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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30년 전 시작된 전설 <아비정전>
[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30년 전 시작된 전설 <아비정전>
  • 송영애(영화평론가)
  • 승인 2021.03.15 0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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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위 감독의 <아비정전>(1990)에 대한 기억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개봉 당시엔 오해받았지만, 얼마 후 성지가 되더니, 곧이어 전설이 됐다.

오늘은 <아비정전>이 전설이 되어간 과정을 떠올려볼까 한다. 30년 전 국내에서 광풍을 일으켰던 홍콩영화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겠다.

 

넌 내게 배신감을 줬어!

<아비정전>은 1990년 12월 22일에 개봉된 후 2주 만에 종영됐다. 왕가위 감독의 전작 <열혈남아>(1987)와 비슷한 영화를 기대했던 관객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인기를 얻던 홍콩 액션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도 마찬가지였다. 1991년 1월 3일까지 상영됐던 <아비정전>의 흥행 기록은 서울 관객 기준 35,934명을 동원하는데 그쳤다(1).

당시 신문 광고를 보니, 배신감이 느껴질 만 했다. “남자는 명예에 목숨을 걸고, 여자는 사랑에 인생을 건다.”에 “우정은 약속이고 사랑은 믿음이다.”까지... <아비정전>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광고 카피였다. 관객에게 엉뚱한 기대를 줘버렸던 것이다.

 

'아비정전' 신문 광고(조선일보, 1990년 12월 20일 13면)
'아비정전' 신문 광고(조선일보, 1990년 12월 20일 13면)

홍콩 안팎에서 평단의 평가는 좋았고, 상복도 있었지만,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지는 못했다.

 

1990년 전후 홍콩영화의 인기 (2)

<아비정전>이 종영됐던 1991년은 홍콩영화의 인기가 이어지던 시기였다. 서울 관객 기준 흥행 영화 10편 중 미국영화가 7편으로 제일 많았는데, 홍콩영화가 2편으로 뒤를 이었고, 한국영화는 1편이었다. 홍콩영화는 직배를 막 시작한 미국영화만큼은 아니었지만, 한국영화의 입지를 좁히는 외국영화였다.

1991년 흥행 영화들을 보면, 1위는 서울 관객 168만 명을 동원한 <사랑과 영혼>(제리 주커)이었고, 2위는 100만 명을 동원한 <터미네이터 2>(제임스 카메론)이었다.

홍콩영화는 서울 관객 40만 명과 34만 명을 동원한 <용형호제 2>(성룡, 진훈기)와 <황비홍>(서극)이 8위와 10위를 차지했다. 11위도 28만 명을 동원한 또 다른 홍콩영화 <종횡사해>(오우삼)이었다. 참고로 한국영화 최고 흥행 영화는 전체 흥행에서는 9위였는데, 35만 명을 동원한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 2>이었다.

홍콩영화의 인기는 연간 수입 편수를 봐도 짐작할 수 있다. 1991년 국내로 수입된 영화 354편 중 172편이 미국영화, 88편이 홍콩영화였다. 외화 수입사 입장에서 홍콩영화는 미국영화 대비 가성비 좋은 영화였다. 당시 완성도 되기 전에 판권부터 사들이는 입도선매까지 등장했고, 국내 수입사끼리 홍콩영화 쟁탈전을 벌여, 판권 가격만 지나치게 올라갔다는 뉴스도 종종 들려왔다. 액션영화가 주로 수입되다 보니, 도박 소재나 폭력성 등이 이슈가 되기도 했다.

 

왕가위 신드롬과 <아비정전>

왕가위 감독의 다음 영화 <중경삼림>은 국내에서 홍콩 액션영화의 인기가 수그러들던 1995년에 개봉되었다. 5년 전 <아비정전>이 다른 홍콩영화와 너무 달라 외면 받았다면, <중경삼림>은 그래서 더 큰 관심을 받았다. 왕가위라는 감독이 재발견되는 순간이었다.

