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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국의 문화톡톡] 템페스트 - 소나타 그리고 신세계
[최양국의 문화톡톡] 템페스트 - 소나타 그리고 신세계
  • 최양국 (문화평론가)
  • 승인 2021.03.02 0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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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초의 뜨락은 아직 어설프다. 비가 내리며 그림자들의 꿈이 자라난다. 유채색의 향연을 키워간다. 자연이 꽃을 피워내듯, 우리는 문화를 피워낸다. 꽃의 다양성만큼이나 문화를 한 마디로 정의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문화는 그것이 속한 존재 양상에 따라 매우 다양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문화(culture)의 어원인 경작이나 재배 등을 뜻하는 라틴어(cultus)를 접목하면, 문화는 자연과 인간이 상호 작용하면서 인위적으로 만들어내고 창조해내는 모든 현상을 의미한다. 이는 ‘나’와 ‘너’의 한평생이 합쳐져서 연속적으로 이어져 ‘우리’가 되어야 하는 세대와 연결된다. 세대의 속성은 곧 문화의 속성이다. 우리들 문화에 폭풍우가 내린다. 우리는 문화 속성의 지표를 찾아 영국 런던 템스 강가의 글로브 극장(Globe theatre)으로 떠난다.

 

폭풍우(Tempest) / 문화지표 / 관용과 / 배려 지향

글로브 극장에서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1564년~1616년)의 마지막 작품인 희극 <템페스트(The Tempest)>가 초연되고 있다. 이는 1610년에서 1611년 사이에 셰익스피어가 쓴 작품으로써, 형식적으로는 5막 1장의 고전주의 희곡 형태를 취하고 있고, 그의 다른 비극 작품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한 3일치의 법칙(한 편의 연극 안에서 '시간・장소・행동'이 일치해야 한다는 규칙)이 지켜지고 있다.

* 템페스트 (William Shakespeare, 1610년~1611년), Google
* 템페스트 (William Shakespeare, 1610년~1611년), Google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외국으로 출가한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나폴리의 왕 알론소와 그의 일행을 태운 배가 어떤 섬 근처에서 폭풍우를 만나 파선하게 된다. 이는 자연 현상이 아닌 마술이었다. 12년 전 밀라노 공국을 다스리는 프로스페로(주인공)는 정치보다는 마술 연구에 몰두한다. 그를 대신해 정사를 돌보던 동생 안토니오는 형 프로스페로를 내쫓고 자기가 밀라노 대공이 되겠다는 야심으로, 나폴리의 왕 알론소의 힘을 빌려 프로스페로를 축출한다. 딸 미란다와 함께 망망대해를 헤매다 프로스페로는 어떤 섬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프로스페로는 딸을 키우며 마법의 힘을 갈고 닦는다. 그는 그 섬에 살고 있던 짐승같은 괴물 캘리번과 공기의 정령 에어리얼을 부하로 삼을 정도로 강력한 마법사가 된다.

12년의 시간이 흐른 후, 자신의 원수들이 바다를 지나고 있다는 사실을 안 프로스페로가 막강한 마법력으로 폭풍우를 일으킨 것이었다. 그는 알론소와 안토니오 일행을 자신이 있는 섬에 오도록 유인한다. 그때 프로스페로는 알론소의 아들 페르디난드만 무리에서 따로 떨어지게 만든다. 그리고 나서 자신의 딸 미란다가 그와 우연히 마주치도록 한다. 페르디난드와 미란다는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이후 프로스페로의 암굴 앞에 모인 사람들에게, 프로스페로가 예전 밀라노 대공으로 변하여 죄과를 따지는 중에, 알론소는 아들을 잃은 슬픔에 빠져 있다. 이때 페르디난드와 미란다가 나타난다. 이때 미란다는 난파선에서 섬으로 올라온 사람들을 처음 보고 ‘참 찬란한 신세계(O brave new world)’라며 인간에 대한 아름다움을 외친다. 프로스페로는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그들을 용서하고, 모든 마법 관련 책과 지팡이를 바다에 버리고 밀라노의 대공으로 돌아간다.”

여기에서 문화의 두 가지 속성이 드러난다. 첫째, 문화는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을 충실하게 따르도록 한다.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상호 작용하면서 어떤 현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폭풍우와 프로스페로, 프로스페로와 동생 안토니오 그리고 알론소, 페르디난드와 미란다. 상호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에 의해 파선, 복수 그리고 사랑과 용서라는 문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둘째, 문화는 ‘항상성’을 유지하여야 한다. 12년의 시간은 흘러갔지만 배신에 대한 복수와 갈등의 감정, 복수의 뒤쪽에 움크리고 있던 용서의 외침, 새로운 사람들에서 느끼는 신세계와 사랑은 우리의 DNA속에 항상 유지하고 간직하며 발전 시켜온 소중한 어떤 감정으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이는 ‘나’와 ‘너’의 문화에 대해 용서와 사랑을 바탕으로 한, 관용과 배려의 ‘우리’ 문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지표를 설정해 준다.

