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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연주의 시네마 크리티크] 눈을 감고 사랑을 찾는 여정 <블라인드>
[송연주의 시네마 크리티크] 눈을 감고 사랑을 찾는 여정 <블라인드>
  • 송연주(영화평론가)
  • 승인 2021.03.02 09: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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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네덜란드 영화<블라인드>(2007)는 배우이자 감독인 타마르 반 덴 도프 감독의 작품으로 국내에서는 영화제 등에 소개 되어 팬들의 입소문을 탔고, 그들의 요청으로 2021년 1월 뒤늦게 첫 공식 개봉했다. 영화는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을 모티프로 하고 (동화를 읽어주는 형식으로 영화에 그대로 담으면서도) 인물과 이야기는 동화와 달리 변주했다. 영화는 세상을 나쁘게 보여주는 거울 조각이 눈에 박힌 카이는 누구이고 그를 찾는 게르다는 누구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깨진 거울을 들여다보는 소녀(어린 마리)의 시선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백색증을 앓는 소녀의 얼굴이 깨진 조각들 사이로 비춰지고, 마리(핼리너 레인)의 목소리가 보이스오버 된다.

“그럼 시작해볼까요? 동화가 끝날 즘엔 분명 많은 것을 알게 될 거에요.”

영화는 구름 낀 하늘, 눈 덮인 들판과 시대적 배경이 언제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과학기술의 발달로 수술이라는 것이 가능한 시기의 북유럽 저택의 외관을 보여준다. 이곳에 살고 있는 루벤(요런 셀데슬라흐츠)은 후천적 시각장애로 세상을 볼 수 없고, 몸도 마음도 어둠 속에 갇혀있다. 촉각과 후각으로 세상을 인지하는 루벤은 누군가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이 싫고, 신경질적이고 예민하다. 루벤의 어머니 캐서린(카테리네 베르베케)은 루벤을 씻겨줄 사람, 책을 읽어줄 사람을 고용해서 루벤을 보호한다. 그러나 루벤은 자신을 케어해주는 사람들을 난폭하게 대하고 그들은 오래 일하지 못한다. 새로운 낭독자인 마리에게도 루벤은 난폭하게 대하지만 그녀에게만은 루벤의 난폭함이 통하지 않는다.

백색증을 앓는 이유로, 어릴 때 어머니로부터 거울에 얼굴을 들이 받는 학대를 당한 마리. 깨진 거울 조각에 베인 상처가 얼굴과 손에 있는 마리는 사람들이 자신을 추하게 볼 것이라 믿으며, 오랫동안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서 살아왔다. 저택 서재에서 책을 읽고 싶은 마리는 오랫동안 이 집에서 일을 하고 싶고, 자신의 몸에 손대는 것도 싫어하기에 루벤의 난폭한 행동에 몸싸움까지 하며 루벤을 제압한다. 루벤은 마리의 향기, 목소리, 그리고 겪어보지 못했던 강한 방식으로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관심을 갖게 된다. 마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루벤은 보이는 것 이외의 감각으로 느낀다. 루벤의 폭력성은 <눈의 여왕>을 낭독하는 마리의 목소리를 듣고 점점 누그러진다.

 

마리와 캐서린은 루벤을 대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 캐서린은 루벤을 아이처럼 얼르고 달래며 그에게 필요한 것을 직접 해주는 반면, 마리는 루벤의 성격을 받아주지 않고 제압한다. 캐서린이 루벤에게 씻겨줄 사람을 고용해주었다면, 마리는 루벤에게 의지하지 말 것을 강조하고, 스스로 씻는 법을 알려준다. 루벤은 세상에 태어나 후천적으로 시력을 잃고 어둠에 갇혀있기 때문에 그런 마리를 통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기쁨을 느꼈을 것이다. 이는 루벤의 판타지로 드러난다. 가령 마리가 책 읽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눈 덮인 들판 위를 걷는 기린을 떠올린다거나, 마리가 비누를 묻혀준 스펀지에서 올라오는 거품들이 내는 소리를 섬세하게 느끼고, 마리가 연주하는 피아노 선율에 잉어들이 있는 물속을 보듯 환상에 빠져드는 것이 그렇다.

 

루벤이 마리를 통해 겪는 새로운 세상은 시력을 상실한 이후 루벤을 새로 태어나게 하는 것이며, 이는 마리에게 의지하고 그녀를 향한 사랑으로 이어진다. 마리는 시력을 잃은 루벤 앞에서 스스로 추하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됐다. 마리는 루벤이 자신을 아름다운 여성으로 상상하도록 거짓말을 했고, 그에게서 아름답다는 말을 들어 행복해한다. 루벤은 마리의 손등과 얼굴에 남은 상처를 상처인지 모른 채 ‘얼음꽃’이라고 부르고, 마리는 자신의 가장 큰 트라우마를 조금은 치유한 것처럼 스스로 거울을 응시할 수 있을만큼 루벤에게서 위로 받는다. 두 사람은 모두 타인의 시선, 타인이 자신을 바라보는 자체를 두려워했고, 어둠속에 자신을 감춰왔지만, 둘이 함께라면 서로에게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한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시력을 되찾는 수술이 가능해졌고, 마리를 보고 싶은 루벤은 수술을 선택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루벤이 수술을 해서 마리를 보게 된다면, 더 이상 루벤 앞에서 아름다운 여성일 수 없기에 마리는 그의 곁을 떠난다. 루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수술을 한다. 이때에 맞춰 루벤의 어머니 캐서린도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다행히 수술이 잘 되었고, 루벤은 안경을 쓴다. 그러나 <눈의 여왕>에서 카이의 눈에 박힌 거울조각처럼 루벤의 안경은 루벤에게 세상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그 세상은 아름답지 않고 추하기까지 하다. 그에게는 시력은 잃었으나 머릿속으로 떠올렸던 세상이자 마리와 함께 했었던 그때가 더 아름다웠다. 시력을 찾은 뒤 하는 모든 것은 낯설었고, 면도를 하면서도 마리와 함께 했을 때처럼 눈을 가려야 편했다. 마리가 없는 공허함과 아픔에 그 어떤 여성을 만나도, 그녀는 마리가 될 수 없었다. 마리에게는 손등과 얼굴에 그녀만의 ‘얼음꽃’이 있었고, 그녀만의 목소리가 있었다. 이는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녀와 자신의 행복했던 시간을 되찾고 싶은 루벤. 그가 마리를 찾아다니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 것이며 동시에, 자신의 아름다웠던 세계를 찾는 여정일 것이다. 그래서 마리를 다시 만난 루벤이 그녀를 되찾기 위해 영화의 마지막에 해야 할 선택은 어쩌면 그것 하나뿐이었을지도 모른다. 눈을 감은 채 사랑을 찾는 루벤의 여정은 결국 행복했을까? 마리는 루벤을 위해서 아무것도 포기한 것이 없는 것 같아서 어쩌면 이 이야기 전체가 마리가 꿈꾸는 판타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 <블라인드>

 

 

글·송연주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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