 

'중경삼림 리마스터링' 재개봉 포스터
'중경삼림 리마스터링' 재개봉 포스터

12만 명 이상의 서울 관객을 동원한 <중경삼림>에 이어, 1995년 한 해에만 왕가위 감독의 영화 2편이 더 개봉되었다. 서울 기준 9월 2일부터 11월 3일까지 <중경삼림>이 상영된 이후(3), 11월 12일에는 <동사서독>이 개봉되어 12월 15일까지 상영되었다(4). 그리고 12월 23일에는 <타락천사>가 개봉되었다(5).

9월, 11월, 12월 연달아 영화가 개봉되면서 ‘왕가위 신드롬’이라 불렸고, ‘왕가위이즘’이라는 말도 등장했다. 그리고 이전 영화인 <아비정전>이 다시 주목받기에 이르렀다. 미처 몰라봤기에 다시 찾아봐야 하는 일종의 성지가 된 셈이었다.

재개봉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1995년 관객들에겐 비디오가 있었다. 동네 비디오 가게만 방문하면 왕가위 감독의 영화 몰아보기가 가능했고, 왕가위만의 스타일을 반복 감상하며 즐길 수 있었다. 애초에 2편을 염두하고 제작되었지만, 2편 제작이 좌초되면서, 애매한 오픈 엔딩이 되어버린 것도 신비롭게 느껴졌다. 1997년 1월로 예정된 홍콩 반환으로 인해 영화의 내용이 불안감, 애잔함 등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성지에서 전설로

왕가위 신드롬은 <해피투게더>(1997), <화양연화>(2000)로 지속됐다. 스텝프린팅, 핸드헬드, 슬로우모션, 롱테이크, 클로즈업, 하이앵글, 짙은 색감, 가득 찬 화면, 익숙한 음악 등 왕가위 식 미장센은 MTV 세대의 감성을 자극했고, 수많은 아류작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2003년 4월 1일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아비정전>의 아비, 장국영이 세상을 떠났다. <아비정전>은 <영웅본색>(오우삼, 1986), <천녀유혼>(정소동, 1987), <패왕별희>(천카이거, 1993), <동사서독>, <해피투게더> 등과 더불어 그의 대표작으로 남았다.

 

'아비정전' 스틸
'아비정전' 스틸

<아비정전>에서 장국영이 속옷 바람에 맘보를 추는 장면뿐만 아니라 유난히 많이 봤던 그의 뒷모습이 각인됐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수리진(장만옥)을 향해 걸어가는 뒷모습으로 등장한 아비는 늘 뒷모습을 보인다. 도시를 떠나는 아비의 자동차도 뒷모습을 보여준다.

아비는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 친엄마에게도 뒷모습만 보인 채 씩씩하게 걸어 나간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을 느끼지만, 그러기에 더더욱 돌아서지 않는다.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싶었는데, 그것도 싫으시다면 나도 보여주지 않을 거다.”라는 아비의 내레이션이 흐른다.

장국영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과 2편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뒤섞여 전설이 된 <아비정전>은 1991년 짧았던 첫 개봉 이후 여러 차례 재개봉되었다. 2021년 3월 15일 현재에도 ‘왕가위 특별전’을 통해 상영 중이다.

 

'아비정전' 재개봉 포스터
'아비정전' 재개봉 포스터

특별전을 기획한 영화관도 여러 군데라서 올 한해 왕가위 감독의 영화들의 재 상영은 계속될 예정이다. 또한 <중경삼림>, <타락천사>, <해피투게더>, <화양연화>, <2046>(2004), <동사서독 리덕스>(2008) 등이 4K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공개되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코로나19 상황이 가져단 준 기회라 마음이 무겁긴 하지만, 기억 속 영화가 다시 현실로 소환되는 건 늘 반갑다. 영원한 순간으로 남아있는 전설의 영화를 건강하게 큰 화면으로 누리시길!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글·송영애

영화평론가. 서일대학교 영화방송공연예술학과 교수. 한국영화 역사와 문화 관련 연구를 지속해왔다.

(1) 『1992년도판 한국영화연감』, 영화진흥공사, 126쪽.

(2) 『1992년도판 한국영화연감』, 영화진흥공사, 45쪽, 55쪽.

(3) 『1996년도판 한국영화연감』, 영화진흥공사, 167쪽.

(4) 『1996년도판 한국영화연감』, 영화진흥공사, 170쪽.

(5) 『1996년도판 한국영화연감』, 영화진흥공사, 1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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