 

소나타 / 컬쳐지표 / 의지반영 / 예외 추구

 셰익스피어의 희극 <템페스트(The Tempest)>는 음악으로 연결되며,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1770년~1827년)의 피아노 소나타 제17번을 소환한다. 이는 세 개의 소나타(16번, 17번, 18번)로 구성된 작품 번호 31 세트의 두 번째 작품이다. 흔히 ‘템페스트’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있다.

* 템페스트(Piano Sonata No.17) (L.V.Beethoven, 1802년), Google
* 템페스트(Piano Sonata No.17) (L.V.Beethoven, 1802년), Google

<템페스트(Piano Sonata No.17 Op.31-2 ‘The Temp est’)>는 1802년 작곡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 곡이 작곡됐던 당시는 귀가 멀기 시작한 베토벤이 절망의 늪에 빠져 ‘하일리겐슈타트 유서(Heiligenstädter Testament)’를 썼던 때로써, 조수였던 신들러가 이 곡을 이해할 단서를 달라고 하자, 셰익스피어의 희극 ‘Tempest(템페스트)’를 읽어 보라고 했다는 말 때문에 템페스트라는 별칭을 얻게 됐다는 설이 있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다만 베토벤 개인적으로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것으로 보아, 셰익스피어의 희극 <템페스트(The Tempest)>와 어떤 식으로든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듯하다.

셰익스피어 작품과 동명인 인연에 따라 희극과 음악인 두 작품을 하나의 서사적 측면으로 연결시켜 본다. 제1악장은 밀라노 왕 프로스페로와 공기의 정령인 에어리얼의 물방울 위에서 톡톡 튀는 듯한 모습을 나타낸 환상적 마술의 세계이고, 제2악장은 프로스페로의 딸 미란다와 페르디난드와의 폭풍우속 정적을 찾아 떠나는 연분홍빛 사랑의 속삭임 이며, 마지막 악장은 마법으로 휘몰아쳐 온 폭풍의 정경과 밀라노 대공으로의 변신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유추해 본다.

이 곡을 완성할 당시의 베토벤은 귓병이 악화되어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전지 요양을 하며 자살까지 생각하던 때로써, 당시 그의 정신적인 고뇌와 절망감이 이 곡속에 그대로 반영되었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곡을 만들었던 베토벤의 중심추는, 끝 모를 추락을 나타내는 ‘절망‘과 ‘분노’보다는 열정의 정상을 향한 ‘용기’와 ‘화해’를 향하고 있는 것 같다. 치열한 고뇌와 극복 없이는 가늠할 수도 없을 절망과 분노의 끝자락에서 용기와 화해, 이를 통해 얻게 되는 치열한 즐거움의 끝자락을 한 음 한 음의 꽉 찬 선율로 우리에게 선물하는 듯하다. 그중에서도 제3악장은 절대적 자아를 향해 숨막히게 도전하고, 환하게 터지며 세상을 비추는 불꽃같은 느낌이다.

여기에서 문화의 두 가지 속성이 드러난다. 첫째, 문화는 ‘당위성의 법칙’을 만들어 내며 유지되어야 한다.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상호 작용하면서 어떤 현상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인간의 인식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사실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문화의 모든 현상은 자연과 인간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과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둘째, 문화는 ‘개연성’과 ‘확률’의 원리를 따른다. 음악가에게 청력 상실은 음악가로써의 삶을 포기하여야 하는 확률론적 인과 관계가 성립할 수 있다. 그러나 베토벤이 그러했듯이, 우리들 삶의 나아가는 길은 인과 관계로만은 설명할 수 없는 독립변수가 존재한다. 예외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우리들 문화 진화의 가장 큰 동력으로 자리매김한다.

이는 ‘나’와 ‘너’의 문화에 대해 용기와 열정을 바탕으로 한, 의지와 예외의 ‘우리’ 문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지표를 세워준다.

 

신세계 / 마지막 지표 /자유도(自由度)와 / 자아네

 셰익스피어의 희극 <템페스트(The Tempest)>는 소설로 장면을 전환하며, 헉슬리(Aldous Leonard Huxley,1894년~1963년)가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를 쓰도록 한다.

* 멋진 신세계 (A.L.Huxley, 1932년), Google
* 멋진 신세계 (A.L.Huxley, 1932년), Google

‘멋진 신세계’라는 말은 셰익스피어의 희극 <템페스트> 제5막 1장 가운데 미란다의 대사에서 따온 것이다.

O wonder! How many goodly creatures are there here!

How beauteous mankind is! O brave new world,

That has such people in't.

(오 놀라워라! 이 많은 훌륭한 피조물들이 여기에 함께 있다니!

