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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식의 시네마 크리티크] ‘나쁜 엄마’가 필요한 이유-<말아톤>과 <4등>
[임정식의 시네마 크리티크] ‘나쁜 엄마’가 필요한 이유-<말아톤>과 <4등>
  • 임정식(영화평론가)
  • 승인 2021.03.02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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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아톤' 포스터.
'말아톤' 포스터.
'4등' 포스터.
'4등' 포스터.

<말아톤>(2005)은 자폐 및 정신지체 장애가 있는 스무 살 청년 초원의 이야기이다. 자폐는 치유가 불가능한 장애이다. 스포츠영화의 주인공은 대부분 비주류, 타자, 아웃사이더들인데, 초원은 스포츠영화의 다른 인물들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다. <말아톤>은 스포츠영화의 상투성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초원이 시련을 이겨내고 승리라는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초원의 내면 성장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전개한다. <4등>(2015)는 4등만 하는 초등학생 수영 선수가 우여곡절 끝에 1등을 하는 이야기이다.

<말아톤>의 서사 전개가 더 극적이다. 도입 부분에서 초원의 성격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한다. 초원이 발버둥 치면서 밥 먹기를 거부하다가 초코파이를 냉큼 들고 뛰쳐나가고, 엄마 경숙이 비의 감촉을 느끼게 하려고 “비가 주룩주록 내려요”를 반복해도 초원은 무표정하게 서 있고, 높다란 벽이 엄마와 초원의 뒤에 배경으로 서 있는 장면들이다. 봉준호 감독의 <마더>에서도 엄마가 소변 보는 아들 도준을 살펴보고, 아들에게 보약을 먹이는 장면에서도 높다란 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벽은 소통의 부재, 암담한 미래, 엄마들 가슴속의 슬픔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말아톤>에서 초원은 마지막에 서브쓰리(마라톤 풀코스를 3시간 안에 완주하는 것)를 달성한다. <4등>의 준호는 엄마가 그토록 바라던 1등을 차지한다. 하지만 이러한 표면적인 결과보다 중요한 점이 있다. 초원과 준호의 영혼에 일어난 변화이다. 초원은 자폐 및 정신지체 장애라는 두껍고 딱딱한 껍질을 깨고 나와 힘차게 날갯짓을 한다. 엄마 품을 벗어나 질주하는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의 새끼 얼룩말을 닮았다. 초원은 엄마의 강한 반대와 회유를 뿌리치고 춘천마라톤대회에 출전하고, 환한 햇빛 속을 웃으면서 달린다. <4등>의 준호도 엄마의 시야를 벗어나자 편안한 표정으로 햇빛이 비치는 수영장을 물고기처럼 유영한다.

 

'말아톤' 스틸컷.
'말아톤' 스틸컷.
'4등' 스틸컷.
'4등' 스틸컷.

초원은 자폐와 맞서 싸우는 방법의 하나로 마라톤을 시작한다. 물론 스스로 선택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초원은 마라톤대회 일정을 기억할 정도로 달리기를 좋아한다. 한강10km마라톤대회에서 입상한 것이 전환점이다. 초원은 이 대회에서 3위를 차지해 메달을 받고, 기념사진을 찍고, 참가자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는다. 그러자 엄마인 경숙은 중요한 결정을 한다. 초원에게 마라톤을 본격적으로 시키기로 한다. 마침 초원이 다니는 학교에 마라토너 출신의 임시 교사가 오고, 경숙은 코치의 집을 찾아가서 방 청소를 해주는 노력 끝에 그를 코치로 초빙한다.

경숙은 초원이 당연히 마라톤을 좋아한다고 믿고 있다. 정말 그럴까? 코치는 경숙의 믿음에 균열을 일으킨다. 엄마가 자신의 욕심 때문에 초원에게 마라톤을 시키는 것이 아니냐고 따져 묻는다. 코치의 이 말은 경숙에게는 충격이다. 경숙은 자신이 초원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고, 희생하고 있고, 무엇이든 다 해주는 ‘착한 엄마’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4등>의 엄마 정애의 행동도 경숙과 비슷하다. 정애는 아들 준호가 수영에 재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회에서 매번 4위를 차지하는 것이 속상하다. 어쩌다 2위를 하면 “거의 1등”이라고 흥분한다. <4등>은 정애를 경쟁의 화신으로 묘사한다. 정해는 수소문 끝에 국가대표 출신 코치를 모셔오고, 성적을 위해서라면 그의 폭력도 애써 무시한다. 하지만 코치의 폭력이 문제가 돼서 준호와 엄마의 갈등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엄마는 준호를 방임하고, 둘째 아들의 학원 스케줄에 몰두한다. 그러자 준호는 스스로 새벽에 일어나 혼자 훈련을 하고, 마침내 1등을 차지한다.

 

'4등' 스틸컷.
'4등' 스틸컷.

<말아톤>과 <4등>에서 경숙과 정애는 ‘나쁜 엄마’로 등장한다. 그들이 아들을 대하는 태도와 행동은 매우 비슷하다. <말아톤>의 경숙은 초원이 화장실 가는 것까지 일일이 챙긴다. 경숙에게는 고등학교 2학년인 둘째 아들의 대학 진학 상담보다 초원의 수영장 예약이 더 중요하다. <4등>의 정애도 준호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하고, 그의 운동 스케줄과 경기를 철저하게 관리하고 감독한다.

