함은 지금의 현실에 견주어도 전혀 손색없을 정도로 견고하고 강력하다. 바로 그 속, 그러니까 기술발전 그리고 경제시스템의 지나친 추상성 한 가운데에서 ‘꽃님이’가 소위 '출몰'한다. 그래서 꽃님이의 역할은 기술발전과 자본주의 시스템의 진실과 마주하여 어떤 회복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도맡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막스의 유령처럼 ‘꽃님이’라는 유령은 ‘승리호’ 선원들의 경제적, 직업적 가치관을 마구 뒤흔들다가 결국 그들로 하여금 '주권성'(sovereignty)의 회복, 즉 기꺼이 자신을 희생시키는데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선택을 하게 만들고 만다. 꽃님이에게 첫눈에 사로잡히고 마는 ‘타이거 박’(진선규)의 행동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그가 꽃님이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게 되는 상황 변화는 인간의 주권성 회복이라는 의미에서 보면 순진해 보일 정도로 잘 들어맞는다는 말이다. 그렇게 모두의 주권성을 회복시킨 ‘꽃님이’는 급기야 딱딱하게 경화된 절대적 위계 시스템을 와해시켜 원래의 자연을 되돌려 놓고 ‘언어를 초월하여’ 진정한 소통 관계를 회복시켜준다. 바로 그것이 영화 <승리호>를 돋보이게 하는 요소다.

 

영화<승리호>는 SF 장르의 외관을 빌리긴 하지만 진정한 발전은 기술적 진보로부터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진실의 회복을 위한 모든 경계로부터의 탈주 그리고 그로 인한 새로운 회합을 통해 이뤄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주권성의 회복을 통한 진정한 회합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보면 영화<승리호>는 우리가 진정으로 회복시키고 되돌려 놓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꽃님이를 통해 소개해주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어느 사회에서든지 요구되는 진정한 주권성의 회복이다. 한 차원 높은 상호문화적인 가치로도 확장될 수 있는 이 메시지는 한국형 SF영화가 이끄는 주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독점적 헐리우드식  SF영화 공식에 대한 도전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매우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진정한 주권성의 회복을 위한 그 호흡(Gast), 그 정신(Geist)은 문화별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승리호>의 안착이 반가운 이유와 <승리호>가 'Ghost'여야 하는 진정한 이유는 그 '회복'(returning), 바로 거기에 있다.

 

 

글·지승학
영화평론가. 문학박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홍보이사,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으로 등단. 현재 고려대 응용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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