인간은 참으로 아름다워라! 오 멋진 신세계,

이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 윌리엄 셰익스피어, 템페스트, 제5막 1장 -

신세계에 사는 인간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모두 시험관에서 대량생산되고 유전학적으로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입실론의 다섯 계급으로 선별되며 사육되어 만들어진다. 각 계급에 따라 산소와 영양분을 조절한다. 산소를 덜 공급받은 하층 계급의 태아들은 지능도 체격도 열등한 상태로 태어난다. 선별된다는 것은 우생학을 과학으로써 적용하는 생물학적 결정론이며, 사육되고 만들어진다는 것은 인간의 본성은 ‘빈 서판(깨끗이 닦아낸 서판, tabula rasa)'과 같으므로, 교육과 제도와 같은 환경과 경험 등에 의해 그 마음의 내용이 얼마든지 바뀌는 존재로써 환경론적 결정론의 주장이다. 그러므로 ’멋진 신세계‘에 사는 인간은 생물학적 결정론에 의해 선별되고, 환경론적 결정론에 의해 사육되어 만들어지는 존재이다.

소설의 여주인공인 레니나는 버나드 마르크스라는 청년과 함께 금지구역인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고압전류가 흐르는 울타리로 둘러싸인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야만인' 존 새비지를 알게 된다. '야만인'으로 표현되는 보호구역내의 사람들은 선별되어 사육되지 않은 인간의 전형으로써, 대량생산이 아닌 사랑에 의해 태어났고, 수면학습법이나 전기충격요법에 의해서가 아닌 독서(셰익스피어의 희비극등)등 자율적 학습과정을 통해 성장하며 자신들만의 자아를 성장 시켜왔다. 레니나와 버나드는 존과 그의 어머니 린다를 문명세계로 데려가기로 한다. “오오, 멋진 신세계여! 그토록 아름다운 인간들이 살고 있는 멋진 신세계여! 지금 바로 떠나요!”

하지만 존의 어머니 린다는 소마(신세계에서 고민을 해결해 주는 데 사용하는 일종의 사육용 약)를 다량 복용한 후, 호흡곤란을 일으켜 죽는다. 충격을 받은 존은, 소마를 배급받기 위해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로 가서 상자 속에 든 약을 한 줌씩 꺼내 던지며 울분을 토로한다. “여러분은 노예 상태가 좋습니까? 자유롭고 인간답게 살고 싶지 않습니까? 인간다움과 자유가 무엇인지도 모른단 말입니까?” “인간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가! 오오, 멋진 신세계여!”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 5막 1장에 나오는 대사이며, 존이 신세계를 갈망하며 떠나온 보호구역으로 향하기 위해 외친 그 한 마디다. 헉슬리는 이 소설에서 ‘멋진 신세계’가 결코 멋지지 않으며, 절대 행복하지 않다고 말해준다. 타인에 의해 선별되고 사육되어 만들어지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 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햇살 밝은 어느 날 아침 문득,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권리에 대해 감탄할 멋진 신세계가 필요하다. 선별되고 사육되어지는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소설 속 풍자에 그쳐야 한다.

여기에서 문화의 두 가지 속성이 드러난다. 첫째, 문화는 ‘보편성과 특수성의 법칙’을 만들어 내며 유지해야 한다. ‘멋진 신세계’는 그들만의 세계를 위한 보편적인 원칙은 만들어 내며 유지하였지만, 인간의 의지・감정・가치 및 신념등을 존중하며 배려하는 특수한 문화적 기제를 반영하는 것에는 실패한 세계이다. 문화의 모든 현상은 자연과 인간에 대한 공동선과 더불어 다양한 우리들의 인식과 의지의 표현으로 함께 하여야 한다.

둘째, 문화는 ‘자유도 제고의 원칙’을 따른다. 자아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우리의 그림은 타인의 데생과 붓에 의해 그려져서는 안 된다.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고유한 가치와 신념을 드러내지 못하고, 의식주의 풍요로움 만에 매몰되어가는 것은 또 다른 동물로의 진화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나’와 ‘너’의 문화에 대해 의지와 가치를 바탕으로 한, 자아와 자유도 높은 ‘우리’ 문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지표를 내세운다.

 셰익스피어~베토벤~헉슬리와 함께 한 폭풍우속 여행을 마치고, 또 다른 폭풍우(Tempest)를 기다린다. 그 폭풍우속에서는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할까? 셰익스피어는 우리들 비극의 원인은 운명이 아닌 인간 자신에게 있다고 한다. 우리들 삶은 ‘빈 서판’에 희극과 비극을 모자이크 해 나가는 과정과 같다. 그렇다면 우리들 희비극의 모든 답은 그의 ‘템페스트’와 그녀의 ‘멋진 신세계’에 있지 않을까?

 

글 · 최양국

격파트너스 대표 겸 경제산업기업 연구 협동조합 이사장

전통과 예술 바탕하에 점-선-면과 과거-현재-미래의 조합을 통한 가치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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