경숙과 정애의 이러한 태도는 양날의 칼이다. 부정적인 관점에서 보면, 아들의 주체성과 독립성을 훼손하는 일이다. 지나친 보살핌은 억압과 폭력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경숙과 정애는 아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자신만의 생각의 틀에 갇혀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아들을 억압한다. 그들은 ‘착한 엄마’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으로 인해서 두 사람은 오히려 ‘나쁜 엄마’가 된다.

<말아톤>과 <4등>은 바로 이 지점에 주목한다. 그리고 초원과 준호가 ‘엄마의 규율’에서 벗어나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려낸다. 흥미로운 점은, ‘나쁜 엄마’가 초원과 준호의 내적 성장에 부정적으로만 작용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엄마의 이중적인 면모는 신화나 옛이야기에 자주 나온다. 생산, 풍요, 창조를 주관하면서 죽음, 파괴의 주체이기도 한 여신들이 대표적이다. <말아톤>과 <4등>에서 엄마는 과잉 보호자인 동시에 아들의 주체성을 훼손하는 존재로 표현된다.

 

'말아톤' 스틸컷.
'말아톤' 스틸컷.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브루노 베텔하임에 의하면, 아이가 엄마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는 것은 보편적이다. 옛이야기에서 ‘나쁜 엄마’는 흔히 계모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그런데 아이가 엄마를 착한 보호자와 매정한 계모로 나누는 이유는 비교적 단순하다. 엄마의 좋은 이미지를 보존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러한 수법은 실제 어린이들에게 흔히 발생하는 일이다. 아이는 착하고 친절한 엄마와 화를 내고 혼내는 엄마가 같은 인물일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초원은 ‘다섯 살 지능을 가진 스무 살 청년’이다. 즉 초원의 내면은 다섯 살 무렵의 아이와 비슷하다. <4등>의 준호는 초등학생이다. 준호도 초원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인물이다. 그러니까 경숙과 정애의 억압적인 행동은 옛이야기에 등장하는 계모의 변형인 셈이다.

동화 「빨간 모자」에서 할머니는 소녀에게 빨간 벨벳 모자를 선물해준다. 나중에는 소녀를 잡아먹는 사나운 늑대의 모습으로 변한다. 그러나 ‘나쁜 할머니’인 늑대는 처벌받고, 모자를 선물해준 ‘좋은 할머니’는 다시 살아난다. 이 이야기에서 늑대는 할머니의 또 다른 모습이다. 그리고 소녀는 할머니를 두 실체로 분리시킴으로써 좋은 할머니의 모습을 보존한다. 「신데렐라」와 「콩쥐팥쥐」도 이와 유사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말아톤>과 <4등>에서는 엄마가 두 인물로 분리되는 대신 상반된 인격을 지닌 인물로 묘사된다. <말아톤>의 ‘아이를 버린 엄마’, <4등>의 준호를 몰아세우는 엄마는 본질적으로 계모의 캐릭터이다.

<말아톤>과 <4등>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초원과 준호는 주체성을 가진 인물로 재탄생하고, 스스로의 결정으로 훈련에 전념하고, 마라톤 완주와 1등이라는 과업을 달성한다. 이는 초원과 준호가 엄마의 규율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경숙과 정애는 ‘나쁜 엄마’로서 처벌 받아야 하는 것일까. <말아톤>과 <4등>에서는 그렇지 않다. 두 사람이 ‘나쁜 엄마’인 것은 맞지만, ‘나쁘기만 한 엄마’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말아톤' 스틸컷.
'말아톤' 스틸컷.

<말아톤>과 <4등>은 서사 전개와 결말이 다소 부자연스러운 측면이 있다(<4등>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제작됐다). 두 영화에서 경숙과 정애가 ‘착한 엄마’였으면 갈등과 대립이 없었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영화로서의 리얼리티와 극적인 긴장감은 떨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초원과 준호의 내면 성장도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역설적으로 ‘나쁜 엄마’로 인해 새로운 인물로 재탄생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현실 세계에서도 ‘나쁜 엄마’가 아이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그래서 <말아톤>과 <4등>의 서사는 대중들의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는 소망을 실현해준 판타지일 수도 있다. 인간의 성장 과정에서는 ‘나쁜 엄마’도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바빌로니아의 서사시 「에누마 엘리쉬」에서 마르두크는 어머니 여신인 괴물 티아마트를 물리침으로써 영웅이 된다. 티아마트는 죽음을 통해 우주의 기원이 됐다. 우주의 기원이 어머니 여신이듯, 한 생명의 기원은 어머니이다. 그리고 어머니라는 울타리를 뛰어넘어 자신만의 독립적인 영혼을 가질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어른이 된다. 정상적인 어른은 모두가 영웅인 셈이다. 그러한 점에서 <말아톤>의 초원과 <4등>의 준호는 ‘작은 영웅’이 된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임정식

영화평론가. 영화를 신화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작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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